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신도 쓸데가 있다-2화 (2/259)

[2화]

[당신이 죽고 난 이후 약 50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큰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파괴와 멸망을 부르는 암흑신 세력이 마족들과 마왕들을 불러내어 암약하고 있습니다. 한데 그것을 막아야 할 인간의 나라들은 아무리 신탁을 내려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바로 살아 있을 때의 당신과 같은 간신들 때문입니다.]

“아, 예. 그… 500년이나 지났을 줄은 몰랐군요. 그보다 저 같은 자라니요. 누가 봐도! 지성과 귀족의 품위를 겸비한 제가 월등한데 말이죠!”

[…….]

“죄송합니다. 입 다물겠습니다.”

여신의 눈빛에 바로 깨갱한 베오날드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

그의 반응을 본 여신은 다시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크흠! …그들은 권력과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들의 이익과 욕망만을 위해 전횡을 펼칠뿐더러 이미 나라의 운영 전반을 휘어잡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대신관에게 신탁을 보내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데 그동안에도 세상 아래에서 암약하는 암흑은 점점 커지는 중입니다.]

“저도 대륙의 역사라든가 신화, 전설 같은 걸 여기저기 봐서 아는데, 그런 긴급 사태의 경우 보통은 ‘용사’ 같은 걸 보내시지 않으셨나요? 물론 저희 시대는 너무나 태평성대라서 그런 게 없어서 전혀 모르지만 말입니다.”

베오날드는 간신이지만 귀족 중의 톱. 황제 및 황가는 물론 다른 귀족가의 환심을 사야 했기에 연금술 외에도 대륙의 역사, 신화, 전설을 모티브로 한 연극과 오페라 공연에도 꼬박꼬박 참석해서 여러 가지 지식에 대해 빠삭한 편이었다.

‘가끔 몬스터나 이교도들이 난리 치려고 하면 미리미리 제압하긴 했는데… 이상하네?’

전설에 따르면 암흑신 세력이 커질 때마다 그들을 처단하고 세상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나타나는 용사라고 하는 존재가 분명 있다고 나와 있었다.

[물론 용사도 보낼 생각입니다. 하지만 세계를 구하기 위해선 용사 하나의 무력만으론 부족합니다. 용사가 아무리 강하고 유능하다고 해도 한 사람의 인간이며 그가 가장 위험하고 큰 핵심적인 일을 해야 하고, 암흑신의 추종자와 다른 인간들이 벌이는 일은 각 나라와 인간들이 해결해야 하죠.]

“아하, 그렇군요. 하하핫. 하지만 천국에도 아마 저보다 더 뛰어난 분들이 많이 계실 텐데요?”

[이미 성군과 재상, 영웅들의 영혼 중에서도 몇 명을 보냈습니다. 하나 지금 세상의 상황을 생각하면 밝은 면의 사람만 배치해선 이 다급한 시간 내에 모든 일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어두운 면의 내부에서 도움을 줄 자가 필요하죠. 그래서 간신으로서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만 했지만 다양한 방면에서 유능했던 당신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간신들은 능력이 없는 주제에 욕심만 커서 큰 권력을 얻기 위해 온갖 불법을 일삼으며 권력자에게 아첨하고 뇌물을 바치면서 붙어 있던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베오날드의 경우 자신의 능력도 좋았기에 황제를 구워삶고 한 나라의 2인자로서 권력을 휘두르며 전횡을 일삼았다는 차이가 있었다.

[귀족으로서도 대단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연금술과 약학뿐만 아니라 실증 학문은 물론 과학에도 조예가 깊은 점이 지금 상황에서 특히나 필요합니다. 제국을 뒤흔든 간신이지만 단순히 권력에 기댄 기생충이 아니라는 점이 특별하지요.]

“그거야 가문에서 가주가 되기 위한 일을 하다 보니 익힌 거라……. 허허허, 아무튼 능력을 알아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시키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하겠습니다.”

어차피 베오날드에겐 다른 선택지라곤 해 봐야 지옥으로 돌아가서 바삭하게 튀겨지는 일밖에 없었기에 무조건 머리를 조아리고 여신이 하는 일을 하겠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뭘 하든, 어떤 상황이 오든 간에 지금 지옥에서 고통받는 것보단 나으니 말이다.

[하아~ 1만 년 지옥형을 받은 악인이기에 믿기가 심히 어렵지만, 지금 세상이 큰 위기이니 믿기로 하겠습니다. 만약 세계를 지켜 내는 데 성공하면 당신에게 내려진 지옥형 1만 년을 모두 제하고, 당신의 소원 하나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배신할 시엔 제 ‘이름’을 걸고서 영혼이 소멸할 때까지 무간지옥의 고통에 빠지게 해 드리지요.]

