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장준 피쳐링(3)
‘갓 텔런트’의 이번 시즌 마지막 방송이 끝나고, 김세준은 매들린에게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축하해. 우승자.]
누가 우승해도 이상하지 않을, 완벽한 무대들의 향연.
그 무대 속에서 다른 무대들보다 더욱 빛이 나고 아름다운 무대를 선보였던 그녀와 가야금이 ‘갓 텔런트’라는 미국 최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최연소 우승이라...’
그리고 그녀가 달게 될 또 하나의 꼬리표.
최연소 우승자.
열다섯이란 나이로 화려하게 가요계에 자신의 존재감을 내뿜은 그녀.
‘미래가 바뀌려나?’
그런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니 약간은 씁쓸한 웃음이 지어진다.
자신이 회귀하기 전엔,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그녀.
데뷔하자마자 미국 전역을 휩쓸고, 세계로 뻗어 나갔던 걸그룹 타임 멜로디의 핵심 맴버.
하지만 달라진 과거. 과연 그녀가 타임 멜로디로 데뷔를 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흐음...”
육성으로 나오는 신음.
타임 멜로디의 명곡들과 명 무대들을 떠올리니 아쉬운 마음이 절로 든다.
“뭐, 지금은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 없지.”
‘갓 텔런트’에서 우승했다고 걸 그룹으로 데뷔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래도 그녀를 보며 군침을 흘릴 엔터테인먼트들은 걸그룹 보다는 솔로를 생각하고 있겠지만.
자신이 그녀에게 감 놔라, 배 놔라. 말하는 것도 이상한 일.
그녀가 알아서 잘 선택하리라 믿었다.
만약 그녀가 솔로를 택한다면 아쉽고 마음 아프겠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을 한 가지의 가치가 그를 위로해준다.
‘가야금은 절대 포기하지 않겠지.’
방금 방송에서, 가야금을 뜯으며 노래하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처음엔 긴장한 여력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활기가 돌던 얼굴.
작은 미소와 반짝반짝 빛나던 눈.
재밌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
‘한창 재밌을 때지.’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며, 굳은살이 배기고 손이 붓기도 하며 고통과 괴로움이 동반되는 시기.
하지만 그런 고통과 괴로움조차 재밌을 때다.
하루하루 나날이 발전해나가는 자신의 모습에 쾌감이 느껴질 시기.
그리고 그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
‘저러면 절대 못 접지.’
비단 가야금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김세준은 다짐할 수 있었다.
그녀가 절대 가야금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그러기엔 이미 가야금의 매력에 너무 홀딱 빠진 그녀였다.
매들린이면 걸 그룹이든, 솔로든 분명 성공 가도를 달릴 게 분명하다.
회귀하기 전에도, 걸 그룹과 솔로. 두 가지다 큰 성공을 맛본 그녀였으니까.
가야금은 그런 그녀에게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터.
그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흡족한 미소가 지어진다.
자신 말고도 세계적인 가수가 가금을 연주하는 미래.
그리고 그런 매들린을 보며 그녀가 꿨던 꿈을 고스란히 꿈꿀 아이들.
“오빠? 저 나왔어요.”
눈부신 미래에 잠겨 있던 그의 정신을 깨운 건 이예은의 목소리.
욕실에서 나온 그녀가 가운으로 몸을 두른 채 그를 불렀다.
“음...”
고혹적인 그녀의 모습에 절로 터져 나오는 신음.
그래. 지금은 가야금이고 나발이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일 년에 몇 없는 이예은과 함께 밤을 지내는 날.
김세준이 눈을 반짝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가야금의 선율보다 아름다운 그녀에게 천천히 발걸음을 향했다.
***
시간이 흘러 1월 27일.
장준의 두 번째 미니 앨범이 발매하기 하루 전.
김세준은 오랜만에 방송국 스튜디오를 찾았다.
“와. 여기는 여전하구나.”
주차장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기실이 있는 층에 도착하고, 김세준이 작은 감탄을 터트렸다.
오랜만에 방문한 이곳.
