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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90화 (90/259)

[90화]

“으음, 답은 역시 빨리 적당한 곳에 보내 버리거나… 약혼시키는 것뿐인가? 시종장, 아래쪽(?) 상태는 어땠나? 혹시라도… 불의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겠지?”

“다행히 아직 처녀이십니다.”

“후우~ 그럼 의혹은 없겠군. 하긴 보고에도 이변이 없었고, 다른 어딘가로 숨어들지 않았으니……. 하나 결국 소문이 그 아이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있으니 난리도 아니군. 후우우~”

원래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이 사라지자 정말 아쉽다는 듯 한숨을 깊게 쉬는 황제였다.

하나 이미 일은 저질러졌고, 딸의 평판은 이상한 소문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 시간이 지나면 소문은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그 염문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베오날드라는 놈이 과연 소문이 가라앉을 때까지 가만히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보고에 의하면 유력한 상급 기사급 인재인 로이드 크멜과 수십 합을 겨룰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면 이미 최소한 중급 기사급의 무위를 소유한 게 아닌가? 맙소사! 천연 기사라고 들었는데! 그 나이에 명문가 출신도 아니고! 기가 찰 노릇이군.’

크멜 가문이나 발데리안 가문이라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지만, 전문적으로 기사를 배출하는 곳이 아닌 캘러메인 가문에서 10대 후반에 중급 기사의 반열에 오르는 건 무리나 다름없었다.

웬만해선 오랫동안 수련과 전쟁을 거친 기사들이나 달성하는 건데, 재능이 있다고 해도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그야말로 놈은 영웅의 재목. 심지어 비극적인 혈통을 가졌으니 사람들의 입에 더더욱 오르내리겠지. 끄으으으음… 그러면 이후 계속해서 그 아이랑 돌았던 이야기가 부풀려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전히 매혹적이지만 지속적으로 가치 유지가 불가능한 수표나 다름이 없다.

다른 방법으로는 베오날드를 제거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놈은 아주 간교하게도 귀족 파벌의 대귀족인 발데리안 백작가의 저택 안으로 숨어들어 가서 손을 대기 아주 껄끄럽게 된 것이었다.

‘하필 숨어들어 가도 발데리안 가문으로 들어가다니!’

크멜 가문과 쌍벽을 이루는 제국의 무가(武家) 중 하나. 전통과 역사로 치면 발데리안 가문이 더 긴 명문 중의 명문으로, 칼레움 제국의 건국 이전 통일 제국 시기부터 유지해 온 역사 깊은 무가였기에 거기에 암살자든 뭐든 보내려면 엄청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큰 도발이나 마찬가지였다.

‘허! 미치겠군. 정말! 미치겠어.’

툭툭툭툭…….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황제는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지만, 그런다고 해서 뾰족한 대책이 나오진 않았다.

아니, 하나의 답은 이미 존재했다.

하나 그것은 너무나 아깝고 아쉬운 것이어서 혹시 다른 길이 없나? 하고 살펴보는 과정이었다.

‘…결국은 지금이 팔 때라는 거군. 으으으음!’

앞으로 미래를 볼 때, 가치가 떨어지는 것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결국 지금이 가장 비쌀 때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황제가 내릴 수 있는 판단은 결국 젤시 황녀를 시집보내는 것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제국을 위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사라진 것에 안타까워하며 지금이라도 팔아 치울 수 있을 때 딸을 팔고자 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결정을 하고 그는 즉시 혼처를 물색했다.

지금까지 구혼을 위해서 이것저것 투자한 가문이 많았기에 리스트는 금방 만들어졌고, 이제 팔 때 가장 득이 될 곳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음, 먼저 우리 파벌에 크멜 가문도 있군. 하지만 그쪽은 이미 단독 세력으로 너무 강성하다. 젤시를 주면 여차하면 중앙의 권력이 더 커질 수 있어. 황가의 혈통이 주어져서 좋을 게 없는 곳이군. 패스. 발데리안 가문은 애초부터 논할 가치가 없지. 역사는 길지만 결국 무력만 남은 들개들 같으니 말이야. 그리고 다음은…….’

여러 가지 사안을 고려하는 황제. 황녀 하나를 시집보내는 일이지만 권력 구도나 정치 구도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아주아주 신중한 그였다.

자신은 이미 노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기에 최대한 다음 세대가 물려받기 좋은 상태로 권력의 균형을 맞춰 놔야만 했다.

특히나 지금은 난세였다. 평온해 보여도 각 국가가 맞대고 있는 국경에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전쟁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으음… 그래, 바니로 백작이 좋겠군. 아주 적절해. 남부에 커다란 영토를 가지고 있고, 수도와 거리도 멀지만 세수는 넉넉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42살인데, 아직 미혼에 후계자가 없는 게 가장 마음에 들어. 껄껄껄.”

