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세계인의 축제(完)
구만 명이 한복을 입은 모습.
그 장면은 비단 김세준뿐만 아니라 오늘 이 무대를 찾은 다른 한국인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심어줬다.
해외에서 벌이는 마지막 월드 투어.
그 투어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부터, 오늘 그와 함께 무대를 꾸밀 스텝들까지.
쉽게 충격이 가시지 않는 압도적인 장관.
월드 투어 내내 함께한 한 스텝이 백스테이지에서 관객석을 보곤 입을 틀어막으며 울먹인다.
“와... 어떡해....”
비록 자신을 향한 퍼포먼스는 아니지만, 3개월 내내 함께 무대를 준비했던 구성원.
마음 한편이 울컥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4번, 5번 카메라! 알죠? 지금 풀샷으로! 이거 풀샷으로 다 찍어야 합니다!!”
온라인 생중계 촬영을 맡은 방송팀.
그들 또한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동시에 일종의 책임감을 느꼈다.
이 멋진 장면, 살아생전 두 번 다신 볼 수 없는 지금을 카메라에 담아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어찌 감히 카메라에 이 감동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을까.
만분의 일이라도 담기면 다행일 텐데.
진한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부디 자신들이 느낀 감정이 화면으로 볼 한국인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랐다.
“미...미친 거 아니야?”
이해진과 이주성. 그리고 장준과 이예은.
김세준과 큰 친분이 있는 아레스 뮤직의 사람들.
마침 시간이 맞아 한 장소에 모여 김세준의 해외 마지막 월드 투어를 같이 보기로 한 그들이 모니터에 나온 모습을 보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로즈볼 스타디움이 한복으로 가득 찬 장면.
형형색색의 한복을 입으며 열광하는 외국인.
김세준 굿즈와 플랜 카드를 들고 환호성을 내뱉는 그들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장관이었다.
“이게 말이 돼?”
“한국에서도 불가능 할텐데...”
약 십만 명의 달하는 사람들이 모두 한복을 입고 한 자리에 모인다?
한국에서도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
그 일이 머나먼 타국인 미국에서 벌어지자 입이 저절로 딱 벌어졌다.
“세준이가... 미치긴 미쳤구나...”
“아니... 이걸... 아니...”
“와...”
말문이 막혀 무어라 말을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
두 눈에 담긴 진한 감동과 여운.
그리고 동시에 깊은 아쉬움을 느낀다.
카메라를 통해서도 잘 느껴지는 현장의 감동.
하지만 저 모습을 실제로 두 눈으로 보지 못한 건 평생에 걸쳐 한이 되리라.
이 반응은 비단 이들뿐만이 아니라 방송을 보고 있던 팬들에게도 똑같이 나타났고, 순식간에 전 세계 커뮤니티가 김세준의 이름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미.
그 아름다움이 전 세계에 다시 한번 크게 조명되고 있었다.
***
무대를 시작하기 전부터, 가수의 눈물이 터져 나와 잠깐 지체되었던 로즈볼 스타디움에서의 공연.
간신히 감정을 추스른 김세준이 이내 공연을 재개했고, 월트 투어 해외 마지막 공연은 뜨거운 열기 속에서 시작됐다.
그동안 치른 공연에서 단 한 번도 허투루 한 적이 없지만, 오늘은 유독 더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시작도 전부터 팬들에게 받은 큰 사랑.
그 사랑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노래 한 소절, 가야금 현 하나를 뜯을 때도 최선을 다한 그.
“후우...”
마지막 무대를 남기고 잠깐 백스테이지에 돌아온 김세준의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에드 케인하고, 매들린은?”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숨돌릴 틈도 없이 김세준이 마지막 무대를 위한 두 사람을 찾았다.
월드 투어 해외 공연 마지막 무대.
그 무대는 자신과 에드 케인 그리고 매들린 세 명의 합동 공연.
마지막 공연을 장식할 만큼 호화로운 조합.
게다가 단순히 노래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무대에서 선보일 퍼포먼스도 썩 호화로웠다.
“세준!”