하지만 그 모습이 자신이 마지막으로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진한 화장품 냄새와 가수들의 간식 냄새가 복도에 가득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들과 방송 스텝. 그리고 화려한 무대의상을 입은 가수들까지.
익숙한 풍경에 작은 미소를 짓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가 대기실 복도에 도착하자, 확 바뀌는 분위기.
그가 예전에 한 번 느껴봤던 변화.
‘강유나하고 임태현이었지.’
자신이 새파란 신인일 때, 두 사람의 등장에 사람들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이 등장하기 전까진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단숨에 바뀐다.
동경과 선망이 가득한 표정.
오늘 그가 올지 몰랐던 가수들은 입을 틀어막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비단 가수들에게만 느껴지는 감정이 아닌, 수많은 연예인을 봐왔을 스텝들조차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김세준.
한국의 자랑.
미튜브 역대 최다 조회 수 1위의 주인공이자, 미국 3대 음악 시상식 그랜드슬램의 주인공.
여기 모인 가수들의 인지도를 다 합쳐도 김세준의 반의반만큼도 따라가지 못할 터.
스타 중의 스타.
연예인 위에 연예인.
김세준이 가지고 있는 위치이자 명성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아, 네. 반가워요.”
그리고 이어지는 폭풍 같은 인사.
벌써 데뷔한 지 4년 차.
그를 동경하는 후배들이 까마득하게 많다.
그들의 인사에 일일이 답해주며 부담스러운 눈빛을 견뎌낸 뒤, 김세준이 장준의 대기실로 향했다.
“준아.”
“어. 왔어?”
약간은 초조한 듯, 대기실을 빙글빙글 돌던 장준이 그가 들어오자 환한 미소로 반겼다.
“똥 마려워? 왜 그러고 있어?”
“첫 무대잖아.”
“하긴 뭐. 아, 그리고 미안해. 이번 밖에 못 도와주는 거.”
“됐어. 임마. 한 번이라도 도와주는 게 얼마나 큰데. 너 바쁜 거 내가 몰라? 오히려 오늘 와준 게 고마울 지경이야.”
김세준이 장준의 노래로 방송 출연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제 월드 투어 준비를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야 할 때.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장준이 오히려 한 번이라도 출연하는 걸 고맙게 여긴다는 점.
“그래도 명색에 피쳐링인데...”
“됐어. 듀엣도 아니고. 피쳐링인데 뭐.”
“오늘 두 곡 부르지?”
“응. 타이틀이랑 수록곡 하나.”
비록 가수로선 아직 빛을 보진 못했으나, 예능으로 이름을 널린 알린 그.
덕분에 오늘 방송에서 2개의 곡을 선보일 수 있었다.
뭐, 내 출연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긴 했겠지만.
김세준이 아무 말이 없자 다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대기실을 빙빙 도는 장준.
그런 그를 보며 김세준이 실소를 터트렸다.
이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이 노래의 흥행을 아는 자신으로선 친구의 저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후우우...”
자신들의 차례가 되자 김세준과 장준은 대기실에서 나와 백 스테이지로 향했다.
김세준이 오늘따라 허전한 손을 느끼며 깊게 한숨을 들이켰다.
가야금을 연주할 필요가 없기에, 들고 오지 않았고, 가야금을 만지작만지작하는 것 대신, 그저 손만 꼼지락거린다.
긴장되진 않지만, 이제 안 하면 허전한 하나의 루틴.
“믿는다. 세준아.”
“뭘 날 믿어. 너 자신을 믿어.”
“그래야지...”
옆에서 같이 대기하던 장준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스텝의 신호에 무대 위로 향한다.
텅 빈 객석.
오늘 그의 무대는 방청객 없이 펼쳐지는 녹화.
조금 아쉽긴 하지만, 오히려 잘되었다 싶다.
안 그래도 긴장 많이 하고, 부담감을 많이 느끼는 장준한텐 이런 무대가 더 도움이 될 터.
무대에 오른 장준을 향해 PD가 큐 사인을 보내고, 이내 스튜디오를 채우는 노래.
