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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10화 (10/259)

[10화]

그렇게 베오날드가 자신의 수련실로 들어간 사이, 레이온 자작은 급히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고 제럴 경을 맞이하기 위해 응접실로 향했다.

들어가니 이미 아내가 다과를 준비해서 제럴 경과 가벼운 사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곧바로 바통 터치한 레이온 자작이 제럴 경에게 인사를 건네며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영지 시찰 중이라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럴 경.”

“죄송할 게 있겠습니까? 영지를 돌보는 것은 귀족의 의무인데요. 사전에 연락도 없이 온 제가 더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제럴 경. 저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서로 이웃지간 아닙니까? 하하하하.”

‘이웃 같은 소리 하네. 벼락 귀족 주제에!’

사심 하나 없이 사람 좋은 호인의 웃음을 지으며 대응하는 레이온 자작이었지만, 이미 속이 꼬일 대로 꼬인 제럴 경에겐 비아냥거리는 소리로밖에 안 들렸다.

레이온 자작은 신경이 둔한 건지 제럴 경이 슬쩍 노려봐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눈치챈 것은 오히려 자작 부인으로, 그녀는 최대한 경계하고 있었다.

‘좋은 목적으로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온 거지?’

‘저 흉측스러운 암여우 년은 역시 경계하고 있군.’

제럴 경도 자작 부인의 눈빛을 보곤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단순하고 사람 좋은 자작은 경계 대상이 아니지만, 역시 캘러메인 백작가에서 자란 그녀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점은 이미 고려한 상황이었고, 어차피 눈치를 챈다고 한들 삽으로 산사태를 막을 순 없는 법이다.

“아무튼 제가 이렇게 급하게 온 이유는 근래에 잡힌 도적들 때문입니다. 저희 영지 쪽으로 도망 온 놈들을 잡고 나서 알아보니 캘러메인 영지에 현상금이 걸려 있던 놈들이더군요. 그리고 놈들에게서 동료들이 이곳에 잡혔다는 걸 듣고 왔습니다.”

“으음… 그렇군요. 역시 보통 도적놈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로 악랄했군요.”

“그래서 놈들을 데려가려고 하는데… 마침 이쪽에도 잡혀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 부탁이 있는데… 놈들에 대한 현상금을 제가 자작님에게 지불해 드릴 테니, 놈들을 제게 넘겨주실 수 없을는지요?”

“음? 그건 어째서인지요?”

“아시다시피 저희 가문이… 지금 상당히 위험한 처지라서 작은 공이라도 더 추가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물론 자작님이 잡으신 도적의 공을 돈 주고 산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지금은 그런 수라도 쓰고 싶을 만큼 사정이 힘듭니다.”

“아… 그렇군요.”

제럴 경 가문의 사정은 이미 이 캘러메인 백작가 세력이라면 다 알 정도로 소문이 난 만큼 이곳에 찾아온 이유가 어느 정도 납득이 된 레이온 자작과 부인이었다.

가문의 후계자가 필요한데, 자식들이 아무리 해도 제럴 경 집안에 내려오는 마나 수련법을 깨우치지 못해서 가문이 존속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뭐, 기꺼이 현상금만 받고 공을 드리겠습니다. 서로 돕고 살아야 하니 말이죠. 하하핫.”

‘어리숙한 놈. 어차피 이건 그냥 밑밥일 뿐이야. 이렇든 저렇든 넌 오늘 끝장나게 된다.’

“그럼 바로 하인을 시켜서 노역 중인 도적들을 부르겠습니다. 증거가 되어 줄 놈들의 소지품은 저택에 있으니 그것도 금방 챙겨 올 겁니다.”

레이온 자작은 어차피 도적들을 노역시켜서 보상금을 뱉어 내게 하는 거니, 현상금을 받아서 일정 부분 자신들이 세금으로 가지고 영지민들에게 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제안을 받아들인 거였다.

물론 제럴 경에게 있어 이 거래는 그냥 이 영지에 사전 정찰을 올 핑계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더스티클록 자작님. 원래라면 제가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아닙니다. 서로 작은 영지인 것을 아는데, 이럴 때 돕고 살아야죠. 하하핫.”

“저, 정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차림에 신경 쓰느라… 으아악!”

덜컹! 쾅!

