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128화 (128/148)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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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진짜 일 잘하시네.”

난리가 난 인터넷을 보며 김세준이 혀를 내둘렀다.

위너 브라더스하고 최종 미팅이 있고 나서 일주일 후.

다시 한번 김세준의 이름으로 인터넷이 뒤덮였다.

그의 노래인 ‘Going Home’을 소재로, 그리고 OST로 삼은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내용의 기사가 앞다투어 보도되기 시작했다.

[레알? 이거 진짜예요?]

[와... 국뽕 차오른다...]

[게다가 총 제작자가 스티븐이네?ㅋㅋㅋ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오네.]

[스티븐이면 그 라이언 상병 구하기 감독 맞죠? 미쳤네. 미쳤어...]

[개봉하면 천만은 그냥 넘길 듯 ㅋㅋㅋㅋ]

미국에서도 난리가 났지만, 더욱 화제가 된 건 단연코 한국.

한국에선 다양한 매체에 흔한 소재로 사용되던 한국 전쟁.

하지만 외국에서, 그것도 할리우드에서 제작될 줄이야.

할리우드의 거대한 자본력과 매력적인 소재. 거기에 완벽한 OST까지.

게다가 그동안 영화계나 음악계에 전례가 없던 상황.

유명 가수를 소재로 만든 영화는 있어도, 한 노래를 소재로 만드는 영화가 있었던가.

그의 노래가 미국에 얼마나 큰 감동을 줬고, 미국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여실히 알려준다.

기사를 접한 이해진이 화들짝 놀라며 전화한 것도 바로 전에 일.

항상 점잖은 모습만 보여주던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치던 게 귓가에 생생하다.

그답지 않게 비속어까지 사용하며 놀라움을 표현할 정도였으니까.

“형님. 시간 다 됐습니다.”

이주성이 그의 방문을 열고 들어와 넌지시 뱉었다.

오늘은 그전에 약속했던 B.ONE의 콘서트가 있는 날.

비록 자신이 주인인 콘서트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만날 무대를 떠올리니 실실 미소가 지어진다.

“알겠어. 가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김세준이 가야금을 챙기곤 가벼운 발걸음으로 문밖을 나섰다.

오랜만에 하는 콘서트. 그 설렘이 가득 담긴 발걸음이었다.

***

메릴랜드 내셔널하버 MGM 극장.

아직 관객들에게 개봉되지 않은 그곳을 찾아가 안으로 들어서자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소리치고, 땀 닦을 시간도 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익숙한 모습에 살짝 웃으며 김세준이 B.ONE을 만나러 대기실로 향했다.

“어, 형! 왔어요?”

문을 노크하자, 수호가 문을 열어주곤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축하해. 콘서트 하는 거.”

“ 형. 도와줘서 진짜 고마워요.”

수호가 그의 양손을 붙잡으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김세준.

그가 게스트로 참여한다는 게 오늘 이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선사할까.

고마운 자신의 팬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마련해줄 터.

“들어와요. 형.”

“응.”

“안녕하세요!”

김세준이 안으로 들어서자 메이크업을 받던 다른 맴버들이 동시에 반긴다.

익숙한 얼굴들.

하지만 수호와 세현을 제외하곤 큰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기에 데면데면한 사이.

그런 그들의 얼굴엔 설렘이 가득하다.

그들의 이름도 작지 않지만, 김세준이란 이름은 얼굴만 봐도 웬만한 가수들을 설레게 만들 정도였다.

“형. 왔어요?”

그리고 메이크업을 받느라 열중인 세현도 가늘게 눈을 뜨며 그를 반겼다.

“아. 맞다. 형. 그거 뭐에요? 기사 봤어요. 방금. 형 노래를 영화로 만든다고요? 축하드려요!”

수호가 그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횡설수설하며 설레발을 쳤고, 다른 맴버들과 코디네이터들도 귀를 쫑긋거렸다.

공식 기사를 봤어도 믿기 힘든 사실.

그런 그들의 눈빛에 담긴 선망.

그 선망을 읽자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뭔가 민망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고마워.”

멋쩍은 웃음 짓는 김세준.

