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두 번째 어워드
“으아...”
“힘들어?”
“아, 아닙니다.”
자신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낸 이주성이, 김세준의 웃음 섞인 질문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2주간의 휴가.
그 꿀 같은 시간의 끝이 다가왔고,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아쉬운 마음에 작게 새어 나온 한숨.
항상 묵묵히 일을 잘해주던 이주성이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터.
그의 마음이 이해 가기에 김세준이 이주성의 어깨를 툭 치고 커피를 빨아 마셨다.
“음. 어라?”
사방을 둘러보며 라운지로 향하던 김세준이, 1층을 내려다보곤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1층에서 펼쳐지는 작은 공연.
정기적으로 다양한 공연을 작은 규모로 펼치는 인천 국제공항.
그리고 오늘, 펼쳐지는 공연은 가야금 독주 공연이었다.
고운 한복을 입은 채 우리의 가락을 연주하는 젊은 여성.
‘잘하네.’
그 연주를 보면서 김세준이 낮은 미소를 그렸다.
연주자의 뛰어난 실력도 눈에 들어오지만, 무엇보다 더 눈에 들어온 건 그 연주자를 둘러싼 관객들.
사람이 꽤 많다.
수십 명의 사람이 그녀의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관람 중이었다.
그 아름다운 선율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도 많지만, 캐리어를 들고 가다가 그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지켜보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관객들의 대부분이 검은 눈, 검은 머리를 가진 사람이 아닌 외국인.
이제 외국인들에게도 더 이상 낯선 악기가 아닌 가야금.
하지만, 그들이 쉽게 볼 수 없는 가야금 라이브 연주.
자연스럽게 큰 관심을 가지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녀의 연주를 지켜봤다.
그런 그들의 반응을 보자 내심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가자.”
곡이 끝나고, 박수로 화답하는 관객들을 보며 김세준이 작은 미소를 머금곤 몸을 돌렸다.
“예. 아, 30분 뒤에 사장님이랑 부사장님, 그리고 예은이 도착한답니다.”
“아. 오케이.”
이주성의 물음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이예은과의 연애.
지난 일주일간 가장 뜨거웠던 화제.
[안녕하세요. 팬 여러분. 가수 김세준입니다. 여러분께 전해드릴 말씀이 있어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자신이 개인 SNS에 올린 자필로 쓴 장문의 글.
조심스럽게 서두를 때며 시작한 글의 내용은 자신과 이예은이 연인 관계라는 점, 선후배였던 사이가 작년부터 서로 좋은 감정을 지닌 상태로 발전했다는 내용이었다.
김세준과 이예은의 연애.
당연히 인터넷이 뒤집혔으며 핸드폰의 울림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기자와 동료 가수들의 연락 때문에 핸드폰을 꺼놓을 정도로.
그리고 김세준의 개인 SNS 글에 이어서 올라온 이예은의 고백.
마지막으로 그들의 소속사인 아레스 뮤직에서 인정한 공식 오피셜.
일사천리로 진행된 둘의 연의 공개.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았지...”
그때를 떠올리며 김세준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당시 글을 올릴 땐, 떨리는 마음에 목을 쓰다듬고 긴장했다.
처음으로 대중들의 뜨거운 반응이 무섭게 느껴졌으니까.
욕도 꽤 먹을 거라 생각했고, 비난과 비판도 받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솔직히, 연예인들 다 끼리끼리 연애하는 건 다 알고 있었잖아요.]
[세준이 형이면 킹정이지.]
[김세준, 이예은. 너무 잘 어울리긴 한다...]
[오히려 전 먼저 발표한 게 더 좋네요. 팬들 기만하지도 않고.]
20대 남자와 여자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그동안 그 흔한 구설수 하나 없이 대중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던 두 사람의 연애.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기에 오히려 두 사람의 연애를 응원하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게다가 다른 흔한 연예인들과 다른 두 사람의 행보.
파파라치나 팬들에게 들켜 억지로 인정하는 게 아닌, 팬들에게 먼저 고개를 숙여 용기 내어 발표한 두 사람.
