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신도 쓸데가 있다-23화 (23/259)

[23화]

“하지만 기다리는 동안 놀 순 없지. 흐으으음~”

삐이이익…….

“오, 알테리오냐? 음? 밥은 이미 먹지 않았느냐?”

삐이익… 삐익!

“입에 그거 빼 달라고? 안 돼. 세상엔 엄연히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단다.”

아주 작을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엄연히 대형견 사이즈보다 컸기에 베오날드는 자신이 직접 돌보지 않는 동안엔 알테리오에게 목줄과 입마개를 채워 놓고 있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다쳐선 안 되었기에 베오날드는 알테리오에게 사람과 가축을 덮쳐선 안 된다고 철저히 교육시키는 중이었다.

삐이잇! 삐잇!

“…아니, 안 된다니까…….”

한쪽만 남은 날개를 퍼덕이면서 불만을 표시하는 알테리오. 떨어지는 깃털들을 베오날드는 잽싸게 열심히 주웠다.

그래도 그리폰의 깃털이다. 좋은 연금술 소재가 될 것이기에 모조리 회수해서 깔끔하게 정리해서 넣었다.

물론 그러면서 엄연히 대귀족인 자신이 이런 깃털이 아까워서 줍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들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아~ 이것도 약재 아니면 장식용으로 쓸 수 있으니까~ 돈도 엄청 많이 필요하기도 하고.”

삐이잇!

‘그보다 저 한쪽 날개만 남은 게 영 마음에 걸리네. 작을 땐 그냥 장식 같았는데… 점점 크니까 엄청 커지고 있어. 심지어… 날개 힘도 장난이 아니야.’

베오날드는 조심스럽게 알테리오의 날개를 만지면서 이 하나만 남은 날개를 그냥 놔두기엔 아깝다고 생각했다.

거의 고양잇과 맹수만큼이나 무거운 몸을 날게 하기 위해선 날개에도 엄청난 힘이 필요해서인지 크기도 크고 힘도 엄청 강했다.

‘무게도 가벼워. 그리고 몸에서 마나도 느껴져. 역시 마물(魔物)은 마물인가? 아마 심장 근처에 마석이 있다고 하지? 천연으로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생명체라니, 정말 대단하군.’

삐이익?

그리폰의 비행 방법과 원리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베오날드는 이 편익을 쓸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다.

날개가 없는 반대쪽에 가짜 날개를 한번 달아 줘 볼까? 고민했지만 흔적 자체만 살짝 남은 정도라서 도저히 날개를 달아 주거나 혹은 재생을 시도할 수 없었다.

‘으음… 잘린 거라면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나질 않았으니……. 그럼 이 한쪽 날개만 가지고 뭘 해야 한다는 건데…….’

삐이… 삐유우~

“그래그래, 잘 참는다. 잘 참고 있어. 저녁에 또 사냥 나가자꾸나.”

삐이이!

펄럭!

기분이 좋은 건지 날개를 또다시 쫘악 펼치는 알테리오. 베오날드는 그 날개를 뭔가 다르게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 무언가 머릿속에 번뜩였다.

‘그래, 깃털을 경화시켜서 방패로 쓰게 할까? 어차피 날지 못하는 기관인데, 방어용으로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아니면 미스릴 같은 금속을 달아서 칼날로 쓰든가. 으음~ 성체가 되기 전엔 날개 쓰는 법을 교육시키고, 그다음에 날개 위에 뭔가 장비 같은 걸 만들어 주자. 그리고 나중엔…….’

알테리오가 더 커서 완전히 중무장을 한 편익의 그리폰을 타고 전장에 나갈 생각을 하자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 베오날드였다.

그냥 기마로 이루어진 기병과 중기병만 해도 지금 이 시대에선 전장의 꽃인데, 말보다 더 크게 자라는 그리폰을 중무장시켜서 전장에서 선봉으로 돌진하면 그 파괴력은 어마어마하리라.

