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두 번째 어워드(6)
에드 케인의 무대가 끝나고, 계속된 그래미 어워즈.
각종 수상과 그들의 수상소감과 가수들의 공연까지.
제법 긴 시간이 흘렀고, 이내 세계 최고의 시상식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후보를 발표할 때부터 세간에 화제가 되고 논란이 됐던 가장 중요하고 권위 있는 상.
올해의 앨범 상(Album of the Year).
그 상을 떠올린 김세준이 자신도 모르게 손을 꼼지락거렸고, 손끝에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에 씩 웃음을 지었다.
양손 가득 들고 있는 트로피.
최고 팝 보컬 앨범 상(Best Pop Vocal Album).
최고 팝 솔로 퍼포먼스 상(Best Pop Solo Performance).
장르 필드에서만 2개의 상을 차지한 그.
거기에 더해 본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제너럴 필드에서도 이미 2개의 상을 차지했다.
올해의 레코드 상(Record of the Year).
올해의 노래 상(Song of the Year).
‘네 개.’
손에 들린 총 네 개의 트로피.
트로피에 담긴 의미까지 떠올린다면 절대 가볍지 않은 무게.
느껴지는 묵직함에 손이 떨릴 정도였다.
지금도 이렇게 묵직하게 느껴지는데 여기에 저 상까지 추가된다면 얼마나 무거울까.
김세준의 마음에 슬그머니 탐욕이 피어올랐다.
이미 올해 그래미 어워즈 최다 수상자란 기록도 세웠고, 누구나 인정할만한 큰 업적을 세웠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저 상이 탐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리라.
욕심이 담긴 시선을 힐끔 무대 위로 보냈다.
마지막 무대를 꾸미는 가수의 공연이 한참.
멋진 무대이고, 좋아하는 노래이지만 솔직한 심정으론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일 년에 딱 한 번만 볼 수 있는 공연.
그런 가치가 있는 공연임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사람 심리라는 게···.’
사람 마음이란 게 이렇게 간사할 줄이야.
텔레비전으로 이런 시상식을 구경할 땐, 당연히 저 가수가 될 거라고 쉽게 짐작하고 그렇게 이루어지는 걸 보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막상 자신이 그 당사자가 되니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이미 네 개의 상을 받았고, 호사가들이 꼽은 가장 강력한 수상 후보.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그를 지명했고, 그래미 어워즈가 자신들을 향한 비판을 종식하기에 딱 알맞은 후보자.
하지만 그런 제법 일리 있는 근거들조차 부질없게 느껴진다.
떠오르는 건, 그저 부정적인 생각들뿐.
기대가 크며 실망도 크기에 뇌가 알아서 기대치를 낮추고 있는 느낌.
입술이 바짝 마르고, 무대를 보는 건지, 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후우우...”
깊은 한숨을 내뱉자 옆에 있던 에드 케인이 고개를 돌리더니 씩 미소를 지었다.
‘잘 알지. 저 기분.’
남들은 유력후보라고 하며 진작 축하를 해주지만, 자신은 그냥 가슴이 터질 거 같은 기분.
여기서 자기가 마치 뭐라도 된 듯 말을 내뱉었고, 귓가에 들어올 리가 없다는 걸 알기에 에드 케인은 아무 말 없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어쩌면 저런 불안감도 승리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것.
왕관을 쓰고 싶은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김세준이 견뎌야 할 감정이었다.
그렇기에 자신과 시선이 마주친 에이미도 김세준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작은 미소가 짓지 않았나.
“오. 시작하네.”
에드 케인의 중얼거림에 집중하지 못하던 김세준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느새 화려한 무대가 끝났고, 웅장한 음악과 함께 마지막 시상을 알리는 사회자.
무대가 끝난 지도 모른 채 정신이 나가 있었다.
식은땀으로 등 뒤가 흠뻑 젖고, 긴장감으로 가슴이 터질 거 같은 순간.
김세준이 그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넌지시 입을 열었다.
“에드. 에이미.”
“응?”
“네?”
“내 손 좀 잡아줄래요?”
김세준의 부탁에 두 사람이 망설임 없이 손을 잡아준다.