잔잔하게 흐르는 멜로디에 김세준이 입가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다.
‘곡은 진짜 좋다니까.’
피아노와 기타의 잔잔한 조화.
화려한 음색은 아니지만,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해주는 부드러운 선율.
그러기에 많은 이들에게 끊임없이 계속 사랑받았던 명곡.
그 잔잔한 멜로디가 흘러나가고 이내 장준이 입을 열었다.
우연히 듣게 된 너의 소식.
이젠 잘 지내고 있다는 친구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작은 웃음을 흘렸어.
‘크으...’
잘하네.
귀를 녹이는 듯한 감미로운 미성.
듣는 순간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온다.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도대체 왜 이런 재능과 실력을 갖춘 가수가 여태까지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는지.
주변을 힐끔 둘러보니 스텝들의 얼굴에도 놀라움이 가득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명곡의 등장.
그저 예능이 더 적성에 맞는 가수라고 생각했던 남자의 색다른 모습.
‘뭐야? 장준 목소리가 원래 저랬나?’
‘몰라...’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리는 스텝들을 보며 김세준이 희미한 웃음을 짓는다.
드디어 친구가 세상에 인정을 받는 순간.
자신에 일처럼 기쁘고 뿌듯했다.
‘생각해보니 조금 질투 나네.’
얼굴도 잘생긴 놈이, 유머 감각도 빼어나고, 노래도 잘한다.
거기에 집안도 좋고. 인성도 좋다.
뭐 하나 부족할 거 없는 놈.
그런 가수이기에 자신이 팬이 된 거이기도 하지만.
슬슬, 자신이 무대 위로 나갈 차례.
김세준이 목을 한 번 돌리고, 가볍게 헛기침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파트가 시작되는 순간.
김세준이 무대 위로 발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가끔 떠올리곤 했어.
우연히 너와 마주치는 상상.
상상 속 나는 어른이었는데.
여전히 네 앞에선 난 철부지였네.
가사를 뱉으며 장준의 옆으로 다가간다.
미련 따윈 없는 줄 알았는데.
깨끗이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두 사람의 하모니.
서로 상반되는 목소리.
감미로운 미성과 거칠고 허스키한 목소리의 조화.
두 사람의 조화에 스텝들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감탄을 터트린다.
“좋다...”
“그러게요...”
“장준이 원래 이렇게 노래를 잘했나?”
“그러니까요. 워낙 예능 이미지가 강해서 전혀 상상도 못 했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비록 허드렛일을 하는 단순한 방송 스텝이긴 하지만 이 바닥에서 들어본 노래만 수십, 수백 곡.
이제 딱 무대를 보면 어느 정도 감이 올 때가 있다.
비록 100% 다 맞추는 건 아니지만, 자신들의 날카로운 촉은 제법 적중률이 높다.
아, 이 노래는 망했다. 아, 그리고 이 노래는 흥하겠다.
그리고 지금 장준의 노래는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촉이 발동했다.
“무조건 되겠네...”
가수의 이름값만 생각해도 어느 정도 성공은 보장될 터.
그리고 자신들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곡의 퀄리티와 장준의 노래.
게다가 은근히 낮은 음역과 어렵지 않은 박자.
“그러게. 아 발매 내일이지? 노래방 업데이트는 언제이려나? 불러보고 싶은데.”
왠지 자신들도 잘 부를 수 있을 거 같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거... 노래방 차트도 꽉 잡겠다.”
“음음. 확실히. 편하게 부를 수 있고, 가사도 좋고. 대박 나겠다. 진짜로.”
몇몇 스텝들의 말.
하지만 여기 있는 자들은 차마 몰랐다.
그들의 예상대로 음원 차트, 노래방 차트 모든 순위를 다 사로잡는 곡이지만.
그 인기가 3년 동안 이어지며, 노래방 차트와 음원 차트에서 상위권을 계속 차지한다는 것을.
역사적인 노래의 첫 무대.
그들이 지켜보고 있는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