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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16화 (16/259)

[16화]

이틀 뒤.

어머니에게서 캘러메인 백작의 생일잔치에 참여하는 걸 일임받은 베오날드는 아버지인 레이온 자작과 함께 그곳에 참여할 준비를 시작했다.

물론 선물은 베오날드가 직접 준비한 것으로 최상급 곰 가죽과 생포한 새끼 곰 2마리, 거기에 뼈로 만든 장신구와 곰 머리 박제, 그리고 약초와 사냥한 짐승, 몬스터의 뼈, 뿔로 만들어진 각종 의약품들과 저축한 돈으로 틈틈이 구한 보석과 짐승의 뼈를 가공해서 만든 장신구였다.

“네 덕분에 올해도 무사히 넘기겠구나.”

“제 덕분이라니요. 다 아버지의 덕이죠.”

“아무튼 부인의 말대로 네가 정말… 보물 같은 아이였구나. 할아버지를 뛰어넘을지도 모르겠어. 하하핫.”

아버지는 베오날드의 성장과 완력은 완벽히 할아버지의 유전이라 생각했고, 의술이나 지식 쪽은 부인의 교육 덕분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물론 사전에 모친과 협약해서 하게 된 선의의 거짓말이었고, 모친도 속이고 있으니 딱히 죄의식 같은 건 없는 베오날드였다.

‘어차피 세계를 위한 건데… 어쩌겠어.’

“아무튼 캘러메인 영지에 가면 조심해야 한단다. 거긴 우리 영지와 달리 귀족과 기사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테니 말이다.”

‘…사람이 아무리 많아 봤자 베노피스만 하겠어? 하아~ 그립구나. 나의 정원~’

과거 영광스러웠던 자신의 영지를 떠올린다.

‘베노피스’. 사치스러울 정도로 거대한 저택은 물론 그 주변 영지도 아주 거대한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제국 수도보다 더 아름다웠던 도시. 평생을 들여서 영지민들도 살기 좋은 조화롭고 아름다운 곳으로 완성한 자신의 정원이었다.

물론 그곳을 제외한 다른 곳을 지옥으로 만들었기에 낼 수 있던 성과였지만, 베오날드는 자신의 작품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걸 가꾸는 데 평생을 들였는데… 망할 놈들은 순식간에 부숴 버리다니…….’

“아, 그렇다고 해서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된단다. 아버지만 잘 따라오면 되니까 말이야.”

“아, 예. 알겠습니다.”

상념에 빠진 것을 긴장한 것으로 오해한 아버지의 위로에 다시 정신이 든 베오날드는 아버지와 함께 준비를 계속해 나갔다.

그리고 사흘 뒤, 레이온 더스티클록 자작과 함께 베오날드는 캘러메인 백작의 영지로 향했다.

사실 제럴 경의 영지에 들어간 적이 있기에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본격적으로 영지 밖으로 외출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베오날드는 살짝 설레고 있었다.

‘영~ 나답지 않군. 음, 몸이 젊어진 탓인가? 역시 시골 생활이 너무 길어서 그랬던 걸까? 후우~ 원래 난 도시 출신이라고!’

“괜찮다. 그리 긴장할 거 없어요. 결국 다 사람 사는 곳이니…….”

‘아니, 긴장 안 했다고!’

뜻은 좋았지만 베오날드에겐 꽤나 지겨운 소리의 반복이었기에 들어 주는 척을 하면서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길 빌 뿐이었다.

천만다행인 것은 캘러메인 영지는 그래도 한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었기에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에 도달했다는 거였다.

베오날드는 드디어 성벽이 보이기 시작하자 마차의 창을 통해 그곳을 바라보았다.

캘러메인 백작이 사는 성. 이 근방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이 주변 지역의 맹주로 군림하는 귀족의 성. 어느 정도인지 대귀족이었던 자신이 봐주겠다고 생각하며 봤는데, 금방 실망하고 말았다.

‘고작 이거? 작네? 이게… 이 근방을 주름잡는 귀족의 영지라고? 대체 500년간 무슨 일이 있던 거지?’

“하하, 많이 놀랐나 보구나, 베오날드. 저곳이 캘러메인 백작님 영지이자 도시란다. 아무튼 들어가면…….”

‘…놀란 게 아니라 쥐똥만 해서 어이가 없는 건데! 기껏해야 중소 도시겠구만!’

물론 중소 도시도 엄연히 ‘도시’이니 만큼 작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주변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귀족이라고 해서 꽤나 큰 도시일 거라고 생각한 베오날드로서는 아주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환경은 좋아서 더 열 받네! 강도 있고! 산도 끼고 있고! 평야도 넓어! 저 땅들을 안 굴리고 뭐 하는 거야? 주변 영지와 거래 및 상업 교류도 하고 있으니까! 개발해서 넓히라고!’

