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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13화 (13/259)

[13화]

이틀 뒤.

델마인 남작은 제럴 경의 영지에서 올라온 보고를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하잘것없는 일을 처리하라고 보낸 자신의 하급 기사 둘의 목과 소지품이 일부만 돌아왔다는 소식이었다.

하급이어도 기사는 한 명, 한 명이 중요한 인재들로 이렇게 잃어버린 것은 엄청난 손해였다.

“이게…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대체 어떻게 했기에?”

“저희도 어찌 된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제 아침 영지의 저택에 수상한 남자가 와서 저의 주군이신 제럴 경을 포함한 세 사람의 머리와 소지품을 주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놈을 잡았어야지!”

“저도 머리를 받은 경비병을 문책했지만 워낙 바람 같은 속도로 사라졌다고 해서…….”

제럴 경의 가신인 안델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델마인 남작에게 아는 한도 내에서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그걸로 만족할 델마인 남작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이런 짓을 한 상대에 대한 정보나 아니면 이유라도 알고 싶었지만 그것을 모르니 머리에 피가 쏠려 확 돌아 버린 것이었다.

“이 쓸모없는 놈 같으니! 이 일을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

“송구하옵니다만 델마인 남작님, 지금 저희도… 원통하기 짝이 없습니다. 주군이신 제럴 경이 사망했는데, 제럴 경의 자식들 중엔 후계자가 될 만한 기사가 없어서 비상사태입니다. 거기에 만약 젤커드 자작의 기사가 차지하게 되면 곤란해집니다.”

“끄으으응!”

젤커드 자작. 델마인 남작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자로 비록 자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엄연히 중급 기사였고, 캘러메인 백작 아래 파벌의 양대 산맥이었다.

이제 곧 작은 시골 영지 하나라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기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아무리 작은 영지라지만 엄연히 영민과 세수가 있고, 소수의 군사를 육성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특히 제럴 경의 가문은 오랫동안 그 지역을 통치하면서 수입을 쌓아 왔기 때문에 아무리 작아도 축적한 재산도 있을 것이다.

“끄으으으으으으응! 질레온 경에게 병사를 이끌고 제럴 경의 영지로 가라고 전해라.”

“예!”

우선적으로 조치를 취한 다음, 델마인 남작은 곧장 안델 경과 함께 사건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이미 입은 손해를 돌이킬 수는 없지만 하급 기사 3명이 죽은 사건은 꽤 심각한 사안이었기에 반드시 원인을 알아내야만 했다.

“일단 제럴 경, 갈슨 경, 엔시아 경, 이 셋은 분명 그 근본도 없는 더스티클록 자작의 영지로 가서 그를 암살할 계획이었을 걸세. 분명 그렇지?”

“예. 제럴 경은 영지의 병사와 손잡은 도적, 갈슨 경과 엔시아 경을 데리고 더스티클록 자작의 영지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본래의 계획은 공훈을 얻고 싶다는 핑계로 더스티클록 자작이 잡아 둔 도적에게 걸려 있는 현상금을 주고 도적을 돌려받으면서 정찰, 그리고 그날 밤 곧바로 더스티클록 자작을 암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사고는 거기서 터졌겠군. 더스티클록 자작이… 뭔가를 한 걸까? 하지만 자작은 그냥 힘 좀 쓰는 놈일 뿐이고, 병사나 가신 중에 기사가 될 자도 없을 텐데? 애초에… 마나 호흡법도 없는 곳 아닌가?”

“아마 젤커드 자작이나 캘러메인 백작님이 손을 쓴 게 아닐는지요?”

“으으음… 하급 기사 셋을 처리하려면 못해도 똑같은 하급 기사 셋, 아니면 중급 기사가 나타나야 하네. 근데 캘러메인 백작님 아래 세력권에서 중급 기사가 총 몇 명이지?”

“아마… 15명 정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급 기사는 캘러메인 백작님의 곁에 있는 한 명뿐이지요. 하지만 중급이든 상급이든 대체… 그 영지에 무슨 메리트가 있어서 파견한 걸까요? 결국 메리트가 있어야 할 텐데, 그럴 만한 돈도 없을 텐데…….”

안델의 말대로 더스티클록 자작가를 돕는다고 해도 크게 이득 볼 것이 없다.

더구나 하급 기사 셋이든 중급 기사든 어디 쉽게 보낼 인재도 아니다.

제럴 경만 해도 자신에게 하급 기사 둘을 빌리기 위해 거액을 지불했을 정도였다. 한데 고작 2대까지밖에 이어지지 않았고 수입도 변변찮은 더스티클록 자작가에 그럴 돈이 있을 리 없었다.

“흐음… 잠깐만, 확실히 더스티클록 자작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지?”

“아~ 예. 올해로 10살 된 아들이 하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남작님… 설마?”

“지금 변수라고는 오직 그거뿐일세.”

