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결국 모험가 길드의 몬스터 분포 자료와 저택에 있는 주변 지역 지도를 대조하고, 여러 방면으로 조사해서 철저히 수색한 결과 드디어 두 달여 만에 ‘지맥’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지맥이 있는 곳은 깊은 산속의 작은 폭포가 있는 강가로 베오날드는 그것을 보며 매우 만족해했다.
연금술 실험엔 대부분 ‘물’이 꼭 필요한 만큼 식수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곳이라면 더더욱 좋았기 때문이다.
안 그랬으면 이곳에 올 때마다 ‘물’을 운반해 오거나 근처에서 수원지를 찾아야 했을 테니, 그동안 안 찾아져서 곤란했지만 결국 찾은 곳이 이렇게 좋은 환경 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 기뻤다.
“좋아, 좋아.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수원지 근처라는 게 더더욱 마음에 드는군.”
“…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습기가 강하면 갑주나 무기에 녹이 슬기 쉬워서…….”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아무튼 빠르게 거점부터 만드는 게 좋겠군.”
“아, 알겠습니다.”
베오날드와 하이디는 각자 무기를 꺼내 나무를 베어 내고 다듬어 거점을 만들기 시작했다.
둘 다 오러를 사용하는 초인인 기사들이었기에 나무들은 수수깡처럼 금방 다듬어졌고, 완력이 뛰어나다 보니 챙겨 온 못만 가지고 조립을 하자 금방 그럴싸한 나무 집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온 베오날드가 챙겨 온 약품을 뿌리기 시작하는데, 독한 냄새가 나자 하이디가 깜짝 놀라 그에게 다가갔다.
“도, 도련님, 이게 뭡니까? 독입니까?”
“뭐,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보다시피 만들긴 쉬웠지만 이것들, 제대로 말리지 않은 생나무라서 벌레들이 많을 거니 미리미리 제거하기 위한 약이라네. 물론 이것 말고도 몇 가지 처리를 더 해야 하지만 말이지.”
“오오… 그렇군요. 처음 봤습니다.”
‘당연히 대귀족 체면에 야생 생활을 해도 더럽게 하고 싶진 않으니까…….’
약을 뿌려 두고 하이디에겐 개인 수련을 하라고 한 뒤, 베오날드는 알테리오와 함께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누군가의 접근을 알 수 있는 간단한 트랩 설치 및 야생 동물이나 몬스터의 서식지, 또 약초나 버섯이 있나 확인했다.
“오! 찾았다! 알테리오! 받아! 한연초다.”
삐이이잇!
지맥 근처는 그야말로 생명의 보고였기에 좋은 약초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베오날드는 즐거워하면서 모조리 채집했고, 군데군데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느꼈지만 그리핀인 알테리오가 포효하자 죄다 두려워하며 물러나서인지 싸우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동안 바쁜 일이 많아서 제대로 신경을 못 썼지만 이제 알테리오는 거의 성체라고 해도 좋을 크기까지 자란 지 오래였다.
잘 자란 준마보단 살짝 작은 사이즈였지만 맹수의 육체 같은 몸집과 근육량, 날개가 압도적이어서 전쟁터를 거친 말들도 무서워서 도망칠 레벨이었다.
“음, 이렇게 된 거 한번 타 볼까? 슬슬 타는 훈련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삐잇?
“밥값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온다는 거다, 알테리오. 너도 귀족가의 가솔이니 말이야. 아무튼 보자… 좋은 약초도 많이 얻었는데, 뭐부터 만들어 볼까? 흐흐흠~”
그렇게 ‘지맥’과 더불어 연금술을 하기에도 최적의 조건인 거점을 구한 베오날드는 행복한 고민을 하며 알테리오와 함께 거점으로 돌아갔다.
오늘도 평온한 듯 보이는 나날 속에서 그는 또다시 일어날 폭풍에 대비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위한 준비를 해 나갔다.
***
몇 개월 뒤.
어느덧 계절은 계속해서 지나가고, 여름, 가을, 겨울…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가는 캘러메인 백작가였다.
베오날드의 경우, 테알 슬럼가 일 이후엔 그 어떤 일도 맡지 않아서 오전엔 셀리나의 교육, 오후엔 하이디와 함께 검술과 마나 호흡법 단련을 비롯해서 꾸준히 자기 기량 상승과 계획하던 일을 착착 진행하며 여유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도련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하아아…….”