심지어 그리폰의 주식엔 말도 들어가기에 적들의 말들이 공포까지 느낄 걸 생각하면 이 알테리오는 어마어마한 보물이었다.

‘적 기병대를 와해시키거나 돌진력을 떨어뜨릴 수 있기만 해도 엄청난 전술적 가치가 있는 거지. 아무튼 날개 쓰는 법을 같이 훈련하면서 연습해야겠다.’

그렇게 베오날드에게 새로운 일과가 추가되었는데, 바로 알테리오의 조교 역할이었다.

먹이를 사용해 가며 알테리오에게 다른 방식의 날개 사용법을 가르치는 건 꽤 순조로웠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검술’이었다.

아류작인 ‘노이멀 10식’이 아직도 진도가 안 나갔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본가에 올라가기 전에 10식을 뚫고 싶은데. 후우~ 다른 일을 모두 접고서 해야 하나?’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사냥, 약초 채집과 가공, 재배 연구, 제약, 개인 훈련, 알테리오의 조교 역할, 영지 순찰, 부모님과의 교류 시간 등등. 몇 가지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 버리고 싶었지만 단순 노동이나 사냥, 약초 채집 외엔 전부 다 교육 수준이 높거나 자기 자신만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답이 없었다.

‘인재 영입의 중요성을 또다시 깨닫게 되는군. 젠장! 하다못해 3명… 아니! 2명 정도만 일을 맡길 수 있는 놈이 있었더라면! 이래서 기본 되는 집안이 커야 한다니까! 인구 차이가 진짜!’

전생엔 딱히 인재 풀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베오날드가 갓 가주가 되었을 때도 말석이긴 해도 수도의 대귀족 회의에 참여할 수 있을 정도의 대귀족이었고, 영향력을 끼치는 귀족들의 영지에 있는 인구까지 합치면 수십만의 영지민을 지배하고 있는지라 돌아다니면서 적당히 똘똘해 보이는 애들을 주워서 교육시켜서 부려 먹으면 그만이었다.

‘이 코딱지만 한 영지는 인구도 적고, 애들도 결국 그게 그거라서 답이 없어. 애당초 기초 교육도 안 되어 있으니까 시간도 시간대로 걸려! 답이 없어! 답이!’

삐이이?

‘그러니 검술 하나에만 집중해야겠어. 가기 전에 10식을 반드시 뚫는다. 캘러메인 백작가로 가면 수련도 이제 눈치껏 해야 할 테니 말이지.’

캘러메인 백작가에서 자신을 부르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남았을지 모르지만, 베오날드는 의지를 굳힌 채 모든 일정을 폐하고 검술과 마나 호흡법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노이멀 10식을 뚫겠다는 의지를 굳힌 채 베오날드는 수련실에서 계속 피땀 흘리며 검만 휘두를 뿐이었다.

“젠장할! 왜 안 되는 거야! 왜! 후우… 후우… 후우……! 고작 아류인데! 황실 기사단 짝퉁 검술인데!”

하나 생각대로 진도가 안 나가자 베오날드는 자신도 모르게 성질을 내 버렸다.

전신에서 땀을 비 오듯 쏟아 내면서 숨을 헐떡이는 그는 정말로 자고 먹는 것 외에 모든 시간을 검술에 매진하고 있었지만, 노이멀 10식은 쉽게 뚫리지 않았다.

‘젠장! 아니야. 내 재능이 고작 이 정도일 리 없어!’

마치 ‘네 검(劍)의 재능은 여기까지.’라고 말하는 것 같은 현실에 베오날드는 이를 악물며 다시 일어났다.

“후우… 후우… 우리 집안의 기사들도 다 하는 건데! 젠장! 하아… 하아… 하아……!”

