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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57화 (57/259)

[57화]

다음 날, 젤커드 자작 영지.

셀리나의 협력 덕분에 다행히 전날 지맥을 찾을 수 있었던 베오날드는 돌아와서 자고 난 뒤 일행을 모두 데리고 곧장 대장간으로 향해서 제련하지 않은 철광석과 코크스와 석회석, 석탄 등등을 포함해서 제련에 쓰이는 것들을 모조리 사들였다.

“나리, 이걸 어디다 쓰실 겁니까? 그… 제가 직접 제련한 철주괴도 있는데, 하다못해 그걸 사시는 건 어떨는지요?”

“다 쓸 곳이 있으니 물건이나 내주게. 돈은 있으니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나리.”

보통 사람이라면 잘 사 가지 않을 것을 저리 사 가니 대장장이는 궁금해서 물었지만, 베오날드는 일제히 무시한 채 받은 물건의 양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추가로 곡괭이와 망치 같은 공구, 가죽 장갑, 가죽들도 몇 개 더 사서는 모두 알테리오와 어제 산 말에 실어서 운반, 잡화점에 들러서 각종 도구와 약초, 식량, 천을 한가득 산 뒤 다시 거점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도련님, 이것들로 뭘 하시려는 겁니까?”

“강철 제련이다.”

“예? 그런 거라면 그냥 대장간에 맡기시면 되지 않습니까? 거기 철 주괴도 있던데 말입니다.”

“예로부터 좋은 물건을 손에 넣으려면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지. 게다가 연금술 지식도 써 볼 겸 말이다. ‘연금술’의 학문적 기반이 뭔지는 잘 알고 있지?”

금속과 물질을 제련하여 자신의 영혼을 더 높은 상태로 이끌거나, 엘릭서 같은 비약을 만들거나 완벽한 금속을 만드는 등등… 목적은 조금씩 달랐지만, 아무튼 ‘금속의 제련’은 연금술의 필수 과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연금술사이면서 동시에 한 영지의 영주이자 제국의 권력자인 그는 ‘금속 기술’이 군사력의 질을 압도적으로 올려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연금술과 연관해서 ‘금속 제련 기술’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개발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베노피스는 더더욱 번영할 수 있었지. 연구비가 엄청 들어갔지만 그래도 베노피스 강(鋼)이라고, 나름 명품 강철이 나와서 완벽하게 회수했고.’

‘베노피스 강(鋼)’. 엄청난 액수의 돈과 연금술사, 대장장이들을 갈아 넣다시피 해서 약 10여 년에 걸쳐 완성한 그 시대 최고의 ‘강철’이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개선과 개발을 통해서 ‘베노피스 강’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여러 시리즈로 만들어졌고, 베오날드 폰 노이멀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걸작 중 하나였다.

‘물론 사실 그것도… 성맥이 있는 덕분에 만든 거지만.’

베오날드가 파악한 금속 제련과 연금술은 결국 ‘에너지’량과 강도의 싸움이었다.

더 크고 많은 양의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게 가능할수록 금속 제련도 더 안정적이며 순도 높은 것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순도 높은 것을 얻으면 아주 정확한 합성과 조합, 제조 공식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되며, 그 결과가 바로 베노피스 강(鋼)이었다.

‘500년이 지난 지금은 더 좋은 게 나올 줄 알았건만… 오히려 후퇴해 버렸던가? 하긴 내가 제조 공정을 유출 안 하려고 엄청 빡세게 관리하긴 했는데, 정말 흔적도 안 남을 줄이야.’

베오날드가 모르는 점이 있다면 설사 그의 조합식이나 제조 방법을 알아도 베오날드급의 연금술 지식이 없으면 구현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베오날드 자신의 숙청 때 대다수가 처형당하고, 마탑 내의 내전으로 인해 또 처형당하는 바람에 제조법이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물론 이 제국에서만 사라진 걸 수도 있으니 확신하는 건 오산이겠지만, 아무튼 캘러메인 영지에 있는 무기와 장비의 수준을 봐선 이 근방의 철제 무기들 수준은 그리 좋지 않은 게 확실하다.’

이 주변에서 가장 번영한 도시인 캘러메인 영지의 수준이 그렇다면 주변 영지의 것은 더 떨어지면 모를까,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이런 수준의 장비들이라면 베노피스 강(鋼)을 100퍼센트 수준으로 만들지 않아도 압도적으로 능가할 것이며, 철이 철을 만나서 유리처럼 깨어지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으리라 자신하는 베오날드였다.

“좋아. 도착했군. 보자… 하이디는 알테리오를 데리고 이 주변 지역을 탐색하며 사냥, 세인은 내 작업을 보조하면서 어제 본 것들의 보고를, 셀리나는 마찬가지로 내 보조다. 우선은 지맥의 흐름을 보고 고로를 설치할 곳부터 살펴보지. 셀리나, 마력 탐지는?”

“후훗, 걱정 마시라구요. 어제 미리 메모라이즈해 왔어요.”

