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장준 피쳐링
대중음악계의 역사를 새로 쓴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짧은 사이, 김세준은 대중음악의 역사를 넘어 미디어의 역사를 새로 썼다.
미튜브 역대 누적 조회 수 1위.
그것도 채 1년도 안 된 최단시간으로 이룩한 업적.
“미친 기록이지.”
김세준이 입가를 쓸어 만지며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띤다.
먼 훗날, 역대 누적 조회 수 100억을 기록하는 동영상들도 있다.
그 동영상들이 나오면 자신의 역대 누적 조회 수 기록은 깨지겠지만.
약 6개월가량 만에 1위를 달성한 이 기록은 전무후무할 기록.
자신이 아는 최소 20년 동안은 깨지지 않을 기록이자, 아마 그 이상의 아득한 시간을 넘어서도 절대 깨지지 않을 대기록.
“내가 죽을 때까지 안 깨지지 않을까?”
스스로 말하고 고개를 끄덕여 스스로 답한다.
얼핏 거만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말이지만,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는 말.
인류 역사에 절대 지워지지 않을 큰 획을 그은 자신이었다.
비단 혼자의 생각이 아니라 대중들의 공통적인 생각.
그러기에 시상식 시즌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김세준의 이름이 전 세계에 울려 퍼졌다.
한국은 물론, 각종 외신의 각종 언론에서도 그의 영향력을 대서특필했다.
그중 메이저 언론사의 한 헤드라인.
[김세준의 영향력은 마이클 잭슨과 비견할 만하다.]
전대미문의 세계 최고 팝 가수와 감히 비교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
자칫 잘못하면 몰매를 맞을 수도 있는 헤드라인이었지만, 그 기사에 불만을 표출하는 자는 없었다.
미국 3대 음악 시상식 그랜드슬램.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튜브 역대 조회 수 1위.
연타석 홈런을 쳤고, 전 세계 인구 약 80억 중에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이제 더 많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되니 동시에 가야금 또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악기 중 하나가 됐고, 전 세계에 가야금 열풍이 돌았다.
세계 곳곳에서 가야금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속출.
가야금 전문 학원이 등장하고, 수강생이 넘쳐났다.
세계로 널리 퍼져나가는 가야금의 명성에 함박웃음 짓던 김창용을 떠올리며 김세준이 피식 웃었다.
자신의 오랜 꿈이기도 했지만, 국내 가야금 전공자들의 오랜 염원.
가야금의 대중화.
그 숙원의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했다.
***
집에서 나온 김세준이 향한 곳은 아레스 뮤직 사옥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가는 곳.
옛날에 자신의 집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들락날락했었는데.
그곳을 향하는 발걸음 사뭇 가볍고 경쾌했다.
“기대되네.”
두 손을 비비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은 장준을 만나 그의 새 앨범 피쳐링에 관해 논하는 날.
익숙한 건물 사옥으로 들어가 로비에 도착하자,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피로해 보이는 표정.
반가움에 김세준이 자신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외쳤다.
“대준 씨!”
“어어! 세준 씨!”
아레스 뮤직의 메인 프로듀서. 송대준.
김세준을 발견하자 그의 얼굴에 피어오르는 반가움.
귀까지 걸린 미소가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얼마 만입니까. 이게!”
“그러게요. 잘 지내셨어요?”
김세준도 오랜만에 보는 송대준이 사뭇 반가워 높은 목소리로 그의 안부를 물었다.
“저야 잘 지내죠. 아 맞다. 인사가 늦었네요. 진짜 축하드립니다. 세준 씨.”
“아, 고마워요.”
송대준의 진심 어린 인사에 김세준이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와... 저랑 같이 첫 곡한 게 엊그제 같은데. 그게 벌써 4년 전? 5년 전?”
“그 정도 됐죠.”
생각해보니 벌써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자신이 회귀하고, 첫 데뷔를 한 지.
김세준이 추억으로 잠깐 빨려들어 간 그때, 송대준도 옛 기억을 떠올린다.
‘내가 미친놈이었지...’
그를 향해 애송이라고 말했던 자신.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잠들기 전 이불킥을 하게 만드는 자신의 흑역사.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고, 역대 미튜브 뮤직비디오 조회 수 1위.
