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월드 투어(6)
사우디아라비아, 킹파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The melody of you and me’.
흥분과 열광으로 가득 찬 분위기는 지금까지 공연을 펼친 다른 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외적인 모습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풍경이 눈에 띄었다.
먼저 공연장 곳곳에 마련된 카펫.
하루 5번, 30분씩 기도하는 문화가 있는 이슬람 신도들을 위한 공연장의 배려.
실제로 정해진 기도 시간이 되자, 흥분으로 가득 찼던 사람들이 그 카펫 위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차이.
오늘 공연을 도와줄 여성 스텝들이 착용한 아바야.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들과 댄서들은 물론 일반 스텝들까지 히잡 혹은 아바야를 입어 그들의 문화를 존중했다.
규정이 완화되어 외국인 여성들은 굳이 착용하지 않아도 되지만, 현지 문화를 배려하고 존중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한 김세준과 공연단의 의지 표출이었다.
“생각보다 잘 어울리지 않아?”
“응. 한복이랑 같이 입으니까 확실히 색다르긴 하다.”
거울 앞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바라본 가야금 연주자들의 재잘거림.
그 모습을 힐끔 쳐다본 김세준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얼굴이 가려 표정이 잘 보이진 않지만, 다행히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처음 착용해보는 히잡을 이쁘다며 칭찬하는 모습.
확실히 한복과 히잡이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조합.
동아시아와 서아시아의 전통복장이 만들어낸 조화는 그녀들의 말처럼 꽤 아름다웠다.
‘다행이네...’
비단 그녀들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 스텝들 또한 크게 부정적이지 않은 듯한 분위기에 김세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굳이 이럴 필요까진 없었으나, 그가 굳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
‘올해만 월드 투어를 할 건 아니니까.’
김세준은 월드 투어를 올해만 벌이고 끝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무대 체질인 그에게 월드 투어는 힘들지만, 가장 큰 활력을 심어주는 활동이었다.
여건만 된다면 매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김세준이 그런 욕심을 가진 채 벌이는 월드 투어.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최초로 열리는 스타디움 급 해외 가수의 공연.
이곳에서의 월드 투어를 올해만 펼칠 생각이 없는 그가 보여줘야 할 첫인상의 중요성.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배려해주는 인상을 처음부터 심어준다면 훗날 공연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게다가 비단 사우디아라비아뿐만 아니라 다른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오늘 공연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중이다.
이슬람 문화를 존중해주는 자신.
그들에게도 꽤 인상 깊은 모습이리라.
즉, 이번 월드 투어에서 좋은 첫인상을 심어준다면 다음 월드 투어는 중동 다른 국가의 더 많은 팬을 만날 수도 있다는 의미.
그런 생각에 일부로 유독 더 신경 써서 그들을 존중해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김세준이었다.
“세준 씨! 5분 뒤 시작이에요!”
“네!”
월드 투어 총괄책임자의 말에 김세준이 밝은 목소리로 답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중동 팬들을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
스테이지에 김세준이 올라오자 6만 7천 명이 동시에 큰 환호성을 내질렀다.
천지가 진동할만한 광음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지경의 큰 반응.
낯선 문화권이기에 반응이 기존 다른 국가들보다 반응이 덜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모조리 날려버리는 사우디아라비아 팬들의 격한 인사였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며, 이날을 위해 며칠 전부터 연습한 아랍어로 그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자신들의 언어로 인사를 하는 그를 보며 감동한 현지 팬들이 큰 환호성으로 그를 반겼고, 이내 시작된 콘서트.
첫 시작은 소외된 자의 아픔이었다.
아직도 각종 음원 차트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노래.
세계에서 히트한 그 노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마찬가지.
첫 곡부터 가장 유명하고 익숙한 노래가 나오자 관객들이 열광에 빠졌다.
‘반응 좋고...’
