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베오날드 폰 노이멀 공작.
이 대륙의 역사 속에서 간신 중의 간신으로 손꼽히는 자.
성정이 유약한 황제의 측근이 되어 정치와 군사 활동, 각종 사업을 독점한 지 어언 60년. 그의 영지 ‘베노피스’에 있는 그의 저택은 황성보다도 더 거대하고 화려한 곳이라 기록되어 있었다.
가문의 상징인 ‘히드라의 문양’이 새겨진 깃발 아래엔 아름다운 보석으로 장식된 예술품과 조각상이 즐비했고, 다른 한쪽엔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면서 만든 마법 설비까지 동원한 금화가 흐르는 강이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거기에 각종 희귀 마물과 동물로 채워 놓은 동물원과 저택 한쪽엔 그 동물, 마물들과 노예나 검투사들이 경기를 하게끔 투기장도 세워져 있었고, 그곳은 매일같이 비명 소리와 죽음의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해서도 감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추잡하고 탐욕스러운 비인외도의 삶을 보냈으며, 보물고엔 백성들과 다른 귀족들에게서 뜯어낸 수많은 보물들이 가득했다.
또한 그는 간신이라곤 하나 정치적 수완이나 사업성, 음험함의 지혜는 모자라지 않아서 그의 아래 수많은 악당들이 그가 제공하는 권세와 성적, 물적 탐욕에 물들어 그를 지켜 주고 있었다.
거기에 오랫동안 권력을 누리고 싶어 하는 성향 때문인지 온갖 방법으로 불로장생을 연구하던 터라 연금술과 의술에도 조예가 깊어 독살 같은 시도도 무효화하며 역으로 자신이 독으로 암살을 해낼 정도로 뛰어났다.
일인지상 만인지하의 위치에서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던 압도적인 권력자. 영원할 것 같았던 베오날드 폰 노이멀 공작의 전횡은 병약한 선대 황제와 어린 현 황제까지 포함해서 2대 동안 이어졌고, 그렇게 약 60년 동안 제국의 2인자로서 군림했으나 결국 성인이 된 황제와 수많은 충신들의 활약으로 그 권세는 막을 내리게 된다.
“…천하의 간신, 악독한 베오날드 폰 노이멀 공작이 저지른 죄목은 이뿐만 아니라…….”
‘결국 이렇게 가는 건가?’
그렇게 대륙과 제국의 2인자였던 백발의 머리칼을 한 노년의 베오날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간신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게 건장하고 인상도 좋은 노인의 모습이었다.
인간 내면의 선악은 외모와 관계없다는 걸 알려 주는 또 하나의 지표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는 지금 넝마 쪼가리 죄수복 한 벌을 입은 채로 사형대 앞에 올라서서 처형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앞과 뒤에선 여러 귀족들과 백성, 신관들이 앞다퉈서 자신의 죄목을 떠들어 대고 있었고, 모여 있는 사람들은 죄목을 읊는 사람에게 호응하며 뭐라 뭐라 외치는 중이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는 모든 게 허무하다는 눈빛으로 자신이 평생 쌓아 온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며 죽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죽는 순간까지 귀족의 의무를 다하는 게 너무나 힘들군. 하~’
죽음의 공포는 모든 생명체에게 똑같은 것이었지만 그는 가주가 된 이후부터 평생을 대귀족으로 살아왔기에 프라이드가 높았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고고한 척, 태연한 표정으로 내색은 안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울고불고한다든가, 아니면 고해성사라든가, 자신의 인생사를 끝까지 읍소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차피 죽일 거면서 말이 왜 저렇게 많은 건지 모르겠군. 다들 보이는 모습은 나와 다를 바 없는 주제에 뭐가 그리 잘난 듯 이야기하는 건지. 참 나~’
사형을 기다리면서 그는 지루한 나머지 연설 소리에 신경을 끄고 저 멀리 풍경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평생 심혈을 기울여 일궈 낸 ‘베노피스 영지’ 곳곳이 불타고 있었으며, 병사들과 백성들이 그가 평생을 노력하여 모은 재보를 가지고 싸우거나 분주히 옮기는 모습들이 보였다.
또 자신에게 협력해서 잘 먹고 잘살던 가신들이 이미 처형당해 목이 매달린 광경도 보였고, 건물들이 폭발하고 무너지는 소리도 이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우스워지는군.’
