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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15화 (15/259)

[15화]

월터 경은 용병인 척하면서 베오날드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그가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일단 유리병을 산 시점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 저택에 올라갔던 베오날드는 갑자기 또 내려오더니 무언가를 가지고 어딘가로 향했다.

‘저건 뭐야? 말린 풀? 그래도 근본 없다고 욕먹을지언정 자작가의 도련님인데… 저게 무슨 짓인지, 원~ 아무리 기사가 안 되어도 영지를 잃지 않는 귀족이라지만……. 쯧쯔쯔.’

‘아주 좋아! 유리병이 이만큼이나 되니까 진액을 만들기도 좋고, 합성하기에도 아주 좋고, 다양한 케이스로 실험할 수 있어! 아싸아아!’

월터 경이 바라보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베오날드는 연금술 도구가 생긴 것에 즐거워하며 이 유리병들을 즉시 수련실에 갖다 놓고, 아예 실험실로 만들 생각까지 하며 연장을 챙기는 등 난리를 치고 있었다.

거기에 모자란 연장은 상인에게서 이번엔 제 가격을 주고 구입하는 등등, 귀족 후계자답지 않게 사방팔방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무슨… 일꾼인가? 저러는 걸 말리지도 않는 걸 보면 일상적인 건가 보군. 한창 지식과 무예를 단련해야 할 영지의 후계자를 무슨 하찮은 일손처럼 부리다니. 쯧쯔쯔… 역시 근본 없는 집안은 어쩔 수 없나?’

월터 경은 더 이상 베오날드에 대해서 파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오늘 영업이 끝나는 즉시 상인과 함께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혹시 모르니 좀 더 지켜볼까? 수련실이라는 건 있어 보이는데… 이건 뭐야?’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더 몰래 짐을 옮기는 척 베오날드를 따라가 그의 수련실을 정탐하는데, 안에는 무기와 갑옷 및 단련에 필요한 도구들이 갖추어져 있었지만 월터 경을 경악시킨 건 그 수련실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실험 도구와 각종 약초들이었다.

‘아니, 육체를 단련하고 검을 배우는… 이 신성한 장소에서 이런 짓을?’

월터 경은 정통 기사 가문 출신.

수련실이라는 곳은 성기사에게 있어서는 신전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볼 수 있는 수련실에 비치되어 있는 약병과 말리는 중인 약초의 존재는 마치 신전 한가운데에 시장판이나 화장실을 만든 것 같은 불쾌감을 선사하는 거였다.

‘이건 더 볼 것도 없다. 이런 장소에서 기사가 나올 리 없어!’

월터 경은 큰 실망과 불쾌감을 품은 채로 상인도 버리고 곧바로 영지를 떠나 자신의 주군이 있는 델마인 남작가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이 본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델마인 남작에게 전하면서 기사는커녕 더스티클록 자작가는 근본이 없다는 악평을 늘어놓았다.

“저기에서는 10살짜리는 물론 백 년, 천 년이 지나도 기사가 나올 수 없습니다!”

“음… 그런가? 그대가 말하면 그렇겠지. 알았네.”

월터 경에 대해서는 젊고 실력 있는 기사라며 신뢰하고 있던 델마인 남작은 그의 보고를 전적으로 믿고, 역시 자신의 생각이 기우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젤커드 자작이나 캘러메인 백작이 수를 쓴 거라 생각하고 제럴 경의 영지 문제에 집중하고자 했다.

그러나 베오날드의 행동에 대해서 월터 경은 좀 더 신중하게 조사를 했어야만 했다.

적어도 그의 행동에 대해 부모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봤다면 앞에서의 생각을 모두 바꿨을 테니 말이다.

“…베오날드가 왜 저러는 거요? 수련실에서 또 이상한 짓을 하던데…….”

“내버려 두시면 됩니다.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행동이니 말이죠.”

“그래도 그걸 수련실에서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아이가 성장을 하고자 하는데, 장소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부인이 그렇다면 뭐…….”

사실은 부친인 레이온 자작도 베오날드의 행동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부인이 그의 의구심을 적절히 풀어 주면서 방해하지 못하게 차단해 준 것이다.

그리고 베오날드는 아주 능숙하게 연장을 쓰면서 수련실 일부를 실험실로 만드는 것에 흥겨워하는 중이었다.

‘날 속이려는 건 괘씸했지만 떠돌이 상인이 오다니 정말 운이 좋다니까! 이것도 여신의 인도인가? 아주 좋아! 마음에 들어! 실험을 잔뜩 할 수 있겠어. 그리고 약품 만드는 것에 대한 실험체도 가득하고 말이지!’

물론 기존에 알고 있는 제조법과 약들로도 효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시대로부터 500년이 지난 뒤였다.

