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140화 (138/148)

#140

월드 투어

장준의 두 번째 EP 앨범 ‘Me and You’는 발매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김세준이 피쳐링한 타이틀곡인 ‘그때의 너’는 단숨에 음원 차트 상위권에 안착했다.

덕분에 김세준은 아침을 장준의 전화로 눈을 떴다.

비몽사몽 한 정신을 일깨운 건, 장준의 흐느끼는 목소리였다.

코를 훌쩍이며 감격을 토해내는 장준의 목소리에 잠이 확 달아났다.

“그래. 인마. 축하해. 그만 울고.”

하루를 남자의 울음으로 시작할 줄이야.

흔한 경험은 아니고, 썩 하고 싶은 경험도 아니었다.

“고맙다. 세준아.... 진짜. 정말 진짜 너무 고맙다. 다 네 덕분이야...”

음원 차트 상위권.

비록 목표였던 1위는 아니지만, 그가 자신의 곡으로 처음 달성해보는 호성적.

발매 첫날부터 10위 권 안착.

그의 목표인 1위도 가시권에 들어온 대단히 성공적인 출발이었다.

5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늘 꿈꿔왔던 목표.

그 목표를 달성할 순간이 다가오자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을 뜨자마자 가장 고마운 사람한테 전화한 장준이었다.

“뭔 소리야. 네가 잘해서 그런 거지.”

정신은 바짝 들었지만, 아직은 잠긴 텁텁한 목소리로 김세준이 말하며 김세준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나 기쁘고 감정이 격해졌으면 눈을 뜨자마자 전화를 할까.

그것도 다 큰 사내가 질질 눈물을 짜면서까지.

친구의 기쁜 감정이 절로 느껴져 자신도 덩달아 코끝이 찡해지는 느낌.

“그래. 그만 울고. 축하한다. 진짜로. 나중에 술 한잔하자. 그래. 들어가.”

장준과 전화를 끊음과 동시에 김세준이 팔을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썩 나쁘지 않네.”

눈을 뜨자마자 친구의 감사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

평생 처음 경험해보지만, 아침부터 큰 보람을 느낀다.

물론 우는 것까진 조금 그렇긴 했지만.

그리고 비록 자신의 곡은 아니지만, 피쳐링한 노래가 상위권에 안착했단 소식은 반길만한 일.

핸드폰을 들어 ‘뮤직인’에 접속해 확인하고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11위. 장준 ? 그때의 너(Feat. 김세준).

그리고 현재 음원 차트 1위와 2위를 기록하고 있는 노래.

작년에 자신이 발매한 노래.

소외된 자의 슬픔과 소외된 자의 아픔.

발매한 지 반년 가까이 됐지만, 아직도 거뜬히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노래들.

김세준이 입가를 어루만지며 흥미진진한 미소를 지었다.

장준에게 내뱉은 1위도 불가능은 아닐 거라는 말.

과언이 아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고, 실제로 1위를 달성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가수가 아니었을 때의 이야기.

많이 달라진 미래와 더욱 높아진 허들.

과연 자신의 노래를 꺾고 장준의 노래가 1위에 등극할지 강한 호기심이 동했다.

“기분 조금 묘하겠는데?”

순위가 조금 떨어진다고 크게 아쉽진 않으나 그게 친구의 노래라면 약간은 다른 말.

사소한 가위바위보도 지기 싫은 게 흔한 남자의 자존심 아닌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경쟁심을 불태운 그가 이내 피식 웃었다.

막상 지금은 경쟁심을 느끼더라도, 만약 장준이 1위를 한다면 진심으로 축하해주겠지.

솔직히 이제 자신에게 음원 차트 1위는, 절실하지도 크게 필요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리고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다음 앨범을 발매한다면 음원 차트 1위는 금방 다시 달성할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이제 준이는 알아서 잘 하겠지.”

앞으로 그에게 펼쳐질 승승장구의 길.

예능도, 음악도 성공적으로 나아가며 그동안의 고생을 고스란히 보답 받을 그였다.

약속했던 피쳐링도 끝났고.

이제 올해 남은 건 딱 한 가지.

김세준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입꼬리를 올린다.

월드 투어.

그 원대한 프로젝트에 오로지 집중할 시간이었다.

***

일주일 후.

하루하루를 월드 투어 연습에 매진 중이던 김세준.

