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132화 (132/148)

#132

두 번째 어워드(2)

11월 말.

김세준이 다시 미국에 돌아온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그 한 달 동안 미국에서 김세준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커졌다.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30억을 넘어섰고, 그의 미튜브 계정을 구독한 사람만 칠천만 명.

대한민국 국민 숫자를 아득히 넘어선 어마어마한 구독자.

거기에 더해 아직도 굳건히 각종 음원 차트 1위와 2위를 지키고 있는 그의 노래.

그리고 김세준과 함께 점점 드높아져 가는 가야금의 명성.

“진짜로?”

호텔 안에서 누군가와 전화하는 김세준이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네! 진짜예요! 방금 연락받고 바로 전화 드린 거예요!”

“축하해! 잘됐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앳된 목소리의 주인공은 매들린 바넷이었다.

학교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던 그녀에게 방송 이후로 생긴 변화.

친구가 생겼고, 폭력이 사라졌으며 학교 가는 게 즐거워졌다.

삶이 즐거워졌고. 꿈이 생겼다.

동경하고, 선망하기만 했던 직업.

그 업을 이루기 위해 방송 이후로 끊임없이 노력한 그녀였고, 작지만 그 결실을 보았다.

갓 텔런트 (Got Talent).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 중 하나.

미국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다른 나라로까지 포맷을 수출한 명실상부 오디션 프로그램의 끝판왕.

그 방송 1차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연락이었고, 김세준은 그녀의 합격 소식에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가야금 연주가 많이 늘었나 보네.”

“아직 미숙해요.”

김세준의 칭찬에 매들린이 전화 너머로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 이제 곧 방송 나오는 거야?”

“방송 안 나가는 2차 오디션까지 보고, 그다음이 심사위원 오디션이에요. 이제 거기서부턴 방송에 나올 거예요.”

“아. 알겠어. 아무튼, 축하하고,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 있길 응원할게. 다음 오디션 보면 또 연락 주고.”

매들린의 답변에 김세준이 덕담과 함께 전화를 마무리한 뒤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신기하네.”

자신이 의도한 그림이지만, 막상 눈앞으로 다가오니 신기할 따름.

그동안 한국인의 전유물이었던 가야금.

그 가야금을 전혀 다른 피부색과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텔레비전에 나와 연주할 모습을 떠올리니 낯설지만 흐뭇하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었고, 그 프로그램에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가수들도 저 하늘의 별만큼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연주하는 대부분의 악기가 기타 혹은 키보드. 아니면 밴드로 나와 연주하는 사람들.

가야금을 들고 갓 텔런트에 출연하는 가수는 그녀가 처음일 터.

물론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방송국도 바보는 아닐 터.

그녀를 방송에 내보내지도 않고 떨어트리진 않으리라.

“이제 시작이지.”

매들린의 방송 출연은 가야금 대중화의 첫 발걸음일 뿐이다.

자신을 보고 꿈을 키운 매들린.

그리고 방송에 출연하고 앞으로 세계적인 가수가 되는 매들린을 보며 꿈을 키울 빛나는 원석들.

시간이 조금 흐르면, 오디션 프로그램에 가야금을 들고나오는 그들의 모습이 낯선 모습이 아니게 될지도 모를 일.

그 빛나는 미래를 떠올리자 몽글몽글해지는 마음.

“형...형님!”

“응?”

감동에 깊게 젖어있던 김세준을 깨운 건 이주성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놀란 듯, 커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이주성.

“왜? 무슨 일이야?”

“형님. 그... 보셨습니까?”

“뭘?”

“그... 그래미 어워드 이번에 후보 발표한 거요.”

“아, 그게 오늘이었구나.”

매년 11월 말에서 12월 초에 발표하는 그래미 어워드 최종 후보.

대략 짐작해보니 지금쯤 발표할 시기였다.

“지금 볼게. 근데 왜 그렇게 놀라? 뭐 내가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어?”

이주성의 놀란 모습에 작은 농담을 던졌다.

