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143화 (141/148)

#143

월드 투어(4)

무대 위로 슬그머니 올라온 4명의 여인.

김세준이 슬그머니 그들의 악기에 시선을 보낸다.

어제 있었던 리허설에서 보여준 저 악기와 가야금의 화음.

자신의 예상처럼 귀가 호강하는 하모니였다.

“...!”

그리고 그녀들이 올라오자 처음에 감탄을 뱉던 관객들.

가야금이 4개나 더 추가되는 줄 알았기에 제법 들뜨고 설렜다.

이미 무대 위에 올라온 가야금만 김세준을 포함하여 다섯 개.

거기에 또 네 개가 추가되어 총 9개의 가야금이 연주되는 줄 알았으니까.

거대한 백스크린에 비치는 그녀들의 모습.

몇몇 눈썰미가 좋은 관객들은 그 모습을 보고 그들이 기존 가야금 연주자과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가장 큰 특이점.

그녀들이 오른손에 낀 가조각.

츠메(손톱)이라고도 불리는 물건.

그 모습을 눈치챈 몇몇 관객들의 놀람은 순식간에 모든 이들에게 전파되었다.

“저...저거. 고토 아니야?”

“...!”

“고토 맞네! 고토다! 고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외치는 사람들의 말에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다른 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이내 뜨거운 감탄을 뱉었다.

꺄아아아악!

고토.

가야금과 비슷한 일본의 전통 악기다.

장방형의 지터형 악기로 얼추 봤을 땐 큰 차이가 없는 생김새.

거기에 전통적으론 명주실로 만든 현을 사용한 점도 똑같으며 왼손과 오른손의 역할이 분담되는 비슷한 연주방법.

일본의 가야금이라고 봐도 무방한 악기.

일본에선 김세준 덕분에 덩달아 관심을 한몸에 받는 악기이자, 동시에 그의 활약을 보며 진한 아쉬움을 느낀 악기였다.

고토도 가야금처럼 유명해지고, 전 세계에 그 매력이 널리 떨쳤으면 하는 아쉬움.

그리고 그들의 바람을 미약하게나마 이뤄주는 김세준의 무대 구성.

가야금과 고토의 합주였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김세준의 월드 투어.

그 자리에 자신들의 전통 악기가 연주된다는 사실에 관객들과 생중계로 바라보던 일본인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김세준이 씩 웃으며 자신의 가야금 앞으로 가 앉았다.

깊게 심호흡하고, 슬쩍 시선을 뒤로 보낸다.

이런 첫 무대에 올라서는 게 처음인 고토 연주자들.

그들을 향해 은은한 미소를 짓는다.

실수해도 괜찮다고, 함께 멋지게 연주해보자는 의미가 담긴 그의 눈빛에 고토 연주자들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눈빛만으로 의사소통을 완벽히 해낸 후.

도쿄돔, 175개의 스피커에서 동시에 ‘별무리’의 MR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첫 앨범의 컨셉이었던 국악과 전자음의 하모니.

그 앨범에 속한 노래인 만큼, 인트로부터 전자음이 찡하게 울린다.

마치, 김세준의 콘서트가 아닌 EDM 페스티벌에 온 듯한 화려한 신시사이저 소리.

관객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열광했고, 김세준이 가야금의 현을 뜯었다.

그리고 그와 똑같은 박자에 나머지 가야금과 고토와 거문고의 연주자들이 그 아름다운 음색을 터트렸다.

“...!”

동양 세 현악기의 합주.

그 아름다운 음색은 크게 울려 퍼지는 전자음 사이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내뿜었다.

“와...”

열광하던 관객들이 뛰던 것도 멈추고, 팔을 문지른다.

묵직하게 받쳐주는 거문고.

잔잔하고, 부드러운 미색을 내뿜는 가야금.

높고 차가운 음색으로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고토.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세 악기의 매력이 합쳐져 듣는 사람들의 혼을 빼놓았다.

‘...!’

무대 위 김세준과 연주자들 또한 자신들의 완벽한 하모니에 한복 아래에 소름이 돋는 걸 느낀다.

너무 완벽하게 연주하여 온몸이 오싹한 기분.