준비를 마친 에드 케인과 매들린이 그에게 급히 달려왔다.
“준비는 다 끝났어?”
김세준의 물음에 두 사람의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자신만만한 미소인 에드 케인과 곧 저 무대에 오른다고 생각하여 긴장이 담긴 매들린의 미소.
상반된 두 사람의 감정에 김세준이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매들린. 괜찮아?”
“아, 네! 괜찮아요!”
긴장했지만, 그래도 편안한 마음인 매들린이 큰 목소리로 답했다.
아마 혼자서 저 무대에 올라가라고 한다면, 사시나무 떨듯 떨며 올라가겠지.
하지만 지금 그녀의 곁에 있는 건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가수 둘.
무대 위에서는 천군만마보다 든든한 두 사람.
가령 자신이 실수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능숙하게 자신의 실수를 커버할 능력이 있는 가수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편해진 마음이었고, 동시에 김세준의 월드 투어 해외 마지막 공연.
그리고 공연 전부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관객들.
그들에게 못난 모습을 죽어도 보여줄 수 없다는 일종의 사생결단까지 맺은 그녀였다.
굳은 다짐을 한 그녀의 머리를 김세준이 귀엽다는 듯 가볍게 쓰다듬고 낮게 중얼거렸다.
“마지막이네.”
마지막 공연.
한국에서의 공연은 남았지만, 고향이라서 그런 걸까?
뭔가 한국에서의 공연은 월드 투어라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즉, 그에게 개인적으로 이번 공연이 월드 투어의 마지막 공연으로 다가왔고, 세월의 무심함에 무심코 실소가 흘러나왔다.
신의 도움인지 몰라도, 회귀하게 된 그 순간.
그 순간부터 가진 자신의 욕망.
그 욕망이 어느새 또 다른 꿈으로 변모한 지난날.
가야금으로 대중음악을 연주하고 싶다는 욕심이 점점 커지더니 가야금의 매력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변한 자신의 꿈이었다.
그 목표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날.
앞만 보고 달려왔고, 결국 자신의 꿈을 이뤘다.
이제 전 세계에 가야금의 음색을 모르는 이가 없으며, 자신 말고도 대중가요에 가야금의 멜로디를 집어넣는 가수들도 수두룩하다.
이제 아는 사람들만 아는, 그런 음색이 아닌 전 세계 70억 인구가 즐기고 사랑하는 멜로디가 된 가야금.
그리고 덩달아 세계 최고의 가수가 된 자신.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행복에 겨운 삶이었다.
“벌써 마지막 공연이네...”
회상에 잠긴 김세준이 깊은 여운이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애드 케인이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마지막 공연이라니?”
그리고 그런 김세준을 바라본 매들린의 얼굴에 작은 불안감이 생겼다.
뭔가 후련한 듯한 그의 표정.
어린 나이이지만 눈치 하나는 어른들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그녀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월드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그.
게다가 음악 차트와 시상식도 휩쓴 가수.
동기부여가 없어질 만했고,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 후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은퇴하시려는 건 아니죠?”
“응?”
매들린의 물음에 김세준과 에드 케인이 동시에 놀랐고, 에드 케인이 급히 자신의 친구를 바라봤다.
“진짜야?”
“무슨. 아니야.”
진지한 눈초리에 김세준이 거세게 손사래를 쳤다.
은퇴는 무슨.
휴식은 해도 은퇴할 생각은 없던 그에게 매들린의 의심은 생뚱맞게 들려왔고, 강하게 부정했다.
“아니야. 은퇴 생각한 거.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혼자 조금 딴생각 한 거야. 마지막 공연은 미국에서 마지막 공연이라고 생각해서 혼자 중얼거린 거고.”
장황하게 말을 뱉으며 김세준이 어이없는 눈빛으로 어린 숙녀를 바라봤다.
뜬금없이 잘하고 있는 날 왜 은퇴시키는 거야?
“아니었어요?”
자신의 추리가 빗나가자 매들린이 민망한지 뒷머리를 긁적였고, 그의 어이없는 눈빛을 읽은 에드 케인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반응을 보아하니 은퇴를 생각한 건 아닌 듯했다.
