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두 번째 어워드(4)
폭죽이 터져나가며 시상식의 서막을 알리자 스테이플스 센터에 큰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오늘은 올 한 해 자신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들어준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몇 안 되는 순간.
게다가 화려한 퍼포먼스와 무대 구성으로 그 명성이 드높은 그래미 어워드.
어떤 공연으로 자신들의 눈과 귀를 기대감으로 가득 찼던 관객들이다.
그리고 누가 처음으로 나와 자신들의 기대를 충족시킬지 호기심으로 지켜보던 그들이 국악단이 등장하자 열광에 빠졌다.
저들의 등장은 누가 첫 무대를 꾸밀지 단숨에 짐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김세준.
올 한 해 가장 센세이션한 활약을 펼친 가수.
정규앨범과 EP 앨범을 통해 자신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해줬던 진정한 뮤지션.
그라면 자신들의 부푼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아티스트였다.
그리고 이내 김세준이 무대에 올라오자 그들은 무대가 무너질 듯 소리를 내질렀다.
‘와우...’
무대에 올라온 김세준이 고양감이 절로 느껴지는 관객석을 보며 순간 탄식을 뱉었다.
2만 명의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손을 흔들고, 아우성을 치고, 어눌한 발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연호한다.
이미 몇 번이나 비슷한 풍경을 무대 위에서 내려다본 경험이 있지만, 볼 때마다 새롭고 쾌감이 치밀어 오르는 장관이었다.
게다가 작년이랑은 전혀 달라진 저들의 반응.
작년엔 처음에 자신이 올라왔을 때 그들의 시선이 의구심이었다면, 지금은 환희 그 자체.
1년 만에 달라진 자신의 위상이 단번에 체감되며 흡족한 미소가 얼굴에 그려졌다.
그 미소와 함께 무대 중앙에 설치된 가야금으로 향해 앉았고, 이미 시작된 전주에 맞춰 가야금을 뜯었다.
첫 무대를 꾸밀 자신의 곡은 아직도 빌보드 차트와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소외된 자의 아픔’.
아마 올 한 해가 끝날 때까진 무난하게 1위를 차지하고 있을 곡.
그래미 어워드의 시작을 알리는 첫 공연에 알맞은 노래였다.
피아노와 가야금의 선율이 돋보였던 원곡.
하지만 지금 무대에서 들리는 곡은 피아노의 음색이 들리지 않는다.
대신 관객들에겐 나름 익숙하고 그리웠던 음색들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거문고와 해금. 그리고 대금을 비롯한 다양한 국악기.
김세준의 노래에 숱하게 쓰였던 그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
“오...”
관객들의 입에서 동시에 흘러나오는 감탄.
라이브로 연주되는 부드러운 음색들.
피아노의 잔잔한 울림이 있는 선율도 좋지만, 국악기 만들어진 이 노래도 원곡 못지않게 감미로운 맛이 있다.
게다가 대부분이 평생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국악단의 연주.
가지각색의 악기가 악공들의 손에 연주되는 모습이 그들의 눈엔 색다르고 흥미롭게 보였다.
그리고 연주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귓가를 울리는 음색까지도 그들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소외된 자의 아픔’ 국악 버전.
고작 악기 몇 개가 바뀌고, 박자와 음색이 조금 수정된 것뿐인데.
그것만으로도 곡의 매력이 더욱 짙어졌다.
씁쓸하고, 외로운 곡의 분위기가 여실히 느껴지는 편곡.
원곡보다 훨씬 더 깊은 감동을 심어줬고, 관객들이 한국 전통악기의 매력에 깊이 빠져든다.
가야금과 피아노의 조화도 매력적이었지만.
몇백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의 조화에 감히 비빌 순 없었다.
고운 한복을 입은 수십 명에 연주자들이 만들어내는 화음.
마치 하나의 악기가 연주하는 듯했다.
모두가 가진 원죄가
당신에게만 유독 무겁다고 느껴졌겠죠.
당신은 틀리지 않았다는 사람들의 말이
위선이자 허울 좋은 변명처럼 들리셨겠죠.
“...!”
그리고 거기에 김세준의 목소리가 덮이자, 관객들이 습관적으로 환호성을 내뱉고, 동시에 진한 충격을 받았다.
아직 미국에선 많은 공연을 선보이지 않았던 그.