하나 반대로 본래 이 캘러메인 백작가의 후계자이자, 어제도 아침이 밝아 오기 전에 겨우 잠들었다가 일어난 랄트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현재 그는 14세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누가 봐도 고생한 티가 역력한 모습이었다.
눈 밑엔 진한 다크서클, 화려하고 아름답던 머리칼은 푸석푸석해졌고, 몸이 축나기 시작한 것의 신호인지 피부엔 트러블이 가득했다.
‘…자고 싶어.’
누가 봐도 명백한 수면 부족. 랄트는 멍한 상태에서도 좀 더 수면을 취하길 원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몸의 저항을 물리치며 일어나려고 했다.
자신은 이 백작가의 정통 후계자. 시골에서 굴러들어 온 잡종에게 이 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는 더 공부하고, 더 단련해야만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도련님.”
“어… 어… 어어! 하아… 하아…….”
“안색이 좀 안 좋으십니다만?”
“아니! 이 정도야 좀 쉬면 나을 걸세!”
눈을 뜬 이상 오늘 하루의 일정이 또 시작된다.
아직 성장 중이라서 그런지 이 가혹함을 견디며 그는 병사들과 하는 아침 체력 단련을 하러 나섰다.
이제는 꽤 적응이 된지라 랄트는 병사들의 뜀걸음에 맞춰서 잘 따라가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단련 중인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향한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고, 또 저 저택 창문 안으로 자신보다 늦게 일어나서 느긋하게 아침을 보내고 있는 베오날드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저 자식! 나는 이렇게 고생하는데! 하긴 차라리 저렇게 안 보여 주는 게 낫지. 젠장!’
자신이 이렇게 고생하는 원인이 된 놈. 물론 그를 데려와서 양자로 삼은 것은 친아버지인 렌겔 가주 대리였지만, 결국 저놈의 존재 자체가 지금 자신을 이렇게 몇 달째 고생시키고 있는 거였다.
현재 베오날드는 젤커드 자작의 딸인 하이디에게 단련을 받는다는 이유로 병사들과의 공통 체력 단련에서는 빠진 상황이었다.
처음엔 혼자 도망치는 거라 생각했지만, 역으로 랄트로서는 보기 싫은 놈을 안 봐서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저 망할 놈! 꼴도 보기 싫은데… 이이이으윽!’
하나 보기 싫다고 해서 안 볼 수가 없는 사이인 게 문제였다.
단련 때는 애써 무시하더라도 이렇게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아침 식사 자리에서는 도저히 도망칠 방도가 없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식사 자리는 절대 빠질 수 없는 캘러메인 백작가의 행사였기에 기분 나빠도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 베오날드, 오늘은 일정이 있느냐?”
“음~ 일단 오전엔 알테리오의 무장 제작을 의뢰할 생각입니다. 드디어 사람을 태울 수 있을 정도로 컸으니까요.”
“알테리오라면 그 그리폰 이야기인가? 그렇구나. 무장이라는 건… 설마 그걸 타고 전쟁터를 나갈 생각이냐?”
“예. 실전성은 둘째 치고, 무장시켜서 전장에 나간 다음 적 진영의 말들에게 포효하기만 해도 존재감이 넘쳐흐를 것이고, 가문의 위상이 오르게 되겠지요. 최소한 손해는 없을 겁니다. 물론 아직 좀 더 조련을 해야겠지만요. 녀석이 크더니 야생성이 살아나려는 건지, 참~”
“과연 그렇군. 조심하도록 해라.”
그리고 식사 자리에선 무릇 가문 식솔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가며 근황을 확인하는 것이 가주의 임무였다.
가장 먼저 질문을 받은 베오날드는 오늘 그리폰의 무장을 맞추고 조련에 힘쓸 거라는 이야기를 꺼냈고, 이는 가문에 득이 되는 일이었으며 잘 처리되고 있기에 더 이상 질문이 오가지 않았다.
“랄트, 저번에 맡긴 외벽 공사 지휘는 어떻게 되었느냐? 예정대로라면 이미 완성됐어야 하는데, 아직 진행 중이라는데?”
“그, 그게… 서, 석재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서 조금 지연되고 있습니다.”
