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삐이이익! 휘이이이익!
작은 휘파람 같은 소리가 바람을 타고 베오날드의 귀에 들려왔다.
야생동물의 울음소리나 몬스터의 소리라기엔 너무나 가늘고 미약한 소리여서 오히려 더 귀에 잘 들어온 베오날드는 그 소리를 쫓아서 움직였다.
몇 개의 수풀과 나무를 지나서 소리가 난 곳에 가까워지자, 거기엔 아주 작은 생명체가 있었다.
삐이이이… 삐이…….
“이건 그리폰… 새끼?”
삐이… 삐이이익.
자세히 보자 아주 작은 그리폰이 누워서 계속 울어 대고 있었다.
베오날드는 일단 근처에 그리폰의 수컷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주변을 경계하면서 천천히 다가갔는데, 자세히 보니 새끼 그리폰은 오른쪽 날개가 아예 없다고 봐야 할 정도로 그 흔적만 남고 퇴화되어 있었다.
‘…과연, 딱 봐도 날개 한쪽에 장애가 있어서 버려진 것 같은데……. 비행 연습을 하다가 낙오한 걸까? 아니면 낙오한 걸 부모가 더 이상 찾으러 오지 않는 걸까?’
마나를 끌어 올려 주변의 기척을 감지해 보았지만 성체 그리폰의 느낌은 전혀 없었다.
이 주변이 그리폰의 서식지이긴 했는데, 아무튼 새끼 그리폰은 베오날드의 품에서도 계속해서 울 뿐이었다.
삐익… 삐이익…….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인지 힘이 없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울음소리를 내고 발버둥 치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아마 이 아이는 나름대로 부모를 부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울부짖는 것이리라.
하지만 자연의 섭리상, 장애를 가진 새끼는 도태될 것이 뻔했기에 이 새끼 그리폰의 부모 또한 눈물을 머금고 다른 새끼들에게 투자하고자 이쪽을 버린 것일 터였다.
‘그리폰 잡으러 왔다가, 신기한 인연이군. 아무튼 살릴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데려가 보자.’
이대로 놔둬 봐야 야생 몬스터나 짐승의 먹이밖에 되지 않는다.
부모 그리폰도 버린 것 같으니 베오날드는 여지없이 자신이 거두기로 하고 모닥불을 피워 둔 곳으로 데려가려는데, 이번엔 묶어 둔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딱 봐도 자신의 말을 야생동물이 노린다는 것을 안 베오날드는 즉시 검을 뽑으며 달려갔다.
“망할 새끼들이!”
크르르르르! 으르르르릉!
“늑대인가? 아니, 좀 더 큰데? 아무튼 상관없지! 속전속결이다!”
도착하자 보통 늑대보다 좀 큰 검은 늑대 5마리가 말을 둘러싼 채 잡아먹으려 하고 있었다.
자신이 구워 놓은 토끼 고기는 이미 건드렸는지 잇자국이 나 있었고 고기는 절반 정도만이 남았다.
자신의 식사를 건드린 것에 참을 수 없다는 듯 베오날드는 즉시 마나를 끌어 올려 검술을 시전했다.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 오식(五式)-사이드와인더’.
보랏빛 검기가 파도처럼 굽이치면서 날아갔고, 늑대는 본능적으로 살기를 느끼고 잽싸게 피하려고 했지만 도망치는 루트가 마침 파도처럼 굽이치는 궤도에 걸려 그대로 한 마리가 목이 베여 쓰러졌다.
그리고 다른 4마리는 각자 흩어져서 으르렁거리면서 베오날드를 노려보는데,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태연히 말의 곁에서 물통을 꺼내어 새끼 그리폰에게 물을 먹였다.
“조금씩… 조금씩… 그래, 천천히 마셔라.”
크르르르릉! 컹!
다른 늑대 하나가 베오날드가 한눈을 팔고 있다고 생각해서 달려들었지만, 순식간에 보랏빛 궤적이 늑대의 머리를 베어 냈다.
조용하게 움직임과 소리도 내지 않고 잠복하고 있다가 단숨에 뱀처럼 베어 내는 검법,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 칠식(七式)-붐슬랭’이었다.
삐이이이… 꾸우우…….
“그래, 배가 고프겠지. 보자, 식사는…….”
그르르르… 컹컹!
컹!
동족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해된 것을 본 이 늑대 무리의 리더는 울음소리를 내더니 먼저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 인간은 자신들이 사냥할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물러나는 것이리라.
베오날드는 도망가는 늑대들을 시시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품에 있는 새끼 그리핀에게 먹을 것을 주기 위해 죽은 늑대의 시신을 끌어왔다.