김세준의 라이브를 들어본 관객은 많지 않았기에 그의 생생한 목소리를 처음 들어보는 이들이 음반보다 훨씬 깊은 힘이 있는 목소리에 탄식과 함께 입을 막았다.
한국을 넘어 미국에서도 유명한 소문인, 김세준은 무대체질이다.
그 소문을 반신반의하던 관객들에게 하나의 확신을 심어주는 첫 마디.
듣는 순간 알았다.
왜 사람들이 그가 무대체질이라고 말하는지.
음원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심어준 그의 노래지만.
그것만으론 느낄 수 없던 울림이 마음속에 잔잔히 퍼져나갔다.
“좋은데?”
“응. 난 개인적으로 원곡보다 더 좋은 거 같아.”
관객들이 받은 감동.
그 감동은 오늘, 같이 무대에 슬 세계적인 스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많은 악기를 접해본 이들이지만, 쉽게 볼 수 없던 악기들의 조화.
처음 들어보는 음색의 조화지만 귀와 마음을 간지럽히는 저 음색들.
왜 저 악기들이 수백 년 동안 사랑받았는지 여실히 알게 해준다.
거기에 더해 평소보다 더욱 애절하게 들리는 김세준의 목소리.
세상을 원망하고, 신을 저주했나요.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하루가 지옥이었나요.
더 아파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아팠었나요.
“오우...”
점점 고조되어가는 곡의 감정.
김세준의 미성이 울려 퍼지고, 가수들이 동시에 감탄을 내뱉는다.
“저... 악기 탐 나네...”
그리고 김세준의 뒤에서 받쳐주는 악기들을 보며 몇몇 싱어송라이터는 눈빛을 빛낸다.
특유의 감각적인 소리를 내뱉는 유니크한 악기들.
아티스트로서의 욕망이 피어올랐고, 오늘 모든 식이 끝나는 순간 김세준에게 달려가 악기를 소개받을 심산이었다.
그리고 그런 가수들 사이에서 김세준을 유독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
그룹 마룬즈에 리더이자 메인 보컬인 에단.
애증 섞인 눈빛.
‘하아...’
세간에 도는 김세준의 소문.
그리고 그 소문에 최대 피해자인 자신들.
그가 갑자기 후보로 등록되지 않았다면 무난하게 받을 줄 알았던 올해의 앨범상.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그 뒤로 들려오는 소문들.
이미 각종 논란이 수차례 벌어졌던 그래미 어워드.
그러기에 그 소문이 단순히 뜬구름 잡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자 치밀어오르는 증오.
그렇게까지 했어야만 했나, 뮤지선으로서의 자존심도 없나.
당시 들었던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
그 감정은 김세준과 그의 소속사에서 낸 해명에도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방금까지도.
정확히는 김세준이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그때까지도 그를 고깝게 생각했고, 비열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대에 올라 공연을 시작한 그.
스테이플스 센터에 울려 퍼지는 김세준의 곡.
원곡이 아닌 그만의 방식으로 편곡한 노래.
듣는 순간 가슴을 울리는 감동.
‘아...’
악마의 재능.
천재라는 수식어가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가수.
아무리 그를 싫어한다고 해도, 이 노래는 싫어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 처음엔 더욱 짜증이 치밀어올랐지만.
무대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점점 달라지는 감정.
관객들이 그의 무대에 여실히 빠져들고, 어느새 자신을 비롯하여 그를 아니꼽게 보던 사람들도 깊은 감동에 빠져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그 모습을 보며 그가 진작에 깨닫고 있던 사실 하나가 다시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번 그의 앨범은 EP 앨범이라고 평가절하하기엔 너무 아까운 명반이었고, 명반에 포함된 네 곡 모두, 뭐 하나 빠짐없이 명곡이라고 불려도 손색없는 노래라는 걸.
그러기에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어느새 눈을 빛내며 그를 바라보고 있지 않나.
그리고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펙트.
그 펙트를 무시한 채 전통을 깼다는 이유 하나에 목매달던 자신.
‘명예에 눈이 멀었던 걸까?’
상에 눈이 멀어 그를 편협한 시선으로 바라본 걸까?
김세준을 우수에 찬 눈빛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올해 정규앨범 1집도 발매한 김세준.
