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소외된 자의 아픔(10)
매들린의 노래.
호흡도, 발성도, 기교도 무엇 하나 제대로 배운 적 없는 아마추어의 노래.
“...!”
하지만 그녀의 작게 울리는 목소리는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그대로 얼어붙게 만들었다.
고든을 필두로 한 카풀노래방 스텝들은 물론, 그녀의 부모님까지.
자신들도 미처 알지 못했던 딸의 재능. 진한 감동이 밀려 들어왔다.
세상을 원망하고, 신을 저주했나요.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하루가 지옥이었나요.
더 아파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아팠었나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매들린은 어눌한 발음으로 곡의 브릿지까지 깔끔하게 소화한다.
여성이 부르기에도 꽤 높은 음역.
하지만 편안한 표정으로 소화하는 그녀를 보며 다른 이들이 입을 쩍 벌렸고, 김세준만이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지!’
가야금을 뜯는 팔에 소름이 돋는 게 느껴진다.
매들린 바넷.
신이 내린 재능.
목소리 하나만 봤을 땐, 그가 그동안 만났던 어떤 가수들보다 큰 축복을 받은 사람.
수많은 가수를 만나 라이브를 들었던 고든과 카풀노래방 스텝들을 목소리 하나만으로 혼을 빼놓는다.
고든은 그런 그녀를 보며 다시 한번 직감했다.
세상을 놀라게 할 한 천재가, 오늘 등장했다는 걸.
***
“매들린. 반가웠어요.”
“저도 진짜 반가웠습니다.”
모든 촬영이 끝나고,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
이미 카풀노래방은 진작에 돌아갔으며, 김세준만 더 남아 그녀의 가족과 저녁까지 함께한 후였다.
“가야금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고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요.”
김세준의 말에 매들린이 환한 웃음을 지었다.
어린 나이에도 느낀다.
오늘이 자신의 인생에 큰 변환점을 준 날이라는 걸.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보자 가슴 속에 작게 차오르는 희열.
노래가 끝나자 자신을 향해 진심 어린 칭찬을 내뱉던 사람들.
난생처음 들어보는 가족과 선생님을 제외한 어른들의 칭찬.
그리고 그 무엇보다 기뻤던 건 자신을 향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박수하던 김세준의 모습.
동경하고 선망하던 사람에게 인정받았다는 걸 느끼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는 감히 꿈꿨다.
자신도 그처럼 가야금과 함께 빛나 보고 싶다고.
“아까 내가 한 말 기억하죠?
“네!”
밝은 목소리로 대답이 절로 나온다.
식사하기 전, 그에게 받았던 짧은 가야금 강습.
그 시간에 김세준이 넌지시 내뱉은 말.
재능이 있다고, 노래를 포기하지 말라는 그의 격언.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용기를 심어주는 그의 말.
하늘을 날 듯이 기뻤다.
“정말 열심히 할게요!”
양손을 다부지게 쥐며 다짐하는 매들린.
그런 그녀에게 손을 흔들며 김세준이 발걸음을 벤으로 향했다.
이주성이 문을 열어주고, 그 안으로 들어가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 매들린.
그런 귀여운 숙녀의 모습에 이주성이 포근한 미소를 짓곤 천천히 차를 움직였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본 그녀는 차가 사라질 때까지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형님.”
“후우... 고마워.”
깊은숨과 함께 피로를 내뱉으며 김세준이 두 눈을 감는다.
자신의 옆자리에 놓은 가야금 케이스를 만지작거리면서.
“주성아.”
“예. 형님.”
“그냥 갑자기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예. 말씀하세요.”
“가야금이 나 때문에 많이 유명해지긴 했지?”
무슨 질문을 할까 긴장했는데. 순간 맥이 탁 풀릴 정도로 쉬운 질문이었다.
고민할 가치도 없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김세준. 그리고 그의 이름을 안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가야금.
그가 없었다면 가야금의 매력은 아직도 소수만 알고 있었을 터였다.
이주성이 고개를 재빨리 끄덕인다.
“예. 당연하죠.”
그의 질문에 만족스러운 듯 작은 미소를 지으며 김세준이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가야금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날까? 예를 들어서 기타하고 피아노처럼.”
“흐음...”
아까와 달리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
분명 김세준의 영향으로 가야금을 연주하고픈 사람들이 있긴 할 터.
하지만 기타와 피아노처럼 대중화가 가능할까?
“드리기 어려운 말이지만, 조금 힘들 거 같은데요. 아무래도...”
“그치? 그렇겠지?”
이주성의 질문에 김세준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예시를 든, 대중화가 잘 이루어진 두 악기.
피아노와 기타.
거의 모든 음역을 표현하면서도 입문 난이도가 낮아 대중화에 성공한 악기의 황제 피아노.
높은 휴대성과 편리성으로 대중화에 성공한 기타.
그 악기들을 떠올린 김세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회귀하기 전, 가야금 명인일 때부터 가지고 있던 오랜 바램.
가야금의 대중화.
하지만, 대중화를 하기엔 그 한계가 너무 명확했다.
피아노처럼 모든 음역을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입문 난이도가 낮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기타처럼 휴대성이 높은 것도 아니고 편리하지도 않다.
게다가 금액적으로도 절대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악기가 아니다.
여러모로 대중화를 하기엔 쉽지 않은 조건의 악기.
그리고 그런 냉혹한 현실이 내내 아쉬웠다.
가야금의 매력을 그 누구보다 여실히 잘 아는 그였기에.
이 매력적인 악기를 연주하는 재미를 일반인들도 쉽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그 가능성을 열었다.
매들린 바넷.
자신을 따라 가야금을 시작하게 된 소녀.
그리고 매들린 뿐만 아니라 자신을 따라 호기심에 가야금을 접하게 될 사람들.