“베오날드, 진정하렴. 아무튼 안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많을 거니까…….”

“…예.”

아버지의 말에 간신히 진정한 베오날드.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어쨌든 시골 깡촌보다는 나은 곳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했다.

그렇게 마차는 경비병들이 지키는 관문을 지나서 도심으로 들어갔고, 내부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도시의 풍경은 자신이 죽고 500년이 지났지만 역시 대전쟁과 교단의 존재 때문에 문명이 후퇴한 탓인지 500년 전에 비해서 그리 큰 변화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베오날드의 기준에선 정말로 지방 소도시나, 다스리는 영주나 귀족이 형편없는 곳을 보는 느낌이었다.

일단 길은 잘 닦여 있었지만 돌아다니는 평민들과 집, 거리는 여지없이 지저분했고, 이상한 냄새들이 가득한 평범한 곳이라서 금방 흥미가 식어 버렸다.

‘…별 볼 일 없군. 오히려 그 시골이 나을 정도야.’

“역시 어색한가 보구나. 하하하. 그래도 우리는 백작님의 저택에 머물 거니까 그리 큰 걱정은 안 해도 된단다. 일단은 우리도 백작님의 가족이니 말이다.”

‘그거 하나는 다행이군. 하지만 ‘일단은’이라는 전제가 붙은 걸로 봐선 그리… 좋은 취급은 받질 못한다는 걸 내포하고 있군.’

하긴 아무리 버림패라고 해도 오랫동안 가문의 자존심을 세운 백작가에서 근본도 없는 용병 집안에다 딸을 내준 거니 별로 좋은 취급은 못 받으리라.

정통 대귀족인 베오날드의 시선에서 생각해 봐도 근본도 없는 용병이 갑자기 귀족이랍시고 자리를 잡는 꼴을 보면 충분히 배알이 뒤틀릴 터였다.

‘그나마 능력이 좋으면 좀 타협을 할 수 있겠는데… 이 양반 같으면… 하아~ 이해를 못하지.’

약간의 무력이 있고, 사람은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용병이라는 디메리트를 상쇄할 수 있는 건 아니니 결론은 그냥 어떤 굴욕이든 견뎌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저 모양인 이상 베오날드에게도 똑같이 내려질 숙명이었다.

그렇게 도시를 가로지른 마차는 잠시 후 캘러메인 백작의 저택에 도달했다.

도시는 형편없었지만 저택은 나름 백작가의 위용과 자존심이었는지 깔끔하고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저택 입구와 밖은 마치 다른 세계인 것처럼 안에는 잘 정돈된 정원과 건물들, 그리고 갑옷을 입은 기사와 병사들, 깔끔한 옷차림을 한 메이드와 집사들이 오가면서 계속해서 정돈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500년이 지나도 이 풍경은 안 변했군.’

그리고 먼저 온 손님들이 많은 건지 화려한 마차들이 줄지어 정렬해 있었고, 그 위에 각 가문의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각 가문의 하인들과 병사들은 각자의 말과 마차를 정비하거나 짐을 옮기는 등등 번잡한 움직임을 보였고, 그런 마차들이 수십 개가 넘으니 사람들은 개미처럼 끊임없이 일을 다니는 모습이었다.

“더스티클록 자작이시군요. 안내하겠습니다. 마차를 끌고 절 따라오십시오.”

말끔히 차려입은 집사의 안내를 받아서 다른 건물에 있는 마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래도 친족이자 혈족이니 그쪽 방면으로 대게 해 준 것이리라.

엄격한 가신과 혈족의 구분. 그만큼 혈족에 대한 서열 구분도 심할 거라는 예상이 들었다.

“이곳에서 머무시면 됩니다. 한데 이분은 누구입니까? 더스티클록 자작님. 자작 부인은 안 보이시는군요.”

안내를 마친 집사는 무언가를 적으면서 베오날드와 레이온 자작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마 인명부 같은 것이리라.

그리고 자작 부인이 캘러메인 백작의 딸인데, 그녀가 오지 않은 것이라면 가족의 연이 끊어진 거나 다름없기에 집사의 시선이 싸늘해지고 있었는데, 레이온 자작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정을 설명했다.

“예. 그… 아주 근래에 둘째랑 셋째가 생겨서 현재 애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신 여기 우리 첫째 베오날드와 함께 왔습니다. 캘러메인 백작님의 외손자이지요.”