무대 위 가야금을 뜯으며 노래하는 김세준이 자신을 따라 때창하는 관객들을 보며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자신이 직접 만든 자식 같은 노래를 육만칠천 명의 화음이 울려 퍼져 귓가에 들려오자 절로 치솟는 카타르시스.
온몸에 솜털이 삐죽삐죽 스며 소름이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기분.
이미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수두룩하게 본 풍경이지만, 볼 때마다 매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완벽하게 첫 무대를 끝내고, 이어지는 공연.
모든 무대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고, 공연이 멈춘 건 그들의 기도 시간 때문이었다.
“후우... 그래도 좀 낫네.”
백스테이지에 돌아온 김세준이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이제 슬슬 해가 저물긴 하지만, 아직도 제법 뜨거운 날씨.
이런 날에 한복을 입고 공연하고 있으니 내일이면 온몸에 땀띠가 나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그래도 그들의 기도 시간 덕분에 30분의 휴식이 주어진 점이 다행이었다.
“세준 씨!”
“아, 감독님.”
에어컨 앞에 서서 찬 바람을 쐬는 김세준을 향해 영상감독이 헐레벌떡 다가온 뒤,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 보내주신 영상 자막 작업 다 끝났습니다. 방금 최종적으로 확인했고요.”
“...!”
그의 말에 김세준이 두 손을 덥석 붙잡으며 진심으로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첫날 공항에서 태조 이성계의 인기를 확인한 김세준.
그리고 내심 아쉬움을 느꼈던 태조 이성계 배우들의 부재.
만약 그들이 데리고 왔으면 저들에게 더 큰 감동을 심어줬을 오늘의 공연.
아쉬운 마음에 꿩대신닭이라고 이틀 전 급히 한국에 연락했다.
이해진과 하동준에게 부탁하여 급하게 시작한 촬영은 어제 늦은 저녁에 끝나 자신에게 도착했다.
당연히 어제 늦은 저녁부터 시작된 영상 파일 작업.
시간이 촉박해 오늘 오전, 마지막 확인할 땐 자막이 100% 완성이 아니었다.
영상감독이 무조건 그 무대 전에는 완성된다고 호언장담을 하긴 했지만, 내심 초조했던 것도 사실.
그 초조함을 해소하는 영상감독의 말이었고, 김세준이 함박웃음과 함께 다시 한번 그의 고생을 위로했다.
“저 때문에 어제 밤샘 작업도 하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감독님.”
“아닙니다. 뭐 그리 고생한 거라고. 이게 제 일인데요.”
영상감독이 민망한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러면 전 다음 무대 영상도 준비해야 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 네. 계속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영상감독이 멀어지고, 김세준이 무대 위를 바라봤다.
다음 무대는 세현의 하여가.
그리고 자신의 단심가.
어쩌면 오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큰 호응을 받을지도 모르는 노래들이었다.
***
30분의 기도 시간이 끝나자 다시 시작한 콘서트.
짧은 휴식시간이 끝나고 무대에 올라간 건 세현이었다.
무대에 올라가 짧은 인사를 마치고, 흘러나오는 멜로디는 장엄하고 숭엄했다.
태조 이성계의 OST.
그리고 그 멜로디에 맞춰 거대한 백스테이지에 한 장면이 흘러나왔다.
드라마 태조 이성계의 애청자들이 뽑은 다시 보고 싶은 명장면 1순위.
미튜브에 올라온 클립 영상의 조회 수가 수백 만에 달하는 명장면.
이방원과 정몽주의 담화.
그 장면과 함께 세현의 노래가 울려 퍼지자 관객들이 환호성도 멈추고 무대에 홀려 빠져들어 갔다.
사우디아라비아를 강타한 명작.
그 드라마의 명장면과 명곡.
사우디아라비아를 강타했다는 소문이 거짓이 아닌지, 남녀노소 다들 입을 벌린 채 세현의 노래에 집중했다.
‘반응 좋고.’