감히 자신과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재능이 남다른 자.
비록 잠깐이고 초면에 그렇긴 했지만, 그런 사람을 무시하고 깔보던 자신.
미친놈이란 단어로도 부족할 무지한 과거의 자신이었다.
“아, 대준씨가 이번에 준이 앨범 프로듀서하시는 거예요?”
“네. 맞아요. 이번 앨범이 제가 아레스 뮤직에서 만드는 마지막 앨범입니다.”
“...! 네?”
송대준의 말에 김세준이 놀라 묻자, 그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니 뭐. 그냥 이제 독립하려고요.”
“아...”
그가 직접 기획사를 차리고 싶다는 뜻.
송대준의 꿈을 몰랐기에 제법 놀랐다.
‘송대준이면 뭐...’
비록 그가 한 회사의 대표라는 모습을 생각해보진 않았으나, 그동안 봤던 그.
노래도 잘 만들고, 가수 보는 안목도 썩 괜찮으니 열심히만 한다면 어쩌면 좋은 결과가 있을지도 몰랐다.
“아, 축하드려요!”
“고맙습니다. 나중에 회사 차리면 한 번 놀러 오세요.”
“그럴게요. 당연히 가야죠. 사장님은 뭐라고 딱히 말씀 안 하셨어요?”
“아시잖아요. 사장님 성격. 그냥 축하한다고. 많이 도와주겠다고 그러시죠. 솔직히 사장님이 도움 없으면 독립할 생각도 안 했을 거예요.”
“아...”
하긴 이해진이라면 그럴 성격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김세준을 보며 송대준이 몸을 까닥거렸다.
“준이는 오려면 조금 걸릴 거 같던데. 먼저 들어가서 곡 한 번 들어보실래요?”
“아. 좋죠.”
송대준의 말에 녹음실로 향했고, 익숙한 장소에 슬며시 미소가 흘러나온다.
“여전하네요.”
“뭐, 크게 달라진 건 없죠. 자, 일단 준이가 준비하고 있는 곡이... 아! 이거다!”
컴퓨터에 앉은 그가 폴더를 뒤적거리더니 한 곡을 찾곤 씨익 미소짓는다.
“들어본 적 없죠?”
“네.”
고개를 끄덕거리지만.
100번은 넘게 들었을 거다.
“준이. 그 자식. 요즘 완전 물올랐나 봐요. 세준 씨한테 준 곡도 그렇고, 이번 곡도 그렇고. 느낌이 와...”
하긴.
두 곡 다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명곡들.
송대준의 반응이 전혀 과장된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김세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틀겠습니다.”
그런 김세준의 모습을 본 송대준이 음원 파일을 클릭했고. 이내 흘러나오는 멜로디.
김세준이 눈을 감고 그 멜로디를 천천히 음미하고 입가에 작은 미소를 머금는다.
5년.
5년 만에 들어보는 명곡의 멜로디였다.
***
김세준의 활약으로 대한민국이 달아오른 요즘.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 희소식이 그들에게 전해졌다.
지구촌의 축제인 월드컵.
평소 축구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이 순간만큼은 축구에 열광하고 빠져드는 세계 최고 규모의 단일 스포츠 대회.
결승전만 시청자 수가 10억을 가뿐히 넘고, 누적 시청자 수는 30억을 넘어서는 세계가 열광하는 축제.
2002년 그 축제 속에 살아 아직도 그때의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를 생생히 기억하는 대한민국 국민.
그들이 다시 한번 그때의 흥분을 느끼게 되었다.
2034년 월드컵 한국 개최 확정.
약 10년 정도 뒤의 미래인 만큼, 까마득한 시간이 흘러야 하지만.
2002년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이보다 흥분되는 순간이 없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장 장관님도 고생 많았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유치하기 위해 가장 큰 노력을 공들였던 두 사람.
대한민국축구협회 회장인 정구영과 문화체육부 장관인 장태석.
두 사람이 고급 일식집 프라이빗룸에서 가볍게 술 한 잔을 부딪치며 마주 웃었다.
“힘든 싸움이었습니다.”
“예. 마지막까지 동북아 3파전이 치열했지요.”
이번 월드컵 유치.