“음, 그러니까… 그리폰이 조류 쪽에 가깝든가? 고양이 계열 맹수 쪽에 가깝든가? 아, 이거 분명 공부한 적이 있는데…….”
꾸우…….
“알았어, 알았어. 기다리렴~ 일단 물을 끓여서 푸욱 익혀야 하는데… 아니, 일단은 익힌 것부터 내가 씹어서… 줘야 하나? 이러다 아사하겠네.”
베오날드는 일단 임시방편으로 늑대들이 먹다 남은 익힌 토끼 고기를 입에 넣고 꼭꼭 씹어서 먹이로 줘 보았다.
전생에 연금술을 공부하다가 들은 지식으로 새들은 반쯤 소화된 걸 뱉어서 먹인다고 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혹은 그냥 우유 같은 거나 생고기를 먹여야 하는 건지 갈등되는 상황에서 천만다행으로 그리폰에도 적용되는 건지 베오날드가 준 것을 잘 받아먹고 있었다.
“후우~ 내가 어쩌다가……. 아무튼 생일 선물은 저걸로 때워야겠군.”
삐이이! 삐이이이!
“참 나, 기가 막힌 녀석. 방금 전까진 죽을 기세더니, 그거 먹고 다시 난리냐. 조금만 기다려. 이번엔 푸욱 익혀서 먹기 쉽게 해 주마.”
그렇게 베오날드는 새끼 그리폰에게 조심해서 밥을 먹였고, 약 2시간가량 고생해서 조금씩 먹이고 나자 드디어 배가 부른 건지 잠드는 새끼 그리폰이었다.
베오날드는 자신도 눈을 붙이고 싶었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후우~ 이 정도면 적절한 선물이겠군. 일부러 머리도 깔끔하게 잘랐고.”
바로 늑대의 해체. 시체 상태로 가져가 봐야 냄새만 나고 더러울 테니 미리미리 가죽과 뼈, 이빨, 고기를 얻고, 내장은 불에 태워 버렸다.
그리고 이 어두운 산간에 더 오래 있어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 베오날드는 재빨리 채비를 마치고는 새끼 그리폰을 품에 조심스럽게 싸서 하산했다.
‘정말이지 너는 운이 좋군. 다른 누구도 아니라 날 만났으니 말이야!’
본래 야간 산행은 길을 잃고 헤매다가 더 많은 야생동물과 몬스터를 만날 수 있는 위험한 행위였지만, 5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하늘의 ‘별’들을 통해 동서남북을 구분할 수 있는 베오날드에겐 문제도 아니었다.
‘또 그리폰의 영역만 나가면 이제 남은 건 끽해야 자잘한 몬스터들뿐이지.’
타고 있는 말에겐 너무나 가혹한 밤이 되겠지만, 그래도 방금 늑대들에게 잡아먹힐 뻔한 만큼 빨리 이 산을 내려가는 것엔 말 또한 찬성하리라.
물론 너무나 지쳐 있었기에 간혹 속도를 줄이거나 말에서 내려서 천천히 걸으면서 스태미나 조절을 한 탓에 날이 밝아도 아직 산중이었다.
“완전히 날 샜군. 하루라도 오래 살아야 하는 내 건강엔 별로 안 좋은데… 휴우~ 음?”
삐이이이!
“먹고 자니까 힘이 좀 나는가 보구나. 아니면… 배가 더 고픈 건가? 속 편한 녀석~”
새끼 그리폰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베오날드를 보면서 계속 울어 댔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 주고 먹이까지 준 것을 아는 건지, 아니면 그냥 배고프니까 졸라 대는 건지는 몰라도 베오날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번엔 육포를 씹어서 이유식으로 만들어서 먹였다.
‘이러고 있으니까 애들 키울 때가 생각나는군.’
그 초롱초롱한 눈과 주는 대로 잘 받아먹는 것을 보니, 베오날드는 문득 옛 생각이 떠올랐다.
최고의 후계자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아이를 얻고, 돌본 적이 있지만 역시 가장 기억 속에 깊이 남아 있는 건 첫 자식이었다.
‘쳇, 이렇든 저렇든 알테리오 녀석이 생각날 수밖에 없군.’
서투른 초보 아빠였을 때의 기억도 기억이고, 가장 재능 있고 총명하던 아이여서 후계자로 삼았기에 기억이 강했고……. 그 무엇보다도 차기 가주 자리에 앉는 게 확실한데 자신을 배신한 그 강렬한 기억 때문에 알테리오의 얼굴만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망할… 자식… 씁. 이럴 땐 기억이라는 게 참 괴로운 거군. 그래, 안 좋은 기억은 다시 덧칠하는 수밖에 없지. 그런 의미에서… 네 이름은 이제! 알테리오다!”
삐이?