바니로 백작. 남부에 꽤 커다란 영토를 가진 백작 가문으로 최근 중앙 정치에도 나서고 싶어 하며, 곡창 지대를 가지고 있기에 제국의 식량 공급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가문이었다.

이런 중요한 땅의 백작이 42세가 되도록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너무나 추한 외모와 체질적으로 상시 발생하는 지독한 체취, 그리고 기괴한 성벽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다른 귀족 가문과의 혼담은 보내는 족족 파투가 났는데, 그럼 결국 자신보다 세력이 약한 가문을 협박해서 결혼을 하는 게 보통이지만 그는 수도에 와서 회의를 할 때 감히 젤시 황녀에게 반했던 것이고, 거의 가산을 퍼 주듯이 해서 황가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제아무리 정신 나간 자라고 한들 황가의 딸을 어떻게 하진 않겠지. 아니, 어떻게 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 명분이 생기는 것이지. 다른 귀족들과 손을 잡아서 바니로 백작가를 무너뜨리고 영지를 나누면 되니 말이야.’

그에게 있어 시집간 딸이 행복할지는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다.

딸은 황실의 일원으로서 황실을 위해 ‘사용’되는 게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딸과 대상의 나이 차가 20살 넘게 나든지, 못생겼든지, 냄새가 나든지, 성벽이 기괴하든지 따위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오로지 황실과 제국의 안녕과 미래를 위한 일이면 충분했다.

‘결혼 지참금은 두둑이 받아야겠군.’

끄덕.

고개를 끄덕인 황제는 당장 바니로 백작가에 전할 혼약 승낙의 편지를 써 내려갔다.

이제 이걸로 딸의 문제는 끝. 남은 건 그녀를 팔고 난 뒤 거둘 이익을 기대하는 일뿐이었다.

그 뒤 그는 곧바로 준비를 지시하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

2주 뒤, 발데리안 가문 저택.

베오날드는 그동안 조용히 발데리안 가문에서 식객으로 지내면서 고서 해독을 하거나 케드론의 검술 대련 상대가 되어 주는 걸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카데미에 대리로 출석하는 세인과 하이디를 통해 소문과 여론을 듣고 상황을 파악했다.

“그래, 아직 내부의 이야기는 진정되지 않았구나. 그리고 황녀 전하도 출석하지 않고 있다는 거지?”

“예, 베오날드 님.”

“예상대로군.”

“예상… 대로입니까?”

“대귀족이든 황실이든 염문설 같은 게 난 여자를 그냥 놔두지 않는 건 기본 공식이라서 말이야. 사실 내가 그거 피하려고 일부러 지는 척까지 했는데. 흐으으음~ 그러면 다음 할 일은 뻔하군. 약혼이든 결혼이든… 빨리 팔아 버리는 거겠지.”

팔아 버린다는 말에 세인과 하이디는 물론 셀리나의 표정도 급격히 나빠졌다.

세 사람 다 여성이다 보니 베오날드의 말에 기분 나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여성의 인권과 주체성을 존중받지 못하는 게 정상이라곤 하지만, 대놓고 물건 취급을 받고 좋아할 사람은 없었다.

“아, 이게 그러니까 내 의견이 아니라, 황제의 생각 패턴대로 말한 거야. 나는 절대 그런 생각 안 해.”

“물론 베오날드 님이 그렇지 않은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죠. 그렇죠.”

“다른 부분은 평범한 귀족 그 자체인데, 이상하게 이 부분만 특이하죠.”

“그냥 내 체질에 안 맞아서 그런 거다. 신경 쓰지 마라.”

전생의 부친 때문에 생긴 성향이라는 것은 죽어도 말 못하는 베오날드였다.

어쨌든 황제가 할 일은 뻔했고, 이는 베오날드의 심기를 매우 불쾌하게 만들었다.

물론 대부분의 귀족 가문들이 딸들을 가문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곤 했지만 적어도 좋은 시집처라든가, 혹은 본인이 마음에 들어 하는 남성과 맺어 주려고 노력하는 면이 있었다.

또한 본인이 내키지 않아 하거나, 아니면 심하게 지뢰인 가문일 경우엔 배제하기도 했다.

‘하나 그 황제는… 딱 봐도 그런 것 따윈 신경 안 쓸 것 같단 말이지.’

딸을 통제하는 것도 그렇고, 자신의 부친이었던 벨릭스와 같은 부류라고 생각하면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면 결국 황제는 최대한 제국과 황실이 ‘실리’를 챙길 수 있는 곳으로 젤시 황녀를 시집보내려 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음, 윤곽은 대강 나오는데, 문제는 이제 어떻게 하느냐인데…….’