“아뇨. 그게 아니라...”

농담에도 쉽게 답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는 그.

그답지 않은 모습에 이상함을 감지한 김세준이 재빨리 핸드폰으로 그래미 어워드 후보를 확인했다.

“...!”

그리고 제일 위에 보이는 올해의 앨범상 후보.

그 쟁쟁한 목록들을 확인한 김세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혀 짐작도 못 했던 일.

자신의 앨범이 올해의 앨범상에 후보로 올랐다.

“내...내가 왜?”

놀란 눈으로 이주성을 바라봤고, 그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모릅니다. 지금 정수연 대표님도 놀라서 이리저리 알아보고 있다고 하는데...”

유례가 없던 일이다.

고작 네 곡이 수록된 미니 앨범이 올해의 앨범상에 노미네이트 된 건.

1959년부터 시작한 유서 깊은 그래미 어워드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일.

자신이 그 유구한 역사를 깼다는 사실에 정신이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미친 거네...”

놀라서 진정되지 않는 가슴.

심장 박동이 미친 듯이 올라가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핸드폰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이주성도 감동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축하드립니다. 형님.”

아시아인 최초로 올해의 앨범상 후보로 오른 것만으로도 역사에 남을 일이지만.

그것을 넘어서 그래미 어워드가 고이 간직하고 있던 전통을 깨버렸다.

앞선 20년 정도의 미래를 알고 있지만, 그 20년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일.

“고..고마워.”

얼떨떨한 기분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김세준이 말을 더듬거리며 이주성의 축하에 화답했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후우...”

심호흡과 함께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해지려 노력한다.

자신의 후보 등록.

분명 세간에 큰 화제가 될 거고 논란도 될 거다.

보수적인 그래미 어워드의 큰 변화였고, 이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지는 미지수.

자신이 봐도 파격적이었으니.

“반응이 어떨 거 같아?”

“흠... 정수연 대표님은 반발이 조금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넘어갈 거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 정도로 형님이 올해 펼친 퍼포먼스가 뛰어났으니까요.”

면전에서 듣기엔 낯간지러운 말이지만 일리 있는 말.

올 한해, 자신이 펼친 활약상은 앨범상에 노미네이트 되기에 충분한 활약이었다.

“다만 대표님이 하신 말씀이 논란이 될 만큼, 수상 가능성은 적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

후보로 오른 것만으로도 큰 논란이 될 텐데. 수상까지 한다면 더 큰 논란이 될 건 불 보듯 뻔한 일.

이 이상의 변화는 그들이 받아들이기에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다.

게다가 후보로 올라온 다른 가수들.

그 이름 하나하나가 쟁쟁하며 올해, 자신 못지않게 뛰어난 활약을 펼친 이들.

특히 그중 한 후보는 올해 상반기, 미국 전역을 뒤흔든 명반을 낸 그룹인 마룬즈.

어떤 평론가들은 자신의 올해 활약이 마룬즈와 겹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뭐 일단 이건 시상식 당일에 가봐야 알 수 있는 일.

김세준이 시선을 핸드폰으로 다시 돌렸다.

군데군데 보이는 자신의 이름.

비단 올해의 앨범상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본상이라 일컬어지는 제네럴 필드.

그중 세 곳에 이름을 올렸고, 장르 필드에서도 팝 부분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갔다.

총 다섯 개의 상 후보에 이름이 올라간 자신.

‘몇 개나 받을 수 있을까.’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지만, 만족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

욕심 어린 눈으로 핸드폰을 바라봤고, 한 달 뒤에 있을 그래미 어워드가 몹시 기다려졌다.

***

그래미 어워드 후보가 발표되고 몇 시간이 흐르자 김세준이 올해의 앨범상 및 각종 상에 후보로 올라갔다는 사실이 널리 퍼졌다.

제일 먼저 큰 화제가 된 건 김세준의 고향인 한국.

당연히 한국에선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여론이 가득했다.

