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바알 사장님, 아그라샌더 그룹에 있는 우리 내통자에게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뭐? 그 약팔이 놈들이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갑자기 용병들을 모으고, 평소 마약 판매하던 꼬랑지들과 부하들이 모두 들어가서 무장하고서 무언가 찾아다니는 등등… 사태가 평소와 달라서 심각해 보입니다.”
“또 한판 하자는 건가? 말렉 자식, 약이라도 한 건가?”
수염이 길고, 깐깐해 보이는 안경 쓴 중년 남성인 바알.
그가 바로 이 테알 슬럼가의 조직 중 하나인 바알라스의 수장으로, 여러 사업체들을 운영하다 보니 그의 호칭은 ‘사장’이었다.
아무튼 이 테알 슬럼가에 함께 사는 다른 조직이 갑자기 무장을 한다고 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그는 곧바로 대비를 해야만 했다.
하나 그 전에 놈들이 무장하는 이유부터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대체 왜 그런대? 내통자 놈에게서 다른 보고 없었나?”
“보고는 있었습니다. 무슨 알 수 없는 연금술사가 ‘신종 마약 제조법’을 가져왔는데… 첫 생산품이 나온 날 연회를 했고, 그날 밤에 연금술사가 납치당한 것 같다고 합니다.”
“…아, 그래서 저 약팔이가 빡친 거군. 연금술사를 빼돌렸다라……. 이건 누가 봐도 다크티스 짓 아닌가? 솔직히 우린 아니잖아.”
“아뇨, 사장님. 엄연히 우리 영역에서 우리보다 돈 더 버는 놈들이 엿 같아서 몇 번이나 놈들의 사업을 빼앗으려고 했잖습니까?”
바알라스는 술집과 창관을 사업장으로 가지고 있었고, 마약 판매상인 그들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물론 자기들이 키워 손님을 끌어모은 영업장에서 막대한 이익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꼬워서 서로의 자리를 노리는 경우가 있던 만큼 의심을 살 여지는 충분했다.
“후우~ 망할, 우리는 절대 아니지 않냐?”
“완전히 아니라고도 할 수 없죠. 밑의 놈들이나 하위 조직에서 저지른 거면…….”
“씁! 일단 모든 영업장에 비상 걸어. 그런 다음에 말렉 그 새끼랑 대화해 봐야지. 서로 피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잖아.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젠장!”
“만약 놈이 대화를 안 듣는다면?”
“그것도 대비해야겠지. 일단 우리도 끈이 닿는 용병 놈들과 교섭을 한다. 머릿수도 채워야 하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그리고 다크티스에 사람을 보내서 놈들과도 대책을 논의한다. 그 미친개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말이야.”
난데없이 일어난 ‘아그라샌더 그룹 사태’에 바알은 급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 현상은 동시에 다크티스 쪽에도 이야기가 들어간다.
같은 시각, 도적 길드와 암살단이 있는 다크티스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간부들이 모여서 회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표가 없고 5명의 간부가 다수결로 의사를 정하는 시스템이었는데, 간부들 모두 가면과 검은 로브를 입고 있어 서로가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로 의뢰와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서 뭉친 형태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누가 설명 좀 해 주실까? 4번?”
그래도 구별은 해야 했기에 가면에 쓰여 있는 번호로 서로를 지칭하는 다크티스의 간부들이었다.
“이미 다 준비해 왔네, 3번. 아그라샌더의 말렉 놈이 떠돌이 연금술사를 고용했는데 놈이 신형 마약을 만들어 냈다. 한데 오늘 아침 그놈이 없어졌고, 새로운 돈벌이와 신형 마약 제조법을 잃어버린 거나 마찬가지인 말렉은 화가 나서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쏟아부어서 전쟁을 준비하는 중이다.”
“아침부터 용병 길드가 왜 그렇게 난리였는지 알 것 같군. 그래서?”
“아마 놈은 그 연금술사가 사라진 원인으로 우리 혹은 바알라스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하나 아직 우리 정보망에도 그 연금술사의 자취가 걸리지 않았으며, 다른 하위 조직들이 바깥으로 나갔는지 흔적을 살펴보고 있지만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젠장, 그러면 뻔히 우릴 의심하겠군.”
흔적을 찾을 수 없는 행방불명의 상황이니 다른 조직들은 100퍼센트 ‘다크티스’를 의심할 것이다.
