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 육식(六式)-아나콘다’.
‘오식-사이드와인더’의 연장으로 더 먼 거리의 적을 공격하는 검법.
하지만 그것을 펼쳐서 파울을 죽인 베오날드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는데, 죽은 파울은 두 번 만에 자기를 맞힌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베오날드는 총 여섯 번이나 노이멀 육식-아나콘다를 펼친 끝에야 맞힌 것이었다.
“흐음, 역시 멀리서 움직이는 타깃은 맞히기가 어렵군. ‘노이멀 오식-사이드와인더’는 그럭저럭 맞힐 만했는데 말이야. 어쩔 수 없지. 한 번 더 기회가 있으니~ 이번엔 세 번 이내로 성공하지, 뭐.”
지금 아무것도 모른 채 자고 있을 다른 가신인 샨테의 집을 쳐다보면서 베오날드는 미소 지었다.
그래, 기회는 아직 한 번 더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 자신의 실력 향상의 양식이 되도록 이용하는 게 좋은 거라 생각한 베오날드는 샨테의 집으로 향했다.
‘이번엔 실패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아마 지금 구해 낸 사람들과 잡아 온 도적들로 인해서 바쁠 테니 시간 여유는 충분하다.’
물론 영주의 가신인 샨테를 부르러 올 수도 있겠지만, 일단 사람들을 구한 영지 병사들과 민병들은 우선적으로 영주에게 보고하러 갈 것이고, 돌아온 사람들을 보호하고 조치를 취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터였다.
샨테를 처리할 시간은 충분했고, 만약에 누가 온다고 하여도 ‘검’으로 설득하면 그만인 문제였다.
‘이 방법이… 최선이겠지.’
사실 낮에 정당하게 증거를 가지고 체포해서 처벌해도 좋았지만, 이렇게 한 이유는 바로 파울과 샨테의 부하들 때문이었다.
정당하게 처벌하면 이 영지 병력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그들의 부하들이 반발하거나 혹은 다들 일을 그만두고 영지를 떠날 가능성이 있었기에 그냥 우두머리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남기고 떠나게 하는 게 영지의 미래나 상황을 생각해서 가장 좋은 선택지였던 것이다.
‘자기들 의사로 도망친 거니 남은 인원들도 뭐라 못할 거고, 또 그들의 부하도 자신들을 배신하고 갔다고 생각할 테니……. 그럼 남은 일을 하러 가 볼까?’
그리고 베오날드는 샨테에게도 똑같은 제안을 하고 도망치게 만든 다음 ‘노이멀 육식(六式)-아나콘다’로 두 번 만에 처리했다.
또한 증인으로서 보여 주기 위해 데려간 도적 한 놈도 결국 쓸데없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깔끔하게 제거했다.
그러고 나서 완벽하게 해결했다는 만족감을 느끼며 베오날드는 해가 뜨기 전에 몰래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
얼마 뒤.
결국 영지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냐면 편지를 남기고 도망친 파울과 샨테에 대해선 처음엔 다들 놀랐지만 잡아 온 도적들의 진술로 그들이 내통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자 빠르게 이해했다.
“감히 내 영지와 백성들을 노리고 침략한 죄,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으로 갚아라. 강제 노역형에 처한다.”
포로로 잡혀 온 5명은 곧바로 레이온 자작의 분노 어린 판결로 영지 노예형에 처해졌다.
아마 죽을 때까지 하루 종일 서부에 있는 숲의 나무를 베고, 돌을 캐는 일을 맡게 될 것이다.
결국 둘씩 짝지어져 손과 발을 일정 이상 쓰지 못하게 사슬로 묶인 채 곧바로 일을 하러 끌려가는 도적들이었다.
‘무르네. 백성들 앞에서 쳐 죽여서 권위를 회복할 생각을 해야지. 쯧~!’
베오날드는 분노한 영지민들의 돌에 맞아 죽게 하거나 아니면 공개적으로 처형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레이온 자작은 이 시골 영지에 조금이라도 득이 될 행위를 시키는 게 낫다고 본 것이었다.
또 레이온 자작은 도적들을 없애고 백성들을 무사히 구해 준 방랑 기사에 대해서 알아내고자 했지만 야밤이라는 점과 젊다는 것밖에 특정할 만한 것이 없었기에 결국 단기적인 화젯거리로 끝나고 만다.
“하아앗! 흡!”
그리고 베오날드는 홀로 다시 검을 휘두르면서 계속해서 수련에 매진하는 나날로 돌아왔다.
게다가 이번 일로 확인한 것은 여전히 ‘검’이란 신묘하며 더욱더 단련과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기에 그는 한눈팔지 않고 끝없이 수련에 열중했다.
‘마나 수련법은 10년이지만, 검은 고작 5년밖에 안 했으니 말이지!’
보통 기사들은 평생을 걸고 휘두르는 ‘검’의 길이었기에 베오날드는 하찮게 생각하지 않고 견실하게 연습에 힘썼다.
