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138화 (148/148)

#138

장준 피쳐링(2)

5년 만에 듣는 명곡.

그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뇌리에 생생한 멜로디.

김세준의 입이 저절로 달싹거린다.

아직도 잊히지 않은, 어쩌면 아직 탄생하지도 않았을 그 가사를.

‘좋네...’

입가에 작은 웃음이 지어지며 마음이 아련해진다.

오랜만에 들은 그리운 노래.

불현듯 듣고 싶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마치 제목이 기억 안 나는 추억의 노래를 마주한 사람들처럼 답답했던 지난날.

그 사람들은 제목이라도 기억나면 들을 수 있지만, 자신은 영락없이 세월만 흐르길 기다렸던 시간이었다.

그런 오랜 시간 끝에 드디어 듣게 된 노래.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의 감미로운 조화.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하게 만드는 멜로디.

그리고 지금은 아직 녹음하지 않았지만, 짧은 인트로가 끝나면 들려올 장준의 부드러운 목소리.

녹음 고음도 쉽게 소화하는 가창력의 대가인 장준치곤 낮은 노래.

일반인도 조금만 노력한다면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음역대.

‘그래서 처음엔 평가절하당하기도 했지만...’

이 곡이 막 인기를 끌기 시작했을 무렵에 사람들의 평가를 떠올리니 작은 웃음이 지어진다.

비교적 부르기 쉬운 노래이기에 다른 명곡들에 비해 그 평가가 낮아지긴 했지만.

이 곡의 진정한 값어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두드러졌다.

이 노래만 가지고 있던 유일한 기록.

3년 연속 뮤직인 연간 TOP 10.

그리고 역사상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노래.

자신이 데뷔해서 그 기록은 깨지겠지만, 3년 연속 뮤직인 연간 TOP 10이란 기록은 앞으로도 꾸준히 유지할 기록이다.

3년이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사랑받으며 평가절하하던 방구석 전문가들의 얼굴을 붉어지게 만든 명곡이었다.

“어때요?”

“좋네요.”

김세준이 아직도 곡에 취해 빠져나오지 못하여 넌지시 답한다.

오랜만에 들은 명곡은 오래된 명주보다 더 진한 여운을 그에게 남겼다.

그런 김세준의 모습에 송대준 또한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반응을 보아하니, 곡에 크게 반한 모양.

자신도 처음 곡을 듣고 반응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수록곡들도 들어볼래요?”

“아, 다른 곡들도 다 끝났어요?”

“네. 다 준이 자작곡이에요.”

김세준이 송대준의 말에 흔쾌히 응한 건 당연한 일.

송대준이 다른 음원 파일을 재생하자 녹음실을 가득 울리는 멜로디.

귓가를 부드럽게 간지럽히는 그 선율에 김세준이 고개를 까닥거렸고, 눈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다.

비록 자신이 참여할 노래들은 아니지만.

정말 좋아하고 듣고 싶었던 명곡들의 향연.

‘사장님 컬렉션에 하나 추가되겠지.’

명반을 자신의 사무실에 모아두는 이해진.

그 컬렉션에 추가되어도 일말의 여지가 없었다.

노래가 끝나고 김세준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작게 중얼거린다.

“빨리 녹음하고 싶네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송대준과 김세준에게 동시에 새며 드는 욕망.

하루라도 빨리 이 명곡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마음이었고, 둘의 마음에 응답하듯 녹음실 문을 누군가 두들겼다.

“형님. 안녕하세요? 세준아!”

스케줄을 막 끝내고 온 듯 피곤해 보이는 얼굴.

하지만 그 얼굴엔 기쁨이 가득했다.

그로선 처음 겪어보는 연예인의 삶.

몇 년을 오매불망 기다렸던 기회.

피곤함보단 기쁨이 더 컸다.

“축하한다. 요즘 많이 바쁘다며?”

김세준이 다가가 등을 한 대 툭 치며 기쁜 목소리로 말한다.

‘소외된 자의 슬픔’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

특유의 센스로 예능에서도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자신의 매력을 팔색조처럼 보여주고 있는 장준이었다.

“응. 축하는 무슨. 네가 축하받아야지. 진짜 축하한다.”