사실 세상 모든 행방불명이 그들의 짓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도적, 암살자 길드로서의 명성과 두려움을 주기 위해 그냥 자신들의 일인 것처럼 블러핑을 하기도 했었다.
“이제 어떻게 하죠?”
“그야 나는 모르지, 2번. 하지만 방법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군. 가장 좋은 건 우리가 그 연금술사를 찾아서 말렉에게 돌려주는 건데… 그걸 찾는 게 쉬울 것 같나? 4번.”
“이 도시에서 우리 정보망을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하네. 그런데 지금 행방불명이라는 건… 쉽지 않을 거란 이야기겠지.”
“그러면 결국 저 약팔이 말렉 놈을 말릴 방법은 없다는 건가? 그럼 우리도 전쟁 준비를 해야 할 판이군. 아니면 혹시 바알라스가 한 짓은 아닌가? 늘 자기들 영업장에서 마약 파는 저 아그라샌더 놈들을 아니꼽게 여겼지 않은가?”
“그놈들이 했다면 오히려 발견하기나 쉬웠겠죠. 하아~ 대체 그 연금술사는 어디로 사라진 건지……. 그놈을 되찾지 않으면 말렉 놈은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막대한 이익을 낳아 줄 황금알을 낳는 오리를 잃어버린 격이니 눈이 돌아가고 혈압이 상승하는 건 불 보듯 뻔~ 한 일이었다.
결국 그 연금술사가 있어야 하지만 찾을 수 없기에 사태 해결의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튼 말렉을 막을 방도가 없다면 바알라스와 손을 잡고 아그라샌더를 없애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가능한 방법이지만, 문제는 그다음 아닌가? 아그라샌더가 사라지면 그 시장을 노리려고 할 텐데?”
“그냥 바알라스에게 줘야죠. 그게 이 테알 슬럼가의 질서를 지키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다가 백작가에서 나서면?”
“으음… 일단 그런 것들은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은 바알라스와 이야기하고 힘을 모아서 아그라샌더를 막아 봅시다. 반대하는 의견이 없다면 곧바로 행동으로 옮깁시다.”
끄덕.
다크티스의 간부들은 이 의견에 모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각자 맡은바 임무를 하기 위해 흩어졌다.
테알 슬럼가에 여러 분쟁이 있었지만 이번만큼 한 조직이 작정하고 모든 역량을 다 쓰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더더욱 신속한 조치가 필요했다.
***
그리고 이 무렵, 베오날드는 다른 도시에서 온 용병으로 위장해서 용병 길드에 들어가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아그라샌더 그룹에서 먼저 사람을 보내어 계속해서 용병들을 고용하고 있었으며, 일거리가 있다는 소문에 다른 지역에서도 용병들이 오고 있는 바람에 그가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광경이 되었다.
“자자! 줄들 똑바로 서세요. 우리 모두 신뢰를 주고받아야 하니 계약서를 제대로 써야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순서대로 합시다.”
“자! 바알라스 쪽에 고용되고 싶은 분들은 이쪽으로 오세요!”
‘…이것도 기묘한 광경이군. 하나의 용병 길드에서 서로가 싸워야 할 진영을 고르게 되는 꼴이라니.’
사실 용병 길드에 들어올 일도 거의 없었지만, 그의 말대로 지금 이곳엔 아그라샌더에서 나온 의뢰인과 바알라스에서 온 의뢰인이 나란히 용병들을 모으고 있어서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쪽 진영에 속함과 동시에 상대 쪽 진영에 가입하는 용병들에 대해서 보게 되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싸우기도 전부터 용병들의 싸움 태도를 결정하는 요인이 되고 있었다.
외지인들이 들어오고 있긴 하지만 결국 이 주변에서는 캘러메인 백작의 영지가 가장 큰 만큼 소문이 모이고 또 강자에 대한 명성은 퍼지기 마련이었다.
“저것 봐. ‘트롤 슬레이어’ 자이넬이야. 제길! 아그라샌더에 고용되었나? 큰일 났네. 난 바알라스에 고용되었는데… 전장에서 보면 조심해야겠군.”
“음, 그럴까? 바알라스에는 그 유명한 번개 형제가 고용되었다던데? 바알 사장 인맥이라던가?”
“번개 형제? 그 3급 마법사와 파문당한 성기사 페어 말하는 거지? 그럼 만만치 않겠는데?”
