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147화 (145/148)

#147

월드 투어(8)

영국에서의 공연의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한 건 김세준과 에이미의 듀엣이었다.

그와 그녀가 ‘포기너 버스킹’에서 함께 부른 에이미의 노래 ‘Good Bye’.

단순히 길거리 버스킹으로도 수많은 관객을 매료시킨 둘의 하모니를 수십 개의 악기가 라이브로 들리는 무대.

9만 명의 관객을 감동으로 물들이긴 충분한 노래였고, 관객들의 큰 성원과 함께 그렇게 유럽에서 마지막 무대가 끝났다.

유럽에서의 공연도 끝내고, 이어지는 남미 공연.

열정적인 남미 라틴인들답게 공연 내내 흥이 넘치고 열기가 넘치던 관객들이었다.

잔잔하고 부드러운 노래에도 열성적으로 반응하는 관객들을 보며 자신도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했지.

그렇게 남미에서의 모든 공연도 끝나고, 김세준이 향한 곳은 캐나다.

드넓은 땅덩어리를 가진 그 나라에서의 공연은, 게스트없이 순수 김세준 혼자서 꾸민 공연이었다.

그가 다른 게스트의 도움 없이 꾸민 공연은 캐나다가 처음.

힘들긴 했지만, 자신 혼자서 육만 명의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심어줬다는 게 뿌듯한 무대였다.

그리고 이제, 김세준의 월드 투어의 마지막.

한국을 제외하고 남은 유일한 국가이자 해외 국가 중엔 마지막.

미국. 세계에서 그의 팬덤이 가장 많은 국가에서의 공연이 다가왔다.

***

김세준이 유럽에서 한참 공연을 선보이고 있을 때.

김세준의 팬덤에서도 그의 월드 투어에 맞춰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가수의 첫 월드 투어.

그런 기념할만한 공연에 그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팬들의 고뇌.

그때 마침 몇몇 팬들이 내뱉은 제안이 있었다.

월드 투어 첫 공연.

거기서 카메라에 잡힌 그의 표정.

그때부터였다. 팬들이 이런 아이디어를 꾸민 건.

작은 감동과 작은 아쉬움이 공존하던 그의 얼굴.

대다수가 놓치긴 했지만, 눈썰미 좋은 몇몇 이들은 단번에 눈치챘다.

그가 무엇에 감동했고, 무엇에 아쉬워하는지.

김세준에게 선물을 주고자 했던 팬덤 수뇌부에 그들은 단숨에 자신들이 보고 눈치챈 걸 알렸다.

듣고 그럴듯한 그들의 발언.

생각보다 훨씬 커다란 프로젝트였지만, 만약 성공하기만 한다면 김세준에게 엄청난 감동을 심어줄 아이디어였다.

성공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하며 치열하게 팬들 사이에서 토론이 이어졌지만.

끝내 한 번 시도하기로 한 그의 팬들이었다.

불가능.

온갖 불가능이란 사람들의 평가를 뒤집은 게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였고, 그의 팬인 자신들도 불가능이란 단어를 뛰어넘어보고자 했다.

그렇게 시작한 김세준 팬들의 단합.

전 세계에서 모금 행렬이 이어졌고, 팬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김세준이 모르게 최대한 은밀하게.

그를 위한 깜짝 서프라이즈.

미국에서 마지막 공연인 로즈볼 스타디움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그에게 엄청난 감동을 심어주기 위해서.

***

“으아... 마지막이네.”

“고생하셨습니다. 형님.”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의 마지막 월드 투어.

늦은 밤. 김세준이 찌뿌둥한 몸을 펼치며 중얼거렸고, 이주성이 맥주 한 캔을 들고 오며 그에게 건넸다.

3개월 동안 동고동락했던 공연단의 회식은 내일 밤.

오늘은 이주성과 단둘이 조촐하게 축하하는 작은 자리였다.

조촐하지만, 누구보다 진국인 사람이 옆에 있어 즐거운 술자리.

“주성이 너도 진짜 고생 많았어. 한국 돌아가면 길게 쉬자.”

“예. 형님. 좋습니다.”

가볍게 잔을 부딪치고 단숨에 맥주를 입에 들이부었다.

탄산이 목구멍을 넘어가자 절로 나오는 탄성.

두 사람이 동시에 탄성을 내뱉곤, 창밖 너머로 시선을 보낸다.