그렇게 베오날드의 지휘 아래 지맥의 중심점 위에다 제련을 할 용광로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본래 대장간에도 용광로가 있지만 이건 ‘지맥’의 마력을 이용해서 불을 피우고 열을 내는 방식으로, 목재나 석탄보다 더 빠르며 ‘지맥’의 마력이 고갈될 때까지 지속되는 특징이 있었다.

‘제대로 된 건 성맥에다 설치해 놨지만… 아무튼 이걸로 만족해야겠지. 안 되면 어쩌나 했지만… 돼서 다행이군.’

구조는 베오날드가 다 알고 있으니 만들 수 있었고, 마력을 빨아들이기 위한 인챈트 주문은 셀리나에게 맡겼다.

물론 시행착오라든가 구조의 문제로 인해서 시간이 많이 소모되었지만, 베오날드와 셀리나는 끈기 있게 매달려서 결국 그날 늦은 밤이 되어서야 용광로를 완성할 수 있었다.

대장간의 것보다 압도적으로 좋은 화력이 뿜어져 나오는 용광로를 보면서 베오날드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휴우~ 좋았어. 이제 이 지맥에 고인 마력이 사라질 때까진 계속 이 화력이 유지되겠지. 아주 좋은 열이야.”

“확실히 대장간의 그것보다 강한 것 같네요. 근데… 도련님? 저 뜨거운 화력을 어떻게 이겨 내시면서 작업을 하실 거죠? 손만 가까이 대도 타서 흔적도 없어져 버릴 것 같은데…….”

“본래라면 샐러맨더 같은 용암 지대에 사는 몬스터의 가죽으로 만든 방화복을 입거나, 불의 정령과 계약한 정령사를 고용하거나 화염 내성 마법을 걸고서 작업하라고 되어 있지만… 지금 나에겐 이게 있으니 문제없지.”

“오러!”

짙은 보랏빛으로 빛나는 오러. 신체 강화는 물론 수련이 쌓이면 물리적인 보호 능력도 갖추게 된다.

베오날드는 아주 어릴 때부터 마나 호흡법으로 수련을 한 몸. 검술의 진척은 아직 모자랐어도 축적된 오러의 힘은 누구 못지않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인력이 부족해서 일일이 해야 하니… 답답할 노릇이지.’

덕분에 뜨거운 용광로를 겁낼 필요가 없게 된 그는 본격적으로 강철을 제련하기 위한 과정을 진행해 나갔다.

***

캘러메인 백작가에서는 현재 로이엔 남작가의 베오날드를 규탄하는 서찰과 군사 준비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서 치유되지 않은 메이라 부인의 얼굴 문제 때문에 내부적으로 폭풍이 몰아치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메이라 부인은 치료를 받았음에도 고쳐지지 않는 얼굴로 인한 히스테리를 하인들이나 다른 부인들에게 풀었고, 이는 제어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왜 안 된다는 거죠? 당신! 엄연히 전 이 캘러메인 백작가의 기둥 중 하나예요! 그런 저를 이 꼴로 만들었는데! 심지어 백작가의 병력은 쓰지도 않고 제 본가의 병력과 기사들만 움직이겠다는데, 그것조차 안 된다고요?”

그런 상황에서 로이엔 남작가의 군사 행동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렌겔 가주 대리의 말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했다.

렌겔 가주 대리는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사태 파악에 힘썼다. 그리고 베오날드가 떠난 사실과 에라솔이 인솔해 온 자신의 저택에 있는 로이엔 남작가의 기사들이 그 증거였기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했다.

“애초에 먼저 손을 댄 것은 부인 아니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심지어 가주 대리인 나에게 말도 없이 로이엔 남작가의 기사를 여섯이나 데려와? 아무리 아버님의 재가가 있어도 그렇지, 날 바보로 만든 거나 다름없소. 근데 뻔뻔하게! 우리 혈족을 죽이려는 군사 활동까지 한다고? 어처구니가 없군! 심지어 아버님까지 날 속이다니!”

렌겔 가주 대리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일을 진행했다는 것에 매우 화난 상태였다.

가주 대리라곤 하지만 백작이 연로하여 사실상 본인이 백작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권위를 무시한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일을 그냥 묻을 생각입니까? 절 이렇게 만들었는데?”

“치료된다고 하지 않았소? 게다가 당신이 부른 기사 여섯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들어오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죽이지 않은 게 자비로운 거지. 다만 그 아이가 기사였을 줄은 몰랐군. 말데로브 경과 손을 잡고서 숨겼을 줄이야. 허 참~”

제드 경을 통해서 기사인 사실이 밝혀지자 렌겔 가주 대리는 말데로브 경을 추궁했지만, 랄트가 벽을 느낄까 걱정이 됐다는 충성 어린 발언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대로 애당초 그가 기사라는 게 알려졌으면 랄트의 절망은 더 커졌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니까요! 애초부터 속이 시커먼 놈이었어요! 아무튼 지금 이 순간에도 무슨 꿍꿍이를 꾸밀지 몰라요. 그러니 당장 잡아서 산 채로 가죽을 벗기고 소금을 뿌려야겠어요!”

