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월드 투어(2)
유럽에서 일어난 김세준 월드 투어 티켓 대란을 보며 대다수에 팬이 가진 우려는 현실이 됐다.
북미와 아시아. 남미까지.
대륙을 가리지 않고 유럽에 이어서 일어난 티켓 대란.
아시아와 북미는 1분도 채 안 되어 모든 표가 판매됐고, 서버가 다운되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팬들에겐 그 명성이 자자한 김세준의 콘서트의 퀄리티.
그리고 그의 팬이라면 당연히 참여하고 싶은 첫 월드 투어.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자신들을 깊게 감동하게 만든, 그 명곡들을 실제로 들어보고 싶다는 팬들의 거대한 욕망까지 합쳐져 만든 티켓팅 대란이었다.
하물며 티켓값이 저렴한 편도 아니다.
국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평균으로 따지면 십만 원 안팎.
[십만 원? 김세준 공연 퀄리티에 비하면 껌값임.]
[김세준 첫 단콘때 사람들 평가 기억하면 절대 과한 금액이 아님.]
하지만 이미 단독 콘서트 때 보여준 감동과 재미.
그때의 기억을 생생히 가지고 있는 팬들에게 십만 원 안팎의 금액은 오히려 저렴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몇몇 이들은 이 금액의 배가 넘는 가격이었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 평가했다.
실제로 암표상들이 산 김세준의 티켓 값은, 발매한 지 고작 하루가 지났음에도 벌써 가격이 다섯 배 이상으로 뛰었다.
“이 정도 규모도 이 난리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고?”
정수연이 인터넷에 가득한 아우성에 혀를 내둘렀다.
티켓팅에 실패한 팬들이 안타깝긴 하지만.
자신들의 준비가 미흡한 건 아니었다.
김세준의 이번 공연 규모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수준.
자신할 수 있다.
자신들이 준비한 규모는 작년까지 있던 공연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간다고.
만반의 준비를 갖췄고,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다.
“완전한 오판이네...”
만석은 예상했던 일이기에 티켓팅에 실패하는 팬들이 어느 정도 있으리라곤 예상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수요가 많을 줄이야.
덕분에 지금 회사에 있는 모든 전화기가 항의 전화와 문의 전화로 불을 뿜는 상태였다.
국제전화로 걸어 어눌한 한국어로 항의를 하는 해외 팬들까지 있을 정도.
B.ONE을 비롯한 해외 팬들이 제법 많은 아이돌을 거느린 그녀조차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김세준의 힘을 자신이 너무 과소평가한 걸까.
실소가 터져 나온다.
백오십만이 과소평가라니.
하지만 실제로 그 엄청난 숫자의 관객을 고작 이분 내에 끌어모은 가수.
“다음엔 최소 삼백만은 잡아야 하나?”
어이없는 목소리로 정수연이 낮게 중얼거렸다.
살면서 이런 가수가 한국에서, 그리고 자신의 소속사에서 활동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김세준의 월드 투어 ‘The Melody of You and Me’의 티켓 대란은 결국 추가 공연 일정을 잡는 거로 마무리됐다.
물론 그 규모가 모든 팬을 만족하게 할 규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단락되는 분위기.
간신히 팬들을 진정시킨 김세준.
남은 건 공연으로 그들을 만족하게 하는 것뿐.
일주일의 일정이 연습으로 꽉 찬 시간.
그렇게 시간이 흘러 5월 9일.
김세준의 월드 투어가 시작하는 날이 다가왔다.
“오빠! 오빠! 저것 봐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이예은이 김세준의 영어 이니셜이 크게 적힌 비행기를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거대한 항공기에 적힌 K.S.J이란 세 글자.
그리고 그 밑에 적힌 ‘The Melody of You and Me’.
이번 월드 투어에 사용될 김세준의 전용기에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이예은의 호들갑에 김세준도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곤 작은 감탄을 터트린다.
“와...”
본인의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제법 태가 난다.
자신의 이름 이니셜이 비행기에 적힐 줄이야.