자신의 무대처럼 화려하고 열광에 빠지진 않았지만, 이런 관객들의 반응 또한 감동적이리라.
백스테이지에서 무대를 바라본 김세준이 슬며시 웃었다.
감정을 잡느라 얼굴에 드러나지 않지만, 지금 세현이 느낄 감동은 엄청날 터.
동시에 조금이라도 빨리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욕심이 피어오른다.
하여가도 저렇다면 단심가 또한 반응은 비슷할 테니까.
시종일관 환호성과 박수갈채로 가득 찼던 콘서트가 이번만큼은 달랐고, 곡이 끝나자 그때야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그런 관객들의 환호성에 세현이 웃음과 함께 인사하며 무대에 내려왔고, 관객들의 마음에 기대감이 심어졌다.
분명 다음 노래는 하여가의 답가인 단심가일 터.
하지만 그런 관객들의 예상과 달리 텅 빈 무대에 김세준은 올라오지 않았다.
대신 그들을 맞이한 건 거대한 백스크린에 나온 한 인물.
“...!”
그 인물을 본 관객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태조 이성계의 주연배우인 중년 남성의 등장.
비록 영상이지만, 예상치도 못한 등장에 관객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안녕하세요. 사우디아라비아 팬 여러분. 배우, 박준구입니다. 태조 이성계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그리고 그가 카메라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인 뒤, 찬찬히 말을 내뱉었고, 그 밑에 아랍어로 적힌 자막이 흘러나온다.
‘이거지!’
술렁이는 관객들을 보며 김세준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가 사우디아라비아 팬들을 위해 급히 마련한 이벤트.
태조 이성계에 등장한 배우들의 영상 편지.
이해진과 하동준에게 부탁해 급히 찍은 영상이라 퀄리티가 좋진 않지만, 그래도 저들에게 큰 선물이 되리라.
실제로 6만 7천 명이 동시에 핸드폰을 꺼내 거대한 백스크린을 찍기 바빴다.
주연과 조연을 포함한 총 6명의 영상 편지.
약 10분 정도 가량의 영상 편지가 끝나고 김세준이 무대에 올랐다.
그가 준비한 이벤트가 마음에 들었는지 관객들의 얼굴에 활짝 핀 웃음.
그 웃음을 본 김세준이 가야금 앞으로 가 앉았고, 뒤에 수십 명의 연주자와 눈빛을 마주쳤다.
아직도 태조 이성계의 여운에 깊게 잠겨 있는 이들.
이들에게 조금 더 깊은 여운을 남겨줄 시간이었다.
MR이 흘러나오자, 김세준과 6대의 가야금이 동시에 선율을 내뿜었다.
그리고 거대한 백스테이지에 흘러나오는 또다른 장면.
역시 많은 팬이 명장면으로 꼽은 정몽주의 죽음.
그 장면이 백스테이지에 흘러나왔고, 거대한 스타티움에 모인 육만칠천 명의 관객들.
그들이 숨소리도 죽인 채 무대에 홀연히 빠져들었다.
***
김세준은 사우디아라비아 킹파드 인터내셔녈 스타디움에서 열린 두 번의 공연을 모두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감동과 열광에 빠진 채 끝난 콘서트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서도 만족스러웠는지, 따로 그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낼 정도였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공연이 끝났다는 건, 아시아에서의 모든 공연이 끝났다는 뜻.
아시아 각국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김세준이었고, 그 파급력은 유럽과 아메리카대륙에 점점 퍼지기 시작했다.
한시라도 빨리 공연날짜가 다가오길 기다리는 유럽과 아메리카의 관객들.
기대감을 참지 못하고, 온라인 중계를 결재하여 미리 본 관객들도 있지만, 현장과 온라인은 천지 차이.
오히려 온라인 중계를 보자 기대감만 더욱 커질 뿐이었다.
그리고 6월 말.
김세준의 ‘The melody of you and me’. 월드 투어.
그 콘서트가 유럽에서 그 서막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