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신도 쓸데가 있다-69화 (69/259)

[69화]

하지만 의욕 있게 선언한 것치곤 여행하는 동안 검술의 진전은 전혀 없었다.

정말 허무하게 말이다.

그저 노력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다면 인간들 중에 성공하지 않을 자는 없을 것이다.

“…후우… 후우… 후우… 크윽!”

그렇게 오늘도 오의의 발현은 실패하고, 땀을 뻘뻘 흘린 채로 오늘 머무는 도시로 되돌아가서 씻고 여관방에 도착했다.

그다음엔 역시나 이 도시에서 사들인 책들을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쓸 만한 것은 없었다.

<매도당하는 걸 좋아하는 여마왕님 3권-‘전라로 슬럼가를 탐험하자!’>

“…2권이 아니라 왜 3권인 건지. 후우~ 아쉽군.”

아니, 그래도 하나는 건진(?) 걸 위안 삼으며 베오날드는 그것을 먼저 구해 둔 1권의 위에 조심스럽게 쌓아 두었다.

1권(?)은 이미 탐독한 상태였는데, 2권도 읽지 않고 3권으로 넘어가는 건 왠지 찜찜했기에 그는 3권은 뒤로 미루고 검술의 진전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에 대해 고민했다.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우리 가문의 기사들도 그렇고, 거의 기본 소양처럼 이야기하던데 말이지.’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식’의 오의는 사실 말이 오의이지, 그저 가장 강력한 기술에 이름을 붙여 둔 거나 마찬가지다.

애초부터 황실 기사단의 것을 베껴서 노이멀 가문 사람들의 성향에 맞게 변형시킨 만큼 깊이는 그리 깊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나만 안 되는 건지. 젠장!’

‘쌍두사’를 익힐 때보다 더 높고 넓은 벽이 눈앞에 있는 느낌이었다.

일전에 큰소리치던 것과 다르게 이제 거의 제국 수도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 더더욱 머리가 아픈 베오날드였다.

하지만 겉으론 내색할 수 없기에 그는 진정하고 방을 나서서 여관의 식당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오후 일찍 도착했기에 시간이 남아서 모두가 함께 제대로 차려진 저녁 식사를 할 여유도 있던 것이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뭔가 표정이 안 좋아 보이시네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 개인적인 일이다. 아무튼 식사들 하지. 오히려 나 없이 여성끼리 앉아 있는 동안 무슨 일은 없었나?”

“뭐, 수작 부리려는 놈들이 있긴 했지만 하이디 양이 모조리 물리쳐 줬어요. 저 긴 머리칼이 사자 갈기처럼 일렁일렁거리니 그냥 물러나더군요.”

“하하하, 그건 그렇지.”

마부들은 마차의 정비 및 말의 관리를 하러 갔기에 오늘은 합석하지 않았다.

그렇게 네 사람은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세인은 공부의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셀리나가 그것을 들어 주면서 나름 마탑에서 공부할 때의 노하우를 알려 주었다.

“그러고 보니 세인 양에게만 공부시킬 게 아니라, 하이디 양도 공부는 해야 할걸요? 전략, 전술을 듣고 이해할 지혜는 필요하잖아요.”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무예에 집중하게 두고 싶은 거다. 나처럼 쓸데없이 머리가 복잡한 인간이 되면 될 검술도 되지 않으니 말이다.”

“검술이… 잘 안 되세요?”

“젠장! 나도 모르게 말해 버렸군. 그래! 나도 벽에 부딪치거나 일이 잘 안 풀리는 때도 있는 법이다. 마시지 않고는 못 버티겠군. …푸하!”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검술로 인한 스트레스가 컸는지 자신도 모르게 고민을 말해 버린 베오날드는 그대로 단숨에 술잔을 비워 버리고 숨을 몰아쉬었다.

하이디와 세인, 셀리나 모두 여태껏 단 한 번도 당황하지 않고 매사 쿨하고 침착하던 베오날드가 색다른 모습을 보여 주자 눈을 빛내면서 바라보았다.

‘이건 또 색다르네요. 평소랑 갭이 크니까 뭔가… 뀽~ 하는 게?’

‘높은 곳에서 아래를 지켜보는 느낌인 사람이 저러니 확실히…….’

‘뭔가 도움 될 일이 없을까요?’

나름 베오날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작게 말한다고 말했지만, 이미 베오날드의 귀에는 모두 들려오고 있었다.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하는데 안 들리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터. 베오날드는 못 들은 척하고는 술잔을 채우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한들 이것은 나의 문제다. 당초 계획엔 변함이 없다. 후우~ 그저 내게 검의 재능이 없다는 것을 부인하고 싶어 하는 고집에서 나온 거지.”

“저기… 베오날드 님, 조언이 될지 모르지만, 말씀을 하나 올려도 될까요?”

“물론이지. 타인의 조언을 무시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다. 게다가 그것이 내가 인정한 동반자 하이디라면 그 어떤 말이라도 무시할 수 없지. 편하게 이야기해라.”