“뭔가 실감이 나지 않네요.”

“뭐가?”

“그 마지막이라는 게...”

“아...”

뭔가 아쉬우면서도, 기쁜 미묘한 감정.

이주성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을 읽은 김세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아쉽고, 더 공연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3개월 동안의 여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는 게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김세준이 힐끔 시선을 돌려 이주성을 바라봤다.

거대한 덩치에 안 어울리는 순박한 얼굴.

이렇게 보니까 또 예은이랑 닮은 점이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주성아.”

“예. 형님.”

“고맙다.”

뜬금없는 말에 이주성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형님... 취하셨습니까?”

“응. 취했나 봐.”

민망함에 김세준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지만, 그가 건넨 말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제가 더 고맙죠. 형님.’

그 진심을 느낀 이주성이 속으로 되뇌었다.

그를 만나 달라진 인생.

나아가 이예은의 인생도 180도 바뀌었고, 가시밭길이 예상되었던 자신의 미래를 바꿔준 그였다.

좋은 가수를 만나, 함께 일하는 게 즐거웠고, 실력 좋은 가수를 만나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꼈다.

그의 성공을 옆에서 보좌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훗날 늙어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되어도 고이 품고 있으며 손자들에게 자랑스럽게 내뱉을 감정.

손자들을 무르팍에 앉힌 다음 자신의 무용담을 떠벌거리는 거다.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훌륭한 가수를 바로 옆에서 보필했던 사람이라고.

비록 자신은 그렇게 잘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가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 갈 수 있게 온 힘을 다해 도와준 사람이었다고.

그동안 그가 보여준 행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훌륭한 가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일.

그런 가수의 월드 투어 해외 마지막 공연이 시작할 차례였다.

***

7월 14일.

김세준의 미국 그리고 해외 공연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그가 공연을 선보일 장소는 로즈볼 스타디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거대한 스타디움으로 최대 구만 명의 관객이 들어설 수 있는 곳.

미식축구 경기장으로 쓰이는 장소이지만, 오늘을 위해 공연장으로 탈바꿈한 장소였다.

그리고 그곳에 들어서는 입구.

인산인해를 이룬 그 입구에 김세준의 팬덤 수뇌부들과 스텝들 수백 명이 모여 입장하는 팬들에게 무언갈 나눠주느라 바쁘다.

오늘을 위해 그들이 준비한 거대한 프로젝트.

김세준에게 건네는 그들의 선물.

이미 팬들 사이에선 유명한 계획.

거대한 팬덤인 만큼 언론의 귀에 들어갈 법도 했지만, 철저하게 비밀리에 준비했다.

그들이 나눠주는 선물 때문에 입구의 줄이 길게 이어졌고, 바깥에서 그렇게 정신없는 사이.

김세준은 백스테이지에서 오랜만에 만난 사람을 보며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메들린!”

“세준!”

자신의 첫 번째 수제자.

매들린 바넷이 그를 보고 달려와 품에 꼭 안긴다.

꼬꼬마 숙녀의 스킨쉽에 이주성이 순간 눈에 불을 켜긴 했지만,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 고작 열다섯 살의 소녀.

그런 아이에 스킨쉽인데 화를 낼 필요가 있나.

물론 예은이가 직접 목격했으면 자신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겠지만.

“잘 지냈어?”

“네. 고마워요. 오늘 게스트로 불러줘서.”

매들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매들린이 환한 웃음을 머금었다.

오늘 공연의 게스트로 초청된 그녀.

아직 정식으로 데뷔하지 않은 햇병아리인 자신을 이런 중요한 무대에 게스트로 불러준 그.

게다가 미국에서의 마지막 공연이다.

여러모로 의미가 깊고, 중요한 무대였다.

부담감이 엄청나지만, 그만큼 감사한 마음도 컸다.

9만 명의 관객 앞에서의 공연.

평생 해보지도 않았고, 아니면 앞으로도 평생 못할 수도 있는 엄청난 규모.

“나는 안 보여?”

김세준과 매들린의 살가운 재회를 보며 뒤에 있던 남자가 작게 투덜거렸다.

김세준이 피식 웃으며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에드 케인.

자신의 가치를 처음으로 알아봐 준 해외 가수.

이제 가장 절친한 동료가 되었다고 말해도 무방한 남자.