척추부터 타고 올라오는 쾌감.

김세준의 입꼬리가 천천히 곡선을 그린다.

실실 지어지는 미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거지!’

완벽한 연주와 그에 화답하는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

그 무엇도 이에 비견할 쾌감을 주진 못하리라.

소름 돋은 팔로 현란하게 현을 뜯던 김세준이 이내 입을 달싹거렸다.

괜히 잠이 오지 않는 밤.

애꿎은 이불만 뒤척이다가

문득 너와 별을 보러 갔던, 그날이 떠올라.

꺄아아아아악!

귀가 찢어질 듯한 관객들의 함성.

벌써 한 시간 반 가까이 진행된 공연이지만, 지치지도 않는지, 또다시 큰 함성을 내뱉는다.

분명 공연이 끝나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뱉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을 정도의 반응.

흡족하고 뿌듯했다.

‘일본 공연은 재미없다고 한 게 누구였지?’

일본 관객들은 반응이 조용해 공연하는 맛이 없다고 누군가가 넌지시 뱉은 말.

어이가 없어 실소가 지어진다.

“고토 연주하는 건 처음 보네. 예은이 넌 본 적 있어?”

“아니. 나도 처음이지.”

백스테이지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이예은과,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를 바라보는 이주성.

우애 좋은 남매라는 걸 보여주듯 서로 꼭 붙어 무대를 구경하는 둘.

“보는 재미가 있네.”

“응응.”

이주성의 중얼거림에 이예은이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손으로 현을 뜯는 가야금과 거문고. 그에 반해 가조각으로 현을 뜯는 고토.

백스크린에 한 장면으로 찍혀 나온 그들의 모습.

현란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화려한 손짓과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

동양의 미가 절로 느껴지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후우...”

노래가 끝나가자 이예은이 깊은숨을 내뱉었다.

“괜찮아. 잘하고 와.”

이주성이 이예은의 등을 토닥였고, 등에서 느껴지는 떨림에 안쓰러운 목소리로 그녀의 기운을 북돋웠다.

“응. 오빠.”

이제 어엿한 한 가수가 되었고, 어지간한 무대엔 잘 떨지도 않는 강심장이 되었지만.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런 무대는 처음.

다시 한번 깊은 심호흡을 내뱉고, 이내 그녀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

“형님. 고생하셨습니다.”

“어. 고마워.”

이주성이 건넨 문을 받아들며 단숨에 들이켰다.

뜨거운 조명과 관객들의 열기.

1시간 반을 넘게 계속 부른 노래.

첫 월드 투어 공연이라는 중압감과 긴장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고, 머리카락도 젖어 찰랑거렸다.

“후우...”

한숨 돌린 김세준이 무대 위로 시선을 돌렸다.

‘이쁘네...’

그녀의 여러 모습을 봤지만, 역시 그녀는 무대 위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나고 아름답다.

작년 일본 활동이 헛되지 않았는지, 그녀가 올라오자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관객들.

환한 미소로 반응한 이예은이 능숙한 일본어로 관객들과 소통한다.

그걸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것도 잠시, 김세준이 재빨리 다음 무대 준비를 시작했다.

진작 조율을 마친 새로운 가야금을 챙기고, 이주성이 건네준 오미자차를 들이켠다.

그녀가 소통하고 노래를 부르는 10분.

그동안의 짧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 무대로 올라가 그녀와 함께 무대를 꾸며야 했다.

꺄아아아악!

백스테이지에도 들려오는 관객들의 환호성.

김세준을 챙기면서도, 흐뭇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는 이주성.

그의 시선을 따라 무대 위에서 일본어로 노래 부르는 이예은을 바라봤다.

긴장한 것도 잠시, 곡에 녹아들어 열창하는 그녀.

“누구 여자 친구인지 몰라도 잘하네.”

“누구 여동생인지 몰라도 참 잘합니다.”

잘 받아치는 이주성을 보며 김세준이 피식 웃더니 이내 중요한 한 가지를 물었다.

“아, 맞다. 지금 시청자는 몇 명이야?”

이주성이 흐뭇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밀었다.