일본과 중국이 끼어든 동북아의 3파전이었다.
중국은 처음으로 월드컵을 유치하겠다는 욕망을 내뿜었고, 일본과 한국은 공동 개최를 넘어서 단일 개최를 꿈꾸며 뛰어들었다.
치열했던 3파전이었지만, 승자는 결국 한국.
전 국민이 열광했고, 그들 또한 체면을 잊고 서로를 얼싸안으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2034년이라... 그때까진 죽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야겠군요.”
“당연한 말씀을. 그전에 죽으면 억울해서 눈도 못 감을 겁니다.”
실없는 농담에 피식 웃음을 흘린다.
2002년의 뜨거움을 느껴봤던 두 사람.
농담이지만 진심도 반쯤은 섞인 말이리라.
“이제 시작입니다. 힘드시겠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요. 월드컵이 다시 한번 국내에서 열리는 게 내 꿈이었는데요. 잘 해야지요.”
두 사람의 대화는 그 뒤로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월드컵 개최라는 중대사.
그 중대사의 앞일을 논하는 중요한 식사였고, 그 시간만 무려 3시간이 걸렸다.
“그럼, 들어가세요.”
“예. 들어가십시오.”
정구영이 먼저 비서가 몰고 온 차를 타고 들어갔고, 장태석도 자신의 보좌관이 끌고 온 차에 탑승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장관님.”
“출발하지.”
보좌관의 인사에 손을 대충 휘저으며 답한 장태석이 이내 시트에 자신의 몸을 누였다.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그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며 달려왔던 자신.
그간의 긴장이 풀리고, 술이 들어가자 피로가 엄습해온다.
속이 살짝 울렁거려 창문을 열자, 아직은 차가운 겨울바람이 창문을 타고 들어온다.
“히터 끌까요?”
“아냐. 그냥 잠깐 답답해서.”
보좌관의 말에 고개를 젓고 창밖을 바라볼 때.
그의 귓가에 스며 들려오는 소리.
신호에 걸려 정차한 차량.
자신의 차량 바로 옆, 차에서 틀어놓은 시끄러운 노래가 자신의 귓가에까지 들려온다.
“음?”
“아... 그 김세준 노래입니다. 그 작년...”
“나도 알고 있어. 그 친구 이름을 문화체육부 장관인 내가 모르는 게 말이 되나?”
“죄송합니다.”
장태석의 핀잔에 보좌관이 재빨리 고개를 숙인다.
김세준.
아들의 친구이자 이제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
아니, 이제 대한민국 최고가 아니라 세계에서 최고라고 봐도 무방한 가수.
평양공연에서 본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짧은 사이 그 전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물이 되었다.
‘할 줄 아는 게 없는 놈이더니. 친구는 잘 뒀어.’
모든 게 못마땅한 아들이지만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것 하나가 김세준이었다.
덕분에 아들도 요즘 나름 유명세를 떨치고 있으니 부모로서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는 그런 남자였다.
들려오는 멜로디에 눈을 감으며 음미한다.
감미로운 가야금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자 입가가 꿈틀거리며 미소가 지어진다.
‘노래 좋네.’
잠시 후, 신호가 바뀌고 이내 차량이 출발하자 그 노래가 엔진 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
작은 아쉬움을 느끼면서 장태석이 창문을 이내 닫았고, 문득 생각했다.
아직 먼 미래의 일이고, 그때 김세준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2002년 월드컵 개최식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공연을 펼친 가수가 얼마 안 되어 병역 비리로 논란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그때의 추태.
김세준이 그전에 그런 추태를 벌일지도 몰랐고, 월드컵 이후로 몰락을 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장태석은 부디 그가 그런 논란에 휩싸이지 않길 바랐다.
아니, 지금의 인기를 꾸준히 유지하길 바랐다.
그러면 자신의 상상이 무조건 현실이 될 테니까.
세계의 축제.
전 세계가 이목을 집중하는 축제의 개최식.
그때 김세준이 등장하고, 가야금을 연주하는 상상.
그 장면을 떠올린 장태석이 희미하게 웃는다.
“잘 어울리네.”
아무리 생각해봐도.
김세준보다 그 무대에 잘 어울리는 가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