그래미 어워드란 세계에서 가장 유서 깊고 권위 있는 시상식의 역사를 바꾼 한국인.

거기에 그 역사를 바꾼 인물의 시그니처 악기가 가야금.

가야금과 한국인이 역사를 바꿨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큰 자긍심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주던 몇몇 인물들.

스포츠와 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다양한 사람이 있지만, 이번 사건은 그 어떤 인물들도 감히 해내지 못했던 일.

한 분야에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일이었고, 그만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게 당연한 이치였다.

그리고 한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 또한 김세준의 활약에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그동안 동양인에겐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던 세계 최고의 음악 시상식.

비록 국적은 다르고, 가깝고도 먼 나라이긴 하나, 같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이 만든 역사가 고까울 리 없었다.

게다가 그의 시그니처 악기인 가야금.

중국과 일본, 그리고 베트남과 몽골 등 비슷한 문화권을 가진 나라엔 가야금과 비슷한 전통 악기가 있다.

비록 가야금은 아니더라도, 동양의 소리라고 뭉뚱그려 말하며 자부심을 챙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래미 어워드가 열리는 미국 본토.

아시아보단 비판적인 여론이 거셌으나 그래도 그들 또한 김세준이 후보로 오른 것에 대해 대다수가 긍정적이었다.

그가 보여준 감동.

그 감동은 고작 EP 앨범이란 것 하나로 폄훼하기엔 너무나도 컸으며 변화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많았다.

그래미 어워드.

부패에 찌들고, 보수적인 단체.

의도적으로 특정 인물의 수상을 배제하기 위해 펼쳤던 의혹, 그리고 전혀 공감할 수 없던 수상자들.

아직까진 그 권위를 인정받는 시상식이지만 점점 논란이 쌓여가며 그 명예를 잃어가던 시상식.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했고, 이번 김세준의 후보 등록은 그 명예를 회복하기에 가장 괜찮은 판단이란 평론가들의 평가도 있었다.

[이번 사건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겠지만, 딱 한 가지는 확실하다. 김세준은 대중가요계의 역사를 바꿨다. 이번 일을 시작으로 그래미 어워드의 새롭고 긍정적인 역사가 시작되길 바란다.]

“반응이 괜찮군.”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 회장인 하비 메이슨이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발표한 지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큰 화제가 된 김세준의 후보 등록.

반신반의했고, 어쩌면 예상보다 많은 비판을 받을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기우와 달리 반응이 썩 긍정적이었다.

“가수들 반응은 어떻지?”

다만 아직 자신이 본 건 대중들의 반응.

시상식의 주인공들이자, 빛을 내줄 가수들의 반응 또한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일이었다.

“음... 가수들은 의견이 반반입니다. SNS에 올라온 글들을 종합해봤을 때, 너무 성급하게 결정한 일이라며 비판을 하는 자들도 꽤 있습니다. 특히 그룹 마룬즈와 그 소속사는 제법 강도 높은 비판을...”

“흐음...”

하비 메이슨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 처지에선 그럴 수 있다.

올해 후보에 오른 가수들에겐 꽤 강력한 경쟁자가 생긴 것이고, 그동안 EP 앨범이란 이유로 이름을 못 올렸던 다른 이들은 배가 아플 상황.

특히 마룬즈는 김세준이 없었다면 올해의 앨범상 수상이 유력한 그룹.

그들에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겠지.

하지만 주최하는 단체 입장으로선 환영할 일이다.

미궁 속에 빠진 올해의 앨범상 주인공. 당연히 대중들도 궁금해할 테고, 그런 만큼 시청률도 올라갈 테니까.

“지금 최종 투표는 시작했지?”

“예.”

부하 직원의 말에 하비 메이슨이 자신의 턱을 만지작거리며 차갑게 웃는다.

자신도 궁금했다.

자신이 회장으로 있을 때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날지.

***

시간이 흘러 12월 27일.

대중가요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지, 많은 이들의 관심이 가득한 날.

세계 최고의 음악 시상식. 그래미 어워드가 열리는 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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