액정엔 노래 부르는 이예은이 보였고, 왼쪽 상단에 실시간 시청자 수가 적혀 있었다.

“오십만 명입니다!”

“와우...”

뿌듯한 목소리로 내뱉는 그였고, 김세준도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숫자에 놀란 목소리로 감탄을 뱉었다.

그의 첫 단독콘서트인 ‘풍악’.

그땐 첫날에만, 오백만 명에 달하는 숫자가 봤고, 다음 날은 육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봤다.

그때보다 훨씬 적은 숫자.

하지만 ‘풍악’과 ‘The Melody of You and Me’은 큰 차이가 있었다.

이번 월드 투어는 무료가 아니라는 점.

당연히 적을 거라 예상했고, 오십만 이란 숫자는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숫자였다.

‘티켓이 3만원이었으니까...’

순간 계산을 마친 김세준은 정신이 어질어질해졌다.

단순 계산이지만, 첫날 온라인 중계만으로 벌어들인 매출이 단순 계산으로 백오십억.

오늘 일본 공연엔 오지 않은 정수연의 환호성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기록 또 경신하겠는데요. 형님!”

“아...”

이주성의 신난 목소리로 외친다.

기존에 있던 콘서트 온라인 유료 중계 최고 누적 시청자 수는 약 125만 명.

첫날부터 그 기록의 삼 분의 일을 넘었으니 기록경신은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이상 당연할 터였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시청자 수가 줄어들긴 할 거다.

삼 개월 내내 똑같은 공연을 계속 볼 사람들은 드물긴 할 테니까.

‘그래도 대단한 거지.’

괜히 티켓딩 대란을 만들었던 가수가 아니라는 걸 여실히 증명하는 중이었다.

“다시 올라갈게.”

“예. 형님. 파이팅입니다!”

무대가 슬슬 끝나가자, 김세준이 몸을 돌렸다. 이제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공연.

이제 고작 첫 공연인데 예상보다 훨씬 힘들다.

앞으로 이런 콘서트를 3개월 동안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하지만, 동시에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3개월 동안 받는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활기가 돌았다.

‘아이러니하네.’

저들이 없었다면 아마 절대 불가능하겠지.

실소를 흘리며 김세준이 무대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래를 끝내고, 기다리던 이예은이 환한 미소로 반긴다.

이미 일본 내에서도 베스트 커플로 유명한 두 사람.

선남선녀란 말이 너무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관객들이 환호성으로 맞이했다.

오늘 처음 선보이는 두 사람의 듀엣이기에 기대감 넘치는 눈빛이 가득했다.

완벽한 연인이면서도, 가수로서도 완벽한 파트너.

김세준과 듀엣을 한 가수들은 수두룩하지만,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조합은 김세준과 이예은.

진짜 커플들에게만 느껴지는 감성과 둘 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은근히 잘 어울려는 조합.

거친 듯 아름다운 두 사람의 목소리의 조화는 팬들 사이에선 언제나 듣고 싶은 듀엣 1순위였다.

“다음 노래는요. 봄비입니다!”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이예은이란 가수를 소개한 노래이자 둘이 처음으로 화음을 맞춘 곡.

연금처럼 올라오는 봄바람에 비해 대중들의 인지도는 낮지만, 음악성은 그에 뒤처지지 않는 명곡.

모든 준비를 끝내자 이내 흘러나오는 MR.

김세준과 이예은이 슬며시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

김세준의 첫 월드 투어 콘서트.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공연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무대의 퀄리티. 관객들과 온라인 중계 시청자들의 반응.

뭐 하나 부족할 것 없이 완벽하게 끝난 공연.

그리고 이틀 후, 열린 닛산 스타디움에서 열린 콘서트.

칠만 명가량의 관객들이 모인 공연도 도쿄돔 공연 못지않게 성황리에 끝났다.

완벽한 일본 공연이었고, 세현과 수호가 합류한 중국과 동남아에서의 공연 또한 흠잡을 데 없었다.

그리고 동북아와 동남아에서의 공연을 마무리한 그의 다음 행선지는, 회귀하기 전 인생을 포함해서 난생처음 가보는 곳.

중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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