“오… 그렇군요. 베오날드 도련님이십니까? 한데 혈족들의 성인식 때 뵌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그… 그게 이 녀석, 아직 14살입니다. 내년에 성인이 되지요.”

“14살이라고요? 아무리 봐도…….”

‘이미 성인으로 보이는데.’라는 말을 뱉지 않고 삼키는 집사였다.

누가 봐도 베오날드는 갓 성인이 된 15세는커녕 이미 성장을 끝낸 2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사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레이온 자작과 베오날드를 바라보았다. 딱히 둘 다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고, 레이온 자작의 성정에 대해선 이미 잘 알고 있는 집사였기에 그가 수작 부리는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긴 레이온 자작은 거짓말 같은 걸 할 인간이 아니지. 얼굴에 생각이 다 드러나니까. 뭐, 이쪽 도련님은… 확실히 아가씨의 분위기나 느낌을 물려받은 것 같군. 아버지는 개인데, 아들은 늑대인가?’

“얘가 좀 빨리 큰 게 아무래도… 제 아버님을 닮아서 그런 것 같아서 말이죠. 하하하.”

“알겠습니다. 아무튼 그럼 성년이 아니니 다른 행사엔 참여 안 하시겠군요.”

“예. 선물을 올릴 때나 가볍게 소개하고 물러날 생각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용무가 있으면 불러 주시고, 숙소에서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결국 집사는 레이온 자작과 이야기를 마친 후 바로 물러났다.

그러자 레이온 자작은 한숨을 크게 쉬면서 베오날드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후우~ 정말이지 여긴 올 때마다 긴장된다니까……. 보통은 절차를 밟는 건 네 어머니가 해 주는데, 오늘은 내가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지. 아무튼… 좀 답답하겠지만, 며칠만 여기서 하인이랑 우리 짐을 지키면서 지내면 된단다.”

“밖엔 못 나가나요? 사고 싶은 것도 있는데.”

“그게… 일단 잔치가 끝날 때까지는 이 저택… 아니, 숙소에서 너무 멀리 가진 말렴. 그럼 나는 여기저기 인사드리고 올 테니 짐이랑 하인들을 부탁한다. 시내 구경이나 물건 사는 건… 돌아가는 길에 하자꾸나.”

“예. 그러도록 하죠.”

그러곤 머물게 된 저택의 방에 짐을 옮겨 두고 베오날드는 방에, 하인은 마차를 돌보러 갔고, 아버지인 레이온 자작은 다른 귀족과 캘러메인 백작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러 홀로 떠났다.

‘…그나저나 소개라면 나도 같이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음~ 아까 전에 한 말로 보아선 ‘성인식’ 때 본래 소개하게 되어 있던 건가? 뭐, 그런 관습인가 보지.’

가문마다 관습이 조금씩 다른 건 500년 전에도 아주 흔하게 있던 일인 만큼 베오날드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러려니 하며 부친의 말을 듣기로 한다.

아까 전 일개 집사에게도 말을 높이던 꼴을 보니 어차피 밖에 나가 봐야 다른 귀족들에게 무시당하거나 광대가 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추가로 지금 들어와 있는 숙소의 질만 봐도 더스티클록 자작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곧장 알 수 있었다.

‘…아주 나쁜 방은 아니지만, 그래도 혈족인데 저택 내 구석진 곳에 거의 짱박아 두다시피 한 건 어지간히 바깥에 보이고 싶지 않다는 거겠지. 하긴 사실상 가문의 수치이지. 차라리 내 경우처럼 그래도 피라도 받거나 늘 말하던 선대처럼 유능하기라도 했으면 모를까?’

아버지 레이온 자작은 그 어느 쪽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는다.

사람 좋은 게 전부인 양반. 그렇기에 결국 이런 대접을 받는 게 당연했다.

베오날드가 검술이라도 연습할까? 생각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숙소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음?’

“어? 뭐야? 여기 사람이 있었네?”

노크도 없이 문을 확 열고 들어온 것은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밝은 금색 머리칼을 가진 소년은 무례하게 들어왔지만 예의를 차리지 않은 것에 대한 미안함이 전혀 없는 눈빛으로 베오날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음…….’

거기에 입고 있는 옷은 순백 베이스에 청색 무늬가 들어가고 소매 부분이 금실로 장식되었으며 가슴엔 산맥 모양의 엠블럼이 달린 화려한 옷으로, 소재도 고급스러웠으며 그 산맥 모양의 엠블럼과 보석으로 치장된 것으로 보아 이 저택의 주인 캘러메인 백작가의 사람인 게 확실했다.

“넌 누구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리고 대놓고 베오날드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무례한 말을 내뱉는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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