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그럴 거였다면 진작 움직였겠지. 암살자라도 보냈을 거야. 물론 지금 내겐 말데로브 경과의 친목, 거기에 그의 아들 에라솔, 젤커드 자작의 따님인 하이디도 있지. 또 암살 임무를 받을 다크티스 조직과도 인맥이 있으니 웬만해서는 무리이겠지만…….”
“아… 하긴 움직일 방도가 없네요.”
“그러니 안심해도 되는 거지. 오히려 지금 이대로 가만히 두는 게 최선책이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지. 또 내가 있어야 그 랄트 도련님이 열심히 뛰거든.”
이 점 하나만큼은 렌겔 가주 대리든, 백작이든, 메이라 부인이든 모두 인정하는 사실일 것이다.
베오날드가 뒤에 서 있기에 그 게으르고 나태했던 랄트가 지금 업무와 공부를 병행하며 달리는 건 사실이었고, 그것으로 인해서 백작가 아래에 있는 귀족들이 안심하는 효과를 보고 있었다.
“그러니 아직 이용 가치는 있고, 또~ 나를 어떻게 할 명분이 없잖아? 기회를 보는 거겠지. 슬슬 휴식 시간은 끝. 다음 강의로 들어가지.”
“그러네요. 아~ 아쉬워라. 도련님의 머릿속에 있는 걸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쓸데없는 소리 말고, 지금 가르쳐 주는 거나 다 외워라. 아무튼 다음 강의로 가지.”
“예이~”
지금까지의 잡담은 그저 연금술 수업 뒤, 쉬는 시간인 것이었다.
연금술 조수로 써먹으려면 이렇든 저렇든 기초적인 교육을 해야 했기에 베오날드는 셀리나를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가서 일대일 교육을 계속 이어 나갔다.
연금술의 기초, 원소와 물질에 관한 이해부터 시작해서 ‘마력 변환’ 및 ‘원소 변환’을 배우기 전의 기초부터 단단히 주입시켰다.
“근데 이거 외울 이론이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마탑의 연금학부도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꼭 멍청한 애들이 기초 이론이랑 물질, 원소 특징 무시하는데, 멍청하게 ‘변환’과 ‘제조’, ‘연성’에 도전하다가 사고 치는 거야… 라고 책에 나와 있었다. 크흠!”
“방금 뭔가 설명에 체험한 것 같은 리얼함이 담겨 있었는데요?”
“아니, 그럴 리가~”
15살이라는 배경에 맞추기 위해서 연금술의 출처를 숨기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우연히 찾은 고서로 공부했다고 거짓말하는 베오날드였다.
그리고 책에 대해서는 외워 버리고 폐기했다는 말로 출처를 아예 없애고서 그녀에게 연금술의 기초를 가르치는 중이었다.
다행히 마법사인지라 기본 두뇌가 되고, 또 마탑에서 같이 연구하는 타 부서의 이해를 위해 교양으로 배우게 한 덕분에 가르침은 수월했다.
그렇게 약 1시간가량 수업하고 난 뒤, 베오날드는 수업을 마쳤다.
“아무튼 수업료 겸 과제로 약속한 치유 포션 만들어 오는 거 잊지 마라.”
“예, 걱정 마십시오. 치유 포션이라면 명분도 충분하니 만들기 쉬울 거예요. 제 쓸모를 증명해야 더 많은 걸 배우니까요. 물론 백작가에 납품하는 거랑 도련님에게 드릴 걸 별도로 만드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치유 포션의 제조법을 2개 알려 준 이유는 자신과 자신의 가신들이 사용할 것을 당연히 더 좋은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었고, 백작가엔 저급한 것을 주기 위해서였다.
특히나 성능이 더 좋은 포션은 자신이 직접 연구하고 개량한 것이라서 더욱 남이 사용하게 해선 안 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저 셀리나를 시험해 볼 수도 있었고 말이다.
‘뭐, 차라리 사고를 쳐서 죽일 명분을 만들어 주면 그게 더 고마운 일이겠지만……. 아무튼 슬슬 나갈 시간이군.’
베오날드는 저택 사람이나 캘러메인 백작가 사람들이 모르게 셀리나와 완전히 다른 루트로 돌아서 저택에 도착했다.
그리고 맞이하러 온 세인과 함께 알테리오를 데리러 올라간 다음, 저택 내의 수련실로 향하여 베오날드가 알려 준 마나 호흡법과 창술을 한창 단련하는 중인 하이디를 문밖에서 불렀다.
“하이디, 나다. 슬슬 외출하도록 하자.”
“아! 예! 도련님! 금방 나가겠습니다!”
