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일주일 뒤, 말데로브 경 사유지 내 은신처.
본래 예정은 3일이었지만 베오날드는 다른 무언가를 준비하느라 자그마치 일주일을 산에서 보낸 뒤에야 마을로 돌아왔다.
은신처로 온 그는 산에서 잡은 몬스터와 동물들을 도축하고 분해해서 쓸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곤 모조리 알테리오의 먹이로 저장을 해 두었다.
그리고 다시 올라온 베오날드는 강물에 자신의 모습을 한 번 비춰 봤다.
옷도 모험가들이 입는 것으로 입고서 일주일 동안 산을 뛰어다니면서 피와 땀, 때를 많이 묻힌 덕분에 제법 일반인 티가 났다.
“좋아. 준비는 이 정도면 되겠고… 알테리오, 먹이는 충분히 모아 놨으니까 난 며칠간 외출 좀 하다가 올게.”
삐이익!
배웅해 주는 알테리오를 뒤로하고, 베오날드는 본격적으로 영지의 도시에 잠입해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일단 모험가 길드에다 몬스터의 소재를 팔아서 얼굴을 트고, 여기저기 다니는 상인과 모험가에게 돈을 주거나 ‘좋은’ 거래를 하면서 일일이 호감을 샀다.
그러면서 떡밥을 살짝 던지자 ‘테알 슬럼가’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길을 잘못 들어서 ‘테알 슬럼가’ 쪽에 들어갈 뻔했어요. 도시 지리에 익숙지 않다 보니… 뭔가 살벌한 모습의 사람들이 가득해서 빨리 도망쳤는데, 거긴 뭔가요?”
“그거! 정말 큰일 날 뻔했군. 역시 사냥꾼이라 낌새가 좋은 건가? 아무튼 잘 도망쳤네. 거기는 상종도 하면 안 될 곳이야.”
“대체 뭐 하는 데랍니까? 일단 이름이 ‘슬럼가’인 걸 보면 질이 안 좋은 인간들이 모인 곳 같은데 말이죠.”
“대충 전직 용병이나 병사들, 도적 길드 놈, 그 외 불량배, 암살단 같은 놈들이 매일같이 서로 싸우고 죽이면서 불법적인 사업을 갖고 다투는 곳이라고 보면 돼. 아무튼 상관해서 하나도 좋을 게 없는 곳이야.”
“오죽하면 영주님도 포기했겠어?”
베오날드가 던진 떡밥에 모험가 길드 사람들은 외지인을 위해 친절하게 그곳이 위험하다고 알려 주었다.
하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베오날드는 좀 더 중요한 정보를 갖고 싶었는데, 역시 테알 슬럼가에 직접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그들이 어떤 불법적인 사업을 하고, 어떻게 싸우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음, 이렇게 되면 직접 저쪽 사람을 납치해서 알아봐야겠군.’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 한다고, 베오날드는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테알 슬럼가로 향했다.
하지만 낮에 가기엔 부담이 되었기에 간만에 알테리오도 볼 겸 잠시 은신처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렇게 말데로브 경의 사유지에 있는 은신처에 도착하자 낯선 이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건?’
“어머나, 상태가 말이 아니네요, 도련님.”
“…셀리나 마법사님?”
175센티미터쯤 되는 커다란 키를 한 미녀. ‘마법사입니다.’라고 써 붙여 놓은 듯한 챙이 넓은 모자와 로브에 지팡이. 틀림없는 그녀였다.
이 자리에서 만나기엔 그리 반갑지 않은 존재였는데, 말데로브 경에게 비밀로 한 이 은신처를 어떻게 그녀가 알고 왔는지부터가 문제인 상황. 베오날드는 검에 손을 올리고서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여기엔 어떻게?”
“아! 그 살기는 거둬 주세요. 전 딱히 도련님에게 폐를 끼치러 온 게 아니거든요.”
“이미 여기 온 시점부터가 민폐입니다만? 애초에 어떻게? 말데로브 경이 알릴 사람은 아닐 텐데…….”
“전 그저 약속한 그리폰의 깃털이 받고 싶어서 왔을 뿐이라구요. 그 뒤로 단 한 번도 서재에 안 들르셨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직접 베오날드 도련님에게 갈 순 없고 말이죠. 저택 내부의 집안 상황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단 말이에요! 그 정도는 아시죠?”