특히나 그를 열 받게 하는 건 자신에게 있어 한 손으로 움직이는 체스 말에 지나지 않는 가문의 기사들은 이 10식까진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마나 호흡법도 황실 기사단의 아류작인 더 안 좋은 걸 쓰는데도! 여지없이 혹독한 훈련을 통해서든 재능을 통해서든 뭐든! 엄연히 가주이자 정점에 오른 자신이 자신의 가문의 검술을 못 익혔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그냥 하지 말까? 이 정도 무력이면 충분한 것 같기도 한… 아니! 이렇게 되면 그 인간이 했던 말이 맞는 게 되잖아.’

‘베오날드, 네겐 무의 재능은 없다. 무(武)란 결국 자신의 무력뿐만 아니라 내면을 단련하는 것. 하나 네 내면은… 비유를 하자면 눈앞에 거대한 바위가 있을 때, 기사들은 그 바위를 부수기 위해 검을 휘두르지만 너는 굳이 부수지 않고 피한다는 거지.’

“웃기지 마라! 벨릭스 폰 노이멀! 멋대로 날 규정하지 마라! 후우… 후우… 반드시! 반드시 이깟 노이멀식 마스터 해 주겠어! 후우… 후우…….”

“도련님, 점심 식사 시간입니다.”

오기가 솟는 것과 함께 의지를 불태우던 베오날드였지만, 식사 시간을 알리는 하인의 말에 일단은 수련을 멈췄다.

본래는 이 시간도 아까워서 그냥 간이식만 가지고 들어오고 싶었지만, 이별도 얼마 안 남은 만큼 남은 일정을 모두 수련에 매진하는 대신 식사만큼은 부모님과 함께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씻고 가마.”

“예, 도련님.”

“후우우~”

결국 어쩔 수 없이 베오날드는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부모님과의 식사 자리에 참여했다.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한숨도 돌릴 겸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가서… 힘들면 언제든 돌아오렴. 분명 힘들 거란다.”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이렇게 잘 컸는데… 거기에 보내야 한다니 안쓰럽구나. 그저 우리 가족끼리 여기서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아쉽지만 어머니, 전 그럴 운명이 아닙니다. 후우~’

자신의 탄생조차 여신에 의해서 고용된 것이기에 베오날드는 결국 이곳에서 평온히 살 수 없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베오날드가 다시 수련실로 향하려는데, 누군가가 급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돌아보자 거기엔 저택 밖에서 일하는 하인이 있었다.

“도련님! 도련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무슨 일이지?”

“그게 제 아들놈이 갑자기 아파서! 막 죽을 것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습니다. 제발… 잠시만 봐주실 수 없겠습니까?”

“…후우~ 가도록 하지.”

이래서 기술자가 피곤하다는 생각을 하는 베오날드.

처음엔 한시라도 더 수련에 매진하고 싶어서 거절하려고 했지만, 곧 떠나는 마당에 부모님에게도 그렇고 이 망할 영지에 찝찝한 기억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일단 챙길 수 있는 약품과 도구를 챙겨서 하인의 집으로 향했다.

“여, 여깁니다.”

“어머! 여보! 다행히 우리 튠이……!”

‘젠장! 시간 낭비만 했잖아!’

하지만 막상 가서 보니 이미 호흡 곤란은 진정된 상태였고, 아이는 금방 기력을 찾아서 쌩쌩 돌아다니고 있었다.

알고 보니 구운 고깃덩어리를 작게 자르지 않고 욕심을 내서 큰 덩어리째로 입에 넣고 삼켜서 그리된 거였다.

그리고 부친이 베오날드를 부르러 간 사이에 어머니가 아이를 토하게 해서 겨우겨우 살려 냈다는 것이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요! 도련님.”

“아닐세. 무사하면 됐네. 다만 혹시 모르니 오늘은 푹 쉬게 하게.”

“예, 도련님!”

‘젠장! 시간 아깝게! 하찮은 것들이!’

겉으론 인자하게 웃으며 나왔지만 속으론 자신의 시간을 빼앗은 것에 대해 심히 불쾌했다.