“사진 찍어야죠. 이건. 사진!”
그 비행기를 배경으로 이예은이 김세준의 사진을 찍고, 이내 같이 탑승하는 일행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보란 듯이 팔짱을 끼고, 함박웃음을 짓는 그녀.
연애 사실을 공개한 뒤로, 밖에서도 스스럼없이 스킨쉽하는 이예은이었다.
마치 이 남자가 내 남자다. 눈독 들이지 말라고 말하는 것처럼.
“와... 진짜 멋지다. 우리 오빠. 진짜 멋져요. 대박.”
전용기가 워낙 인상 깊었는지 이예은의 감탄은 그 비행기에 탑승하고도 멈추지 않았다.
“아니야. 민망하게.”
너무 과한 그녀의 반응에 오히려 김세준이 민망할 정도로.
“오빠 덕분에 생전 처음 전용기도 타보네요.”
일반 항공기하곤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편하고 고급스러운 시트.
한쪽에 마련된 와인바.
항공 와이파이와 위성 전화도 가능하며 아직 먹어보진 않았지만, 음식의 질도 분명 남다를 터.
“아쉽다. 이걸 타고, 일본이 아니라 미국을 가야 하는 건데.”
혀를 빼꼼 내밀고 배시시 웃으며 말하는 그녀.
농담과 진담이 반쯤 섞인 그녀의 말에 김세준도 웃음을 터트렸다.
“다음엔 미국에 게스트로 부를게.”
“장난인 거 알죠?”
‘The Melody of You and Me’의 첫 공연은 일본.
일본에서부터 시작해, 중국과 동남아. 중동을 돈 뒤, 유럽으로 향한다.
유럽에서의 공연 일정을 마치고 남아메리카로 넘어간 뒤, 브라질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미국과 캐나다로 향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공연을 마무리하는 일정이었다.
그리고 국가마다 자신을 도와줄 게스트들을 이미 섭외해둔 뒤다.
일본은 이예은. 중국과 동남아와 중동은 B.ONE.
유럽은 에이미. 미국과 캐나다는 에드 케인.
남미는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조지 에드워드.
모든 게스트들을 공연마다 끌고 다닐 수 없기에, 각 나라와 대륙마다 알맞게 섭외를 마쳤다.
이예은이 다른 가수들에 비해 그 이름값이 부족하긴 하지만, 일본에서만큼은 예외.
작년 한 해를 오조리 일본에다 투자하며 그 이름을 알렸고, 첫 단독 콘서트까지 선보이지 않았나.
비록 자신처럼 거대한 규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웬만한 일본인들이 그 이름과 얼굴은 알 정도는 되었다.
고작 1년 만에 거둔 성과치고는 대단한 성과였고, 이번 공연은 그런 그녀가 더욱 비상하게 할 좋은 기회였다.
이예은의 길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김세준이 낮게 중얼거렸다.
“일본 진짜 오랜만에 간다.”
“맞다. 오빠도 일본에서 공연한 적 있었죠?”
이예은이 까먹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가볍게 손뼉을 마주쳤다.
하도 미국에서만 활동하다 보니 아시아에서 활동은 거의 없었던 그.
자신을 비롯한 다른 K-POP 가수들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펼쳤던 자신의 남자친구.
하지만 몇 년 전, 그가 데뷔한 첫해에 일본에서 짧지만 딱 한 번 무대를 꾸민 적이 있지 않나.
그가 아시아인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내뿜었던 순간.
그가 신인상을 받았던 시상식.
아시안 뮤직 어워드 일본 공연.
무명에 가깝던 그가 단숨에 해외 팬들에게 그 얼굴을 알린 공연이었다.
“와... 그러고 보니까 오빠. 일본에서 활동한 적 단 한 번도 없죠?”
“없지. 아시아에서 활동한 적이 거의 없지.”
“와... 일본 첫 활동이 단독 콘서트...”
허탈한 탄식이 절로 나온다.
하물며 그가 하는 단독콘서트 규모는 일본에서도 손에 꼽는 거대한 규모.