“그럼 석재 공급을 개선할 방안은 세웠느냐? 내가 분명 다른 영지나 상인을 통해서 추가 구매를 하라고 말해 주지 않았느냐?”
“예? 그, 그게 아직…….”
“영지와 성의 방비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걸 등한시하면 적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느냐?”
맡은바 소임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렌겔 가주 대리의 꾸중이 바로 들려왔다.
물론 랄트라고 후계자의 일이 싫어서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우선은 자신이 맡은 일이 이거 하나가 아니라는 점, 거기에 상인과의 교섭이 능숙하지 않은 점 등등… 변명으로 내놓을 수 있는 건 너무나 많았다.
하나 그것을 지금 입으로 내뱉는 것은 자신의 평가만 깎아 먹는 짓일 뿐이니 할 수 없었다.
“빠, 빠른 시일 내에 완수하겠습니다.”
“아니면 네게 부여된 일이 많은 거라면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건 어떻겠느냐?”
“랄트는 아직 경험이 부족한 것뿐이에요. 그러니 굳이 배분할 필요 없습니다.”
그런 사정을 렌겔 가주 대리가 모르는 건 아니어서 조금은 짐을 덜어 주려고 하지만, 그것은 모친인 메이라 부인이 극구 저지했다.
자신의 아들에게 실패했다는 흠을 남기고 싶지 않은 그녀는 일을 덜어 주려는 렌겔 가주 대리의 제안을 무시한 것이다.
그렇게 지옥 같은 식사가 끝나고, 랄트는 지옥 같은 업무로 돌아가기 전 모친에게 자신의 사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머님, 방금 건 너무하셨습니다. 솔직히 저 너무 힘들어요. 지금 이 일만 맡은 게 아니라 범죄자 재판, 형무소 시찰, 병영 개선, 각 길드 회의 참석, 시젤 백작가 축하 파티 참석 준비… 할 일이 너무 많은데!”
“물론 안단다. 하지만! 여기서 네가 하지 않으면 분명 이 일들은 모두 저 베오날드라는 아이에게 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와 저 아이의 격차를 더 보여 주게 된다고!”
“이이익… 하지만 이건 무리라고요! 저 혼자서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네가 해야 할 건 직접 다 하는 게 아니다! 일을 관리하고 잘 진행되는지 확인하는 거란다! 사람에게 맡겨서 성공하면 상을 주고, 실패하면 처분하면 되는 것을 왜 그리 어렵게 보는 게냐? 아무튼 네 일을 절대 빼앗겨선 안 된다! 기껏 저 베오날드라는 아이가 아무것도 못하게 막고 있는데!”
유일한 아군인 어머니도 결국 자신의 고통과 힘듦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대로 하라고 강요했다.
사람을 쓰면 된다니? 일을 관리하면 된다고?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냥 사인하는 기계가 아니라 그것에 대해 판단을 내리려면 결국 그 일을 알아야 하는 것이었다.
“못해요! 더는 못해요! 그냥 그 자식을 죽여 버리라고요! 내가 왜 그 자식 때문에 이 고생을 해야 하는데! 오늘 일 안 해! 몰라! 엄마가 알아서 해요!”
“얘, 얘가?”
“계속 이런 식으로 할 거면! 그냥 그 자식 후계자 시켜요! 이런 게 후계자면 나 안 해!”
결국 참고 있던 것이 폭발해 버린 랄트였다.
애당초 평범한 15살 소년에겐 너무나 버거운 짐이었다. 몇 달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개인 시간도 없으며, 부여된 과중한 업무는 아무도 덜어 주지도 않는 데다, 유일한 아군인 모친마저도 해결책이나 도움 없이 무지성으로 일하라고 밀어붙이기만 하니 이렇게 되는 게 당연했다.
특히나 랄트는 고작 1년 전만 해도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던 자유를 누렸기에 더더욱 그 반동이 클 수밖에 없었다.
여태껏 버틴 건 오직 저 베오날드라는 잡종에게 자신의 ‘것’인 후계자의 자리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의지 덕분이었는데, 그것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기에 그는 일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당장 쌓여 있는 수면욕을 해결하기 위해서 뛰어갔다.
“쟤, 쟤가?”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에 보통 15세 아이에겐 당연히 찾아올 사춘기의 영향.
어쩌면 필연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메이라 부인에겐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던 그녀는 다급히 캘러메인 백작을 만나러 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