“그래. 허튼 생각하지 마. 벌써 무슨 은퇴야. 아니 은퇴하면 네가 힘들걸?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가수는 이 노래하는 거 못 끊어. 내가 도박은 끊어도 노래는 못 끊잖아.”
장난스럽게 내뱉는 그의 말에 김세준이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연이 가수에게 주는 쾌감은 도박보다도 컸구나.
하긴, 몇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오로지 자신을 보며 열광하는 모습은, 수천, 수만 번을 봐도 질리지 않고, 매번 온몸에 카타르시스가 돌 정도니까.
“가자. 이제.”
잡담을 떠들고 과거를 회상하니 벌써 마지막 무대를 선보일 시간.
김세준의 말에 에드 케인과 매들린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뒤를 따라 백스테이지를 빠져나갔다.
마지막 공연.
그 공연을 선보일 세 사람 무대 위로 발걸음을 옮겨, 그 모습을 드러낸 순간.
꺄아아아아악!
마지막 무대라는 걸 직감한 관객들이 큰 환호성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세 사람이 입고 있는 한복이 떨릴 정도로 거대한 함성.
그리고 동시에 무대 중앙에 놓인 세 개의 가야금을 본 관객들이 다시 한번 자지러졌다.
미국에 가야금 열풍을 불러일으킨 김세준.
그런 김세준에 첫 번째 수제자 매들린.
그리고 현존하는 가수 중 김세준을 제외하고 제일 먼저 가야금을 배워 연주한 에드 케인.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세 사람의 가야금 합주.
그 멜로디가 얼마나 아름다울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무대 중앙에 도착한 김세준이 가야금 앞에 앉고, 양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오른쪽에 있는 매들린을 향해 듬직한 미소를 짓고, 다시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에드 케인을 향해 작은 미소를 보냈다.
김세준의 신호에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월드 투어 해외 마지막 공연의 멜로디가 로즈볼 스타디움에 가득 울려 퍼졌다.
***
2034년. 6월.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오늘은 2034년 한국 월드컵의 개막식이 열리는 날.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찬 경기장 한쪽에 마련한 대기실에 한 남성이 은은한 미소를 머금곤 창밖을 바라봤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
창을 통해 비친 얼굴은 주름이 깊어졌고, 벌써 20년 가까이 가야금을 뜯은 손은 형편없었다.
그런 세월의 흔적만큼 연륜이 쌓여 품격과 기품이 겉모습에도 흘러나오는 남자.
그때 방문이 발칵 열리고, 8살 정도 되어 보이는 귀여운 여자아이가 뜀박질하며 그를 향해 달려왔다.
그런 남성을 향해 6살짜리 여자아이가 뜀박질하며 그의 품에 안겼다.
“아빠!”
“아이고. 우리 지연이.”
달려온 소녀를 들어 올려 자신의 품에 안은 그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딸아이의 볼에 가볍게 입맞춤했다.
그가 회귀하고 나서 얻은 가장 큰 선물.
그의 딸, 김지연.
엄마를 닮아 그 외모가 벌써 눈부신 자신의 보물.
지연의 얼굴에 입맞춤만 수십 번 한 그가 따뜻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연이 여기까지 오는데 안 힘들었어?”
“응! 엄마랑 같이 와서 하나도 안 힘들었어!”
“아, 그래? 엄마는?”
“엄마. 저기 밖에 삼촌들이랑 있어! 세현 삼촌이랑 수호 삼촌이랑!”
“그래?”
문밖을 손가락질하는 김지연의 말에 그가 발걸음을 옮겨 방문 밖으로 향했다.
문밖을 나오자 세 남녀가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게 한눈에 들어왔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이지만, 아직도 그 외모가 눈이 부신 세 사람.
젊었을 때부터 그 미모가 유명했던 세 사람.
‘나만 늙었네. 나만 늙었어.’
뭔가 억울하긴 하지만, 그 심정도 잠시 그가 반가운 목소리로 그들을 불렀다.