‘간신’이었다는 점에서 자신의 명령을 그대로 이행할지가 불분명할 정도로 신용 점수가 너무나 낮은 베오날드였기에 여신은 자신의 ‘이름’을 건 협박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

‘…수작 부리면 끝장난다는 거군.’

[그럼 이제 다시 세상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아! 자, 잠시만! 여신님? 그런 중요한 일을 맡기실 거면 그냥 보내시면 안 되죠. 뭐로 태어나는지도 중요하고, 어떤 신분, 어떤 인물로 태어나느냐가 심각하게 중요하니 일단 조건 같은 걸 고려해서 위치부터…….”

베오날드는 급하게 여신을 불러 세우며, 아무리 자신이라고 한들 노예나 평민으로 태어나면 그 힘을 펼치기가 힘들다는 것을 어필했다.

상황이 급하다고 했으니 기왕이면 공작이나 후작, 그게 무리라면 다시금 백작가 정도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속마음을 품은 채 여신을 바라본 것이다.

[걱정 마세요. 저는 당신의 능력을 믿습니다.]

“아니아니아니! 믿지만 마시고요!”

[역시 안 된다는 건가요? 그럼 다시 지옥으로 돌려보내야겠군요. 형이 아직 9,500년이나 남은 걸로 아는데요?]

“뭐, 뭐든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앞으로 9,500년 동안이나 지옥에서 고통받을 걸 생각하니 끔찍해진 베오날드는 고개를 저으면서 지금 자신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자각했다.

그래, 노예로 태어나 이승을 굴러도 적어도 지옥에서 구르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좋은 태도군요.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그래도 태어나자마자 죽거나 할 장소는 아닌 곳으로 배정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곳에서 누굴 돕고, 누구를 처리해야 할지를 모를 수 있으니 제가 보낸 다른 이들을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조치하지요.]

“예, 옙!”

[그럼 가 보세요. 부디 이번 생(生)엔 좀 착하게 사시길.]

마지막 당부이자 충고 같은 말과 함께 여신이 손을 흔든 그 순간, 베오날드의 의식은 스위치를 끈 기계처럼 멈춰 버렸다.

…….

…….

…….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잠에서 깨듯이 서서히 감각과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베오날드는 천천히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응애! 응애! 으, 응애(잠깐! 이거! 뭐, 뭐야)?”

하지만 자신의 입에서 나온 것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였고, 몸을 아등바등 놀리려 하지만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앙증맞고 작은 손만이 자신의 눈앞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이게 나… 아기인가?’

그렇게 역사에 길이 남을 간신 중의 간신, 지옥에서 1만 년의 형을 받은 ‘베오날드 폰 노이멀’은 여신이 내린 사명을 받아 다시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그는 본능에 따른 건지 유모로 보이는 중년 여성의 시중을 받으면서 주변 상황을 빠르게 살폈다.

다시 태어난 상황에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지만, 전통 귀족이었던 베오날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자신이 어느 신분, 어느 계급으로 태어났느냐? 였다.

‘일단 천장이 수풀이나 나무로 된 게 아닌 걸 봐선 평민이나 농노 집안은 아닌 것 같고, 차려입은 유모를 보아하니 확실히 귀족 집안 혹은 못해도 상인 가문으로 짐작할 수 있겠군.’

일단 집 천장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서 안심했다.

‘하긴 여신이 이 ‘베오날드’를 되살려서 써먹을 생각이 있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세력이 되는 집안에 태어나게 하는 게 정상이겠지.’

베오날드의 옛… 아니, 이젠 전생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가 전생에 태어났던 노이멀 백작 가문은 그가 가주가 되기 전에도 이미 황실 기사단에 자식들을 보낼 정도로 뛰어난 명문가이자 왕당파의 기둥 중 하나였다.

다만 그 순위가 위의 후작이나 대공들에게 밀려서 후위였을 뿐, 그것을 베오날드가 가주가 되어서 병약한 황제를 등에 업고서 기세를 올렸던 것이었다.

‘물론 배경이 아무리 좋아도 집안에 경쟁자가 많다든가, 권력이 약해 빠진 기반의 가문이면 난감할 따름이고……. 아무튼 세계의 위기니 뭐니 하는 상황이니 여신이 장난을 치진 않겠지?’

“Aga… miinn…….”

‘음? 어? 잠깐? 설마 이거 내 어머니인가?’

그때, 자신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품에 껴안고 젖을 물리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모친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챈 베오날드는 자신의 몸이 본능에 따라 젖을 빠는 것을 느끼면서 모친의 얼굴을 바라봤는데, 그 얼굴을 본 순간 낭패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젠장… 얼굴에 화상이라니!’