트로피의 무게 대신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
그제야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는 걸 느낀다.
이런 낯간지러운 부탁을 한 게 부끄럽긴 하지만, 이런 거라도 안 한다면 도저히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리고 사회자의 소개에 시상대에 등장하는 한 남성.
제법 잘 생긴 백인 남성의 등장에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작년 그래미 어워즈 올해의 앨범 상 수상자.
그가 올해엔 수상자가 아닌 시상자로 이 자리에 섰다.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등장한 그가 시청자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올리고, 시상자로서의 소감을 밝힌다.
사족이 길다.
동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다른 이들과 달리 김세준의 눈빛엔 초조함만 가득.
다리를 가만히 둘 수 없어 쉴 새 없이 떨고,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에이미가 손아귀에 느껴지는 압력에 순간 미간을 찌푸렸고, 아프다고 말을 뱉으려 했으나 긴장감에 여유 없어 보이는 김세준의 표정을 보곤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소감을 내뱉은 그가, 큐카드를 들었고, 후보로 등록된 가수 한 명 한 명을 소개한다.
김세준을 포함하여 총 8명의 후보.
소개될 때마다 거대한 백스크린에 나오는 그들의 얼굴.
김세준은 미처 몰랐다.
텔레비전으로 봤을 땐 다들 여유롭고 느긋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치 자신은 이런 명예를 초월했다는 것처럼 말하는 듯 보였던 그들의 얼굴.
하지만 막상 이 자리에 오니 지금 저들이 얼마나 절실하고 간절한지 뼈저리게 느낀다.
만면에 작은 미소를 띠고 있지만, 그 미소 뒤에 감쳐진 그들의 감정이 보였다.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과 똑같았다.
일말의 기대감. 그리고 상실감과 불안감.
후보로 등록된 이상,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있을 터.
유력후보가 아니더라도 그 작은 불씨를 붙잡고 신을 찾으며 기도하는 그들.
그런 그들의 애타는 마음이 절로 느껴졌다.
“그래미 어워즈 올해의 앨범 상 주인공은...”
그리고 모든 소개가 끝나고, 시상자가 큐카드를 보며 입을 연다.
1초가 억겁같이 느껴지는 시간.
긴장감으로 속이 울렁거려 구역질이 나올 거 같고. 목은 말라버린 지 오래.
눈 하나 깜빡할 수 없었다.
그리고 손을 부여잡아 김세준의 긴장이 여실히 느껴지는 에이미와 에드 케인 또한 몸을 앞으로 숙이며 그다음 한 마디를 기다렸고.
그가 역사를 쓰길 기원하는 그의 수천 만의 팬들 또한 텔레비전 앞에서 양손을 깍지끼며 간절히 빈다.
“축하합니다! 세준 킴!”
“...!”
시상자의 말과 함께 축포가 터지고, 백스크린에 김세준의 얼굴이 비친다.
두 눈이 커지며 놀란 얼굴의 그.
옆에 있던 에이미와 에드 케인이 그를 얼싸안으며 외친다.
“축하해!”
“축하해요!”
진심으로 축복해주는 두 사람.
“고...고마워요.”
그런 두 사람을 향해 목소리를 떨며 화답하는 그.
긴장감이 풀린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에드 케인이 부축해줘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시상대로 걸어나갔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데자뷰처럼 스쳐 가는 지난 기억.
교통사고를 당했고, 과거로 회귀해 술집에서 이해진을 만났고, 아레스 뮤직에 들어가고 데뷔하고, 이예은을 만났고, 음원 차트 1위를 했다.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어 외국 가수들과 함께 노래하고... 결국, 그래미 어워즈를 수상한다.
머릿속에 재생된 필름이 그 추억 하나하나를 생생히 그려준다.
“축하해요. 세준. 역사를 썼군요.”
“고맙습니다...”
시상자의 말에 김세준이 꽃다발과 트로피를 받아들곤, 작은 목소리로 답한다.
흔한 상상이자 몽상.
절대 이루어질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지금.
그냥 살면서 생각하는 흔하디흔한 망상이었다.
마이크 앞에 서자 자신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온다.