황제의 목적을 밝혀내긴 했지만 어떤 수단을 써야 할지는 아직 확정 나지 않은 상황에서 베오날드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보았다.

일단 자신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부터 확실하게 정하기로 했다.

‘…시집가는 곳에 따라 다르긴 한데, 만약 황녀가 원하지 않거나 벨릭스 그 자식에 준할 만큼 악취미적인 곳으로 강제로 시집보낸다고 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 아, 물론 본인 의견도 들어 봐야겠지만…….’

만약 본인이 감내하겠다고 하거나 그냥 보낼 만한 곳이라면 축복해 주면 그만이겠지만, 그 황제의 성향을 생각하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할 것이다.

‘근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또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랑 다른 법이지.’

직접 부조리를 겪지 않을 때는 ‘견디지~’ 하고 마음먹은 사람도 고통과 괴로움을 직접 느끼면 생각이 바뀌게 된다.

죽어서 500년간 지옥 순회공연을 했던 자신도 얼마나 후회를 했던가?

‘아무튼 갑자기 벨릭스 생각을 하니 그 망할 인간이 행한 막장 짓거리가 떠오르는군.’

자신의 부친인 벨릭스도 인간의 마음이라곤 결여된 것처럼 자식들을 다루어서 그런 인간에 대해서는 빠삭한 베오날드였다.

‘…됐다. 구하러 가지 마라. 저 정도도 못 나오는 애새끼를 구하기 위해 훈련된 기사들을 희생시킬 순 없다.’

‘왜 14살짜리 딸을 노예상한테 팔았냐고? 당연한 걸 왜 묻나? 게을러빠지고, 멍청하고, 아둔하고, 쓸모도, 가능성도 없으니 팔아 치운 거지. 썩어도 우리 가문 브랜드가 있어서 그런지 값은 비싸게 쳐주더군. 하하하하핫!’

‘됐다… 난 이미… 틀렸다. 가문의 재정… 을 낭비하지… 말고… 보… 내다오, 베오날드. 이제 네가… 다음… 허억… 허억… 가주다.]

전생의 망할 부친을 생각하면 불쾌한 기억만 떠오르는 그였지만, 황제의 생각을 꿰뚫기 위해선 그 인간의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략적인 그의 생각을 파악하는 데 성공, 결국 황제는 자신 때문에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딸내미를 팔아 치울 생각을 할 거라고 결론지었다.

‘…판단 시점은 모르니 결국 내가 황녀와 헤어진 다음 날에 결론을 냈다고 가정할 경우 가문을 선정, 그리고 비밀리에 혼담을 건넬 것이고, 그다음 긴급 발표 후 빠르게 혼인을 치르고는 황실 기사들과 그 가문의 인간들로 호위단을 구성해서 황성을 떠나 가문에 도착하겠지. 으으음~’

“베오날드 님,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음? 아! 너희에게 설명을 안 했군. 이야기가 조금 복잡하지만… 그러니까, 나는 황제에게 반역을 할 생각이다.”

“네에?”

“히익?”

“…베오날드 님?”

세 사람 모두 베오날드의 ‘반역’ 선언에 기겁해서 이상한 소리를 냈다.

기사 가문인 하이디는 안색이 파래졌고, 세인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셀리나는 반역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공포감도 공포감이지만, 베오날드가 대체 또 무슨 짓을 할지 걱정이 되는 표정이었다.

“사실 그렇게 거창한 것까진 아니야. 그렇게 치면 애초에 귀족 파벌은 상시 반역하는 상태이고 말이지. 자자, 설명하기 적절한 단어가 없어서 그리 칭했을 뿐이다.”

“…놀라라. 저는 또 갑자기 무슨 짓을 하는 줄 알고…….”

“저도…….”

“아니지, 아니지. 무슨 짓을 할 거잖아요! ‘반역’까진 아니어도 반역 같은 행동을 한다는 거잖아요! 두 분, 정신 차리세요!”

안도하는 하이디와 세인에게 셀리나의 태클이 이어졌다.

그 말대로 또 대형 사고를 칠 생각을 하는 베오날드는 짧은 설명을 끝내고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과 목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목적은 간단하다. 황녀를 빼앗는 거다. 물론 혼인시키는 곳이 정상적인 범주라면 이 일 자체는 취소될 거고. 아~ 그리고 본인에게도 의사를 물어보는 게 먼저겠군.”

“아니, 그거… 반역 맞잖아요! 그리고 대체 갑자기 왜 그런 짓을 하려는 건데요? 여기 두 사람 가지고도 성에 안 차요?”

셀리나의 지당한 반발에 베오날드는 침착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 한마디로 반박했다.

“내가 하고 싶으니까.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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