그런 그를 보며 수호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너무 크다.

그하고의 격차가.

그의 미국에서의 성공.

느리지만 차근차근히 따라가자고 다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보며 했던 다짐이지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거 같은 다짐.

언젠간 자신도 그만큼 위대한 가수가 될 거라고 스스로 약속했지만.

하지만 그러기엔 그가 행한 업적이 너무나도 거대했다.

‘이건 뭐...’

격차가 너무 크다 보니 따라갈 엄두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허탈한 웃음을 짓는 수호와 달리 세현은 작은 미소를 살짝 머금었다.

자신은 알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거대한 사람이 될 거라는 걸.

고마웠다.

한 사람의 팬으로서, 그를 응원하는 자부심이 생기게 해주는 사람.

그런 가수가 김세준이었다.

***

“후우...”

무대 뒤편.

김세준이 익숙한 루틴인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3500명의 관객과 함께하는 공연의 다음 무대가 자신의 차례였다.

걱정 하지 마.

오랜만에 불러보는 노래.

쇼미 결승전에서 수호를 피쳐링해주며 그를 우승자로 만든 노래.

수호의 팬덤 사이에서 그의 인생 곡이라고 불리며 큰 인기를 끄는 곡이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는 사이. 어느새 끝난 B.ONE 무대.

다른 맴버들이 무대에서 내려가고, 수호만 홀로 남아 관객들을 바라본다.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팬들을 내려다보는 그.

저들은 모른다.

오늘 이 자리에 누가 왔는지.

이미 열광에 도가니에 빠진 관객들.

김세준이 등장하면 저들은 얼마나 더 흥분할까.

절로 드는 기대감과 동시에 마이크로 멘트를 뱉으며 다음 무대를 소개했다.

그러자 관객들이 환호성으로 화답하고, 백댄서들이 올라오며 무대를 준비한다.

그리고 이내 울리는 인트로.

드럼의 묵직한 소리와 리듬감 넘치는 멜로디.

관객들이 손을 머리 위로 흔들며 호응하기 시작하자, 그 모습이 꽤 장관이다.

3500명의 손이 머리 위로 동시에 흔드는 모습.

김세준의 공연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재밌겠네.’

그 모습을 보며 김세준이 입술을 혀로 핥으며 기대감을 내비치며 자신의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특유의 플로우가 매력적인 수호의 랩이 시작되자 관객들이 어눌한 발음으로 따라부른다.

그리고 빨리 뛰어나가고 싶은 마음에 길게 느껴진 1분 남짓한 시간.

수호의 첫 번째 벌스(Verse)가 끝나고 훅(Hook)이 시작할 차례.

뒤편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세준이 앞으로 나서며 특유의 목소리로 무대를 채웠다.

걱정하지 마. 오늘은 내가 다 할게.

넌 그냥 편하게 놀기만 해.

“...!”

귓가에 생생히 들리는 목소리.

관객들이 무대 위로 등장한 김세준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어?

김세준이 몇몇 맴버들과 친분이 있다는 건 이미 유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 공연까지 와주리라곤 쉽게 생각하지 못했다.

3500명. 콘서트치곤 작은 규모.

게다가 요즘 미국에서 가장 바쁜 가수 중 한 명.

‘이것도 꽤 장관이네.’

무대 아래에서 관객들을 내려다보며 김세준이 속으로 작은 미소를 짓는다.

열심히 손을 흔들던 그들이, 거짓말처럼 동시에 손을 멈추고, 입을 틀어막는 모습도.

꺄아아아악!

그리고 놀람도 잠시 관객들이 이내 그를 향해 미친 듯한 환호성을 내뱉었다.

이 자리에 모인 관객들.

B.ONE의 팬들이지만, 해외 K-POP 팬들의 큰 특징.

최애 그룹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K-POP 가수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의 모임에서 요즘 K-POP의 흥행을 책임지는 가수의 등장.

환호성을 내뱉진 않고선 이 벅찬 가슴을 감당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한국인이 적구나.’

그리고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내려다보며 김세준이 산뜻한 미소를 머금는다.

아직 미국 내에선 한국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한 B.ONE.