“알. 테. 리. 오. 이게 네 이름이다.”
삐이이잇! 삐이잇!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밥을 더 달라는 건지 모르겠군.”
그렇게 생전 아들의 이름을 물려받은 한쪽 날개가 망가진 새끼 그리폰, 알테리오는 신나게 울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아무튼 베오날드는 그래도 수확은 수확이라 생각하며 기쁘게 산을 마저 내려갔다.
백작의 생일은 앞으로 이틀 뒤. 그렇기에 베오날드는 일단 하루는 도시의 여관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아무리 날개 하나가 망가졌다지만 그래도 몬스터인 알테리오를 보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 몰랐기에 잘 숨기기 위해서 작은 철제 새장을 산 다음 거기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도시로 돌아온 덕에 이제 좀 더 제대로 된 이유식을 조합해서 먹일 수 있게 되었고, 알테리오가 잘 먹는 것을 본 베오날드는 안도하고는 드디어 잠을 청했다.
삐이이! 삐이이?
“좀 답답하겠지만 그래도 좀만 참으렴. 널 보면 노리려는 인간들이 한둘이 아닐 거라서 말이다.”
직접 만든 작은 우리에 알테리오를 집어넣고 천으로 덮은 베오날드는 그제야 좀 편하게 잠들 수 있… 진 않았다.
삐이이익!
“으으음… 아, 맞다. 이제야 기억났어. 대부분 메이드들에게 맡겨서 몰랐지만 원래 어린애들은… 막 먹고… 자고… 막 먹었지. 젠장…….”
검술과 마나 호흡법 때문에 감각이 민감해져서인지 베오날드는 알테리오가 우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서 미리 만들어 둔 이유식을 먹였다.
정말로 홀몸으로 자식(?)을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새삼 깨닫게 된 그는 적어도 돌볼 사람을 고용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아이(?)를 갖지 않으리라 결심하였다.
“알테리오… 이렇게 정성 들였는데, 너… 나중에 야생성 살아나서 말 안 듣고 날뛰면 절대 가만 안 둘 거다. 응? 알았니?”
삐우우우~ 삐우우우~
“…나는 못 자는데 너는 맘껏 자냐. 하아아아아암~”
자신의 푸념을 못 들은 척하려는 건지 푹 드러누운 알테리오를 보면서 베오날드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게 자다가 깨다가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 그래서 결국 제대로 수면 부족을 해소 못한 탓인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 베오날드였다.
“어디 보자… 늑대 가죽이랑 뼈, 좋아. 머리, 좋아. 알테리오도 딱 밥 먹이고 재웠으니 좋아. 휴우~ 내일이 백작의 생일이니 아슬아슬하게 맞췄군.”
알테리오를 조심히 숨겨서 캘러메인 백작의 저택으로 돌아온 베오날드는 겨우겨우 자신들이 배정받은 저택의 방으로 올 수 있었다.
도착하자 거기엔 자신을 기다리느라 지친 건지 아니면 선물을 제대로 준비 못해서인지 얼굴이 반쪽이 돼서 폭삭 늙어 버린 레이온 자작의 모습이 보였다.
“저 왔어요.”
“베, 베오날드 왔느냐? 그래서 물건은?”
“여기요. 좀 큼직한 늑대들을 잡았어요. 다른 몬스터를 노려 보고 싶었는데… 거리라든가 시간의 문제가 있어서 말이죠.”
“오오……! 이 정도면 최상품이구나. 근데 잠깐, 이… 검은 털은? 이 늑대들은 이 근방에서 살지 않는 늑대일 텐데?”
썩어도 준치라고, 사냥을 생업으로 삼고 대부분의 진상품을 바치는 영지의 귀족답게 윤기가 좌르륵 흐르는 검은 늑대의 가죽을 보면서 감탄하는 레이온 자작이었는데, 역으로 그런 점 때문에 이 근방에서 살지 않는 것을 눈치채 버렸다.
‘아차아… 그랬었나? 제길! 캘러메인 영지 주변의 동물 분포도를 내가 어떻게 알아?’
낭패라고 생각한 베오날드는 급히 변명을 짜내려고 머리를 굴리는데, 그 순간 알테리오를 숨겨 놓은 철장에서 또다시 밥 달라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삐이이이잇!
“…음? 이건 또 무슨 소리냐? 새?”
“아… 예, 대충 그 비슷한 것이긴 한데…….”
낭패는 거기서 끊이질 않았고, 결국 베오날드는 한숨을 푸욱 쉬면서 알테리오가 들어 있는 작은 철장의 천을 열어서 보여 주었다.
날개 한쪽이 없지만 그래도 그리폰은 그리폰. 알테리오를 본 레이온 자작은 기괴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