이야기가 좋게 끝나려는 순간, 응접실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넘어진 건지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레이온 자작과 부인, 그리고 제럴 경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는데, 거기엔 대(大)자로 뻗은 베오날드가 있었다.

“어머! 베오날드! 괜찮니?”

“아고고고… 저, 정말 죄송합니다, 어머님. 인사드려야 하는데… 옷 갈아입느라 늦어서 급히 오다가… 아파라아아… 아! 코, 코피! 어, 어머님?”

“이, 일단 치료하러 가자꾸나.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앤데, 이를 어째…….”

코피를 흘리는 베오날드를 보자 깜짝 놀란 자작 부인은 그를 데리고 얼른 응접실을 나섰다.

‘…저게 레이온의 아들인가 보군. 근데 듣기론 10살이라던데, 상당히 커 보이는데?’

“죄송합니다, 제럴 경. 평소엔 똘똘한 아이인데, 오늘 손님이 왔다고 해서 긴장한 모양입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10살이라고 소문으로 들은 것 같은데… 꽤 커 보이는군요.”

“예. 하하… 할아버지를 닮은 건지 쑥쑥 크더군요. 뭐, 그래도 10살은 10살이니 말입니다. 하하하…….”

‘하긴 선대 더스티클록 자작, 그 용병 할배가 보통 사람은 아니었지.’

제럴 경은 선대 더스티클록 자작을 만나 보았다.

기억 속의 그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큰 덩치와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이의 성장이 빠른 것을 기묘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까 전 칠칠맞은 모습을 보아선 그리 위험하지 않을 거라고 짐작되었다.

‘애새끼가 조금 더 커 봐야 애새끼지. 훗.’

그사이, 밖에 있는 우물에서 흘린 코피를 닦고 옷을 추스르는 베오날드에게 모친이 슬쩍 질문을 던졌다.

수업 때라든가 수련할 때의 태도를 봐서 그녀는 익히 잘 알고 있었다. 베오날드는 이미 10살의 아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기품과 현명함을 겸비한 아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 제럴 경을 만나는 순간 넘어지다니,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베오날드, 왜 굳이 이런 짓을 했니?”

“일전에 어머니께서 제럴 경의 가문은 후계자가 마나를 깨우치지 못해서 가문이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거기서 제가 평소 같은 모습을 보였다면 필시 부러움과 질투가 생길 거고, 그러면 원래부터 원망하고 있던 감정이 있는데 더 커지지 않겠습니까?”

“…아! 거, 거기까지 생각했구나!”

베오날드의 현명함에 모친은 박수를 치면서 감탄했다.

영지의 관계까지 생각해서 추한 모습을 보이거나 상처 입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또 한 번 놀랄 따름이었다.

‘거기에 그 제럴 경이라는 자, 보기보다 간교해 보였으니까.’

추가로 베오날드는 그가 도적의 배후로서 생각 이상으로 간교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그렇게 행동한 점도 있었다.

본인이 도적의 배후임에도 뻔뻔하게 영지에 들어온 점부터 이미 보통 놈이 아니었으므로, 총명한 모습을 보여 줘서 경계심을 높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전 이만 쉬러 갈게요. 속였다는 걸 알면 더 화낼 테니까요.”

“그래, 그러렴.”

베오날드의 생각을 이해한 모친은 저택으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응접실로 돌아온 자작 부인의 눈에 이미 이야기가 끝난 건지 웃으면서 사담을 나누는 자작과 제럴 경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식사라도 하고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뇨. 이야기가 길어지면 모를까, 너무나 흔쾌히 승낙해 주셔서 여기 현상금을 바로 드리고 먼저 가겠습니다.”

“어허, 식사라도 하고 가시지…….”

“아닙니다. 영지의 일이 아직 남아 있어서. 그럼 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금화가 든 자루를 건네고서 제럴 경은 레이온 자작이 넘긴 도적들을 데리고 재빨리 영지를 빠져나갔다.

하지만 제럴 경으로선 이건 그저 정찰에 지나지 않았다.

혹시나 이 영지에 그 ‘방랑 기사’인지 뭔지가 있다거나 혹은 다른 변수가 있는지 알아보러 온 것이었다.

“왔군요, 제럴 경. 그래서 상황은?”

그리고 영지의 경계를 넘자, 이미 무장을 한 채로 야영지를 만들어서 대기하고 있던 갈슨 경과 엔시아 경의 모습이 보였다.