가수로서 그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할 위엄을 이룬 그.

한국 가수가 미국 3대 음악 시상식 그랜드슬램에 미튜브 역대 누적 조회 수 1위. 거기에 올해엔 월드 투어까지.

앞으로 한국 가수 중에 이런 가수가 또 나올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거대한 업적이었다.

“아, 곡은 들어봤어?”

장준이 재생이 끝난 파일이 켜져 있는 모니터를 보며 물었다.

그 목소리와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에 담긴 기대감.

그 감정을 읽은 김세준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어. 정말 좋더라. 개인적으론 소외된 자의 아픔에 전혀 꿀리지 않을 정도로.”

송대준도 옆에서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에 동조했고, 장준이 기뻐 함박웃음을 지으면서도 부끄러워 머리를 뒤통수를 만지작거렸다.

“고마워. 아 그리고 월드 투어 준비는? 시간 괜찮아?”

“응. 녹음 때문에 크게 지장 있지는 않을 거야.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곡이나 잘 마무리해. 이거 마무리만 잘하면 음원 차트 1위는 따놓은 당상이니까.”

음원 차트 1위라는 말에 장준의 눈이 달라진다.

예능에서 톡톡히 활약하고 있지만, 그는 예능인이 아닌 가수.

김세준의 노래 피쳐링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긴 했지만.

면밀히 살피고 보면 아직 자신만의 히트곡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음원 차트 1위는 가장 이루고 싶은 소망 1순위였다.

***

“오. 돼요. 오빠. 진짜 신기하다.”

자신의 집에 온 이예은.

그녀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화면을 보곤 놀라 손뼉을 마주친다.

인터넷에서 구매한 셋탑박스.

그 셋탑박스를 텔레비전과 연결하자 한국에선 볼 수 없던 미국 방송의 채널들이 수두룩하게 뜬다.

“아. 다행이네.”

설치를 마치고 소파로 온 김세준이 이마를 손등으로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미국 방송을 본방송으로 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지난날.

쉽지 않았지만, 인터넷을 뒤져 간신히 방법을 찾았다.

김세준이 핸드폰을 들어 광고가 나오는 화면을 찍어 누군가에게 보낸다.

“우승할 수 있을까요?”

머리를 김세준의 어깨에 기대며 이예은이 넌지시 물었고, 김세준이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모르겠네. 근데 반응은 좋다고 하던데.”

김세준이 셋탑박스까지 구매하여 미국 본방송을 보려는 이유.

미국에서 맺은 인연인 매들린 바넷.

오늘은 그녀가 ‘갓 텔런트’ 결승까지 진출해, 그 결승 무대에 오르는 날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오디션 프로그램인 ‘갓 텔런트’.

재능이 출중하고, 훗날 세계적인 아이돌이 되지만, 아직 어리고 그 재능이 완전히 개화하지 않은 그녀.

그런 그녀가 우승한다고 쉽게 장담하기엔 ‘갓 텔런트’의 다른 출연자들이 그리 만만한 인물들은 아니었다.

따돌림이라는 아픔과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매들린 바넷.

그런 그녀 못지않게 가슴 아픈 가지각색의 사연을 가지고 출연한 다른 출연진들.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으로 방송 시작을 기다리고 있을 때.

김세준의 핸드폰이 울리며 매들린의 답장이 왔다.

[지금 본방송으로 보시는 거예요? 고맙습니다! 진짜 잘하고 올게요!]

밝은 답장에 미소지으며 이예은에게 보여주자, 이예은도 귀엽다며 작은 웃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이내 광고가 끝나고, 시작된 ‘갓 텔런트’ 결승 무대.

“다들 잘하네.”

“그러게요. 확실히 미국이...”

무대 하나하나를 보며 김세준과 이예은이 감탄을 터트린다.

갓 텔런트란 제목에 딱 어울리는 출연자들.

신이 주신 재능. 그동안 세간에 드러나지 않던 자신들의 재능을 여실히 내뿜는 그들.

노래뿐만 아니라 춤, 마술을 포함하여 다양한 퍼포먼스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든다.

“쉽지 않겠는데...”

매들린을 응원하긴 하지만 쟁쟁한 출연진들의 모습에 김세준이 신음을 흘렸다.