실제로 보진 않았으나, 추리해 나가면 변수는 오직 더스티클록 가문의 10살짜리 꼬맹이(?)뿐이었다.

안델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면서 델마인 남작의 주장을 부정했다.

“하지만 말도 안 됩니다. 올해 10살입니다, 10살! 완전 애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기사일 리가? 심지어 더스티클록 자작가의 근본은 용병 집안! 마나 호흡법 하나 없을 텐데요?”

“천연 기사의 케이스도 있지 않은가? 잡것의 피가 섞이긴 했지만 그래도 캘러메인 백작의 혈통이기도 하지. 가능성이 0은 아니야.”

“너무 과한 생각 아니십니까? 차라리 젤커드 자작이나 캘러메인 백작이 손을 써 준 게…….”

“맞아. 과하게 생각하긴 했지. 가능성이 0은 아니라지만 너무나 희박한 확률이지. 현실에 존재할 수 없을 만큼의 확률. 마치 병아리가 뱀과 싸워서 이길 확률 정도? 하지만 확인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지. 사람을 하나 보내서 확인하지. 제럴 경의 영지 문제와 죽은 다른 기사들에 대한 일이 지금은 더 우선이니 말이야.”

당장 제럴 경의 장례부터 시작해서 정치 싸움할 거리가 많았기에 델마인 남작은 신뢰할 수 있는 가신 하나를 그쪽에 보내어 더스티클록 자작의 아들에 대해 조사를 맡기기로 했다.

***

더스티클록 자작가.

암살 습격을 견뎌 낸 더스티클록 자작가였지만 이후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아져서 베오날드의 부모는 바쁜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일단 적이었지만 그래도 바로 이웃 영지의 주인인 제럴 경이 갑자기 죽은 사건은 이 작은 촌 동네에선 큰일이었다.

레이온 자작은 장례식장에 조의를 표하러 가는 것은 물론이고 캘러메인 영지를 오가면서 계속해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집 지킨다는 핑계로 나는 이곳에 남게 돼서 천만다행이군. 물론 아버지는 데려가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적극 변호해 주셨지.’

부친인 레이온 자작은 슬슬 베오날드를 여기저기 소개시켜야 한다며 데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모친은 베오날드가 이 작은 영지에 비해 너무 과분한 재능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적극적으로 반대했고, 정통 귀족 혈통인 부인의 시야와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베오날드는 영지에 남을 수 있었다.

‘후우~ 자유로워진 건 아주 좋군.’

기마술에 능숙하다는 점과 혼자서 도적을 격퇴한 점, 10살 아이의 기량을 넘어섰다는 것을 증명했기에 베오날드는 홀로 영지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보이는 풍경은 농작물을 기르는 이들과 사냥을 갔다 와서 사냥감을 다듬는 영지민들의 일상뿐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놀러 온 게 아니니 정신 차리자.’

이맛살을 찌푸린 베오날드는 자유롭게 영지를 돌며 곳곳에 자라는 식물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중 몇몇은 직접 맛을 보면서 성질이 변한 건가 확인을 했는데,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연금술의 재료도 재료였지만, 이 작은 영지는 예상대로 ‘비상약’ 같은 것의 준비가 아주 형편없었다.

‘상비약으로 쓸 약초 정도는 모으라고! 말려서 가루로 만든 다음 밀봉하면 오래가잖아! 그리고 상처를 싸맬 깨끗한 천도 보관하고! 그것도 기본! 도대체 칼밥으로 먹고사는 것들이 상처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몰라! 포션까진 아니어도 준비하라고! 보자… 약초꾼 집이 여기군.’

“누구십니… 헉! 도, 도련님?”

“그래, 나다. 좀 알고 싶은 게 있어서 왔다. 시간을 살 테니 알고 있는 지식을 모두 내게 알려 주도록.”

“소, 송구스럽사옵니다만, 일개 약초꾼의 지식이 도움이 될지…….”

“그건 내가 정한다. 자, 선입금이다. 들어 보고 만족스러우면 한 장 더 주지.”

은화를 던져 주자 그는 눈을 크게 뜨며 깜짝 놀랐고, 하나를 더 준다고 하자 벌떡 일어나서 말리던 약초들을 베오날드의 앞에 놓고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건 체펔이라고 부르는 약초입니다. 말려서 달여 먹으면 두통에 좋지요. 그리고 이건…….”

약초꾼의 설명을 들으며 자신의 지식과 대조하는 베오날드.

하나 생각보다 500년의 시간은 금방인 건지 약초들의 효능과 모양새는 그리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크게 차이 나는 건 호칭뿐.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같은 시대라도 지역에 따라서 부르는 호칭이 다른 음식도 있으니 말이다.

‘음, 아주 유익한 지식이군. 하아~ 물론 내 체면이 말이 아니지만 말이야.’