아직은 많지 않고, 막 발길을 떼기 시작한 사람들.
지금 당장은 그 영향이 미미할지 몰라도, 시간이 흐른다면?
만약, 매들린 바넷이 세계를 강타하는 아이돌이 되고, 그런 아이돌이 가야금을 무대에서 연주한다면?
자신을 이어서 가야금을 연주하는 가수가 생기고, 또 매들린을 보고 그런 모습을 꿈꾸는 아이들이 생긴다면?
만약 그런 새로운 미래가 생긴다면, 적어도 지금보단 대중화가 더 이루어지리라.
더 많은 음역을 표현할 수 있는, 더 편리한 휴대성을 위한 연구도 활발해지고, 입문자들을 위한 저렴한 가야금도 더 많이 탄생하리라.
아직은 확신할 순 없는 미래.
하지만 오늘 그가 그은 한 획으로 마냥 꿈꿀 수 없는 미래도 아니었다.
김세준은 문득 생각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가야금을 연주하는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찬 미래를.
***
“후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도 물러서고, 가을이 찾아온 9월 중순.
정수연이 자신의 책상 위에 올린 종이들을 보며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빌보드 차트 1위. 4주 연속... 그리고 빌보드 차트 2위도 사주 연속...”
‘소외된 자의 아픔’과 ‘소외된 자의 슬픔’.
발매하고 새롭게 집계한 빌보드 차트에 1, 2위를 동시에 차지한 명곡들.
그리고 아직도 그 순위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으며, 그 순위는 빌보드 차트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아시아. 북미. 남미. 유럽. 대륙을 가리지 않고, 국가를 가리지 않고 각 나라 음원 차트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록곡인 나머지 두 곡도, 음원 차트 상위권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중.
발매한 지, 한 달 정도 됐지만,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흐뭇한 웃음과 함께 또 다른 종이로 시선을 돌렸다.
“타임즈가 선정한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위...”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각종 매체에서 공개한 다른 명단들이 보였다.
‘올해 가장 활약한 아티스트’. ‘내년이 더 기대되는 아티스트.’, ‘미튜브 구독자 많은 아티스트’ 등등.
나름 메이저한 언론, 그리고 이름 한 번 들어보지 못한 마이너한 언론에서 선정한 리스트.
그 리스트에 절대 빠지지 않고 상위권에 들어가 있는 이름.
김세준.
“이 정도면 이제 월클이지.”
비록 본인은 아직도 그 정돈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며 겸손을 떨지만.
그가 이제 세계에서 손을 꼽을 만한 가수가 되었다는 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소외된 자의 아픔’을 발매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원 히트 원더라고 그를 평가절하하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감히 그런 말을 내뱉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힐끔 들고 있던 종이를 구석에 두고, 다른 종이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의 미튜브와 관련된 종이.
미튜브 구독자 증가 수와 이번에 낸 뮤직비디오 조회 수 집계가 적힌 문서였다.
“미튜브 구독자는 사천만 명이고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각각 10억.”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숫자다.
10억. 전 세계 인구의 7분의 1이 그의 뮤직비디오를 본 수준.
“지금 1위가, 50억이라...”
몇 년 전에 발매했던 한 노래의 뮤직비디오.
그 뮤직비디오가 굳건히 1위를 지킨 지도 벌써 꽤 시간이 지났다.
“이거 잘하면 모르겠는데?”
이제 활동을 시작한 지 고작 한 달 남짓.
그 시간 동안 가파르게 상승한 김세준의 뮤직비디오 조회 수를 보며 정수연이 매혹적으로 혀를 날름거린다.
이미 많은 기록을 세운 그지만. 그렇다고 무시하기엔 너무 매력적인 기록.
게다가 가시권에 들어왔으니 더욱 탐나 보인다.
“그리고 Going Home도 아직 인기가 죽지 않았고.”
음원 차트에선 제법 순위가 내려오긴 했으나 아직 비장의 한 발이 남아 있는 노래.
Going Home을 소재로 삼아 제작에 들어갈 영화.
아직 최종미팅이 성사되지 않아 보도자료를 뿌리지 않았지만, 최종미팅만 마무리된다면 대대적으로 홍보할 참이다.
“그럼 다시 불타오르거고...”
고혹적인 다리를 꼬며 정수연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치며 장밋빛 미래를 떠올린다.
올해 연말에 있을 시상식.
그래미 어워드. 빌보드 어워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이라 꼽히는 그곳에서 김세준이 얼마나 많은 상을 받을까.
아무리 보수적인 단체라고 해도, 수상하지 못하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짐할 수 있다. 올해 김세준보다 센세이션한 활약을 펼친 아티스트는 없다고.
아직 올해가 끝나려면 3개월 정도 남았지만, 그 3개월 안에 김세준을 뛰어넘을 활약을 펼칠 가수가 나오리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거기서도 상을 받으면 이제 남은 건...”
올해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한 김세준.
그리고 내년엔 그를 어떻게 더 성장시켜야 할까.
생각에 빠진 그녀가 의자를 돌리며 자신의 사무실 벽지에 붙어 있는 세계지도를 바라봤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를 제작하겠다는 포부와 함께 붙인 지도.
자리에서 일어나 세계지도에 가까이 다가간 그녀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대륙 하나하나를 짚는다.
북미부터 시작해, 남미, 유럽. 이어서 아시아와 오세아니아까지.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대륙을 찍었고, 그 대륙 안에 있는 많은 나라와 나라를 대표하는 도시들.
그 장소들을 보며 정수연의 탐스러운 입술이 달싹거린다.
내년 한 해를 고스란히 바쳐야 할 대형 프로젝트.
그 프로젝트를 시작할 절호의 타이밍이었다.
“김세준의 월드 투어. 관객이 얼마나 모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