“세현아! 수호야!”
“형님!”
세 사람이 그를 향해 다가오곤 살갑게 인사했다.
“형님! 잘 지내셨어요?”
“그럼. 너희는?”
“저희도 잘 지냈죠. 소식 들으셨죠? 저희 이번에 B.ONE 콘서트 하는 거.”
“알지.”
그의 답에 수호가 능글맞게 웃는다.
“게스트 해주실 거죠?”
“그럼. 당연히 해줘야지. B.ONE이 10년 만에 재결합해서 하는 콘서트인데. 내가 영광이지.”
그의 답변에 수호와 세현이 흡족스럽게 웃는다.
예능과 가수를 넘나들며 아직도 활발히 활동하는 중이다.
서른 중반이 넘었는데도 화려하게 빛나는 둘.
그리고 그 두 사람 옆에 더 빛나고 있는 한 사람.
그 한 사람을 향해 김세준이 환한 웃음과 함께 아이를 내려놓고 가볍게 포옹한다.
“오느라 고생했어. 여보.”
“당신이 고생 많지. 공연 준비하느라.”
그가 회귀해서 얻은 가장 큰 보물이 딸이라면, 그다음 보물이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여성이었다.
자신의 목숨이 아깝지 않은 사람.
이예은.
서른이 넘었고, 출산했음에도 그 미모가 처음 만났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아내가 사랑스러운 미소로 그를 반겼다.
풋풋하고 애틋한 사랑을 이어가 끝내 결실을 보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까지 낳은 두 사람이었다.
“아, 맞다. 오늘 이해진 사장님이랑 하동준 부사장님. 그리고 장준 오빠랑 진아 언니, 정수연 대표님. 다 왔대요. 있다 공연 끝나고 함께 밥이나 먹자는데요?”
“좋지.”
반가운 얼굴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고, 오늘은 그럴만한 날이었다.
세계의 축제인 월드컵.
그 축제의 서막이 열리는 날이었고, 동시에 자신이 그 영광스럽게도 그 서막을 알리는 가수가 되었다.
“이제 슬슬 가봐야겠네.”
김세준이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후, 말하자 이예은이 김지연을 품에 안았다.
“지연아! 아빠한테 인사해! 잘하고 오라고.”
“아빠 파이팅!”
딸의 깜찍한 응원에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이어서 이예은이 그의 볼에 가볍게 입맞춤했다.
“잘하고 와요.”
“응.”
“형님. 멋지게 하고 오세요!”
“형님. 있다 뵙겠습니다.”
이어진 수호와 세현의 인사.
그 인사에 김세준이 작은 웃음으로 답하며, 개막식 공연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
“후우...”
벌써 십 년 넘게 이어지는 루틴.
무대에 오르기 전 김세준이 깊은 한숨을 내뱉는다.
“지금 올라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스텝의 말에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중앙에 마련된 스테이지로 향했다.
그리고 가지각색의 악기를 든 연주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가 처음 월드 투어를 펼칠 때하곤 사뭇 달라진 연주자들의 모습.
오로지 한국인으로만 이뤄졌던 그 국악단.
하지만 지금.
흑인과 백인. 동양인과 라틴.
가지각색의 피부색을 가진 이들이, 고운 한복을 입고 각자의 악기 앞에 자리 잡았다.
백인이 가야금을 뜯고, 흑인이 거문고를 뜯는다.
인도사람이 아쟁을 연주하고, 스페인사람이 해금을 연주한다.
이제 세상에서 그렇게 어색한 모습이 아닌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치가 되었다.
그런 연주자들을 보며 김세준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평생을 염워하던 꿈.
그 꿈이 세계인의 축제에 서막을 맡게 되었다.
흐뭇한 미소를 짓던 그가, 이내 표정을 바꾸곤 가야금 좌단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연주할 준비를 시작하는 연주자들.
잠시 후, 전 세계 인종이 모여 만든 국악의 하모니.
그 아름다운 선율이 하모니를 이뤄 사람들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세계인의 축제.
그 이름에 무엇보다 알맞은 완벽한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