그 광경은 자신의 처형을 위해서 정의니 신벌이니 떠들어 대는 것과 너무나 대조되어 아이러니했다.
놈들도 결국 자신처럼 되고 싶어 했던 자들이다.
부와 명예, 권력, 여자, 모든 것을 가진 자신을 우러러볼 땐 언제고, 지금은 신과 정의의 이름을 빌려서 빼앗는 꼴이라니. 웃음을 참는 게 너무나 힘든 베오날드였다.
‘그런데 저렇게 망가뜨리는 걸 보니 여기는 아예 싹 폐허로 만들 생각인가 보군. 쯧쯔쯔, 기왕 만들어 둔 거 누군가 차지해서 쓰지. 참~ 돈 많이 들었는데 말이야. 보아하니 싹 폐허로 만들 생각인가 보군.’
“아버지…….”
자신이 힘들게 만든 작품이 부서지는 것이 좀 아까운 베오날드 공작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 처형의 증인으로 앉아 있는 자신의 아들놈 모습이 보인다.
‘저 망할 녀석…….’
자신의 전횡을 끝내게 한 자들 중 하나이며, 엄연히 노이멀 가문의 후계자임에도 가주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배신자. 귀족으로 태어났으면서 가문보다는 충성이니 백성이니 하는 말도 안 되는 가치를 주장하던 멍청이였지만, 그래도 똑똑하고 재능도 있어서 차기 가주로 낙점해 놓은 자신의 아들이었다.
‘대체 뭐가 불만이었던 거야?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군. 백성이니 황제니 하는 게 그렇게 소중한가?’
이상주의가 좀 있긴 했지만 그건 세상 물 좀 먹으면 바뀔 줄 알았는데, 그 전에 배신을 때릴 줄이야. 베오날드 공작에겐 여러모로 충격이었다.
‘그래도 가문의 대는 안 끊기게 되었으니 그거 하나는 다행이군. 아니, 어쩌면 저 멍청함 때문에 자기 목을 죄게 되어서 죽을 수 있으려나?’
“…이상으로! 죄인의 처형을 시작하겠노라!”
‘오늘 죽는 나에게는 더 이상 의미 없는 일이겠지. 드디어 마지막 의무를 다하고 모든 것에서 해방되겠군.’
어느덧 시간이 된 듯 건장한 사형 집행인들에게 붙들려서 단두대에 고정이 된 베오날드 공작이었다.
이제 시야는 많이 낮아져서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저 자신의 머리와 목에서 쏟아질 피를 담는 통뿐. 고개를 들자 앞에 보이는 것은 서서히 떨어져 가는 해뿐이었다.
그렇게 저문 해를 마지막으로 시야에 담은 채 그의 의식은 그대로 끊어지게 된다.
제국 역사상 최악의 ‘간신’ 베오날드 폰 노이멀 공작은 향년 94세의 나이로 그 생을 마감한다.
***
죽음을 맞이한 베오날드 공작은 사후 세계의 존재를 딱히 믿지 않는 편이었다.
신관들이 떠드는 여신의 존재를 비롯해서 그런 것이 있다면 왜 굳이 현실 세계를 만들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나 멍청한 백성들을 조련하기엔 쓸모 있는 도구이며 신관들과도 대화를 나누어야 했기에 나름 신학에 대해 공부는 했는데, 설마 죽고 나니 진짜로 존재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오… 이거 참~”
“죄인 베오날드 폰 노이멀, 사망 나이 94세, 노이멀 백작가의 서자들 중 하나로 태어났으며…….”
“으음~ 이럴 줄 알았으면 헌금 좀 열심히 할 걸 그랬군. 여신관들을 너무 안 보내 줘서 신경 안 썼는데 말이지.”
의식을 차리고 눈을 뜨자 구름 위의 재판정 같은 곳에 자신이 서 있었고, 눈앞에는 아름다운 천사가 쪽지를 든 채 자신의 이력과 죄목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뒤로 수많은 영혼들이 도깨비불 형태로 줄지어 있었고, 한쪽에선 인간 시절 보았던 마족과 닮은 ‘악마’들이 창을 들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마 지옥에 갈 영혼을 데려갈 자들이리라.