왼쪽 얼굴은 비단결 같은 검은 머리카락에 푸른 눈을 하고 있는 자애로운 미녀의 모습이었지만, 다른 쪽 절반이 화상 자국이 남아 흉측하게 된 얼굴이었던 것이다.

귀티 나는 얼굴에서 일단 귀족 집안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던 것과 별개로 화상 자국에서 베오날드는 그 집안의 위상이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낼 수 있었다.

‘모친… 그러니까 이번 생의 어머니가 가진 저 상처를 결혼 전이든 결혼 후든 간에 저렇게 안 고치고 놔두는 거 자체가 신전에 기부 액수가 적고 집안의 권세나 돈이 부족하다는 뜻인데……. 안 그랬으면 진작 고쳤겠지. 반대편을 보니 충분히 미인인데…….’

귀족 가문에 있어서 ‘여성 혈족’은 혈맹과 동맹을 늘리거나 사교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가문의 큰 재산이다.

귀족 남성의 전장은 정치와 전쟁터라고 한다면 여성의 전장은 바로 사교계. 거기에 여러 가문이 그나마 믿고 맺을 수 있는 혈맹을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그 관리는 절대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젊고 아름다운 미인일수록 그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거기에 지성과 교양, 예법은 사교계에서의 싸움을 위해서 익혀야 하는 것인데, 애초에 얼굴 반쪽을 저렇게 화상으로 태워 먹으면 그 가치는 땅으로 떨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본판이 좋으면 천금을 들여서라도 고쳐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시점에서 그녀의 가문의 격을 눈치챌 수 있었다.

‘물론 가문 내에서 혈족 간에 분쟁이나 암투로 인해 저렇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래도 일단 저런 상태로 보낸 시점에서 끝이지.’

가문을 위해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없는 혈족은 그야말로 농노만도 못한 밥버러지 그 자체. 팔려 갈 곳도 없이 결국 평생 집에 갇혀 있다가 죽을 운명이었다.

그나마 자신의 모친은 그런 운명에서는 벗어나서 어딘가에 시집이라도 온 모양이지만, 그 집안도 결국 좋지 않은 게 분명했다.

‘…좋은 집안이긴 글렀고, 그렇다고 좋은 대우를 기대할 수도 없을 것 같다. 하여간 망할 여신 같으니…….’

쭙쭙…….

머리로는 이 복잡한 상황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몸은 알아서 엄마 젖을 쭉쭉 빨고 있는 아이러니한 모습의 베오날드였다.

그리고 이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하려는데,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눈이 감기는 것이 느껴졌다.

갓 태어난 아기의 몸으로 너무 많은 연산을 했더니 뇌가 피로해진 것과 동시에 배가 부르니 자연스럽게 잠이 오는 것이리라.

‘으으… 역시 너무 어린 몸이라. 잠이… 쏟아지려고 해.’

갓 태어난 몸은 주인의 혹사에 자연스럽게 의식을 끊어 버리고, 베오날드는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

3개월 뒤.

베오날드는 어린 아기 상태에서도 열심히 눈치를 살피고 곳곳에서 정보를 모으고 말을 배워서 태어난 지 세 달 만에 겨우겨우 이 저택과 집안 부모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가장 어려웠던 건 역시 언어였는데, 자신이 살던 때에서 500년이나 지난 만큼 체계가 많이 바뀌어서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린 게 문제였다.

‘뭐, 아기 상태에선 자는 거 빼곤 남는 게 시간이니……. 하지만 상황이 너무 안 좋아. 쭙쭙…….’

어머니의 젖을 빨면서 베오날드는 자신이 태어난 이 집안에 대해 생각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가문은 더스티클록 자작가, 변방의 아주 작은 귀족 가문이다.

일단 가문 이름에서부터 정말 빈궁함이 느껴지고 있었는데……. 더스티클록(Dustycloak), 즉 ‘먼지투성이 망토’라는 뜻으로 선대 가주가 가문의 시초인, 아주 근본 없는 벼락출세한 귀족 가문이었다.

‘…대강 떠드는 이야기를 종합해 보니, 가문의 시초인 할아버지가 본래는 근본도 없는 용병이었지만 당시 대전쟁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대귀족 양반을 망토가 더러워지고 아주 해질 정도로 고생해서 구한 다음 그 공훈으로 기사 서임과 동시에 귀족 작위를 받은 것이라는 거군.’

거기에 덤으로 그 대귀족은 자신의 딸과 그의 아들을 연결시켜 주었고, 자신이 바로 그 사이에서 나온 자식이었다.

즉, 외가는 나름 권세가 있는 대귀족이었지만, 어머니의 상태로 보아서 딱 봐도 이건 땡처리에 가까운 혼약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대귀족님의 은혜로 벼락출세한 양반이니 거부할 수도 없었겠지. 그냥 사람 하나 데리고 돌본다는 느낌이지. 아무튼 이제부터인데…….’