하지만 오늘은 연습도 쉬고 어디론가 발걸음을 향했다.

그가 향한 곳은 SY 엔터테인먼트 사옥.

월드 투어와 관련해서 정수연과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정수연의 사무실 문을 두들기고 안으로 들어서자 안경을 쓴 채 서류에 파묻힌 그녀가 보였다.

“왔어요?”

“예. 대표님. 바쁘십니까? 나중에 다시 올까요?”

“아니에요. 이거 다 어차피 세준 씨 관련 서류들이에요.”

안경을 벗으며 그녀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사무실 중앙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김세준이 의자에 앉자 정수연이 서류를 정리하곤 그의 맞은편으로 가 앉았다.

“준비는 잘 되어가요?”

“예. 뭐. 계속 연습 중이죠.”

김세준의 답변에 정수연이 다리를 꼬며 작게 웃는다.

말은 저렇게 간단히 해도 그가 이번 월드 투어에 가지는 기대감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는 그녀.

분명 1분 1초도 아까워하며 하루하루 연습에 매진 중이리라.

“오늘 부른 이유는 간단하게 몇 가지 알려드릴 게 있어요. 일단 첫 번째. 모든 공연장을 예약 완료했어요. 이건 그 공연장 리스트.”

정수연이 넘긴 서류 더미를 받아들고, 김세준이 기대감 넘치는 눈빛으로 차분히 서류를 훑었다.

한국 잠실올림픽 주 경기장을 시작으로 세계 굴지의 규모를 자랑하는 압도적인 공연장들의 향연.

일본의 도쿄돔.

영국의 웸블리.

미국의 로즈볼 스타디움.

브라질의 알리아즈 파르크.

사우디의 킹 파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 등등.

하나같이 그 나라를 대표하는 공연장이자 최소 5만 명의 관객이 들어올 수 있는 압도적인 크기.

비단 위에 언급한 공연장들뿐만 아니라, 독일과 캐나다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까지.

그 나라를 대표하는 스타디움의 이름으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세계적으로 봐도 이 정도 규모로 공연을 열 수 있는 가수는 드물어요.”

“예. 그래 보이긴 하네요...”

김세준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답한다.

막상 눈으로 보니 어안이 벙벙하다.

저 모든 공연장을 자신의 공연으로 대관했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총 열 개의 국가. 열다섯 개의 도시에서 펼쳐질 서른 번의 공연.

입에서 작은 웃음이 새어 나온다.

보고도 믿기지 않을 압도적인 공연 스케일.

그런 김세준을 보며 정수연이 흐뭇한 미소와 함께 재차 입을 열었다.

“기간은 총 3개월로 잡았어요. 조금 빡빡하긴 하지만 세준 씨가 빠르게 진행하고 싶다고 해서 조금 무리했어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이 정도 규모의 월드 투어는 육 개월에서 일 년 정도 걸리는 게 보편적인 일.

하지만 그렇게 길게 늘어트리고 싶지 않았던 김세준이었고, 일정을 최대한 빡빡하게 잡았다.

“자... 그러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할까요?”

정수연이 또 다른 서류를 준비하며 입가에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설레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느낌.

그 눈빛을 보며 김세준은 그녀가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단번에 짐작했다.

이미 하동준에게서도 몇 번이나 봤었던 시선.

돈과 관련된 이야기이리라.

“일단 이건 저희가 예상하는 매출 금액이에요. 어디까지나 예상이지만, 큰 차이는 없을 거예요.”

정수연의 자신만만한 말.

뭐 실제로 김세준의 공연이라면 전석 매진은 당연할 터.

그렇게 생각하면 예상 매출액을 선정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서류를 받아든 김세준이 이내 천천히 서류를 살핀다.

공연마다 얼마의 수익이 예상될지 논리정연하게 적혀 있는 서류들.

그리고 맨 마지막엔 총합이 적혀 있었고, 그 숫자를 본 김세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천 오백억이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큰 목소리로 말을 뱉었지만 부끄러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천 오백억.

말이야 쉽게 뱉지만, 웬만한 중소기업의 일 년 매출 규모 아닌가.

그 정도의 금액을 자신의 공연으로 벌어들인다는 게 쉽게 믿기지 않았다.