그의 얼굴을 지나쳐 떨어지는 눈물이 한복에 부딪혀 바스러진다.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또박또박 자신의 소감 한마디를 진심을 가득 담아 내뱉기 시작했다.
“누구나 꾸는 꿈. 흔한 몽상이었고,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목멘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오고, 그의 수상소감은 흐느낌이 반이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 속에서 그가 그래도 자신의 마음을 또박또박 토해낸다.
“이 상을 받는 게 아닌, 가수라는 삶 자체가 제 인생에선 이룰 수 없는 망상이었습니다. 우연히 기회가 생겼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가수의 삶을 살았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던 이해진과 하동준이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가수를 시작하고,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고, 좋은 동료들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올라왔습니다.”
김세준과 함께 작업했던 가수들도 그의 말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그리고 사랑하는 제 팬분들. 정말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제 노래를 좋아해 주신 모든 분에게 축복이 있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감사의 인사를 고해야 할 하나.
김세준이 고개를 들어 화려한 조명이 빛나는 천장을 넌지시 바라본다.
눈부셔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
하지만 김세준의 입가엔 진한 미소가 걸린다.
그 누구보다 고마운 존재.
누군지는 모르고, 실존하는지도 모르지만.
천천히 고개를 내려 마이크에 입을 갖다 대고, 눈물을 흘리며 김세준이 환한 미소를 짓는다.
“신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그래미 어워즈.
대중음악계의 새로운 역사가 쓰일지, 사람들의 관심이 가득했던 그 시상식이 끝난 지 보름이 지났다.
새해가 밝았고, 김세준은 자신의 집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진열대를 바라봤다.
“보기 좋네.”
절로 지어지는 흐뭇한 미소.
작년 이맘때까진 다소 쓸쓸해 보이던 그 진열대가, 지금은 황금빛 반짝임이 가득하다.
그가 이번에 받은 상은 무려 16개.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이라 불리는 그래미 어워즈와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빌보드 뮤직 어워즈.
이곳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리고 한국의 음악 시상식인 아시안 뮤직 어워즈와 백상뮤직 디스크 어워즈.
이곳에서도 받을 수 있는 상은 다 받은 그.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라에서 준 대중문화예술상까지.
그동안의 노고가 단숨에 풀리는 휘황찬란한 트로피의 향연에 절로 흐뭇해지고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그런 흐뭇한 감정을 느끼는 오천만의 사람들.
아무리 K-POP의 위상이 날이 갈수록 높아진다고 해도, 한국하곤 전혀 상관없을 이야기라 여겼던 미국 3대 음악 시상식.
김세준이 세계 최고의 가수라는 게 여실히 증명된 순간이자, 한국의 음악이 세계 최고의 음악 중 하나가 된 순간.
열광에 빠지지 않는 게 이상한 순간이었다.
마치 축제가 열린 것처럼 흥분에 가득 찬 사람들이었고, 김세준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거의 불가침영역이 되어버렸다.
그의 안티팬은 존재할 수 없었고, 존재해서도 안 될 그런 가수가 되어버린 그.
세계 대중음악 역사를 새롭게 쓴 인물.
그런 인물이 자신과 같은 한국인이라는 게 사람들의 마음에 큰 자긍심을 심어줬다.
“아. 맞다. 미튜브는 어떻게 됐지?”
그래미 어워즈에 신경이 쏠려 한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미튜브.
김세준이 핸드폰을 꺼내 미튜브에 접속하고, 자신의 이름을 검색한다.
그의 채널이 뜨고, 그리고 그 밑에 조회 수 순으로 영상이 뜬다.
“잠..잠..깐만... 너무 빠른데?”
채널 바로 밑에 있는 영상을 보며 김세준이 놀라, 말을 더듬거린다.
원래 역사보다 훨씬 빠른 속도.
‘소외된 자의 아픔’ 뮤직비디오.
발매한 지 1년도 안 된 그 영상의 조회 수가 벌써 60억을 넘겼다.
이대로만 간다면 70억은 순식간에 달성할 터.
김세준의 입가에 진득한 미소가 걸린다.
역대 미튜브 조회 수 1등.
이미 수차례 새로운 역사를 썼지만.
또 한 번 새로운 역사가 쓰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