자신이 모르는 질환이나 병이 있을지 모르며, 또 사람들의 체질이 다르고 구할 수 있는 재료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알맞은 약품을 만들어야만 했다.

‘베노피스에선 그냥 최고급 재료를 모아서 만들 수 있었는데… 여긴 다르니 말이지. 제길!’

이 망할 깡촌에서 모을 수 있는 재료는 한정적이었기에 거기에 맞춰서 싸고 좋은 약품을 만들려면 시행착오와 개선 작업이 필요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농업과 사냥 및 산에서 채집을 병행해서 생산 활동을 하는 이 영지의 특성상 분명 각종 찰과상 및 상처 입을 일이 많을 터였다.

그들에게 무상으로 약을 나눠 주는 척하면서 약의 효능과 부작용에 대한 실험을 하기에는 아주 좋은 환경인 것이다.

‘이런 간단한 약 하나로 엄청난 인구 손실을 줄일 수 있으니 말이지. 또 장차 쓸 일도 많을 거고~ 보자… 다른 약초를 구해 와야지. 일단 두통약, 상처 치료제, 감기약. 이거 3개는 기본적으로 만들어 두면 언제든 쓸 일이 있으니까… 그리고 독약도 만들어야겠군. 몬스터 사냥에 쓸 수도 있으니…….’

그렇게 베오날드의 일과엔 약 제조가 추가되었고, 후엔 아예 수련실 옆방을 실험실로 만들어서 약의 제조에 힘썼는데, 이렇게까지 진보된 것은 그가 무료로 나누어 준 약의 효능을 본 자들의 지지 덕이었다.

“도련님 덕분에 큰일 날 뻔한 고비를 넘겼습니다.”

“아, 정말이지 멧돼지에게 죽는 줄 알았는데… 정말 고맙습니다. 도련님!”

“도련니임! 저희 애가 아파서 그런데 혹시 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요?”

물론 단점은 사람들이 의료원을 찾듯이 저택을 찾게 된 것이었지만, 그래도 어차피 인구가 적은 영지이다 보니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오히려 베오날드에겐 실험체들이 알아서 찾아와 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4년 뒤, 14세가 된 베오날드는 이제 누가 봐도 성인이라고 보일 정도로 성장한 모습이 되었다.

검술은 여전히 ‘노이멀–10식’을 뚫지 못한 상태여서 상당히 초조했지만, 그래도 그동안 이 작은 영지에서 자신의 연금술을 펼치고, 또 새로이 사냥 기술을 숙달하며 당차게 자란 것이었다.

“오오오! 저, 저거 뭐야? 아! 도련님이시다!”

“이번엔 곰인가? 굉장해! 오오오! 엄청 커! 게다가 새끼까지 산 채로 잡으셨어!”

“세상에, 14살에 곰을 잡으시다니! 선대 자작님의 손자답구먼!”

앳된 외모에 맹수처럼 단련된 날렵한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하는 베오날드는 거대한 곰을 목에다 이고서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사냥 기술과 검술, 그리고 산에서 실전적인 움직임을 단련하는 겸해서 이것저것 잡아 오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돈이 되는 게 많았고, 그것들을 팔아서 더 좋은 연금술 도구나 약재를 살 수 있었기 때문에 베오날드는 적극적으로 사냥에 나서고 있었다.

애초에 이 작은 영지의 주 수입원이 사냥이었기에 사냥꾼들과 교제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었고 말이다.

“왈트, 이놈 해체 좀 부탁하네. 특히 장기와 쓸개는 분해하자마자 가장 먼저 가져다주게나. 가죽은 잘 말린 다음에 가져오고, 보수로는 고기는 자네가 다 가지게. 지방은 빼고 말이지.”

“가, 감사합니다, 도련님! 그나저나 새끼 곰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백작님께 진상할 걸세. 맹수의 새끼야말로 가장 잡기 어려운 귀중한 것 아닌가? 그나저나 우리가 필요하겠군. 가서 만들어야겠어.”

베오날드는 그렇게 늙은 사냥꾼에게 곰의 해체를 맡기고서 먼저 저택으로 향했다.

그렇게 길을 가는 도중에 사방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저기 봐. 도련님이셔. 오늘도 너무 멋지시다. 게다가 곰까지 혼자 사냥하셨다며?”

“약도 나누어 주시고, 자상하고 어질기까지 하시니… 정말 이 작은 영지에 두긴 너무나 아까운 분이야.”

“이 사람아! 그럼 다른 영지에 가길 바라나? 있어 주면 우리야 좋은 거 아니겠어?”

모두의 존경과 선망, 사랑이 담긴 눈빛. 지난 4년간 자신이 세운 입지의 결과가 느껴지자 베오날드는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지난 4년, 본격적으로 연금술과 약제를 짓기 시작한 덕분에 영지민들의 신임을 얻기가 아주 수월했다.

