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며칠 뒤, 캘러메인 백작 영지 내 테알 슬럼가 ‘아그라샌더 그룹 영역’.
음습하고 어두운 슬럼가의 한구석. 마약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아그라샌더 그룹’의 영역은 더더욱 어두웠고, 하천엔 더러운 물이 흐르고 지독한 냄새가 풍겨져 나왔다.
하나 막대한 이득이 생산되는 곳이면서 중독성으로 장사하는 마약을 제조하기에 영역을 오가는 이에 대한 인원 통제는 단순한 폭력 조직 레벨을 넘어서 거의 수도나 황실을 오가는 것만큼이나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이봐, 여긴 아무나 함부로 올 곳이 아니야. 우리 ‘아그라샌더 그룹’의 영역이다. 죽고 싶지 않으면 꺼져.”
영역의 입구를 지키는 두 불량배들은 겁 없이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는 수상한 인물을 물러가게 하기 위해서 겁을 주었다.
그 인물은 로브와 후드를 써서 얼굴과 전신을 가리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자로, 키가 상당히 큰 것 외엔 별다른 특징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을 겁준 그들에게 태연히 다가간 그는 그들에게 무언가를 내밀며 말했다.
“하하, 물론 잘 알고 있고, 나름 용건이 있으니 온 것입니다. 이것을 두목님에게 전해 드리실 수 없으신지요? 이건 개인적인 보수입니다.”
작게 종이로 싸여진 무언가와 금화 2개를 내미는 것을 본 영역 지킴이들의 눈이 순간 커졌다.
각자 금화 하나씩을 받은 2명은 그가 준 작은 종이봉투를 곱게 받아 들고는 되물었다.
“이게 뭔데? 위험한 거 아니야?”
“일종의… 샘플. 예, 견본품입니다. 지나가던 연금술사인 제가 만든 것이라고 그분에게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만약 거래할 생각이 있다면 내일 지금 시간에 다시 이곳에 올 테니 그때 대답을 전해 주시면 됩니다.”
“음…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아. 알았다.”
일단 금화를 한 장씩 받아먹은 덕분인지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수상한 인물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봉투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뇌물도 적절히 바쳤고, 심상치 않아 보이는 자였기에 그들은 곧바로 보고 체계를 거쳐서 두목에게 그 종이봉투를 전했다.
“뭐? 수상한 놈이 이걸 나에게? 대체 뭐야?”
“예, 두목.”
두목이라 불린 남자는 거구에 근육질의 남성이었는데, 이 아그라샌더 그룹을 지휘하는 자로 이름은 말렉이었다.
그는 어릴 적 이 조직에 들어왔고, 타고난 용력과 비열한 지혜를 통해서 조직 내에서 승급, 이제 한 도시의 조직을 관리하는 두목까지 스스로 올라온 자였다.
그는 오늘도 두둑이 들어오는 마약 판매 실적을 보던 중 영역을 지키는 부하 놈들이 가져온 수상한 종이봉투를 받아 들고 조심스럽게 열어 보았다.
“뭐야, 이거 가루잖아? 약 같은데? 우리가 파는 건… 아닌데.”
“그러게 말입니다.”
“야, 그 자식이 이거 주면서 뭐랬어?”
“그… 견본이라면서 써 보시고 마음에 들면 내일 대답을 해 달라고……. 로브에 후드까지 쓰고 있어서 얼굴은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뭐야, 그럼 이것도 마약이라는 건가? 근데 이상하네. 보통 풀 형태 아니냐? 이건 무슨 밀가루나 소금도 아니고. 참 나~ 허!”
말렉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며 가루를 바라보았다.
일단 형태는 무색무취의 백색 가루. 자신들이 파는 마약은 주로 마약 성분이 있는 약초를 말리고 압축시켜서 담배나 궐련 형태로 만든 것이었다.
그렇기에 신기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한다……?”
이걸 맛보자니 독이나 뭔가 이상한 것을 넣었다면 위험했고, 그렇다고 그냥 버리자니 아까웠다.
그는 부하에게 건네주면서 지시를 내렸다.
“야, 지금 당장 우리 농장에 가서 노예 한 놈 데려와. 가장 나이 많고 힘없는 놈으로 말이야.”
“예. 두목.”
‘만약 독이거나 하면 그 망할 자식을 족쳐야 하니 확인해 봐야지.’
이 수상한 가루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말렉은 부하를 시켜 노예 하나를 데려왔고, 그에게 곧장 그 수상한 가루를 절반가량 흡입시켰다.