물론 계속 수련실에 꽁 박혀 있는 것을 부모가 가만히 둘 리는 없었는데, 일단 부친인 레이온 자작이 이제 어느 정도 육체가 크다 보니 수련 성과를 본다는 빌미로 대련하자고 할 때가 가장 난감했다.
“하하핫, 마음껏 덤벼 보려무나!”
‘…그러면 죽어요, 아버지.’
자세를 잡는 것만 봐도 이미 마나를 끌어 올리지 않아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진짜 그래선 곤란했다.
자식이 현 가주보다 강하다? 그런 소문이 퍼지면 곤란할뿐더러 엄연히 시골 촌구석 영지라곤 해도 가주는 가주. 그 권위와 자존심이 상해선 곤란했고, 수련하는 자신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으리라.
“허업!”
“끄으으으으으응!”
그래서 철저히 접대 대련으로서 지친 모습을 연기하며 쓰러지는 베오날드였다.
그가 쓰러지자 레이온 자작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격려해 주었다.
“하하하핫! 아직 멀었구나! 멀었어! 그래도 자질은 있는 것 같아서 기쁘구나!”
“예! 하아… 하아… 그러니 더 열심히 수련해야겠네요. 하하하하.”
“그럼!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거라.”
‘노력은 할 건데! 너한테 듣고 싶지 않아! 이 시골 촌뜨기! 벼락 귀족 자식아. 으아아아!’
현생의 아버지에게 나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귀족의 자존심이 삐걱거리는 게 문제였기에 베오날드는 속으로만 삭일 뿐이었다.
이럴 때 위안이 되어 준 것은 바로 어머니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하루 종일 검술 수련에만 빠진 그가 지식이 너무 없어서 다른 이에게 쉽게 속거나 아니면 힘만 가진 무뢰배가 되지 않도록 그에게 다양한 지식과 교양을 쌓게 해 주려고 개인 교습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도 흥미를 가져 줘서 고맙구나. 사실 무예에 관심 있는 아이들은 보통 학문을 지루해하거나 싫증 내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베오날드가 이토록 집중해 줄 줄이야. 훌쩍…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교육을 할 걸 그랬어……. 이 엄마가 몰라봐서 미안해.”
“아뇨. 괜찮아요, 어머님.”
베오날드의 모친은 검술에만 푹 빠져 수련하던 베오날드가 학문을 배우는 것을 싫어하거나 힘들어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자신의 수업을 하나라도 더 듣기 위해 노력하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등등… 문무 양도의 자질을 보여 주고 있어서 매우 놀라는 동시에 감동하고 있었다.
‘…아버지 접대에 비하면 이건 선녀나 다름없지. 그렇게나 알고 싶었던 이 나라와 대륙의 정세, 내가 죽고 난 뒤의 역사를 다 알려 주는데… 내가 더 감사할 지경이지요, 어머님.’
반대로 베오날드의 입장에선 어머니가 알려 주는 현재 이 대륙에 대한 지식은 고맙기 짝이 없었다.
국가의 정세, 주요 귀족 가문, 역사, 교양, 유행 등등… 내실은 좀 얕아도 지금까지 이 깡촌에서 아무 정보도 얻을 수 없던 것에 비하면 답답하던 배오날드의 두뇌를 아주 시원하게 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지금 대륙이 6개의 나라로 갈라지기 전엔 이 대륙 전체를 하나로 통일한 거대한 제국이 존재했단다. 하지만 그 대륙은 어느 날 서로 갈라져서 싸우기 시작했고… 처음엔 하나에서 둘… 이런 방식이 아니라 갑자기 그 거대한 제국이 무너져서 여러 나라로 갈라지고, 서로 싸우고 흡수된 끝에 지금의 6개의 나라가 되었지. 문제는 너무 오랫동안 싸운 탓인지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고 하더구나.”
‘여신의 말로는 500년이라고 했으니 그럼 그동안 계속 분열한 채로 서로 전쟁만 했다면… 지도가 어째서 저 모양인지 이해가 가는군.’
물론 500년 내내 전쟁만 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전쟁과 휴전을 반복하고 서로의 영토를 뺏고 빼앗기고 각종 기록과 기술이 유실되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그럴 법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나 의문이 남은 것이, 적어도 6국이 되기 직전 결국 흡수되는 과정 중에도 전쟁이 일어나면서 뭔가를 발전시켰을 텐데, 그 부분에 대해선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보통 전쟁으로 경쟁이 심화되면 오히려 기술이나 문명은 더 빠르게 발달할 텐데 말이지.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더 많은 병력과 자금이 있어야 하니까. 어디서 뭔가 대륙을 거의 멸망시킬 만한 짓이라도 한 건가? 아니면 암흑신교 놈들이 뒤에서?’