만약 어떻게든 후보로 오르고 상을 받고 싶었다면.
그 정규앨범을 노미네이트하지 않았을까?
굳이 논란이 될 만한 EP 앨범 1집을 후보로 등록하는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
비록 ‘소외된 자의 아픔’보단 인기가 조금 덜하긴 했지만, 그 앨범도 노미네이트 되기엔 손색없는 앨범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생기는 의문.
자신의 확고했던 생각이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그런 와중에 어느새 곡은 하이라이트인 브릿지까지 도달했고, 부드러운 김세준의 고음이 청량하게 울려 퍼졌다.
그대 혼자서 아파하지 말아요.
씁쓸하고 외롭다고 느끼지 않게
소외된 당신을 안아줄게요.
“...!”
고민에 빠지던 에단이 이내 생각을 멈추고,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좋네...’
음반뿐만 아니라 무대까지.
깊은 감명이 있는 그의 노래.
그를 경멸하던 마음이 혼란스럽게 뒤섞인다.
어느새 자신의 생각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그의 무대.
저런 무대를 펼치는 가수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런 치졸한 사람이 아니길 마음 깊이 바랬다.
***
“후우...”
노래가 끝나자, 김세준이 숨을 내뱉으며 무대 위에서 관객석을 내려다본다.
2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얼굴이 코앞에서 보듯 생생히 보인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동일한 감정.
진한 감동이 서려 있는 그들의 얼굴을 보니 작은 미소가 그려진다.
동시에 가슴이 터질 듯 밀려 들어오는 쾌감.
자신의 오랜 꿈.
그 염원이 이루어진 순간이었으니까.
벅찬 감동을 느끼며 김세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관객석을 향해 허리를 숙였고, 동시에 울리는 환호성과 우레와 같은 박수.
그 박수를 받으며 백스테이지로 들어가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향한다.
그가 도착하자 에드 케인이 어깨를 으쓱하며 반기고, 에이미 또한 환한 웃음을 지었다.
“고생했어.”
“어땠어?”
“나중에 방송으로 봐.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으니까.”
에드 케인의 너스레. 사실이었다. 이 감동을 자신은 뭐라고 표현할 자신이 없었다.
2만 명이 동시에 입을 틀어막고 보는 장관을 보라고 설명해야 할지.
이어진 다른 가수들의 무대.
그 무대들의 공연 또한 그래미 어워드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다.
화려하고, 자극적이며 각자가 가진 개성과 장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무대들.
김세준 또한 그들의 팬으로서 그 무대를 즐겼고, 김세준 뒤로 2번의 무대가 있고 난 후.
그래미 어워드 첫 시상이 시작할 차례.
유명 영화배우인 시상자들이 등장하자 김세준의 양손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첫 시상을 할 부분.
그가 후보로 올라간 베스트 팝 솔로 퍼포먼스.
긴장감에 가슴이 울렁거리고,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긴장감에 굳은 김세준의 옆에서 에드 케인과 에이미 또한 침을 꿀꺽 삼키고 시상자를 바라봤다.
시상자의 손에 들린 하나의 큐카드.
저 큐카드 안에 적혀 있는 이름에 누군가는 웃을 것이고, 누군가는 울겠지.
‘부디 내 이름이길...’
자신은 사람이기에 웃고 싶었다.
여기까지 와서 씁쓸한 감정을 느끼고 싶진 않았다.
그런 애타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김세준이 무표정으로 수상자를 바라봤다.
수십 대의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는 상황.
자신의 마음을 티 낼 순 없었다.
“올해, 베스트 팝 솔로 퍼포먼스 수상자는...”
드디어 열린 수상자의 입.
“축하합니다! 세준 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두 손을 불끈 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옆에 있던 에이미와 에드 케인도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김세준을 포옹해준다.
그리고 관객석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박수와 환호성.
그들만의 시상식. 그들만의 문화라고 여겨졌던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어워드.
한국과는 전혀 상관없던 시상식이었다.
그런 어워드에 한국 대중가요 사상 최초로 입성한 김세준.
방송을 보고 있던 수백만의 한국인이 그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동시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한국의 자랑.
그 자랑이 세계에 인정을 받았고, 자신들의 또 하나의 자랑.
가야금.
그 매력적인 악기가 세계에 인정을 받는 가슴 벅찬 감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