용병들의 떠드는 소리는 언뜻 들으면 아이들이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보고서 비교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었지만, 전쟁에 참여하는 그들에겐 목숨이 달린 대화나 마찬가지였다.
하나 베오날드는 그들의 그런 심경을 모르기에 유치함이 폭발할 것 같은 대화 내용을 듣고 웃음이 나오는 걸 참느라 곤혹을 치렀다.
‘유치해서 미치겠군. 그래도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선 들을 수밖에… 나도 이 혼란 속에 참전할 거니 말이야.’
그렇게 유치찬란한 용병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테알 슬럼가의 작은 분쟁에 참여하는 용병들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수집한 후, 그는 곧바로 바알라스 조직의 의뢰인에게 가서 자신도 고용을 등록하고자 했다.
“보자… 신입이고, 꽤 어려 보이는걸? 그럼 이 일은 맡지 않는 게 좋을 텐데… 너 사람 죽여 본 적 있냐?”
“예, 있습니다. 그건 걱정 마세요. 어차피 여기서 돈 벌고 바로 뜰 거니까요.”
“으음, 하긴 용병이 일하고 돈만 벌 수 있으면 장땡이긴 하지. 좋아, 여기 계약서에 사인하고, 신입이니까 최저 랭크지? 그럼 고용비 은화 20개고, 선금은 은화 10개. 이후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공헌에 따라서…….”
“최저 랭크이긴 한데… 이러면 얼마죠?”
“뭐가? 이러면이 뭔… 으… 읍!”
바알라스에서 나온 의뢰인은 베오날드가 내민 단검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보랏빛 마나가 둘러진 그 단검은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의뢰인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베오날드가 사전에 차단해서 용병 길드에 그의 비명이 퍼지는 건 막을 수 있었다.
“쉬이잇~ 남에게 들켜서 좋을 거 하나 없잖아요? 자~ 릴렉스하시고~ 방랑하는 몸으로서 돈 좀 벌고 싶어서 온 거니 말이죠. 이제 파악되셨죠?”
“으읍! 으읍!”
의뢰인은 베오날드의 살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긍정할 뿐이었다.
그리고 속으로 이번 전쟁에서 핵심이 될 히든카드가 하나 탄생한 것을 확신하며 곧바로 특별한 배지를 꺼내 줬다.
“이건?”
“특별 의뢰 대상이라는 표시입니다. 제 역량으로는 도저히 거래할 수 없는 인물이 나타났을 때 드리는 거죠. 번화가로 가셔서 악마의 뿔 2개가 그려진 간판이 있는 건물을 지키는 자들에게 이걸 내밀면 알 겁니다.”
“좋아. 그러도록 하지.”
베오날드는 배지를 품에 집어넣고 바알라스의 의뢰 담당이 이야기한 곳으로 곧장 향했다.
그곳에는 이 시궁창스러운 슬럼가치고는 꽤나 제대로 된 5층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입구엔 험상궂게 생긴 떡대 둘이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바알’이라는 이름의 모티브에 맞게 악마의 뿔 2개가 그려진 간판이 보였다.
“넌 뭐야? 예정된 손님은 아닌 것 같은데?”
“이것 때문에 온 거라고 해 두지.”
“…특별 의뢰군. 좋아, 들어가라. 1층에서 그걸 보여 주고 사장님 방으로 안내해 달라고 하면 안내해 줄 거다.”
베오날드가 다가가자 일순 경계를 했지만 배지를 보자마자 그들은 태도를 바꾸더니 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안내인까지 따라붙어서 5층까지 올라간 다음 사장실이라고 표시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수염을 잔뜩 기른 중년 남성이 담배를 문 채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양피지 서류와 판재들을 정신없이 훑어보고 있었다.
“젠장! 말렉 그 약팔이 자식! 아주 작정을 했군. 진짜 전쟁이라도 하자는 건가? 도가 지나치네! …어? 뭐야, 넌?”
“이걸 주곤 여기로 가라고 하던데요?”
“그, 그건? 오오오!”
베오날드가 배지를 내밀자 사장인 바알은 벌떡 일어나서 그에게 뛰어갔다.
특별 의뢰 대상. 용병의 궤를 넘어선 괴물급을 만나면 자신에게 보내라고 전해 준 것이었고, 드디어 만나게 되자 반가움에 달려 나간 것이다.
이미 주요 용병들은 모조리 말렉이 쓸어 간 시점에서 괴물급의 등장은 구원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는 곧바로 베오날드와 협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