‘이 몸을 우러러보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

의술에 아주 밝은 건 아니지만 연금술을 하면서 부가적으로 배운 것이 있기 때문에 대규모 전염병이 아닌 이상 이런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병환 같은 것을 치료하기엔 충분했다.

그뿐만 아니라 검술과 마나 호흡법의 영향으로 강해진 육체로 ‘사냥’과 ‘농사’가 주업인 이 영지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사냥꾼’으로서의 기량을 보였으니, 모두가 우러러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라곤 해도 나의 정원이니~ 손을 쓰긴 해야지.’

제국의 영역으로 보면 간신이자 권력을 사유화한 권신이긴 해도 자신의 영지만큼은 가장 아름답고 거대하게 가꾸어 나간 베오날드였다.

자신의 영지는 굳건하고 아름다워야 자신의 가문, 자신의 안전과 명성 모든 것이 지켜질 수 있는 것이라는 게 베오날드의 가치관. 그 영지엔 당연히 영지민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보자… 돌아가면 말려 놓은 약초를 또 정제하고 그다음엔 다시 검술 연마, 그리고 부모님과 식사 후에 저녁엔 과제 같지도 않은 어머님의 과제로 공부하는 척을 하면서 검술 수련을 하면 되겠군. 이 맛에 제2의 인생을 사는 건가? 후후.’

지독하리만큼 치열했던 전생의 14세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완전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베오날드는 발버둥 치는 새끼 곰을 단단히 잡고서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가 들어오자 그를 맞이하러 나온 모친이 보였는데, 품에 작은 아이들을 둘이나 안고 있었다.

바로 베오날드의 동생들로 남녀 쌍둥이였다.

“돌아왔구나, 베오날드. 무사해서 다행이다.”

“하하, 저보단 애들이 더 문제죠. 괜찮나요?”

“괜찮기는~ 밤에도 울고, 낮에도 울고, 잠을 깨우고 난리였단다. 널 키울 땐 이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말이지.”

‘그거야 나는 태어나자마자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니…….’

쌍둥이는 베오날드가 12세 때 태어난 아이들로, 본래 귀족가라면 좀 더 일찍 많은 아이들을 낳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지만 초기엔 베오날드를 키우느라, 그리고 어느 정도 커서는 영지 주변에 사건이 많아서 그럴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제럴 경 문제가 해결된 이후엔 안심할 수 있었고,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한 끝에 남녀 쌍둥이를 출산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손에 든 새끼 곰 2마리는 뭐니?”

“얼마 뒤에 캘러메인 백작님의 생신이니 그때 선물로 바칠 겁니다. 거기에 지금 어미 곰의 가죽도 조심스럽게 떼어 내는 중이에요. 가능하면 몬스터로 잡고 싶었는데… 영 없네요. 이 근방엔~”

“곰만 해도 대단한 거란다. 그보다 베오날드?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 씻고 내 집무실로 오려무나.”

“예, 어머님.”

중요한 이야기가 뭔지 모르지만, 베오날드는 일단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곧바로 어머니의 집무실로 올라갔다.

어린 동생들은 하녀와 유모에게 맡겨 둔 모친은 베오날드에게 한 서찰을 내밀었다.

그것은 예전에도 보았던 캘러메인 백작의 생일잔치 초대장이었는데, 베오날드는 의아한 눈초리로 모친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걸 왜 저에게?”

“아무래도 이번엔 네가 그이를 보좌해 줘야 할 것 같다. 나는 역시 네 동생들을 봐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너도 알다시피 생일잔치라는 게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게 아니지 않니?”

“그렇죠. 그럼 제가 하도록 하죠.”

말이 생일잔치이지, 사실은 캘러메인 백작이 자신의 아래에 있는 가신들의 충성심을 확인하는 자리로서 조공을 받거나 혹은 이런저런 정치 싸움을 하는 판이었다.

생일날 이전에 미리 도착해서 귀족끼리 서로 안면도 트고, 여러 파벌이나 서열 관계도 확인하는 등등 아주 중요한 자리였다.

“어지간한 자보단 네가 더 믿음직스러우니, 잘 부탁한다.”

‘음, 귀족판 데뷔는 성인이 되고 나서 할 줄 알았는데… 1년 이르군. 하지만 성인이 아닌 이상에야 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분위기 파악 정도이려나? 아주 딱 좋아. 캘러메인 영지도 처음으로 가 보겠군.’

본래 성인이 아닌 남성은 참여하지 못하는 행사였지만 이미 모친이 보기엔 베오날드는 성인 한 사람의 몫은 하고도 남을 정도로 잘 장성했으니 자신보다 더 잘하리라 믿어서 그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베오날드는 드디어 제대로 된 도심이라 할 수 있는 캘러메인 영지에 가는 것과 이 시대의 귀족 정치판을 구경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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