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이런 젠장! 하, 하지만 상대는 비무장이고 한 명뿐…….”
도적들의 대장은 슬금슬금 물러나면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려 했다.
하지만 보랏빛 잔상과 함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목이 분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목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보랏빛 그림자는 동시에 5명을 모두 베었고, 순식간에 32명 중에 6명이 죽어 버렸다.
그것을 본 다른 도적들을 경악했지만 베오날드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쉽군. 날벌레를 잡는 게 이거보다 더 쉬울 지경이야.’
‘마나 수련법을 익힌 검사’로서의 실전이 처음일 뿐, 대귀족이었던 베오날드 폰 노이멀 공작은 엄연히 전쟁터를 밥 먹듯이 다녔으며, 가문의 주인이 되기 전에는 잔혹한 선대 노이멀 백작에 의해 ‘배다른 형제’들끼리 죽였던 경험까지 포함해서 생명을 빼앗는 일엔 너무나 익숙했다.
“히익! 뭐야? 이거! 보이지가 않잖아!”
“대, 대장이 죽었는데 어떻게 하지?”
“상대는 마나 수련법을 익힌 기사인 것 같다. 이, 일단 빨리 방진을 짜! 놈은 무장이 가벼워! 그러니 공격해서 맞히면 승산이 있……!”
운이 없게도 입을 놀리는 자의 목이 또다시 허공에 굴렀다.
마나 수련법을 다루는 기사와 일반 병사는 어린아이와 어른만큼이나 신체 능력의 차이가 컸다.
그 점은 베오날드도 익히 알고 있었다. 황실 기사단의 마나 수련법으로 10년간 쌓아 온 마나의 힘으로 뿜어내는 오러, 이건 더 이상 싸움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학살극 혹은 베오날드의 벌레 사냥이었다.
‘음, 사냥은 여흥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건 꽤 할 만하군.’
스스로 마나를 소모하고 육체를 괴롭히던 수련에 비하면 너무나 시시한 싸움이었다.
애초에 도적놈들에게는 강자와 싸울 용기가 있을 리 없었지만 말이다.
“이 개자식! 멈춰! 이 영지민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무기를 버려… 컥!”
서걱!
묶여 있는 영지민을 인질로 잡은 도적 하나가 그 목에 칼을 대었지만 도적의 목이 먼저 날아갔다.
하나 그사이에 다른 도적들이 영지민들을 방패로 삼으며 인질극을 벌이는 데 성공했다.
“다, 당장 멈춰! 이 개자식! 지금 이거 안 보여? 움직이면 진짜 죽는다! 죽는다고!”
“멈추라고! 우리 말 안 들……! 아아악!”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네. 무슨 생각으로 인질을 잡은 거지?’
보통 사람이라면 도적들의 비겁한 행위에 대해서 규탄을 했겠지만, 전통 대귀족이자 수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던 베오날드에겐 말도 안 되는 거래로 보일 뿐이었다.
그의 기준에선 귀족의 생명은 당연히! 평민의 목숨보다 가치 있는 것이었고, 대귀족인 자신의 목숨이라면 수십만의 평민 정도는 되어야 비벼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제, 젠장! 너 뭐냐고! 제정신이 아니냐고! 여기! 여기 놈들이 죽는 걸 그대로… 억!”
“저, 저 자식, 말이 안 통해! 제기라아아아알!”
인질 작전에도 베오날드가 눈 하나 깜짝 안 하자 도적들은 결국 그 작전을 포기했고, 19번째 도적의 목이 베인 시점에서 싸울 의지를 잃고 모두 흩어져서 각자 살길을 찾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사, 살려 줘어어!”
‘이제야 도망을 치는군. 하지만…….’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 오식(五式)-사이드와인더’.
사막에 사는 기묘한 뱀의 움직임을 딴 검. 마나를 응집시킨 검기가 S자로 파도를 타듯이 굽이치면서 나무를 피해 날아가 그대로 도망치는 도적의 뒤통수에 꽂히자 머리가 펑 터져 버렸다.
사실 굳이 노이멀 가문의 검법을 쓸 것도 없이 술에 취한 도적 따위 그냥 쫓아가서 베어도 되었지만, 혼자서 익히기만 한 검법의 실전 테스트를 하기에 딱 좋지 않은가?
그러던 중 수레 아래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는 도적 하나를 더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벌레는 도망치지 않고 숨어 있었네?”
저택에서는 귀엽고 착한 10살 아이를 흉내 내느라 속내를 드러낼 일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피를 봐서인지 베오날드는 점차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수천, 수만의 사람을 죽게 놔두고, 자신을 위협하는 자에겐 비정하고 잔혹했던 대귀족 베오날드 폰 노이멀 공작의 본성 말이다.