“그것도 순수 티켓 값만 계산한 거고, 굿즈 판매. 온라인 공연 생중계 수익, 팝업 스토어 수익 등을 합치면 예상보단 더 높을 겁니다.”

“허어...”

그녀가 왜 눈을 반짝였는지 알만하다.

3개월 바짝 일해서 매출을 1500억을 달성할 수 있다는데.

한 기업의 CEO라면 당연히 눈이 돌아갈 수밖에.

그것도 눈알이 두세 번은 돌아가고도 남을 정도.

“물론 비용도 많이 들긴 해요. 거기 적혀 있겠지만, 공연장과 전용기 대관비, 인건비 등등.”

정수연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자 앞서 말한 비용들이 적혀 있다.

물론 그 비용들을 고스란히 뺀 순수익이 약 1000억 남짓.

물론 1000억이 고스란히 자신에 손에 들어오는 게 아니고, 회사와 분배 하겠지만 상상도 못 할 거액이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지금까지의 삶도 돈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삶이었지만...

이젠 인생에서 돈은 초월하는 수준이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알려드릴 게 하나 있어요. 다다음 주. 티켓 예약 시작할 거에요.”

“아...”

정수연의 말에 김세준이 짧은 신음과 함께 기대감을 표했다.

과연 자신의 공연이 전석 매진을 달성할 수 있을까.

만약 모든 자리가 매진 된다면 얼추 계산해도 최소 관객이 백오십만 명이다.

가히 쉽게 상상도 안 가는 어마어마한 인파.

삼국지 같은 역사책에서나 봐왔던 가늠도 안 되는 숫자.

비록 한 공연장은 아니지만, 자신의 공연을 백 오십만 명이 현장에서 볼 장면을 떠올리니 온몸에 소름이 절로 돋았다.

‘와... 내가 뭐라고...’

상상도 못 할 거대한 숫자에 자신이 너무나 작게 느껴졌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 많은 사람이 공연을 보러오는 걸까.

어깨에 돌덩이라도 진 듯 무겁다.

약간은 딱딱해진 김세준의 표정을 읽은 정수연이 속으로 피식 웃었다.

사람인 이상, 부담이 안 생기는 건 거짓말일 터.

김세준의 이름값이 있다곤 하지만, 이번 투어는 세계적으로 봐도 손꼽히는 규모.

아마 최근 5년간, 펼친 월드 투어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규모이리라.

그만큼 세상이 김세준에게 거는 기대와 관심이 엄청나다는 뜻.

본인인 아닌 제삼자로선 부담감보단 자부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김세준이 보여준 행보.

단 한 번의 실패도 겪지 않은 진정한 승리자.

모든 곡, 모든 앨범, 모든 공연이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은 가수.

그런 행보를 떠올리자 정수연의 입가엔 진한 미소가 그려진다.

이번 월드 투어.

그동안 그가 보여준 행보처럼 성공이 가득하리란 확신이 들었다.

***

2월. 19일.

김세준의 첫 월드 투어 ‘The Melody of You and Me’.

오늘은 유럽, 그리고 내일은 아시아, 그다음은 북미 이어서 남미까지.

대륙별로 차례대로 이루어지는 티켓팅.

그 처음을 알린 건 유럽.

영국과 독일, 두 나라에서 열리는 공연.

북미와 아시아보다 김세준의 활약이 비교적 적었던 곳.

그러기에 김세준의 유럽 팬들에게 든 안일한 생각.

어렵긴 하겠지만, 다른 지역에 비하면 그나마 수월하게 티켓팅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판단.

자신은 성공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시작한 티켓팅.

하지만 고작 1분 30초 만에 많은 팬의 기대가 산산이 조각났다.

1분 30초 만에 전석이 매진되어버린 김세준 콘서트 티켓.

어처구니가 없고, 눈 뜨고 코 베인 기분.

자신의 안일함을 질책하며 눈물을 흘리며 반성했고, 유럽 지역의 티켓팅을 다른 지역의 팬들은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유럽이 저 정도이면...

자신들의 지역은 얼마나 치열할지 예상조차 되지 않았다.

특히, 북미와 아시아.

김세준이라면 끔뻑 죽는 두 지역의 사람들은 이 사태를 보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백오십만 명.

가늠하기도 힘든 많은 인원이지만.

전 세계에 있는 김세준 팬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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