“그… 저희 가문의 보물고에 말입니다. ‘엄청 커다란 뱀의 가죽’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가문의 선조님께서 이곳에 정착하실 때 잡은 것으로, 무늬도 엄청 화려하고 크고 긴 놈이었습니다.”

‘뱀이라. 남 일 같지가 않군.’

노이멀 가문의 상징은 ‘뱀’과 ‘히드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기어 올라가라는 노이멀 가문의 철칙과 연관된 것이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노이멀 가문은 선조들 무렵부터 자신이 가주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 어정쩡한 대귀족의 위치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입장이라서 독을 품은 뱀처럼 살고자 한 것이었다.

‘아직 말이 안 끝난 것 같으니…….’

“어릴 적에 그것을 보면서 아버님이 하신 말씀이… ‘봐라. 이 뱀은 수없이 자신의 한계를 깨며 탈피를 한 덕분에 이 크기에 도달할 수 있었지. 하나 봐라. 결국 용이 되지 못했다. 아무리 한계를 넘어도 뱀은 뱀일 뿐이다.’라고…….”

“음…….”

“…그러니까! 베오날드 님은 태어날 때부터 용이시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충분히 성장하실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희와는 근본부터가 다르시니 너무 작은 일에 연연해하지 마시라는… 대충 그런 것입니다.”

하이디의 말이 끝나고, 다른 두 사람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하이디를 바라봤지만 베오날드는 그녀의 말에서 무언가 단서를 얻은 듯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뒤에 이어진 용에 대한 말은 잘 듣지 못했지만, ‘뱀’에 대해 들으니 오래전 가문에서 있었던 기억들이 갑자기 살아난 것이다.

‘우리는 뱀이다. 알았나? ‘기사’라는 껍데기는 쓰겠지만 우리 노이멀 가문은! ‘뱀’처럼 살아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배웠다. 고로! 너희도 ‘뱀’이 되어야 한다. 몇 번이고 한계에 닿아 탈피를 해서 성장해서 살아남는 뱀처럼 말이다.’

‘기억이 조금씩… 나는군.’

벨릭스 폰 노이멀의 자식 중 베오날드는 머리가 비상하다는 이유로 강제로 공부 쪽으로 밀어 넣어졌는데, 저택을 지나던 중 훈련하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자신이 어릴 적에 들었던 것이라 상대적으로 더 오래전의 기억이다 보니 떠올리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 맞아. 뱀이었지. ‘뱀’… 우리 가문은… 우리는… 뱀. 그래… 이걸 베껴서 만든 놈은 자신이 할 수 있으니 만들었을 거 아니야? 그래! 알 것 같아!’

“베오날드 님?”

“좋아! 이제야 감이 잡히는군. 시도해 볼 가치는 있겠어! 하이디! 너는 아주 큰 공을 세웠다! 어두운 미로를 헤매는 나에게 빛을 찾아 준 거나 마찬가지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네가 그 어떤 부탁을 하더라도 반드시 들어줄 테니 기억해 두어라. 그럼 먼저 나가마!”

“베오날드 님?”

드디어 잃었던 감을 잡은 베오날드는 2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검을 챙겨서 다시 뛰어나갔다.

날은 이미 어둑해졌지만 오히려 베오날드에겐 좋았다.

성벽을 넘어 인적이 드문 숲으로 들어간 그는 맨땅에 그대로 앉아서 눈을 감고 옛 기억을 떠올리며 오러를 끌어 올리고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우리 노이멀 가문은 뱀이다. 탈피를 거듭하여 크고 더 강해지는 뱀. 독을 품고 비열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 뱀. 우리는 용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 우리 노이멀 가문의 이상은 바로 ‘궁극의 뱀’이다.’

‘궁극의 뱀’, 노이멀 가문의 선조들이 추구하던 것. 그래서 가문의 문양으로 뱀을 쓰기도 하지만 가세가 커진 이후엔 위험종 몬스터인 히드라도 사용하곤 했다.

뱀의 머리가 여러 개 달린 궁극의 뱀. 하나의 머리가 잘려도 다시 살아나고 혹은 갈라져서 재생하는 뱀. 노이멀 가문의 검술에 담긴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니 감이 왔다.

‘설마 내가… 마음이나 무의식 같은 걸 믿고서 행할 줄이야.’

뱀의 마음, 그리고 그 궁극의 표상인 히드라. ‘검’으로 탈피를 해서 자신이 ‘히드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스로가 말하고도 이런 결론은 참 웃기다고 생각한 그는 잡념을 버리고 집중해서 검을 휘둘렀다.

오러를 끌어 올려서 휘두른 검은 보랏빛 검로를 남기면서 밤을 밝혔고, 베오날드는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고 그것에 몰두했다.

‘뱀. 우리는 뱀… 그리고 목표는 용이 아니라 뱀 중의 뱀인! 히드라! 간교한 지혜를 생각할 수많은 머리! 가장 강력한 독을 지닌 자! 잘려 나가도 재생하는 불굴의 생물!’