전생에 천하를 호령했고, 연금술 학회에서도 인정받은 베오날드 폰 노이멀이 지금은 일개 약초꾼에게 지식을 청하고 있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자괴감이 몰려왔지만, 그쯤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위해서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잘못하면 1만 년 지옥행 생활이 예정되어 있으니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해야 했다.

“으음… 돌아가는 길에 약초나 좀 캐서 갈까?”

“그… 너무 깊이 들어가시면 야생동물도 동물이지만, 고블린이 있을 수 있습니다요.”

‘그거야 일상이지. 음, 사냥 기술이랑 숲에 대한 정보도 배워 볼까? 하급 귀족이면… 이리저리 뛰어야 할 일이 많을 테니까.’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사냥꾼의 집.

마찬가지로 보수를 지불한 베오날드는 그에게 이런저런 기술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덫의 설치, 제거, 야생동물 및 몬스터의 흔적과 추적 방법 등등……. 생전의 베오날드라면 전혀 배울 필요가 없을 기술들이었지만,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할 것 같았다.

“도련님, 손재주가 정말 좋으시군요. 게다가… 10살이라곤 도저히 믿지 못하겠습니다.”

“아버지 말로는 할아버지를 닮았다던데?”

“아아~ 선대 영주님은 확실히 엄청 크셨지요. 허허허. 아, 덫은 그렇게 치시면 위험합니다. 끈을 뒤로 좀 더 빼서 확실히 고정하셔야 안전합니다.”

‘…할아버지 핑계가 엄청 잘 먹히네. 대체 어떤 인간이었던 거지?’

10살 아이라곤 믿을 수 없는 성장인데도 할아버지 핑계 하나만 대면 의심이 끝날 정도였기에 베오날드는 오히려 그 할아버지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사냥꾼과 약초꾼에게 기술을 배우고 그것들을 자신의 지식으로 정리한 베오날드는 다시 검술 수련과 마나 호흡법 훈련에 몰두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더스티클록 자작 부부가 돌아왔다.

제럴 경의 영지를 맡을 자는 기사들 중에서 한 명으로 정해지는데, 그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영지에 있던 하인들과 사람들이 바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모친과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정보들을 교환하는 베오날드였다.

“으음, 그렇군요. 혹시 또 다른 이야기는 없었습니까? 어머님?”

“딱히 없더구나. 다만 델마인 남작의 눈빛이 좀 심상치 않았단다.”

“하급이라지만 기사가 둘이나 죽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죠. 거기다 그 둘… 아니, 제럴 경까지 죽인 자의 정체를 모르니 더 답답할 테구요. 저인지, 젤커드 자작의 기사인지 아니면 캘러메인 백작의 기사인지~ 상상의 여지가 넓으니까요.”

“고작 10살인 너에게까지 생각이 닿는다고? 그건 좀 지나친 억측 아니니?”

“하지만 제 외양이… 정상적인 10살은 아니잖습니까? 어머님. 분명 델마인 남작은 사람을 보내 저에 대해 확인하려고 하겠지요.”

다소 앳되어 보이는 얼굴만 빼면 키, 체격, 근육의 양까지 절대 10살로 보이지 않는 베오날드. 보통 10살짜리 아이라면 검을 다루는 것조차 무리일 테지만, 베오날드는 마나 호흡법 수련 덕에 신체 성장도 빨라서 전혀 문제없이 다룰 수 있을 정도이니 충분히 의심이 가능했다.

“거기에 제가 기사인 걸 확인하려고 보내는 걸 테니… ‘마나’를 감지할 수 있는 자를 잠입시킬 겁니다. 그게 문제겠네요.”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니? 감출 수 있는 방안이 있니?”

“일단 저도 감추려고 노력하겠지만, 그건 불확실한 수(手)죠. 오히려 여기선 의심을 풀어 줄 움직임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라는 거니?”

“젤커드 자작에게 적당히 비싼 선물이라도 보내 주세요. 이유는 적당히 핑계를 대시거나~ 아! 아니면 제게 검술 사범을 한 명 정도 보내 달라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마치 진짜로 젤커드 자작에게 신세를 진 것처럼 감사를 표하고, 관계를 개선하는 시늉을 보이는 것으로 델마인 남작을 속일 생각을 하는 베오날드였다.

사람은 가능성이 희박한 사건의 증거보다는 가능성 높은 사건의 증거가 나오면 바로 그것에 판단이 매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남작을 직접 만나 봐야 좀 더 확실한 판단이 서겠지만, 지금은 이 정도가 딱이지.’

델마인 남작을 직접 만나 보진 않았지만, 베오날드는 일단 일반적인 수 싸움에 한해서는 이 방법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다.

모친 역시 아들의 판단이 맞는다고 생각하며 곧바로 캘러메인 백작가에 보낼 선물용으로 아껴 두었던 가장 좋은 사냥감의 모피와 뼈로 만든 장신구 등의 선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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