“이 신성한 영혼의 재판정에서… 어찌 이런 불경한!”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핫, 신께서 정말 전지전능하셨다면 저 같은 인간을 만들지 말았어야 할 텐데요. 아무튼 지옥의 선고를 내려 주는 게 당신처럼 아름다운 천사님이라 역으로 다행이군요. 사내놈들은 아무래도 질색이라서. 허허허.”
“…판결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군요. 1만 년의 시간 동안 지옥에서 고통받으시지요. 죄목이 너무 많으니… 형벌은 돌아가면서 말이죠.”
“어우… 이런.”
그렇게 베오날드는 그가 산 생애대로 악마들의 인도를 받아 지옥으로 떨어졌다.
유황이 불타는 구역으로 된 지옥. 그곳에서 베오날드는 각종 고문을 받으면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대체 인간들은 어떻게 지옥에 대해서 보고 들은 건지 책에서 본 그대로의 풍경과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으으으으윽!”
“키히히힛! 이제 혀를 뽑았으니! 그 잘난 입도 못 놀리겠지. 나으면 다시 오라고! 키히히힛!”
“끄으으으…….”
대부분의 악인들은 보통 하나의 죄에 따른 고문을 받지만, 베오날드처럼 한 세상에 거대한 민폐를 끼친 거물급 악인(惡人)은 하나의 고문만 받는 게 아니라 지옥 전체를 돌면서 각종 고문을 받았다.
혀를 뽑히고 나면 이번엔 산 채로 기름에 튀겨지고, 고통에 일정 시간 절규하고 난 뒤엔 다른 악마가 또 다른 지옥으로 데려가서 또 다른 고문을 하는 것이다.
“먹어! 먹어! 먹어! 더 먹으라고! 키히히힛! 영체(靈體)는 의식을 잃지 않고 구토도 못하니! 아마 끊임없이 괴로울 거다!”
“우웁! 우웁! 우우웁!”
그리고 그중에서도 베오날드가 가장 큰 벌을 받는 곳은 바로 그의 여성 편력으로 인한 간음, 간통과 관련된 벌을 받는 지옥이었다.
호색가로서 평생 여자를 밝혔고, 권력으로 세계의 미녀들을 모아 첩으로 거느린 채 살아오던 베오날드에겐 다른 방법도 필요 없었다.
그냥 쇠사슬에 묶어 두고 아리따운 서큐버스들이 매혹적인 포즈로 돌기만 해도 그의 영혼은 절규하면서 괴로워했으니 말이다.
“우훗~ 이 반응 좀 봐. 후후훗!”
“아쉽지만 영체 상태에선 ‘그걸’ 할 수 없어서 더 괴로울걸? 후후훗.”
“으어어어어어억! 어어어어억!”
외적인 고통보다 내면의 욕구가 자신을 태우는 고통이 그를 더욱 괴롭게 했다.
영혼이 타 버릴 것 같은 고통. 차라리 그냥 혀를 뽑거나 칼로 난도질당하거나 다시 끓는 기름에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을 정도였다.
아무튼 다른 고통받는 영체들이 죗값을 치르고 풀려나 환생하거나 아예 영혼이 견디지 못해 그대로 영기(靈氣)로 변하는 것을 수없이 지켜보며 죄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느끼던 베오날드는 그렇게 지옥의 고문을 돌아가며 받는 시간을 계속해서 보낸다.
“…끄허아가각아아악!”
아무리 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고통에 그의 영혼은 또 울부짖으며 혀가 뽑혔다.
혀를 생으로 뽑은 악마는 그대로 다른 악마에게 그의 영혼을 넘기며 낄낄 웃어 댔다.
“키히히힉! 또다시 날 때까지 다른 곳에 다녀와라. 키히히힛!”
“자, 기름통은 지금 만석이라서 안 되니까 서큐버스들이 기다리는 색욕지옥을 한 번 더 가자!”
“으어어억! 히러! 허히느으 시허러러러(으어어억! 싫어! 거기는 싫어어어어어)!”
이미 아는 고통을 또다시 겪을 생각에 혀가 뽑힌 채로 절규하며 발버둥 치는 베오날드였지만, 악마는 그를 잔혹하게 쇠사슬로 매단 채 질질 끌고 간다.
이게 지옥의 일상, 끝이 없는 무한한 고통의 순환. 보통이라면 진작 영기(靈氣)로 불타 버렸어야 할 영혼이었지만 역시 악인이더라도 보통 인간은 아니라는 건지 사라지지 않고 끝없이 고통받는다.
