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신도 쓸데가 있다-59화 (59/259)

[59화]

그 뒤, 계속해서 전쟁을 위한 물밑 작업이 이루어졌다.

캘러메인 백작가의 승인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이루어졌고, 그다음엔 로이엔 남작가와 젤커드 자작 간에 무의미하지만 예의 넘치는 전갈이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전쟁의 절차를 밟아 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캘러메인 백작, 로이엔 남작, 젤커드 자작의 3자 면담을 통해 중재 회의가 진행되었지만 이미 둘 다 마음은 전쟁터로 가 있었기에 회담은 당연하게 결렬되었고, 다만 이 전쟁에 얼마나 많은 판돈을 걸 것이냐가 관건이었다.

“베오날드 도련님은 보물입니다. 제 과년한 딸을 우수한 기사로 성장시켜 주신 귀중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요. 아시잖습니까? 이 대륙의 모든 국가들의 전력은 기사의 숫자로 결정되는 거나 마찬가지이지요. 그러면 기사를 기를 수 있는 재능은 천금을 주더라도 못 바꿀 것 아니겠습니까?”

“제아무리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다곤 해도 결국은 범죄자요. 거기에 놈은 캘러메인 백작가의 안주인인 메이라 부인의 얼굴에 상처를 입혔소. 이는 캘러메인 백작가를 모독한 거나 마찬가지요. 그런 놈을 가만히 놔둬야 한단 말입니까?”

“고작 신관의 기적이 있으면 고칠 수 있는 걸 가지고 열을 내시다니 어처구니가 없군요. 캘러메인 백작가에서 신전에 기부하는 금액이 그 정도도 안 된단 말입니까? 누가 누굴 모독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겉으로 보기엔 치열하게 다투는 것 같았지만, 사실상 겉치레. 포커 카드판으로 따지면 서로에게 블러핑을 넣으면서 레이즈를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간을 보는 것과 같았다.

캘러메인 백작의 관리 아래에서 전쟁을 하는 것인 만큼 이제 판돈을 어디까지 거느냐가 문제였고, 양측 다 승리를 자신하고 있기에 판돈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다.

“참을 수가 없군. 그 무례한 태도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소! 이 전쟁에 우리 가문의 명예를 걸겠소.”

“제가 할 말을 대신 하시는군요, 남작님. 그럼 이 전쟁에서 이기면 제가 남작으로 승작하게 되는 것이려나요?”

“하! 보자 보자 하니! 건방짐이 끝이 없군. 좋소! 어디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 보시오. 하나 얻으려고 하는 만큼 실패하면 자신도 잃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예예, 그러지요.”

그리고 본래라면 이 작은 전쟁의 판돈으로 걸지 못할 규모의 판돈이 도박판에 올라왔다.

이는 캘러메인 백작가의 가주 대리인 렌겔과 메이라 부인과 말데로브 경, 캘러메인 영지의 대신관까지 공증인으로 부르면서 합의가 되었다.

이젠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 그리고 전쟁의 일자는 추수 직후 최종 회의를 했던 바로 이 장에서 하는 걸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베오날드 님.”

회의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젤커드 자작은 베오날드에게 회의에서 일어났던 일을 모두 설명해 주고 전쟁의 날짜까지 세세하게 알려 주었다.

“…예상보다 시간이 더 생겨서 좋군요. 또 어설프게 기사들 간의 결투로 결정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아무튼 이걸로 모든 판은 도련님의 뜻대로 짜였습니다. 한데… 결전은 저 평야에서 서로 마주 보고 전쟁을 치르는 건데, 과연 이길 수 있을는지요? 이미 대부분의 용병들은 모두 로이엔 남작가에 고용된 상태라서 병력 숫자에서도 밀립니다.”

“가문의 명운까지 걸었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긴 하겠지만… 걱정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병사들과 기사들의 훈련에 더욱 집중하겠습니다.”

그렇게 젤커드 자작의 영지로 돌아온 베오날드는 거점에서 베노피스 강을 생산하는 데 열중했다.

상대측도 신중에 신중을 기했고, 판돈이 상당히 커진 바람에 당초 예상했던 거보다 시간이 더 생긴 만큼 본격적으로 시설을 만들어서 생산성을 올릴 여유까지 생긴 것이었다.

“음, 역시 답은 대형화지. 게다가 자본금이 두둑하니 마석과 스크롤도 사서 투입할 수 있어서 좋군.”