셀리나의 말대로 마탑의 4급 마법사인 그녀는 백작가의 주요한 인사 중 한 명으로 회의에 참여할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가뜩이나 말데로브 경이 뒤를 봐주는 것만 해도 저택에 영향이 큰데, 마탑의 사람이자 ‘마법’이라는 특수한 힘을 다루는 그녀까지 베오날드를 지지하는 형세를 보이면 저택 내부의 정치 상황이 아주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애초에 저는 그런 것에 관심도 없어서 그냥 다시 책을 읽으러 오시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안 오셨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여기를 어떻게 온 건지는 설명할 수 있으신지요?”
“당연히 저 아이를 찾아서 왔죠. 그리폰! 엄연히 마물(魔物). 살아 있는 자체가 마력을 생성하고 다루는 생물! 그 반응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요.”
“이치에는 어긋나지 않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데로브 경의 사유지에 침입한 건 별로 좋지 않다고 봅니다만?”
“그건~ 역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정말정말로~ 그리폰의 깃털이 꼭 필요하기도 했고, 도련님이 그 위험한 테알 슬럼가의 일을 맡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만~”
테알 슬럼가의 이야기까지 덧붙여지자 베오날드는 조금 신경을 누그러뜨렸다.
완전히 의심을 지우는 건 불가능했지만, 마탑과 마법사라는 배경에 자신이 너무 과민 반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에 그녀에게 깃털을 주기로 한 것은 사실이기에 베오날드는 일단은 그녀에게 그것을 주기로 했다.
“좋습니다. 그럼 물건을 드리도록 하죠. 안에서 챙겨 올 건데… 여기서 가만히 계세요. 쓸데없는 행동을 하면 바로 실력 행사를 하겠습니다.”
“으음~ 정말이지, 경계심이 너무 강한 거 아닌가요? 물론 귀족가의 교육도 그렇고, 생각이 다른 거야 이해하겠지만 그렇게 너무 뻗대면 곧 후회할걸요?”
“후회라. 이 일로 제게 원한이라도 가진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아뇨. 그게 아니라, 저한테 테알 슬럼가의 정보가 있는데~ 말이죠.”
중요한 정보가 베오날드의 귀에 들어왔지만 그는 일말의 동요 없이 태연하게 알테리오의 깃털을 가지러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의 머뭇거림도 없는 훌륭한 전진에 오히려 떡밥을 던진 셀리나 쪽이 당황하는 눈빛이었지만, 속으로는 당장이라도 그 정보에 대해서 묻고 싶은 베오날드였다.
“어머~ 고맙습니다. 드디어 이걸로 새로운 시약을 만들 수 있겠어. 아, 맞다. 그렇다고 공짜로 가져갈 수는 없는데… 얼마면 될까요? 금화를 가져왔는데…….”
“돈은 됐고, 대신 셀리나 님이 가진 테알 슬럼가의 정보를 듣도록 하죠. 100퍼센트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시간 낭비하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따라오세요.”
“역시 도련님이라면 택할 줄 알았어요.”
그러나 정보는 역시 가치 있는 것이었고, 지금 가서 납치해서 신문하는 과정과 시간을 줄일 수 있었기에 베오날드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그리하여 저택 안으로 셀리나를 들인 베오날드는 일단 손님이었기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수 차를 끓여서 그녀에게 대접했다.
‘내가 직접 차를 타 주는 처지라니. 내 영지의 가신들과 기사들이 봤다면 기겁할 일이겠지.’
“무례하게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차까지 내오시다니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도련님… 어머? 이건?”
차를 마신 그녀는 눈이 커지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베오날드는 겉으론 표현 안 했지만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 차는 흔히 마실 수 있는 차가 아니라, 바로 마스터 연금술사인 베오날드가 직접 블렌딩한 차로서, 세 가지 잎을 우리고 동시에 배합을 한 것으로 이곳에 시설을 만들었을 때 테스트 겸 준비해 놓은 것이었다.
“어떠신지요?”
“세상에… 이런 건 처음이에요. 어쩜! 어디서 구한 잎이죠? 세상에나~”
“비밀입니다. 아무튼 어디 정보 이야기나 들어 보죠.”
자신에게 간을 본 것에 대한 소소한 복수를 한 베오날드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셀리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면서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테알 슬럼가는 현재 3개의 조직이 각자 불법적인 사업을 벌이면서 세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바알라스 조직’. 테알 슬럼가를 비롯해서 영지 도시 내의 창관 운영과 불법 노예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로 창관을 이용하고, 노예 사업을 하는 것으로 용병 및 모험가들과의 인맥을 넓힌 덕분에 무력적 자원을 가장 풍부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흐음… 다음은?”