말에서 내린 제럴 경은 곧바로 델마인 남작의 명으로 온 두 사람에게 예를 갖추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별거 없습니다. 갈슨 경과 엔시아 경의 힘을 빌릴 것도 없이 저와 이 친구들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허허,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델마인 남작님의 명령을 받은 이상 저희도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럴 경. 아시죠?”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두 분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일하시길 바랍니다. 다만 일을 진행하다가 저희끼리 만나서 싸울 수 있으니 그것만 조심하죠. 그리고 너희도 이번에 같이 일할 테니 준비해라. 이번엔 그 ‘방랑 기사’니 뭐니 하는 것도 없으니 실패할 일이 없을 거다.”

도적들에게도 준비를 시키는 제럴 경. 현재 병력은 영지에서 데리고 온 병사 10명과 하급 기사 셋, 거기에 도적들 넷까지 합쳐서 총 17명.

애초에 기사가 셋이나 있는 이상 시골 자작 영지 따위엔 너무나 과도한 전력이었지만, 제럴 경은 실패하지 않겠다는 일념하에 그들과 밤이 되길 기다리며 무기를 정비하고 휴식을 취했다.

“오? 기사가 셋이나? 이거 소 잡을 칼로 쥐 잡는 격인데……. 아주 날을 잡았네?”

그리고 그들에게서 꽤 먼 거리인 더스티클록 영지의 경계에 베오날드가 있었다.

저번의 실패를 의식해서인지 이번엔 정말 충분한 거리에서 조심스럽게 추적을 했고, 다른 도적들에게 들키지 않은 걸 보아서 성공한 것 같았다.

‘셋 다 하급 기사라고 쳐도… 이런 영지엔 엄청난 과투자인데, 진짜 무서운 놈이군.’

베오날드는 제럴 경의 준비와 같이 자고 있는 기사들을 보면서 감탄했다.

하지만 그 칼날은 엄연히 자신을 위협하는 것이었기에 이대로 놔둘 순 없었다. 그는 어떤 방안을 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돌아가서 어머니께 알려도 지원 병력이나 저걸 상대할 기사를 부르는 건 무리겠지. 으으음, 아무튼 오늘 밤 온다고 했으니…….’

하루나 이틀의 시간이 더 있다면 어머니께 이야기해서 조치를 취할 수 있겠지만, 오늘 당장 들어온다고 하면 딱히 대응할 방안이 없었다.

결국 베오날드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이것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후속 대처가 달라지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잡을지를 생각해야만 했다.

‘기왕이면 다 잡는 게 좋겠지?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그러면 영지 밖이나 경계에서 잡으면 역시 도망칠 가능성이 높으니까 저택 안으로 끌어들여서 족쳐야겠는데… 음, 어쩐다?’

기왕 자신이 손을 쓴다면 철저하게 소식을 감출 수 있는 방안을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베오날드였다.

아무튼 밤에 손님이 온다고 했으니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해 베오날드는 빠르게 영지로 돌아갔다.

***

몇 시간 뒤, 야음이 깔리고 달빛도 흐린 어두운 밤.

제럴 경은 갈슨 경 , 엔시아 경과 함께 완전 무장을 하고서 천천히 영지에 잠입해 들어갔다.

근래에 도적들이 잡혀서 전보다 경계가 느슨해져 있었고, 하급 기사 3인방이 민첩하게 목책을 넘어가서 조용하게 구멍을 내 준 덕분에 도적들과 병사들은 쉽게 잠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용한 시골 길과 집들을 돌파해서 곧장 자작의 저택에 도달한 제럴 경은 엔시아 경과 갈슨 경에게 말했다.

“후환을 없애야 하니 저 저택 내에 있는 자들을 모조리 죽이십시오. 그리고 지하도 철저히 살피고, 너희는 오늘 내가 건네준 금화부터 해서 값이 나갈 만한 것들을 모조리 털어라. 알았나?”

“예!”

“갈슨 경과 엔시아 경은 2층을… 저는 1층을 맡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제럴 경을 비롯한 이들은 저택으로 뛰어 들어가 각자 흩어져서 조심스럽게 침입 루트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나 그들은 어두운 달빛이 비추는 지붕 위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베오날드가 있다는 걸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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