그 용기 가득한 행동도 대중들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뭐, 조금 욕도 먹긴 했지만.”
욕을 아예 안 먹은 건 아니지만, 그 대부분이 부러움에 가득 찬 팬들의 장난인 걸 알기에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게다가 예은이는 반사이익도 봤고.”
당연히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대서특필하며 난리가 났고, 자연스럽게 이예은의 이름이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첫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해외 팬들에게 얼굴을 알렸고, 피쳐링으로 목소리를 알리긴 했지만.
아직, 그 이름이 김세준만큼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그런 와중에 김세준과의 연애는, 이예은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지는 큰 발판이 되었다.
“홀가분하네.”
죄지은 것도 아니지만, 그동안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고 있던 불안감.
그녀와 데이트할 때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던 지난 나날들.
이제 그런 나날들과는 이별이다.
비록 일반 대중들처럼 길거리를 활보하며 데이트를 할 순 없어도, 그녀와 만날 때마다 느끼던 불안감과 초조함은 더 안 느껴도 된다는 사실이, 이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형님. 가시죠.”
“응.”
시간이 얼추 되자, 이주성이 다가왔고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이해진과 하동준. 그리고 이예은의 배웅을 뒤로하고 김세준은 다시 미국으로 향했다.
***
“흐음... 골치아프군.”
중년 남성의 중얼거림.
탁자를 두들기는 그의 손이 점점 거칠어졌다.
그의 앞에 서 있는 남성이 두 손을 고개 포개며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힘들지...’
자신도 알고 있다. 지금 저 남자가 처리해야 할 고충이 얼마나 클지.
하비 메이슨.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 회장이자, 미국 3대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드를 주최하는 장본인.
“후보 선별이 결국 이렇게 됐다는 거지?”
“예. 맞습니다...”
“그리고, 이 남자를 어떻게 할지 답이 안 나와서 나를 찾아 왔고?”
“예...”
메이슨의 말에 그에게 보고를 올리러 온 남성이 고개를 조아린다.
그가 들고 온 서류.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그래미 어워드의 심사위원들.
그들이 올 한 해, 그래미 어워드의 영광을 채갈 후보들을 뽑은 서류다.
그리고 이제 자신들의 역할은 저들이 뽑은 후보 중에서, 거르고 골라서 최종 후보 선별을 하는 것.
항상 심사숙고하고, 고뇌에 빠졌던 일이지만 올해엔 유독 더욱 골치가 아팠다.
그래도 어제 자신을 필두로 사람들이 모여 최종 선별 과정을 펼쳤다.
먼저, 제너럴 필드.
그래미 어워드에서 본상이라 여겨지는 가장 중요한 상 네 개.
그중에서도 최고의 상이라 일컬어지는 올해의 앨범상.
그 상에 오른 쟁쟁한 후보들.
거기서 몇 사람을 꼽는 게 쉽지 않았다. 다들 납득할만한 성적을 거뒀으니까.
그래도 고르고 골라 노미네이트를 하고 이제 마지막 남은 한 사람.
그 이름을 보자 자신과 함께 최종 선별을 하던 모든 이들이 신음을 삼켰다.
“흐음...”
“빼야겠죠?”
“당연하지. 아 근데...”
어제 있었던 최종 선별 회의.
다들 그 이름을 빼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뒷말을 흐린다.
어떻게 뺄 수 있을까.
올 한 해,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뒤흔든 장본인인데.
“진짜 뺍니까?”
한 남성의 진지한 물음에 다들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후보에서 제외하는 게 맞는 일이다.
“제외해야죠. 유례가 없던 일인데. 이거 노미네이트 되면 후폭풍이 허리케인급일 걸요?”
한 남성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그것도 맞지만, 제외하는 것도 제법 후폭풍이 있을 겁니다. 아시잖아요. 그래미 어워드가 권위적이고 보수적이라고 비판도 많이 받는 거. 이걸 계기로 저희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러나 한 여성이 일어나 그 의견에 반박하자 또다시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
하지만 그 대화는 끝내 결론을 보지 못한 채, 최종 결정자이자 레코딩 아카데미 회장인 하비 메이슨의 손아귀까지 올라왔다.