“두 번째로는 ‘다크티스 길드’. 도적 길드 및 암살자 길드를 아우르는 곳으로 주 임무는 불법적인 정보 수집과 암살입니다. 다만 그 규모가 작고, 극소수의 암살자 길드원을 제외하면 다른 구성원의 무위가 그리 높지 않아서 귀족들의 일엔 끼지 못하고 주로 상인들과 모험가, 다른 조직과의 싸움에서 의뢰를 받곤 합니다.”
“정보에 밝고 암살을 주업으로 삼는다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럼 마지막은?”
“마지막이 가장 위험한 조직입니다. 이름은 ‘아그라샌더 그룹’. 이들은 마약을 재배하고 판매하는 마약상입니다. 이곳 캘러메인 영지뿐만 아니라 주변 영지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죠. 그리고 알다시피 마약은 그 중독성과 쾌락으로 악명이 높은데… 조직의 자체적인 역량도 좋은지 다수의 연금술사까지 영입해서 금지된 실험으로 강화된 인간이나 몬스터를 합성한 키메라까지 운용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러니 백작가에서도 함부로 해결을 못했던 거군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업에 방해가 되면 곤란하기에 백작가에 막대한 뇌물을 바치고서 공생하는 관계가 되었지요.”
“하하, 그런 걸 지금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가? 참 나~”
기껏해야 슬럼가에서 무법자들처럼 사는 불량배 조직을 생각했는데, 스케일이 거대하자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이런 놈들과 손을 잡고서 이익을 얻고 있는 쪽에 캘러메인 백작가가 끼어 있다는 점이었으며, 알고서 자신에게 이런 임무를 던져 준 것이 화가 날 지경이었다.
‘어지간하면 적당히 돈 좀 벌고 그만하려고 했는데… 이건 너무 심하군. 화가 날 포인트가 너무 많아.’
자기들도 처리할 역량도 안 되면서 일을 떠넘긴 캘러메인 백작에 대한 분노부터 시작해서 비록 권력을 잡고 사리사욕을 채웠지만 그래도 자신의 정원인 영지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려 한 귀족으로서 쓰레기 같은 범죄 조직들이 설치는 것에 대한 분노, 마지막으로 마탑의 인정을 받은 마스터 연금술사로서 연금술을 모독하는 놈들에 대한 분노였다.
‘…화가 나는군.’
동시에 세 가지 분노가 솟아오른 베오날드는 어떻게 해야 이놈들을 모두 없애 버릴 수 있을지를 고민했지만 아직은 정보가 부족했다.
“혹시 더 아는 것이 있다면 더 알려 주십시오. 지금 싹 다.”
“예? 아~! 그렇다면 일단 대충 테알 슬럼가의 지도랑 구조랑~ 또… 도련님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장소도……!”
셀리나는 갑자기 무서운 눈빛으로 돌변한 베오날드의 모습을 보자 피부를 찌르는 살기와 공기를 짓누르는 위압감에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캘러메인 백작에게서도 느낄 수 없던 두려움과 위압감을 느낀 그녀는 그의 눈 안에서 타오르는 자신감과 강렬한 의지를 알아차렸다.
‘어머? 설마… 진짜로 할 생각인 거야?’
현재의 ‘캘러메인 백작가’조차 어떻게 하지 못해서 뇌물을 받고서 손을 놓고 있는 저 테알 슬럼가를 없애 버릴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허세나 젊음의 패기라고 치부하기엔 지금 베오날드에게서는 진지함이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아무튼 정보는 고맙습니다. 그럼 저는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차를 마저 즐기다가 가시지요.”
“저, 저기, 혹시 제가 도와 드릴 만한 건 없을까요?”
“으음… 저희가 오늘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 자체와 제가 뭘 할 거라는 것까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아 주십시오. 성공하지도 않았는데 떠벌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죠?”
“예. 아, 알겠습니다.”
절대 거역할 수 없는 위압감에 눌린 셀리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베오날드를 거스를 생각이 전혀 없음을 피력했다.
그리고 그녀가 떠난 뒤, 베오날드는 한숨을 살짝 쉰 다음 연금술 실험실이 있는 지하로 내려가서 무언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