늙고 병든 노예는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발버둥 쳤지만 말렉의 부하들이 몸을 단단히 구속하고 그의 코와 입을 벌려서 흡입하는 걸 수월하게 했다.
“왜 다 안 넣으시고 절반만?”
“약효가 어느 정도인지 보려는 거다. 전부 다 쓰면 샘플이 안 남지 않냐?”
“으어억… 으으… 으허어어~ 으허허허허헝~ 헤헤헤.”
짝! 짝! 짝!
그리고 잠시 후, 약 기운이 몸에 도는지 노예는 몽롱한 표정을 짓더니 마치 꿈을 꾸는 양 갑자기 실실 웃으면서 박수까지 치면서 막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떨기도 하고, 쭉 펴면서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꿈틀거리는데, 말렉과 부하들은 마약상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 강렬한 반응이 나오는 건 생전 처음인 듯 기겁하면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끄으으… 으헤헤… 끄으으으! 우오오오!”
“두, 두목, 뭡니까? 저거? 저것도 마약입니까? 아니, 우리가 파는 풀도 마약이지만 저 정도는 아닌데?”
“이상하게 생각할 게 어디 있어? 저거 누가 봐도 ‘약’ 한 새끼 반응이잖아. 이거 효과 죽이는데? 이거 대체 뭐야? 너 해 볼래?”
“아뇨. 아뇨! 절대 싫습니다. 제정신입니까?”
“좋아. 아주 훌륭한 자세야.”
마약상이 마약하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 그것을 아주 잘 지키는 부하를 보면서 흐뭇해하는 말렉이었다.
그리고 약 5분 뒤, 마약의 효과 끝난 건지 노예가 서서히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말렉은 그에게 다가가서 남은 절반의 가루를 보여 주면서 어땠는지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이거 빨아 보니까 어땠냐? 아주 세세하게 말해라. 그럼 남은 걸 다 주도록 하지.”
“그… 그게! 아, 아주아주 엄청났습니다.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하면서 막 흥분이 몰려오더니 갑자기! 뇌를 찌른다고 해야 하나? 막 하늘을 난다고 해야 하나? 신을 본 것 같은… 막 그런 기분이! 짜릿하고 기분 좋은 기분이! 계속 오래가는데!”
‘뭔가 미친 약물이라는 건 사실이구먼. 이야~ 이거 대박이네.’
“아무튼 주인님, 약속하신 약을… 주십시오.”
“뭐? 하! 미쳤냐? 내가 진짜로 이걸 줄 거라고 생각해? 미친 새끼. 당장 다시 일터로 돌아가서…….”
“내 약 내놔아아!”
말렉의 비아냥거림을 듣던 늙고 병든 노예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힘과 기세로 말렉에게 달려들어 약을 빼앗으려고 했다.
두 눈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짐승처럼 달려든 그는 말렉의 손을 물고 할퀴면서 그의 손에 있는 약을 빼앗으려고 발버둥 쳤는데, 어찌나 힘이 센지 호위하는 조직원 둘이 달라붙어 때리는데도 떼어 내지 못할 정도였다.
“젠장! 뭐야? 이 자식!”
“두목! 칼을 써도 됩니까? 이 자식, 맞아도 끄떡도 안 하는데요?”
“약! 내 야아아아악! 내 야아아아아악! 컥!”
결국 답이 없다고 생각한 것과 동시에 두목으로서 체면을 중시한 말렉은 자신의 칼을 뽑아서 그 노예의 목에 칼을 꽂아 넣었다.
동맥을 찌른 것인지 피가 분수처럼 나오면서 바닥을 적실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이 노예는 말렉이 가진 마약을 무섭게 노려보면서 죽을 때까지 발버둥 쳤다.
“내… 야… 아… 악…….”
“젠장! 무슨 놈의 약을……!”
“내일 당장 그놈을 족칠깝쇼?”
“후우~ 족치긴, 자식아. 지금 우린 대박 인연을 만난 거야. 내일 ‘그분’, 아주 제대로 모셔라. 알았냐? 절대 놓쳐선 안 될 분이니 말이야.”
말렉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자신의 손에 들린 남은 마약을 보며 미소 지었다.
지금 일어난 일은 그저 허용량을 제대로 체크하지 못해서 일어난 작은 액시던트. 이걸 누가 어떻게 만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작은 양에 이 정도 효과라면 더 적은 양으로 소분하거나 아니면 와인이나 다른 액체에 타서 써도 좋고, 아니면 독약 대신 다량을 써서 사람을 ‘광증’으로 만드는 극약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거 어쩌면 내 인생이 엄청난 기회가 온 건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말렉은 어서 내일이 되길 기대하며, 남은 약을 품에 집어넣은 채 죽은 시체를 치우라고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다음 날, 예정대로 로브 차림에 후드를 꾸욱 눌러쓴 그 수상한 자는 다시 예정된 시간에 ‘아그라샌더 그룹’의 영역에 나타났다.