가뜩이나 수련도 막히는데 짜증 나는 일까지 겹치니 화가 잔뜩 난 베오날드는 화를 삭이면서 길을 걷는데, 문득 마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포착됐다.

‘애들인가? 뭐, 부모들이 일하면 자기들끼리 노는 법이지. 뭘 가지고 노는 것 같은데… 아, 나무 팽이인가? 회전력을 이용해서 도는……. 부모들이 만들어 줬나 보군.’

평민 아이들이 나무를 깎아서 만든 팽이를 돌리며 노는 모습을 지나쳐 가는데, 다들 잘 돌리는데 유독 한 아이의 팽이만 정체되어 있었다.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게 가서 팽이 돌리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이렇게 하는 거라고! 이렇게! 손으로 잡고! 던지면서 당기는 거야.”

“끄으응… 나는 잘 안 돼.”

“딱 하면 되는데 왜 안 돼? 던지면서 당기라고!”

“알겠는데… 잘 안 된다니까!”

‘아는데… 안 된다라. 마치 내 처지 같군.’

분명 방법은 알지만 못한다는 동질감이 느껴져서인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 팽이를 못 돌리는 아이를 계속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이는 해도 해도 실패했고, 결국은 팽이를 집어 던지면서 성질을 내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는 수련 직후의 자신의 꼴이나 다름없었다.

“씨이이잉! 안 되잖아! 팽이가 안 좋아!”

“아니야. 자, 봐. 조금 어렵지만 되잖아? 그러면 이걸로 해 봐.”

“네 걸로 한다고 뭐가 달라져? 게다가 무거운데? 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어?”

“……!”

친구에게서 받은 팽이를 던지자, 이때까지 서지 못했던 팽이가 조금 위태롭지만 돌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첫 성공. 본래 자신의 것으로 되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다른 아이의 것으로 바꾸니 성공한 것이다.

그 장면을 본 베오날드도 눈이 커지면서 벌떡 일어났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와! 된다! 된다아아아아아!”

“봐! 다르다니까! 원래 초보는 방법을 알아도 감을 못 잡아서 아무리 해도 제자리걸음인 거야. 그러니 네 힘에 맞는 팽이를 줘서 맞춘 거지. 몇 번 더 해 보고, 하는 법을 감 잡으면 다시 네 걸로도 할 수 있을 거야.”

‘……!’

베오날드는 그것을 보며 감탄했다.

그래, 자신이 계속해서 10식을 실패한 이유는 눈을 가린 채로 한 가지 길만 뱅뱅 돌았기 때문이다.

배움이란 곧 길을 찾는 것이며, 무(武) 또한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베오날드는 그것을 무시한 채 그저 반복하고 단련하면 언젠가 되리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었다.

‘모두가 다 같은 검술을 배운다고 해서 모두가 다 같은 검사가 아닌 거야. ‘배운 자만의 검술’. 나 자신의 검술이 되는 거지. ‘노이멀 10식’을 배우는 게 아니야! 나의 ‘노이멀 10식’을 만들어 내는 거야!’

깨달음을 얻은 베오날드는 얼른 저택에 돌아가려다가 잠시 멈춰서 아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부모에 대해 물은 다음에야 돌아갔다.

그리고 그 두 아이의 집엔 올해의 공물을 면제해 주고, 보상으로 곡식까지 내려 주었다.

자신에게 깨달음을 준 것에 비하면 선물은 아주 하찮은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노이멀 십식(十式)-쌍두사’! 됐다! 됐다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얼마 후, 베오날드는 검과 자세를 바꿔 가면서 변수를 만들어서 시도했고 드디어 ‘노이멀 10식-쌍두사’를 성공하게 되었다.

한동안 막혔던 고난을 뚫어 낸 베오날드는 눈물과 함께 기쁨 가득한 환호성을 지르면서 저승에 있을 전생의 아버지 벨릭스 폰 노이멀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올려 보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