“…그리고 이후 각 나라가 분열하는 동안 여신을 섬기는 교단이 종교를 통해서 전쟁으로 지친 각지의 사람들을 돕고, 지금까지의 이 대전쟁은 모두 신을 모독하는 행위를 통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하며 사람들이 더 이상 그릇된 길을 가지 않도록 이끌고 있단다.”
‘교단?’
“특히 지식의 검열과 제약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지. 그릇된 지식은 무지보다도 더 위험하다는 뜻을 알리고 대륙의 위험이 될 기술과 지식을 없애기 위해서 교단과 성기사단이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단다.”
‘그렇군… 범인은 교단이었군. 그럴 만하지. 그놈들은 뭔가를 발전시키거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걸 싫어했으니…….’
“이들의 주장의 토대가 되는 이야기가 지금도 교단을 통해서 내려오고 있는데, 통일 제국 시대 말기에 위독한 황제를 꼭두각시 삼아 권력을 쥐고 수십 년 동안 대륙 전체에 전횡을 휘두른 간신에 대한 것이란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인데?’
왠지 귀가 가려워졌지만, 베오날드는 계속해서 들었다.
“그는 신의 교리를 따르지 않고, 금지된 지식을 탐구하여 끝없이 자신의 배를 채우며 온갖 악행을 저질렀지. 황금이 녹아서 물처럼 흐르는 강, 보석으로 치장된 정원, 세계의 미녀들을 모두 모아서 장식장에 가두거나 황금 물을 씌워 장식물로 만들어서 즐겼고, 세상에 굶주린 사람들이 넘쳐 나는데도 창고에 쌓아 둔 고기가 썩어 가는 향기를 즐기면서 사람들을 죽이고 각종 고문을 해 대는 것을 즐기는 등등… 셀 수 없을 만큼의 악행을 저지른 자란다.”
‘…이건 아니네. 엄연히 내가 한 일이 아니야. 나는 금화로 강을 만들고, 정원을 장식하는 건 예술품만 취급했고, 미녀들이야 그냥… 첩으로 다 삼았고… 우리 영지 사람들만큼은 모두 배부르게 먹고 살게 해 줬지. 검투 경기장은 유희용으로 지었고 말이야. 암~ 그렇지.’
“그 악마 같은 간신은 도저히 용서 못한 정의로운 성직자와 용사의 손에 잡혀서 결국 죽음을 맞이했지만, 수치스러운 제국 역사에 도저히 남길 수 없는 존재였기에 그에 대한 모든 기록을 삭제하여 ‘이름 없는 간신’이라고 불린단다.”
‘솔직히 저건 너무 심했지. 나 같아도 기록을 삭제할 법해. 그나저나 역시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 베오날드를 뛰어넘는 간신이 나타났을 줄은 몰랐군. 역시 인간은 우습게 볼 수 없어.’
‘이름 없는 간신’에 대해 들은 베오날드는 자신이 그래도 최악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면서 계속해서 모친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끝난 뒤에 무언가를 묻든가 해도 될 것이다.
“하나 문제는 그 뒤로 사람들이 그 ‘이름 없는 간신’이 남긴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서 싸움을 벌였는데… 이게 지금까지 대륙을 분열시킨 대전쟁의 서막이었단다. 교단이 한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대전쟁이 일어난 것은 분명하니까. 그래서 교단이 그 ‘이름 없는 간신’을 악의 원흉이라고 하는 거지.”
‘과연, 그래서 교단이 문명을 퇴화시켰다는 건가? 음~ 정말 누구지? 그 ‘이름 없는 간신’이라는 놈은……. 거참, 얼굴이나 보고 싶네.’
“그리고… 그 ‘간신’의 기록을 삭제했다곤 하지만 가문, 영지에 대해선 조금씩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인해서 교단의 주장이 아주 허황된 것만은 아니라는 게 증명되었단다. 그래서 용병이나 트레저 헌터들은 지금도 과거의 기록을 찾고 또 찾아서 그 ‘이름 없는 간신’의 영지라고 이름만 내려져 오는 ‘베노피스’라는 영지를 찾아 헤매고 있단다. 세계의 대전쟁을 만들 정도로 엄청난 보물들이 잠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뭐? 지금 어디라고?’
‘베노피스’. 바로 자신의 전생의 가문인 노이멀 가문 영지의 이름.
그 이름이 나오자 베오날드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굳어 버렸다.
“후훗, 재미있었니? 물론 어디까지나 전해 내려오는 설화 같은 이야기이니 너무 그렇게 진심으로 반응할 필요 없단다, 베오날드. 수업은 여기까지 할 건데, 엄마랑 이제 차나 한잔 마실까? 응? 베오날드? 베오날드?”
‘그러면 그… ‘이름 없는 간신’이 바로… 나였던 거야?’
더 충격적인 것은 방금 전 모친이 한 이야기의 간신이 자신의 전생이라는 것이고, 그 내용이 아주 심각하게 과장되었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