“당연히 고맙지.”

김세준이 그를 가볍게 포옹하며 말했고, 에드 케인이 작은 웃음을 지었다.

“축하해. 월드 투어 잘 끝났네. 뭐, 아직 끝난 건 아니지만, 거의 끝났으니까.”

“고맙다.”

김세준의 월드 투어.

이보다 더 성공적일 순 없다.

전석 매진은 진작에 이뤘고, 유료 중계도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인 그.

온라인 중계만 몇천억에 달하는 수익.

거기에 굿즈 판매와 팝업 스토어 수익 등 다른 분야의 매출까지 합친다면 그 금액은 상상을 초월할 터.

아마 이쪽으로도 새로운 역사가 쓰일 거다.

월드 투어로 역대 가장 많은 수입을 거둬들인 가수라고.

“아이디어 좋던데?”

에드 케인이 매들린을 보며 넌지시 웃는다.

김세준이 자신과 매들린을 오늘 공연에 초대한 이유.

처음 그 계획을 듣고 손가락을 부딪치며 감탄을 뱉었다.

제법 멋진 그림이 그려졌다.

“괜찮지?”

김세준의 말에 에드 케인과 매들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에드. 이번 월드 투어 끝나면 미국으로 놀러 올게. 같이 어디 여행이라도 갈까?”

“오. 좋지. 아니, 내가 가자고 할 땐 그렇게 안 가더니.”

“당분간은 좀 쉬려고.”

“세준. 은퇴하는 건 아니죠?”

둘의 대화를 듣던 매들린이 불안한 눈빛으로 말하자 김세준이 큰 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냥 휴식이 조금 필요해서.”

이미 가수로서 모든 걸 다 이뤘다고 말해도 무방한 자신.

재충전이 필요했다.

“네. 은퇴하면 안 돼요. 절대로!”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하는 귀여운 소녀의 모습에 두 남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왜 은퇴를 해?

은퇴할 생각은 죽어도 없다.

이 좋은 걸 왜 그만두겠어?

다만 이제 지금처럼 숨 가쁘게 달려나가지 않겠지만.

***

“후우...”

마지막 해외 공연.

그 스테이지에 오르기 전, 김세준이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백스테이지에 대기했다.

눈을 감고 한숨을 내뱉는 그.

그러기에 그가 등장할 시간이 다가오자 소란스러워진 관객석의 분주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세준 씨! 올라갈게요!”

그리고 스텝의 말에 김세준이 눈을 뜨고 천천히 무대로 향한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쿵쾅거리는 가슴.

그리고 이내 그 가슴이 무대 위에 도착하자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악!

“...!”

뭐야? 이게?

눈앞에 보이는 압도적인 절경에 김세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보고도 믿지 못할 엄청난 광경.

다짐할 수 있다.

지금 삶과 회귀하기 전의 삶.

그 긴 시간을 통틀어 자신은 이보다 더 멋지고, 아름다운 광경을 본 적이 없다고.

김세준의 충격받은 얼굴이 거대한 백스크린에 잡히고, 오늘 이 계획을 구상한 이들의 얼굴엔 흡족함이 피어오른다.

‘힘들었지.’

힘들지만, 깊은 감동이 서려 있는 김세준의 얼굴을 보니 그동안의 고생이 눈 씻듯 녹아내린다.

그들이 김세준을 위해 준비한 선물.

구만 명의 관객.

그들이 전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한복을 입고 있었다.

차오르는 감동에 김세준이 속으로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한국에서도 볼 수 없는 멋진 장면.

구만 명이란 거대한 인원이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어디에서 본단 말인가.

그 압도적인 절경에 마음이 먹먹해지고, 동시에 팬들의 마음이 여실히 느껴져 그저 감사함에 눈가가 촉촉해진다.

팬들이 준비한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란 걸 단숨에 짐작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

설마 자신이 일본 공연 때 가졌던 소망을 눈치챈 사람이 있을 줄이야.

현실로 이루어진 자신의 소망.

눈앞에서 본 그 소망은 말문을 턱 막히게 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한복을 입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환호하는 그들의 모습이 다채로운 파도같았다.

‘진짜... 진짜... 아름답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한복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한 장소.

가슴이 벅차오르는 걸 참지 못하고, 김세준이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떨어져 바닥을 적신다.

형형색색의 한복이 만들어낸 너울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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