그러기에 이번 공연에 한국인이 제법 많이 찾아오리라고 제멋대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관객들의 대다수가 미국인들.

백인과 흑인. 히스패닉이 대부분이며 오히려 동양인의 모습이 제일 드물다.

‘이게 공연이지.’

자신과 수호가 손을 맞잡고, 떨어져 나가자 미친 듯이 소리치는 관객들.

그런 관객들의 모습에 자신도 덩달아 감정이 고양됐다.

자신이 무대 체질이라는 걸 여실히 증명하듯 차오르는 감정.

관객들의 목소리와 표정 하나하나가 뇌리에 선명하게 박히고,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만든다.

고작 한 곡.

한 곡을 부르는데도 치밀어오르는 쾌감.

그 감정을 참을 수 없어 김세준이 웃음을 터트렸고, 그의 미소에 관객들이 다시 한번 자지러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콘서트의 재미.

그 재미를 오랜만에 맛본 김세준이 자연스럽게 내년을 떠올린다.

내년에 있을 월드 투어.

그 월드 투어는 얼마나 맛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

10월 초.

B.ONE의 콘서트를 도와준 뒤, 김세준은 반년 가까이 머물던 미국을 떠나 잠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2개의 음반 발매와 9개의 방송 촬영과 15개의 라디오 녹화.

이역만리 미국에서 그가 남긴 발자취들.

그가 남긴 흔적들은 잠시 미국을 떠난다고 해서, 지워질 정도로 얄팍한 것들이 아니었다.

그동안의 노고와 앞으로 있을 뻑뻑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잠깐 주어진 휴식.

보름 정도로 나름 긴 휴식.

이 휴식이 나름 아깝긴 하지만,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시간이라 생각하며 애써 욕심을 내려놓았다.

“후우우...”

비행기에 내리고, 공항에 들어선 김세준이 숨을 깊게 들이쉬며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반년 만에 찾은 한국은 6개월이 무색하게 너무나도 익숙했다.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풍경.

그리고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익숙한 향기.

아직 공항 내부임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 생기는 반가움.

한국에 돌아왔다는 걸 실감이 나게 해주는 모든 것들이 반가워 오랜 비행에도 몸이 가벼웠다.

“형님. 지금 기자들이랑 팬들이 입국장 밖에 엄청 많다는데요? 부사장님이 취재진이랑 엮이지 말고 바로 주차장으로 가라는데요? 거기 차량 이미 준비해놨다고 합니다.”

“알겠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앞장서는 이주성.

오랜만에 찾은 한국이 반가운지 그의 얼굴에도 활기가 가득했다.

‘아닌가? 그냥 6개월 만의 휴가가 반가운 건가?’

들뜬 그의 발걸음을 뒤에서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그렇게 이주성을 따라 수화물을 찾고, 자동출입국심사를 거친 뒤, 김세준이 입국장을 향해 걸어나갔다.

발걸음을 옮기며 쓰고 있던 선글라스와 모자를 벗는다.

머리를 손으로 대충 훑으며 작은 미소를 짓고, 입국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꺄아아아악!

입국장 문이 열리자마자 들려오는 엄청난 환호성.

그리고 그 환호성을 이어서 들려오는 취재진과 팬들의 카메라가 내뱉는 셔터 소리.

그의 입국 소식을 듣고 몰려온 100명을 훌쩍 넘기는 사람들.

빌보드 차트 9주 연속 1위와 2위.

뮤직비디오 누적 조회 수 20억.

한국 전쟁의 영웅들을 널리 알리고 위로한 가수이자, 가야금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한국의 자랑.

그런 그가 6개월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가 언제 다시 돌아올까 오매불망 기다리던 국내 팬들이 버선발로 달려 나온 건 당연한 일.

그리고 연예부 기자들이 상사들에게 사진 한 장이라도 찍어오라며 닦달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을 환영하는 인파를 향해 김세준이 손을 흔들며 간단한 인사를 날린다.

‘뿌듯하네.’

절로 올라가는 어깨. 내려가지 않는 입꼬리.

금의환향.

지금 자신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하는 단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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