“으어어억!”
그렇게 혼이 나갈 것 같은 고통에 지독하게 시달리고, 다시 기름통을 향해 던져지는 베오날드.
그가 산 채로 끓는 기름에 튀겨지는 것을 보면 그것을 집행하는 지옥의 악마조차 감탄할 정도였다.
“끄아아아아아악!”
“크흐흐, 대체 저 영혼은 살아생전 얼마나 악독했던 거야? 대체 몇 번을 튀겨도 돌아오는 건지……. 크흐흐. 으응? 이건 뭐야?”
치이이이익!
한창 업무에 몰두하던 중 지옥의 악마는 자기보다 작은 악마가 가져온 스크롤 한 장을 받게 되고, 그것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끓는 기름통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베오날드의 영혼을 갑자기 삼지창으로 건져 냈다.
“끄헉! 하아… 하아… 하아…….”
“끄으응~ 이런 경우는 또 오랜 지옥 생활 중 처음이군. 따라와!”
‘이번엔 또 뭘 하려고… 으으윽!’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이 튀겨지는 고통을 겪던 베오날드는 또 다른 지옥의 코스로 가는 줄 알고서 잠시나마 안정된 이 순간을 최대한 즐기고자 했다.
조금 있으면 또 다른 고통에 시달릴 테니 말이다.
‘뭐지?’
다른 고통이 생기기 전까지 쉬는 시간을 누리며 질질 끌려가던 베오날드는 갑자기 지옥에서 불어오던 불쾌한 냄새와 작열하는 열기가 아닌 따스한 바람과 함께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가 사라진 것을 알아채고 눈을 떴다.
“…뭐지? 여기는 새로운 지옥인가? 희망고문이라도 하려는 건가?”
[여긴 지옥이 아닙니다. 베오날드, 간신 중의 간신, 욕망의 화신으로 인세를 혼란으로 이끈 대악인이여…….]
동시에 높은 곳에서 들려오는 것은 맑고 청명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소리만 들어도 무수한 자애와 보드라움이 느껴지는 그 존재를 바라보자, 거기엔 무장한 수많은 천사들을 거느리고 새하얀 구름으로 된 옥좌에 앉은 자애로운 모습을 한 여성이 있었다.
“여신… 님?”
한눈에 봐도 보통 인간과는 다른 아우라가 느껴졌고, 기억 한구석에서 대주교가 준 디자인대로 장인이 만든 신전에 있던 석상의 모습과 똑같다는 것까지 떠올린 베오날드였다.
‘어째서 날? 아… 그러고 보니 대주교에게 헌금을 1.5배로 줄 테니 좀 더 야시시하게 만들어 달라고 한 것 때문인가?’
신은 믿지 않지만 여신상의 디자인이 참 예뻐서 거기에 자신의 취향을 좀 첨가하려고 대주교에게 뇌물을 쓴 일이 떠올랐다.
당시엔 황제를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불경스러운 짓을 저지른 것 같았지만, 아무튼 당시 대주교는 화내면서 거절하긴 했었다.
‘아니면 석공에게도 몰래 돈을 찔러 주면서 야시시한 버전으로 따로 만들어서 우리 영지에 놔 달라고 했는데 그것 때문인가?’
[충분히 신성 모독이지만, 그것 때문에 한참 지옥에서 벌 받고 있는 당신을 부른 건 아닙니다.]
“오… 역시 여신님이시군요. 그래서, 지옥의 고통에 시달리던 이 사악한 영혼에게 어떤 용무이십니까? 가능하면 아주아주 길고 자질구레한 이야기까지 모두 포함해서 말해 주시죠. 오랜만에 평온해진 이 시간을 가능한 오래 끌고 싶습니다만?”
[당신에게 시킬 일이 있습니다.]
“이 우매한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게 아주아주 자세하고 꼼꼼하고 세세하게 설명을 해 주십시오.”
승낙하고 말고는 모르겠고, 일단 베오날드는 간신답게 지옥의 고문 시간에서 벗어나 있는 이 순간을 좀 더 오래 즐기기 위해 여신을 상대로 수작질을 부리고 있었다.
[…후우~]
여신은 인상을 찡그렸지만, 이럴 시간도 없다는 듯 금방 자신을 진정시키고 지옥에서 고문받던 그를 꺼내 온 이유와 그가 할 일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