“도련님? 오자마자 또 어디로 가시려고 합니까?”
오자마자 다시 나간다는 말에 전속 메이드인 세인이 질문을 하자 베오날드는 태연히 답했다.
“아~ 이 녀석 밥 주러 나가야지. 육포랑 간이식만 먹이는 건 몸에 안 좋고, 산책도 해 줘야 되거든. 저번 테알 슬럼가 일로 오랫동안 돌보지 못하니까 어떻게 되었는지 봤지 않나?”
삐이이이잇!
“그럼 저녁 식사는 안 드시겠군요. 말씀해 두겠습니다.”
덜컹!
세인과 대화를 마치자마자 수련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안에선 후끈한 공기와 함께 수련으로 인해 땀범벅이 된 하이디가 갑주를 차려 입은 채로 나왔다.
“죄송합니다. 오, 오신다는 걸 미리 알았으면 씻고 준비를 했을 텐데…….”
그녀는 자신이 어떤 꼴인지 깨닫고 허둥지둥거렸지만, 베오날드는 침착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아니, 애초에 네가 수련을 해서 강해지는 것을 바란 건 나다. 그러니 배려는 내 몫이지. 씻고 오는 걸 기다리지. 아니면~ 기왕 하는 거, 같이 씻으러 들어갈까?”
“아, 아아아아아아닙니다! 무, 물론 그게 싫은 건 아닙니다만! 아, 아직 이, 이르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바로 씻고 오겠습니다!”
‘음~ 반응이 좋아서 아주 귀엽군.’
터무니없는 무의 재능과 강인한 외모를 가진 것과 달리 하이디의 성격은 우직하면서도 터무니없이 소녀스러워 이렇게 살짝 놀리기만 해도 반응이 좋았다.
또한 뭔가를 숨기지 못하는 성격인 게 너무 마음에 드는 베오날드였다.
“…하이디 양이 마음에 드시나 보군요.”
“마음에 안 드는 게 이상한 거 아닐까? 다들 저 키와 체구만 보고 너무 편견에 싸여 있어. 내면은 저렇게 순수한 소녀인데 말이지.”
“흐음~ 순수한 타입이 취향이신지요?”
“아, 딱히 그런 건 아니야. 내 취향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은 편이거든. 아주 어리지 않고, 그리고 내 가슴을 뛰게 할 매력과 재능만 있으면 충분하지. 물론 세인 너도 내 취향 안에 들어와 있으니 안심해도 되네.”
그렇게 태연하게 대답하며 산뜻한 미소를 짓는 베오날드.
보통 사람이었다면 느끼하거나 자아도취가 심한 자라고 생각할 법했지만, 베오날드는 외모도 외모일뿐더러 이 백작가에서 능력까지 보이고 있는 다크호스였기에 당당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세인이었다.
그래서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를 감시하라는 메이라 부인의 말이 다시금 머리와 가슴을 따갑게 하며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끔 했다.
‘잊지 말거라. 행여나 허튼 생각을 하면 이 매질보다 더한 대가가 있을 것이니 말이다. 고작 다크호스라고 해 봐야 놈은 결국 잡종인 시골 출신이니까 말이야.’
“윽……!”
“아, 그렇게나 기분 나빴나? 하하, 미안하게 되었군.”
베오날드는 세인의 표정이 굳어진 것을 보고 불쾌한가 싶어 더 이상 추근거리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제대로 머리도 말리지 않아서 축축한 금발을 펄럭이며 달려오는 하이디와 함께 다시 저택을 떠나 어디론가 향했다.
“그런데 도련님, 오늘은 어디로 가실 겁니까? 그… 사냥터라면 얼마 전에 갔던 곳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만?”
“으음~ 다 생각이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 하이디.”
현재 이 외출의 명분은 그리폰인 알테리오의 산책과 식사를 공급하기 위한 사냥이었다.
사실 산책은 둘째 치고 식사를 위한 사냥은 이미 베오날드의 경지라면 손쉬운 일이어서 지금 하이디가 지적하는 대로 영지 밖의 다른 숲으로 멀리 올 이유가 없었다.
하나 베오날드는 전혀 개의치 않고 어느 정도 깊숙이 숲에 들어오자 작은 컵에 물을 담고 거기에 붉은 액체를 몇 방울 흘린 다음 물 위에 뜬 그 액체가 움직이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건 뭡니까? 도련님.”
“일종의 탐지기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지켜보고만 있도록. 그리고 알테리오를 돌봐 주렴.”
“예! 도련님.”