인간 위의 인간. 아랫것들을 버러지로 생각하는 그 시선에 살기를 담자 정말로 포식자에게 노림받는 듯한 살기를 느끼는 도적이었다.
“제, 제발! 제발 살려 주십시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그러니…….”
“그럼 얌전히 있어 줄래? 사냥이 끝날 때까지 무기는 버리고 옷 싹 벗은 채로 양손을 머리 위에 올리고 있으면 살려 주지.”
“예! 아, 알겠습니다!”
‘영주 체면도 돌려놔야 하니 말이지.’
세 번이나 속수무책으로 습격을 당한 터라 아버지의 권위가 좀 내려갔을 터였다.
그래서 영주인 아버지에게 넘겨서 영지민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처형시킬 생각으로 살려 둔 것이었기에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압도적인 유린을 한 베오날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후~ 이걸로 끝이군. 생각보다 힘 좀 썼는걸? 실전은 역시 다르군.”
결국 전투… 아니, 베오날드의 사냥은 손쉽게 끝이 났다.
항복한 자 6명, 시체 23구, 도주 3명. 쫓아가서 모두 참살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상관없다고 생각한 베오날드는 몸을 돌려 잡혀 있던 영지민들을 모두 풀어 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면서 베오날드에게 감사의 인사와 찬양을 하기 시작했다.
“가, 감사합니다, 젊은 기사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정말로요. 이대로 노예로 팔려 나가는 줄 알았습니다요. 엉엉어엉!”
“봐. 역시 캘러메인 백작가에서 가만히 있지 않는다고 했잖아.”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 나를 캘러메인 백작가에서 파견 나온 기사로 생각하나 보네. 하긴 내가 워낙 저택에서 안 나가기도 하고… 오러를 쓰는 걸 보고 그리 짐작했나 보군.’
외양은 충분히 15세쯤으로 보일 법한 키와 체구였지만 현재 베오날드는 귀여운 10살. 가끔 추수감사제나 축제에 얼굴을 보이긴 했지만 성년이 아닌지라 대부분 어머니 옆에서 아버지가 연설하는 것만 지켜보던 역할이었고, 저택에서 계속 수련만 했던 터라 영지민들과의 대면은 극히 적었다.
‘하긴, 날 알아보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
아무튼 그 오해를 풀지 말지는 좀 더 주판을 두드려 봐야 했지만, 베오날드는 일단 현장부터 정리하고자 했다.
“다들 아직 긴장을 늦추어선 안 됩니다. 도망친 자들이 지원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어서 이동할 준비를 합시다.”
“아, 예! 알겠습니다, 기사님.”
그렇게 사람들은 즉시 베오날드의 명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잡은 산적들을 구속한 채로 영지로 돌아갔다.
그동안 혹시나 도망친 도적들이 정말로 보복하러 올까 싶었지만 다들 그 두려움 덕분에 발걸음을 빨리한 덕인지 약 45분 만에 영지 경계의 목책이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나 완전히 도달하기 전에 베오날드는 잠시 일행을 멈추게 하곤 잡혀갔던 사람들 중 가장 연장자에게 말을 걸었다.
“왜 그러십니까? 기사님.”
“아, 그게… 사실 전 캘러메인 백작가의 기사가 아니라서요. 그냥 방랑하던 기사입니다. 미리 오해는 풀고 싶어서 말이죠.”
오면서 주판을 튕긴 결과, 캘러메인 백작가의 기사로 오해하게 둘 순 없다고 생각한 그는 빠르게 정정을 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 아니라 그는 수레에 실은 도적들의 두목과 파울, 샨테와 접촉했던 전령의 수급과 포로 하나를 챙기며 말했다.
“그리고… 이 수급들이랑 이 친구는 제가 좀 쓸 곳이 있어서 그런데 괜찮으시죠?”
“예? 뭐… 예, 그러십시오, 기사님.”
“그럼 이만… 아, 쓸데없는 소리는 가능한 한 안 하는 게 좋을 겁니다. 다 사정이 있는 거니까요.”
보랏빛 오러를 슬쩍 일으키면서 노려보자, 영지민은 머리카락이 흩날릴 정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무위는 이미 30명이 넘는 도적들을 상대로 지치지도 않고 손쉽게 이긴 것으로 충분히 겪었기에 거역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예! 예! 물론입니다요!”
그렇게 베오날드는 일행과 헤어져 곧바로 도적 포로 둘을 데리고 파울의 집 쪽으로 조심스럽게 향했다.
영지민들이 돌아온 떠들썩한 소식이 그들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말이다.
그는 가자마자 포로와 함께 파울의 집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어떤 자식이 이런 시간에 무슨… 어? 도, 도련님?”