개인적인 친분도 있고, 가야금이 저 무대에서 우승하길 누구보다 바라는 그.

아쉬운 마음에 중얼거리자 이예은이 옆에서 가볍게 그를 끌어안는다.

“아직 모르잖아요. 어! 이제 매들린이다!”

매들린이 무대 위로 등장하자, 이예은이 끌어안다 말고 자세를 고쳐 앉았고, 김세준도 눈을 크게 뜨며 텔레비전에 집중했다.

매들린이 무대에 올라서자, 방청객들도 환호성으로 그녀를 맞이한다.

요즘 가장 많은 이목을 끄는 악기인 가야금.

그 가야금을 연주하는 소녀. 그리고 신이 주신 재능이란 표현이 딱 알맞은 그녀의 목소리.

어린 나이에 결승까지 올라온 게 단순히 우연은 아니리라.

심사위원들 또한 기대감 넘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고, 그녀의 뒤를 따라 네 명의 여성이 이어서 들어오자 더 큰 환호성이 들린다.

“오. 가야금 5중주.”

김세준이 감탄을 터트리고, 이예은도 눈을 빛낸다.

매들린의 뒤를 따라 들어온 여성들과 그녀들의 손에 들린 가야금.

어떤 명곡을 또 연주할지 절로 생기는 기대감.

이내 매들린과 네 명의 여성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긴장 많이 했네.’

클로즈업 된 매들린의 얼굴.

진한 메이크업을 했지만, 화장 아래로 긴장한 여력이 가득한 표정.

김세준의 우려와 함께, 이내 매들린의 손이 가야금을 뜯었다.

대중음악을 상징하는 아티스트.

대중음악 역사상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뮤지션.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가장 성공한 4인조 밴드.

그들의 마지막 앨범 타이틀곡.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팝송을 꼽자면 항상 상위권에 자리 잡는 명곡.

그 노래가 가야금으로 연주되어 귓가에 울리자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한다.

다른 세션은 없이 오로지 가야금으로만 연주되는 소리.

“...”

“...”

그 음색에 김세준과 이예은이 말없이 무대에 빨려 들어간다.

무려 40년도 전에 나온 노래이지만, 아직도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곡.

그 명곡이 가야금의 서정적인 선율로 편곡되어 울린다.

부드럽고, 잔잔하게 울리며 사람들의 귀를 간지럽힌다.

그 멜로디를 음미하던 김세준은 가슴이 찡해지는 걸 느꼈다.

뭐랄까.

알 수 없는 감동이 엄습한다.

외국인이 가야금을 연주하고, 그 가야금이 내는 선율이 고전 팝송의 멜로디라니.

동서고금이 합쳐진 완벽한 조화.

흐뭇한 눈빛으로 텔레비전을 바라본다.

고사리만한 손으로 틀리지 않고 가야금을 연주하는 메들린.

‘잘하네...’

김세준의 감탄과 동시에 매들린이 굳게 다물고 있던 입술을 천천히 뗀다.

“...!”

“...!”

다섯 개의 가야금이 연주하는 음색 위에 덮인 그녀의 목소리.

그 아름다운 조화에 김세준과 이예은. 그리고 무대를 바라보던 방청객들이 동시에 입을 틀어막는다.

이미 몇 번이나 들어본 목소리지만.

들을 때마다 매번 충격을 선사한다.

“부럽다...”

이예은조차 그 목소리에 작은 질투를 느낄 정도로 독보적인 톤과 음색.

그리고 잠시 후, 명곡의 후렴구가 시작되자, 김세준과 이예은이 자신도 모르게 그 후렴구를 낮게 따라부른다.

단순한 가사가 반복되며 중독성 있는 후렴구.

비단 김세준과 이예은뿐만 아니라 클로즈업된 방청객들도 그 가사를 흥얼거린다.

1절이 끝나고, 중간 전주가 시작되자 김세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끝났네.”

김세준의 짧은 중얼거림에 이예은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있었던 많은 무대.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들어줬던 빼어난 무대였지만.

매들린의 음색과 가야금. 그리고 명곡의 조화는.

앞서 있었던 모든 무대를 까맣게 잊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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