도쿄돔과 닛산 스타디움이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두 공연장에서 공연을 선보일 그였다.
허무하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
작년 한 해. 일본에서 활발히 활동한 자신보다 그의 인기가 더 많다는 게 박탈감이 느껴질 정도다.
일본 음악 시장이 세계 2위라곤 하지만.
1위하고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새삼스럽게 실감한다.
“아메리칸드림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어요...”
허탈해하는 이예은조차 귀엽게 바라본 김세준이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괜히 내가 미국 시장에 열과 성을 다한 게 아니니까.’
아무나 쉽게 성공할 수 없고, 빛을 보기 힘들며 경쟁이 일본보다 훨씬 힘들긴 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그 보상이 일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한 곳.
“나도 내년엔 미국 갈 거예요!”
이예은의 당찬 다짐.
김세준이 웃음을 터트렸고, 동시에 그의 전용기를 운전하는 기장이 출발을 알렸다.
***
5월 11일.
김세준이 일본에 도착하고 이틀이 지난날.
일본 최초의 돔구장이자, 일본 프로야구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도쿄돔이 사람들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평소 야구경기가 있는 날에도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장소지만.
오늘 이곳을 찾는 이들의 얼굴엔 야구장을 찾는 이들보다 더 큰 흥분이 새겨져 있었다.
어쩌면 일생의 단 한 번뿐인 기회.
언제 또 일본에 올지 모르는 가수의 공연.
그 치열했던 경쟁을 뚫고 이 자리에 오길 허락받은 이들.
발걸음이 설레고 얼굴에 웃음이 자꾸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들이 직접 만든 플랜카드와 응원 용품을 들고 도쿄돔에 찾아온 관객들.
김세준의 공연을 취재하러 온 한국에서 온 한 기자는 그런 그들의 모습에 진한 감탄을 뱉었다.
“와... 살아생전 내가 이런 모습을 볼 줄은 몰랐네...”
한국도 아닌 외국. 심지어 일본에서 보는 입이 떡 벌어지는 장관.
카메라로 연신 그들의 모습을 찍어내면서도 입으론 계속 감탄을 뱉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풍경.
5만 명.
그 많은 인원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심심치 않게 보이는 모습.
그들의 전통복장인 기모노가 아닌 한복을 입고 공연을 보러오는 관객들.
장관이었다.
“진짜였구나...”
김세준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세상에 널린 알린 한복.
하지만 김세준 팬들에게 한복은 그저 아름다운 옷이 아니었다.
마치 아이돌의 팬들이 풍선 색으로 자신이 그들의 팬인 걸 증명하듯, 김세준의 팬들에게 한복은 자신이 김세준의 팬이라는 걸 증명하는 하나의 굿즈였다.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그들의 팬심과 한복이 간직한 아름다움이 합쳐져 만들어낸 장관.
비록 김세준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건 아니지만, 그 아름다움에 빠진 팬들이 움직여 만든 결과물이었다.
“미쳤구만. 미쳤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도쿄돔 안으로 입성하는 몇몇 관객을 촬영하며 기자가 낮게 중얼거렸다.
이 풍경이 비단 일본에서만 이루어질 게 아니라는 걸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 등등.
세계 각지에서 볼 수 있을 풍경.
나라에서 수십억, 수백억을 끌어모아 정책을 펼쳐도 변변치 않았던 문화 홍보.
그 수백억의 금액도 불가능했던 효과를 고작 한 가수가 만들어냈다.
“이 정도면 위인 아니냐. 위인...”
음악과 의복.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를 세상에 널리 퍼트린 위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중얼거리던 기자가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문득 몇 년 전 유행했던 한 게임이 떠올랐다.
그 게임에 있던 승리 방법의 하나였던 문화 승리.
지금 이 풍경이 딱 그 방법으로 승리한 모습 아닌가.
게임 중에서 가장 어려운 방법의 하나였던 문화 승리가 현실에서 일어날 줄이야.
“기사 제목으로도 딱 맞네.”
“김세준. 한국을 문화 승리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