“고작 EP 앨범인데...”
하비 메이슨의 낮은 중얼거림.
고작 네 곡이 들어간 작은 앨범.
정규 앨범과 비교하면 당연히 들어간 고생과 정성은 훨씬 작을 터.
게다가 올해의 앨범상은 그동안, 정규 앨범만이 노미네이트 됐고, 수상을 받았다.
EP 앨범이 올해의 앨범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건 유례없던 일.
즉, 기존에 쓰였던 역사가 바뀌는 일이었다.
게다가 많은 비판과 비난이 있으리라는 것도 쉽게 짐작 가능했다.
그동안 EP 앨범이란 이유로 이 상을 받지 못한 다른 가수들의 반발과 그들의 팬에 비난.
“하지만...”
그 모든 걸 제외하고도 이 앨범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거칠게 책상을 두들기던 메이슨의 손이 점점 일정한 리듬을 갖췄다.
‘매력적이지.’
세계를 뒤흔든 앨범. 개인적으로는 21세기 뛰어난 명반을 꼽을 때 꼽혀도 손색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빼어난 명반이다.
정규 앨범보다 들어간 노고는 적을지언정, 앨범의 퀄리티가 꼭 고생에 비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곡도 사회적으로도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감동적인 주제.
이 노래를 듣고 큰 위로를 받으며 감동 받았다는 사람의 단위가 최소 수천 만이다.
뮤직비디오 조회 수만 봐도 알 수 있는 곡의 파급력.
‘1위가 바뀌겠지.’
아직은 확정은 아니나 조만간 뒤바뀔 역대 미튜브 조회 수 순위.
그리고 마지막으로 앨범의 주인공.
동양의 작은 나라 출신으로, 노란색 피부를 가진 동양인.
그동안 그래미 어워드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인종이다.
긍정적인 역사를 써 내려 갈 수 있다는 뜻.
“쯧. 다른 곳은 편하겠군.”
다른 3대 시상식을 떠올리며 하비 메이슨이 혀를 찼다.
자신들과 달리 그들에게 가장 권위 있는 상은, 아티스트 상.
그 한 해, 가장 빼어난 아티스트를 뽑아 주는 상으로 자신들과 달리 마음이 편할 게 분명했다.
“회장님...”
남자의 말에 메이슨이 다시 고민에 빠진다.
고민에 빠지긴 했지만, 이미 어느 정도 기운 마음속의 추.
유례없던 일이라고, 제외하기엔 이 앨범이 올해에 미친 파급이 너무나도 컸다.
게다가 회장으로서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신들을 향한 비판.
보수적이고, 꽉 막혀 있다는 사람들의 비난.
그 비난을 단숨에 해치울 한 조각의 퍼즐.
작년 그를 무대에 섭외한 것도 그런 비난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벌였던 일.
게다가 그가 노미네이트 되고, 상을 받는다고 해서 벌어질 논란은 고작 EP 앨범이란 명목 하나.
그 명목 하나 때문에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하기엔 너무 아깝지 않나.
고민이 끝나고, 메이슨이 진중한 목소리로 명했다.
“노미네이트에 올려.”
“예?”
“노미네이트에 올리고 발표하지.”
메이슨의 말에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이내 큰 목소리로 답한 후 그의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동양인이 최초로 올해의 앨범상에 노미네이트가 됐고, EP 앨범이 최초로 올해의 앨범상에 후보로 올랐다.
“역사가 쓰였네.”
사무실을 나와 복도를 거닌 남성이 중얼거렸다.
그동안 그 누구도 바꾸지 못했던 가장 권위 있고 유서 깊은 시상식.
그 시상식의 역사를 바꾼 인물.
김세준.
그가 단순히 시상식의 역사가 아닌, 대중음악계의 역사를 뒤바꾼, 거대하고 위대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