노이멀 가문을 이해하지 않고서야 노이멀 가문의 검을 이해할 수 없다.

검술은 노이멀 가문의 것이지만, 베오날드의 관념은 ‘노이멀 가문의 검사’가 아니었다.

베오날드가 스스로를 지칭한다면 그는 연금술사, 제국의 지배자, 간신, 권력자, 베노피스 정원의 관리자 등등 수많은 관념과 지위로 자신을 이미지화할 것이다.

‘…나는 뱀이다.’

노이멀 가문의 검술의 오의를 깨닫기 위해선 바로 그것을 깨고, 이해해야 한다.

오의는 몸 안에 흐르는 마나와 오러가 검술과 하나가 되어야 깨어나는 것.

베오날드의 검술은 노이멀 가문의 검술. 하나 오러는 결국 구결을 외는 베오날드의 육체, 영혼, 정신과 연결되어 있는 것. 그것이 통하지 않고 있으니 아무리 방법을 알아도 오의는 깨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내가 쌍두사까지 깨달은 게 신기한 일이군……. 으아아악! 아무튼 길은 알았어. 이제 언제 도달하느냐의 차이뿐!’

그렇다곤 해도 여전히 도착 지점이 어디인지 모르는 길이었지만, 그래도 하나 확실한 것은 이 길이 맞는 길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신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베오날드는 언젠가 탈피하리라 믿으며 ‘오의:히드라’를 얻기 위해 밤새도록 검을 휘둘렀다.

***

그리고 며칠 뒤, 여러 도시를 넘어간 끝에 다행스럽게도 가을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베오날드 일행은 제국 수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멀리서도 보이는 압도적으로 거대한 성벽과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움직이는 수많은 상인들. 캘러메인 영지는 그저 작은 곳이라는 걸 실감하게 해 주는 광경이었다.

“오오… 드디어 도착했네요.”

“역시 수도인가? 엄청 크네요. 와아아아아~ 게다가 마차도 엄청 많아요.”

제국 수도라는 것을 체감하게 해 주는 수많은 마차들의 행렬. 세인과 하이디는 생전 처음 보는 수도의 위용과 엄청난 수의 사람과 이동량에 감탄하며 그녀들이 캘러메인 영지라는 작은 곳에서 왔음을 온몸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시골 처녀 같은 그 순수함에 베오날드는 절로 미소가 나왔는데, 셀리나가 그런 베오날드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베오날드 님도… 캘러메인 영지를 나오는 건 생전 처음 아니신가요? 왜 그렇게 여유를 부리세요?”

“음? 아~ 나도 사실 속으로는 놀라고 있다. 걱정 마라.”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요?”

셀리나의 말대로 사실 베오날드는 전혀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500년 전 자신이 가꾼 도시는 적어도 저 제국 수도의 3배는 될 정도였으며, 그것이 아니라도 다스렸던 통일 제국의 수도도 저것보다 월등히 거대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억지로라도 설레는 모습을 연기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베오날드의 눈에 갑자기 기이한 것이 보였다.

“뭐, 뭐야? 저거 설마 몬스터?”

“뭐냐니요? 수인(獸人)이잖아요. 아인(亞人)종을… 아, 처음 보셨구나~ 어라? 우리 올 때도 분명 몇 번 본 것 같은데……. 아… 그, 베오날드 님은 혹시 자기 일에만 몰두하시는 성격인가요?”

“부정은 못하겠지만, 그보다 수인(獸人)이라고? 웨어울프나 라이칸스로프가 아니고? 허어…….”

베오날드는 지나온 마차에 앉아 있던 개 머리를 하고 온몸이 털로 뒤덮인 짐승 남자를 보고 경악한 것이었다.

500년 전 그가 살던 시대엔 전혀 볼 수 없던 아인종으로, 그가 아는 이종족은 엘프나 드워프 같은 인간과 유사하거나 친밀한 종족 빼고는 죄다 몬스터 취급이었는데, 수인까지 인류에 편입하니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이런 건… 전혀 교육 못 받았는데?”

“…교육받을 틈새 없이 사고만 치셨잖아요. 물론 수인들이 굳이 제국 구석에 있는 캘러메인 영지로 갈 일이 없긴 하지만요. 대부분 가르칸 공화국 사람이거나 노예니까요.”

“가르칸 공화국… 아! 그렇군. 그 교육 받은 기억이 있는 것 같기도 해. 아… 그렇군. 거기 사람들이…….”

“어쨌든 베오날드 님도 시골 출신처럼 행동하니 오히려 안심이 되네요. 후후훗.”

“끄으으응…….”

셀리나의 웃음소리에 베오날드는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500년은 역시 짧은 세월이 아니었기에 변하는 것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그는 제국 수도를 오가는 수많은 인파 속의 이종족과 아인종들의 종류를 파악하며 자신의 지식을 갱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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