아침부터 미리 대비하고 있던 말렉은 곧바로 그에게 다가가서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아그라샌더 그룹의 말렉이다. 어제 보내 준 선물은 잘 받았다. 아주~ 놀라운 물건이더군.”
“놀라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하고 그만 ‘1회 권장 투여량’을 쓰지 않았지 뭡니까?”
“그래서 어제 준 이거, 몇 인분이지?”
“20세 이상 남성 기준으로 하면 20인분입니다. 여성, 노인, 아이로만 대상을 지정하면 30인분까지 나오죠. 훗.”
“그래서 어제 그 꼴이 났던 거군. 큭! 아무튼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지.”
한 방 제대로 먹었다는 표정을 한 말렉은 수수께끼의 남자를 데리고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가며 대화를 계속했다.
“좋은 신상품을 소개해 준 건 좋은데… 이걸로 뭘 얻고 싶은 거지? 수상한 양반?”
“돈입니다. 그것도 아주 많은 돈. 보다시피 저는 연금술사입니다. 세계의 진리와 원소, 구조를 파악하는 학문. 물론 사람들은 그 부산물을 더 좋아하지만요. 거기 그 마약 같은 것처럼 말이죠.”
“심플한 이유로군. 하! 마약 판 돈을 얻어서 진리 탐구를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군.”
“사실… 저도 예전엔 그런 고상한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한데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라서 말이죠.”
말과 함께 수수께끼의 남자는 머리에 쓴 후드와 로브 소매를 슬쩍 걷어서 말렉에게 보여 주었다.
말렉은 깜짝 놀랄 뻔한 걸 간신히 참고서 그것을 바라보는데, 보면 볼수록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보랏빛과 연녹색, 노란색 고름으로 가득 차고 뒤틀어진 피부. 일부엔 구더기까지 기어 다니고 있어서 누가 봐도 끔찍한 상태였다.
“너, 너! 그, 그거!”
“아, 놀라지 마세요. 병은 아닙니다. 그저~ 돈 없는 연금술사들이 간혹 하는 짓입니다. 하하하, 자기 몸에다가 시약을 붓고 반응을 보는 것이지요. 이 정도 거대한 조직을 운영하는 두목님이라면 연금술에도 조예가 있으실 텐데요?”
“아, 아아아! 그렇지. 그렇고말고! 다만 그, 그런 형태는 처음 봐서 놀랐을 뿐이야. 아무튼 상태가 안 좋아서 돈이 필요하다는 거지? 이해했어. 이해했다고! 더 보기 싫으니까 어서 가려!”
“예, 그러지요. 아무튼 사업 이야기로 돌아가지요. 일단 절 만난 것부터가 저와 일하실 생각이 있다는 걸로 보이니 필요한 설비, 재료, 인력, 그리고 생산량에 대해 이야기해야겠지요.”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 비용도 중요하지.”
“아마 이야기를 들으면 놀라실 겁니다.”
로브 속에 얼굴을 감춘 수수께끼의 사내는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인 말렉을 바라보았다.
‘…멍청하군. 나라면 이런 흉측한 외양도 진짜인지까지 확인했을 텐데 말이지. 이 피부는 그저 돼지 피부를 물약으로 가공해서 만든 건데.’
수수께끼의 남자는 바로 베오날드. 저 마약 또한 그가 만들어 낸 것으로 500년 전, 대륙을 한 번 흔들어 놨던 마약 ‘환영의 꽃’이었다.
자신의 집권 시기에 일어난 일로 아무리 간신이지만 자신의 정원을 더럽힌 자들을 용서할 수 없었기에 황실 근위대와 자신의 영지 최고의 엘리트 기사들이 모두 나서서 마약 조직을 박멸했으며, 베오날드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사재를 털어 환영의 꽃의 중독 효과를 치료할 약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런데 설마 내가 그 환영의 꽃을 직접 만들게 될 줄이야. 인생이란 참~ 아무리 놈들을 멸망시키는 게 목적이라곤 해도… 묘하군.’
과거와 자신의 현 상황을 잠시 생각한 베오날드는 곧 환영의 꽃을 만들기 위한 시설과 설비에 대해 말렉과 본격적으로 이야기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