하이디는 알테리오와 만난 지 얼마 안 되어서 금방 친해지진 못했지만 그래도 완전 무장에 튼튼한 피지컬, 거기에 무의 재능과 힘을 가진 덕분에 알테리오가 험하게 달려들어도 마치 애완동물을 다루는 것처럼 다룰 수 있었다.
그렇게 베오날드와 하이디는 몇 시간가량 숲을 헤매다 위험종 몬스터의 영역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그때, 하이디와 놀던 알테리오가 깃털을 바짝 세우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하이디 또한 그것을 보고는 창을 꺼내 들고 경계 태세에 들어갔지만, 베오날드는 여전히 태연하게 계속해서 무언갈 찾다가 어느덧 어두워지자 찾는 것을 멈추고 말했다.
“으음… 역시 쉽게 나오지 않는군. 슬슬 돌아가자.”
“도련님은 도대체 무엇을 그리 찾으시는 것입니까?”
“아~ 찾는 거? 지맥(地脈)이라는 것이다. 알다시피 ‘마나 호흡법’을 하면 그 배 아래쯤에 ‘코어’가 생성되지? 그리고 전신의 곳곳으로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어느 곳으로 모이고, 어느 곳으론 흐르면서 신체를 강화하거나 발달시키지. 알지?”
“예. 한데 그게… ‘지맥’이라는 것과 무슨…….”
“무인들의 말로는 자연이야말로 거대한 ‘궁극의 신체’이며 그것과 닮아 갈수록 더 고귀한 경지라고 하지. 그럼 반대로 궁극의 신체 또한 결국 인간의 것과 닮아 있다는 뜻이고, 그렇다는 건 곧… 살아 있는 자연에도 분명… 마나가 흐르며 그것이 ‘코어’처럼 모이는 곳이 존재한다는 거지. 나는 그것을 우리가 사는 ‘별’의 이름을 붙여서 ‘성맥’이라고 부른다.”
“아하!”
“그 ‘성맥’은 아마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지. 하지만 마나 호흡법을 쓰는 신체 곳곳에 마나가 ‘모이는 곳’이 존재하기에 이 ‘별’에도 그것이 똑같이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지맥’이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그걸 찾으시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여기까지 말했으면 이해를 할 거라 생각했는데… ‘마나 호흡법’은 알다시피 자연에 있는 마나를 신체에 모으는 방법이다. 오래된 가문들이나 명문 무가들이 가진 ‘마나 호흡법’의 경우 효율이나 성능, 체질에 따라 개선된 것이라서 저잣거리에 나도는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기에 가문의 핵심 비밀이자 보물 취급을 받는다. 그럼 반대로 그 ‘마나 호흡법’을 실행하는 환경 요인인 자연의 상황을 더 좋게 하면 어떻게 될까?”
쩌엉!
거기까지 말하자 하이디는 그제야 감탄했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면서 박수를 쳤다. 그러자 금속으로 된 갑주의 건틀릿이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이는 곱셈의 원리와 같다.
‘자연 속 마나×마나 호흡법의 효율=마나 코어 생성 및 성장 속도’라고 보면 좋거나 개량된 마나 호흡법을 쓰는 건 뒤의 숫자를 올리는 것이고, 자연 속 마나가 풍부한 곳을 찾는 것이 전자에 속하는 것이리라.
“이제야 이해를 하는군. 그래, 보통은 신체가 성장하기 전부터 마나 호흡법을 해야 효율이 좋지. 하나 너는 배우기도 늦게 배웠고, 별로 좋지 않은 걸 하다가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한 만큼 진도를 좀 더 빠르게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 그럼 저를 위해서 찾으시는 겁니까?”
“그것도 맞지만 지맥은 그거 외에도 많은 용도로 쓰이거든. 가령 연금술사들이 하는 마력 변환, 원소 변환, 연성 같은 건 보통 마정석이 필요하지만 지맥이 있으면 그것 없이 할 수 있지. 마력이… 흐르는 곳이니 말이야. 하지만 역시 찾기가 쉬운 게 아니지.”
마력이 풍부한 만큼 위험한 몬스터들이 살 확률이 높기도 하고, 쉽게 찾아지는 곳조차 아니었다.
하나 찾는다면 하이디의 마나 호흡법 성장도 성장이지만, 베오날드로서는 제조할 수 있는 연금술의 각종 비약도 많아질뿐더러 연성을 통해서 다양한 도구의 제작까지 가능해진다.
여태껏 잔재주들이나 썼던 것과 다른 ‘마스터 연금술사’로서의 전공과 진면목을 살릴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실제로 ‘지맥’을 찾아야 할 수 있는 이야기였고, 오늘 찾지 못한 베오날드는 결국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