‘이상하군. 부인은… 자존심이 강해서 모욕당하는 것에 화를 낼 순 있다곤 하지만, 그래도 실리를 위해서 속내를 감추는 사람인데 이렇게 화를 내다니. 애초에 스스로 영지를 떠난 아이라서 이제 후계자 구도에 방해가 되지 않는데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는 저 태도가 어딘지 꺼림칙한 렌겔 가주 대리였다.

베오날드를 없애려는 음모는 실패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베오날드는 스스로 이곳을 떠났다.

물론 귀중한 기사라는 인재 2명을 잃은 게 크긴 했지만, 후계자로 랄트가 확정 난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던 것이다.

“부인… 혹시 그 얼굴의 붕대를 잠시 풀어 볼 수 있겠소?”

“아? 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조만간 제스 자작의 영지에 시찰을 갈 일이 있잖소? 게다가 얼마 안 있으면 수도로 가야 할 일도 있고. 그러니 상처의 경과를 봐야 할 것 같아서 말이오.”

“아, 아직 아물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니 보일 수 없습니다. 아,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그 베오날드라는 잡종을 처리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 아이는 재앙의 싹이에요. 그러니 미리 제거해야 합니다.”

렌겔 가주 대리의 날카로운 추궁에 메이라 부인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 능숙하게 변명하면서 넘겼다.

지금 그녀의 얼굴은 어설프게 치료된 것과 신관의 치료가 얽혀 있어 추한 상태였는데, 이걸 고치려면 얼굴 가죽을 거의 다 벗기고 뼈를 맞추고 난 다음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 현 시대의 의술에선 거의 불가능한 수준을 요하기에 사실상 고칠 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래도 얼굴에 무슨 문제가 있나 보군.’

하나 반평생을 같이 살아온 렌겔 가주 대리에겐 그녀의 변명은 반대로 얼굴에 의혹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행동이나 다름이 없었다.

렌겔 가주 대리는 문득 차라리 베오날드를 이용해서 그녀를 처리할까? 하는 생각까지 해 보았다.

‘으음, 문제가 있다면 처리해야 하는데… 내 손으로 처리하기엔 부담이 되고, 로이엔 남작가도 작은 집안은 아니니… 차라리 베오날드에게 맡길까? 로이엔 남작가가 상처 입으면 이 부인을 제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

“무슨 생각을 그리하십니까?”

“으음… 부인의 생각이 정 그러하다면 허락해도 된다는 생각을 했소.”

“정말이십니까?”

“단, 오로지 부인과 로이엔 가문 선에서 처리해야 하오. 알겠소?”

“그, 그거면 충분하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결국 캘러메인 가문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렌겔 가주 대리의 승인이 떨어졌으니 완벽하게 OK나 다름없었다.

렌겔 가주 대리가 갑자기 승낙해 준 사실에 조금 찜찜하긴 했지만, 어쨌든 베오날드와 자신을 배신한 세인을 잡아서 복수할 생각에 그 찜찜함은 머릿속에서 금방 사라졌다.

‘일단 그 망할 놈을 잡으면 나와 똑같이 만들어 줘야겠어. 그 반반한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과 이빨을 모두 뽑고 팔다리를 잘라서 거지 굴에 던져 놓을 거야. 그다음은 세인 그년! 감히 여태껏 먹이고 재워 준 날 배신해? 그년은 일단 손발톱을 모두 뽑는 고문을 한 다음에 영지 병사들의 성 노예로 굴리다가 뒷골목 창부로 팔아 버리겠어. 감히… 감히!’

“마님, 접니다. 놈들의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한창 증오를 불태우는 중 반가운 소식이 그녀의 뒤에서 전해져 왔다.

현재 백작가 주변에 퍼뜨려 놓은 첩자들 중 하나가 드디어 베오날드 일행의 위치를 밝혀낸 것이었다.

“제드 경! 그래! 어디 있지?”

“예상대로 젤커드 자작의 영지로 들어갔습니다. 기댈 곳이 거기뿐이니까요. 로이엔 남작님께서 곧바로 준비에 들어가신다고 합니다.”

“후훗, 곧장 연락을 하세요. 가문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즉시 움직이라고요. 그리고 이번엔 나와 당신도 갈 겁니다. 놈을… 놈을 잡는 모습을 반드시 봐야 하니까요! 그리고 용병들도 더 많이! 가능한 한 아주 많이! 고용하세요! 빚은 얼마든지 져도 좋습니다. 어차피 그놈에게서 돈을 되찾으면 그만이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제드 경은 메이라 부인의 명에 따라 곧바로 로이엔 남작가에 전령을 보냈다.

백작가의 승인이 떨어졌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군사 활동 규모로 베오날드를 잡으러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리라.

아직까진 젤커드 자작이 베오날드의 편을 들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그들은 금방 베오날드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움직였지만, 그것이 오산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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