“으으음~ 우리 천사님, 대체 뭐가 불만이라서 또 인상을 찌푸리시나요? 젖은 아까 줬고, 잠도 잘 재우고, 트림도 했고, 실례는 안 한 것 같은데… 으음~”

‘그런 거치고는 모친의 성향은 온화해 보이는군. 하긴 흠집이 좀 났지만 그래도 대귀족이 내려 준 은혜인데 무시할 순 없겠지.’

어린 아기 얼굴로 도저히 할 수 없는 냉정한 생각을 품는 베오날드였다.

하지만 그런 그의 고민을 모르는 듯 모친은 한없이 천사 같은 자신의 아이의 볼을 쿡쿡 찌르며 미소 짓는다.

“뭐~ 가~ 그렇~ 게~ 불만이세요? 후후훗, 다른 애들은 막 울고 난리를 부리는데~ 너무 조용해도 불안한데~”

“여보, 나, 나 왔소. 베오날드는 잘 있었소?”

갑자기 들어온 것은 이 더스티클록 가문의 가주이자 현생의 아버지인 레이온 더스티클록 자작. 진한 갈색 머리칼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다부진 체격의 건장한 남성으로, 바깥일을 보고 온 듯 갑옷 차림에 땀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베오날드와 모친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럼요! 우리 베오날드가 어찌나 착한지~ 오늘도 잘 안 울고 잘 있답니다. 역시 신의 축복이 틀림없다니까요.”

참고로 현생의 이름이 똑같이 베오날드인 것은 아기일 때 들어 본 결과, 자신이 태어난 날 수행하던 신관과 성기사가 계시를 받고 이 집에 들러서 이름을 점지해 주고 축복해 준 결과물이었다.

물론 당사자인 베오날드는 그것이 여신의 농간이라는 것을 눈치챘지만 말이다.

“오오~ 귀여워. 허허허, 우리 아들~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 하하하하~”

“죽다니요. 후후후~ 하긴 그 정도로 귀여우니 무리도 아니죠.”

하하호호 웃으면서 행복해하는 부모를 본 베오날드는 화목한 가정인 것 하나는 그래도 과거보단 낫다는 생각을 했다.

왕실의 측근이자, 전형적인 귀족 가문이었던 노이멀 백작가 시절, 나름 명문 라인에 올랐지만 그래 봐야 왕당파에서 후순위였던 가문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선대 가주, 즉 그 시절 아버지는 정말 지독한 인간이었던 것에 비하면 말이다.

‘나도 한 악명을 쌓았지만, 그 인간이 가문과 영지 내에서 한 짓은 더욱 지독했지.’

그 악명 높은 자의 이름은 바로 벨릭스 폰 노이멀 백작.

영지 내에 초야권 행사는 물론이고, 영지 내 첫 아이는 무조건 자신의 아이를 낳게 해서 세금으로 갖다 바치게 만든 악독한 인간이다.

물론 표면적으론 자유롭게 부과하라고 했지만 ‘아이 세금’을 낸 자와 내지 않은 자의 차이가 명백할 정도로 영지민들을 대우했기에 안 바치곤 살 수 없었다.

‘나도 그 세금으로 바쳐진 아이 중 하나였지. 후우~ 그래서 모친의 얼굴도 몰랐고 말이야.’

아무튼 벨릭스 폰 노이멀은 이 방식으로 수백, 수천 명의 아이를 모아서 그저 최고의 차기 가주를 만들고자 생각했고, 마치 동방의 고독인 양 무수히 낳고 낳아서 그 안에서 서로 죽고 죽이게 만들어서 정점 경쟁을 시킨 잔혹하고 미친 자였다.

‘내가 가주가 되고 바로 그 미친 짓을 멈추게 했지만, 아무튼 그것에 비하면 지금 가정은 아주 천국이지.’

당연하지만 그 미친 부모들에 비하면 지금 이 부모들은 천사에 가까웠다.

‘…화목하고, 죽을 위험이 없는 거 하나는 좋은 거겠지.’

그런 거치고는 상황이 매우 안 좋았지만, 그래도 현 상황을 바꿀 순 없는 노릇이니 베오날드는 이 자작가 집안에서 어떻게 권력의 중추로 올라갈지 본격적으로 고민에 들어갔다.

물론 고민하니 금방 배가 고파져서 어린아이의 몸은 저절로 밥을 달라고 울기 시작했고, 다시 엄마 젖을 물었지만 말이다.

‘젠자아아아아아앙!’

쭈웁쭈웁!

그건 그거고, 몸은 아기이지만 정신은 이미 어른이라서 자괴감이 컸기에 하루라도 빨리 크고 싶은 베오날드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