“안 그랬으면 제가 죽었을 테니까요. 후우~ 이제야 노동에서 해방이…….”

“대신 덕분에 마력 컨트롤과 인챈트를 비롯한 여러 기술이 늘지 않았는가?”

“지식이 늘어난 건 아니잖아요! 흑… 정말이지 이렇게 시간이 남을 거였으면 왜 그리 독촉한 거였어요?”

“음? 시간이라는 건 남지 않는 것이야. 모래시계의 모래알이 적고 많음을 따질 것인가?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이지. 그리고 제련법이라든가 이거저거 많이 배우기도 하면서 말이지.”

“하지만 힘든 건 힘든 거라고요.”

베노피스 강을 만드는 데 그녀의 역할이 중요했기에 그동안 엄청나게 부려 먹은 셀리나와 이리저리 다투면서도 거리감은 상당히 줄어든 상황이었다.

마법사로서 공부할 때보다도 지독하게 부려 먹는 게 베오날드였는데, 그래도 그는 대가를 철저히 챙겨 주기 때문에 크게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거기에 시간이 더 생기니 지맥에 설치하는 용광로를 대형화하고, 일부 주문을 인챈트로 대체해서 효율을 올려서 그녀의 노동량을 줄여 준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자원 효율화는 되지 않아서 지맥의 마력이 너무 많이 빨려 나가는군. 끄으응~”

“지금만 해도 충분히 대단하지 않나요?”

“좀 더 스마트하고, 효율을 좋게 만드는 걸 바라는 거다. 이거 설치하는 데 드는 시간이 아깝잖아.”

“이미 저렇게나 만들었으면서요?”

셀리나는 용광로 반대쪽에 쌓인 베노피스 강(鋼) 주괴 수십 개를 바라보며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용광로 구조를 개선하고 주문 일부를 개선한 결과 놀라울 정도로 생산성이 향상되었는데도 만족 못하는 베오날드가 어이없었던 것이다.

물론 베오날드로서는 이보다 더 효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자꾸 눈에 밟히는데, 가만히 놔둬야 하는 현실이 짜증 났고 말이다.

“그냥… 보기가 그래서 그래. 에휴~ 철광석이 빨리 왔으면 좋겠는데… 이러는 동안에도 지맥의 마력은 소모되고 있구만. 쩝~”

더구나 철광석을 비롯한 재료들이 늦게 오는 것에도 베오날드의 불쾌지수는 계속해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마음 같아선 저 최종 전쟁 회의에도 참여를 안 했어야 했지만,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모르기에 자신이 가서 대비하는 게 맞았다.

“베오날드 님,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셀리나 님도 같이 오시지요.”

“그래, 세인~ 지금 가마. 자, 가서 밥이나 먹지.”

결국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밥시간이 되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세인의 부름에 셀리나와 베오날드는 용광로에서 물러나 임시 거처로 쓰는 통나무집 옆의 식탁에 모였다.

식탁에는 갓 구운 빵을 비롯해서 채소와 야채, 그리고 잘 구워진 고기에 소스까지, 야외라고 볼 수 없는 요리들이 다수 차려져 있었다.

“역시… 그 어떤 일보다도 식사가 가장 중요한 법이지. 으음~ 요리 재료랑 설비가 많이 모자랐을 텐데……. 세인, 부족한 게 있으면 기탄없이 말해 다오.”

“식사는 그저 살 수 있으면 그걸로 되는 게 아닌가요?”

“무슨 소리. 삶이란 한정된 시간 속에서 식사는 필수불가결한 것. 그렇다면 가능한 한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 그런 의미에서 세인의 가치는 아깝지 않지. 어쩌면 셀리나 너보다도 말이야.”

“소, 송구스럽습니다. 이런 요리 따위가… 마법사님과 비교된다는 게…….”

과한 칭찬에 얼굴을 붉히면서 부끄러워하는 세인. 반면 셀리나는 열심히 땀 흘려서 일하는데 저평가당한 게 마음에 안 드는지 볼을 부풀리며 샐러드와 스테이크를 잘라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입속에서 느껴지는 풍부한 맛에 스스로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자, 베오날드의 접시에 있는 스테이크를 집어 가서 복수하려고 했지만 베오날드의 나이프에 저지당하고 만다.

“쳇!”

“…뭐가 쳇이냐.”

“저기, 부족하면 아직 더 있습니다. 셀리나 님, 베오날드 님.”