그래도 영주의 가신인 만큼 영주의 아들인 베오날드와는 몇 번 인사를 나누고 면식이 있었던 만큼 파울은 금방 그를 알아보고 놀라는데, 베오날드는 인사를 나눌 새 없이 그에게 선물을 바로 내밀었다.
“이 사람들, 아는 얼굴이지?”
“으아악!”
아닌 밤중에 웬 손님이 왔나 싶어 신경질 내면서 문을 열었던 파울은 눈앞에 죽은 도적 두목과 몇 시간 전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전령의 목이 나타나자 기겁을 하고 소리쳤다.
‘뭐, 뭐야? 대체?’
사람의 시체엔 익숙했지만, 작당 모의를 한 두 사람의 수급이 보이자 심장이 덜컥하는 공포와 함께 그는 덜덜 떨었다.
“가가, 가가갑자기 뭡니까? 이런 시간에 사람 목을 내밀고… 그, 그놈들은…….”
“아아~ 오리발을 내미시겠다? 여기 자네가 도적들과 짜고서 이 영지를 약탈할 계획을 세웠다는 증거랑 증인도 있는데?”
“허, 헉! 그건!”
베오날드가 내민 서찰을 본 파울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래, 몇 시간 전에 자신이 전령에게 준 이 영지의 방비에 대해 써 놓은 서찰이다.
필적도 자신의 것인 데다, 정말로 뒤의 나무에 묶어 놓은 증인인 도적을 보여 주자 더는 발뺌할 도리가 없었다.
“이, 이런 제길……! 그나저나 도련님이… 설마 그놈들을 잡으신 겁니까?”
“그랬다면?”
“…마, 말도 안 돼.”
아무리 성장이 빠르다곤 하지만 그래도 베오날드는 10살이다.
저택에서 보았을 때도, 그는 몸은 성장했지만 천진난만한 눈빛과 어린 말투로 자신을 맞이했는데, 지금 눈앞의 베오날드는 영락없는 귀족 어르신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숨 막힐 것 같은 살기와 위압감. 용병 생활하면서 정말 가끔 본 높으신 분들이 내뿜는 그 기운과 같은 것이었다.
“아, 아무튼 직접 체포하러 오신 것 같지는… 아, 않은데. 그, 그걸 들고 오셨다는 건 저에게… 뭔가 원하시는 게 있어서 아닙니까?”
“원하는 거? 딱히 없어. 그냥 조용히 떠나길 바랄 뿐이야. 무슨 이유를 대든 간에 상관없어. 떠난다고 편지를 남기고 얌전히 여길 떠나.”
“그, 그거면 되, 되는 겁니까?”
“오랫동안 함께한 동료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걸 알면 아버지가 상처 받잖아. 빨리 쓰고 떠나. 안 그러면 그냥 죽일 거다.”
‘저, 저게 어떻게 10살짜리란 말인가?’
숨 막히는 살기와 위압감, 은은히 피어오르는 보랏빛 오러를 보아선 마나 수련을 거친 기사 같기도 했다.
특히 저 벌레를 쳐다보는 듯한 고압적인 눈빛이 두려웠던 파울은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재빠르게 손을 놀려서 이곳을 떠난다는 편지를 써 내려갔다.
“그, 그럼 가… 가 보겠습니다. 도, 도련님,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래, 다신 오지 마라.”
“예, 그럼…….”
그렇게 파울은 뒤도 안 보고 잽싸게 길을 나섰다.
저 눈빛, 예전에 용병 생활을 하면서 많이 보아 온 눈이었다.
거물 중의 거물들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눈빛. 다른 인간의 목숨을 코 후비는 것보다 더 쉬운 일로 생각하는 거물 중의 거물들이나 보이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것은 정통 귀족도 아닌 이런 시골의 10살짜리가 보일 수 있는 눈빛이 아니었고, 절대로 무조건 피해야 할 존재였기에 파울은 살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후욱… 후욱… 후욱! 이, 일단… 일단 캘러메인 영지로…….”
쐐액! 퍼엉!
그렇게 영지를 벗어나 한참을 달려 나간 순간,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머리 옆에 있는 나무가 ‘펑!’ 하고 터져 나갔다.
‘빌어처먹으으으을!’
그것을 본 파울은 안색이 파래진 채로 더욱 발걸음을 빨리했다.
하지만 이미 한참을 숨도 안 고르고 뛰어온 터라 속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억… 안 돼. 제발… 사, 살려…….”
두려움에 떨던 파울은 결국 베오날드 도련님이 자신을 살려 두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공포에 떨었다.
그러고는 두려움에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고개를 돌리는데, 보랏빛 오러로 된 검기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생애 마지막 풍경이 되면서 그대로 머리가 터져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