당황한 세인은 허둥지둥 두 사람을 말리려 했지만 셀리나는 고개를 돌리며 투정 부릴 뿐이었다.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거든요~ 흥!”

“…심술부리지 마라. 아무튼 세인, 더 필요하진 않다. 그보다 너는 제대로 먹고 잠은 잘 자고 있느냐? 네 몸은 이제 너만의 것이 아닌 내 것이기도 하다. 허술하게 취급하는 건 용서하지 못한다.”

“걱정 마십시오, 베오날드 님.”

베오날드의 따스한 말에 세인은 감명한 듯, 눈을 가리기 위해서 허리를 깊게 숙여서 감사를 표했다.

둘이서 사랑 극장을 찍는 것에 또 소외되는 느낌을 받은 셀리나는 다시금 비아냥거리며 끼어들었다.

“와, 아주 깨가 쏟아지네요. 휴휴~ 아예 결혼해 버리지 그래요?”

“나는 당연히 그럴 생각이다.”

“으엑? 지, 진짜요?”

“다만 몇 번째 부인이 될지가 문제겠지만 말이지. 일단 첫째 정실 자리는 정치적인 거라서 비워 놔야 하는 걸 빼면…….”

“…제정신이에요?”

“제정신이다만? 귀족으로서 당연한 행동이다. 정원을 늘리고 가꾸는 행위나 다름이 없지. 세인은 거기에 충분히 어울리는 여성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하는 건 아니고, 그녀의 선택을 기다려야겠지.”

여성을 어떤 목적으로든 강압적으로 손에 넣는 건 아버지인 벨릭스 폰 노이멀 때문에 정말 싫었다.

그냥 메이라 부인처럼 권력 다툼을 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연애에 관해서는 베오날드는 단 한 번을 제외하곤 절대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할 말은 다 하고, 여성 쪽에 선택권을 주는 쪽이었다.

“저는… 이미 선택을 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지금은 베오날드 님의 입장이 곤란해질 것 같아서 장래 정부인의 자리가 차면 그때… 인정받고 싶습니다.”

“그런가? 그게 세인 너의 선택이라면 그걸로 됐다. 다만 언제든 생각이 바뀌면 이야기해도 좋고. 그리고…….”

“…하이디 겨어어어어엉! 빨리 돌아와 줘어어어어!”

손발이 오그라들고 닭살이 돋는 이야기를 태연히 주고받는 베오날드와 세인의 쿵짝에 고통받던 셀리나는 숲속을 향해 철광석을 수급하러 간 하이디를 애타게 부를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이 만든 중갑옷을 입은 하이디가 마찬가지로 중무장한 알테리오를 탄 채 철광석과 각종 재료가 담긴 마차를 끌고 돌아왔다.

“오, 드디어 왔구나, 하이디.”

“늦어서 죄송합니다. 근데 역시 마차가 산을 오르는 게 쉽지 않아서…….”

“아니다. 무사히 왔으면 됐다. 그런 거라면 이미 고려하고 있었다. 그보다 마차는 둘째 치고, 알테리오와의 호흡은 어떻게 되었느냐?”

“그게, 처음엔 좀 힘들었지만 슬슬 저도 주인으로 인정해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힘으로 이끄는 느낌이 아직 강하지만 말이죠.”

“그래? 저 녀석, 참…….”

삐이이익!

베노피스 강으로 만들어진 갑주로 중무장한 알테리오는 현재 세인에게서 먹이와 물을 받아먹으면서 행복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완전히 성체가 된 알테리오는 하이디가 타도 될 정도로 거대해진 지 오래여서 타는 건 문제없었지만, 길들이는 데 조금 애를 먹고 있었다.

‘아무튼 정말 기대가 되는군. 아주 오랜만에… 전쟁다운 전쟁을 해 보게 될 테니까. 마지막으로 했던 게 언제더라……? 북방 이민족을 토벌하던 거였나?’

전생에 제국의 2인자가 되어서 권력을 잡은 이후에도 ‘전쟁’은 끊이질 않았었다.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다른 귀족과 이민족, 각종 문제들로 인해서 반란이 일어나는 땅 등등……. 그는 군부의 실권도 유지하기 위해 황제를 대신해서 직접 전선에 나섰다.

그리고 노년에 이르러서는 누구도 도전하지 못할 세력을 꾸렸기에 오랫동안 전쟁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전쟁’이라는 찬스가 얼마나 큰 도박판인지 알기에 이기고 나서 얻을 것을 상상하며 하루 빨리 그날이 오길 바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