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122화 (122/148)

#122

소외된 자의 아픔(6)

‘소외된 자의 아픔’.

김세준의 두 번째 EP 앨범.

‘Going Home’ 디지털 싱글 곡 발매 이후 두 달 만에 발매한 음반.

1. 소외된 자의 아픔(The pain of the alienated) TITLE

2. 소외된 자의 슬픔(The sorrow of the alienated) TITLE

3. 내 인생은 얼마인가요? (How much is my life?)

4. 이목구비(Ears, Eyes, Mouth and Nose)

총 네 곡으로 이루어진 김세준의 이번 앨범은 8월 25일 전 세계에 동 시각에 발매됐다.

“이번에도 뭐...”

김세준의 새로운 노래들을 모두 들은 이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중얼거렸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소외된 자의 아픔이란 주제를 가지고 만든 이번 앨범은 김세준 특유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담백하고, 서정적이다.

또한, 듣는 사람의 등을 토닥여주는 듯한 포근한 위로가 있으며 눈물이 왈칵 쏟아질 거 같은 아련함이 심금을 울린다.

그런 특유의 감성을 더욱 고조시키는 가야금의 선율.

거기에 마지막으로 사람의 감정을 밑바닥부터 자극하는 김세준의 목소리.

유니크한 목소리지만 약간은 조악했던 그의 가창력.

하지만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경험과 연륜.

하루가 지날수록 일취월장한 실력은 이제, 조악했던 그때의 모습은 떠올릴 수 없게 만들었다.

데뷔한 지 5년도 안 된 짧은 시간이지만, 그가 그동안 쌓은 경험들은 5년이 아닌, 10년이란 시간으로도 농축할 수 없었다.

가수로서 20년을 살아간 자신보다 훨씬 더 진귀하고 값진 경험을 많이 한 가수가 김세준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김세준의 노력.

김세준에게 세간이 떠드는 말. 천재.

그가 천재임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그 찬사 뒤에 숨겨진 그림자를 사람들이 알까.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틈틈이 곡을 작곡하고, 목이 상하기 직전까지 연습에 매진하던 그의 모습들.

천재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포장하기엔 그가 보여준 지난 행보는 처절하고 지독했다.

“난 가야금 연주 안 하길 잘했지.”

그런 김세준의 과거를 떠올린 이해진이 씁쓸히 웃었다.

그가 그렇게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세웠던 이유.

시그니처 악기인 가야금의 영향이 없지 않아 있다.

김세준이 지금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가야금.

그런 만큼 만약 그가 부진에 빠진다면, 가야금을 향한 비판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터.

질린다, 단조롭다, 뻔하다.

가지각색의 비판이 가야금을 향해 붙을 것이며, 특히 지금은 그런 비판이 더욱 무섭게 들릴 게 분명했다.

이제 가야금은 세계에서 관심과 사랑을 받는 한국의 자존심이 되어버렸고, 그의 어깨에 짊어진 책임감은 이제 그 혼자만의 명예가 아니었다.

앞으로도 고행길이 훤한 김세준을 위로하듯 이해진이 그의 앨범을 만지작거렸다.

“커버도 잘 뽑았네.”

때 하나 묻지 않은 순백색에 배경과 ‘The pain of the alienated’라고 유려하게 적힌 글자가 돋보이는 커버.

그리고 그 안을 열자, 커버와 똑같은 순백색의 CD와 이번 앨범에 속한 노래들을 소개하는 속지가 보였다.

그 앨범을 만지작거리며, 이해진이 발걸음을 자신의 사무실 한쪽 벽면에 놓인 책장으로 향했다.

세상에 자랑할만한 자신의 컬렉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은 전 세계의 명반들.

발라드, R&B, 힙합, 락, 재즈, 레게 등등 온갖 장르의 노래를 모아 놓은 자신의 보물.

그리고 그 명반들 사이에 당당하게 자리 잡은 김세준의 앨범들.

데뷔곡이자 디지털 싱글 곡인 ‘연꽃’부터 시작해, 그동안 김세준의 발자취가 빼곡했다.

역사에 남을 음반 사이에 끼기에 한치의 부족함도 없는 그의 앨범들.

순백의 앨범을 그곳에 조심스럽게 집어넣은 후, 이해진이 다시 가죽 의자에 앉았다.

이제 자신 따윈 손에 닿지도 않을 정도로 높은 곳까지 올라간 김세준.

비록 스승이란 고귀한 역할은 아니었어도, 청출어람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깨닫는다.

“아 맞다. 뮤직비디오.”

이제 슬슬 나이가 들어가는 걸까.

어제 김세준이 꼭 보라며 신신당부했던 뮤직비디오의 존재를 까먹고 있던 자신을 힐책하며 이해진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또 무슨 대작을 만들었으려나.”

작은 웃음과 함께 미튜브에 접속해 자신도 구독한 김세준의 채널로 들어간다.

“흐익!”

그리고 이해진답지 않은 경박한 탄성.

웬만한 일에는 잘 놀라지도 않는 점잖은 심성을 가진 그지만 핸드폰 액정에 나온 숫자는 절로 바람 빠진 소리를 내뱉게 했다.

“구...구독자가 이천오백만 명?”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숫자.

믿기지 않아 두 눈을 끔벅거렸다.

그의 미튜브가 나날이 성장한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천만을 넘겼다며 뛰는 듯이 좋아했던 게 불과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배 이상의 성장을 이룬 김세준의 미튜브 채널.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는 채널을 보며 이해진이 혀를 내둘렀다.

“허어... 천만 단위라니...”

허탈한 목소리와 함께 옛 추억을 떠올린다.

김세준이 처음 미튜브 채널을 만들었을 때의 기억. 자신을 찾아와 개인 미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싶다며 허락을 맡으러 온 풋풋한 신인 시절의 그.

그땐 이 정도로 성장할 줄은 감히 생각지도 못했다. 어떻게 예상할까.

대한민국 인구 절반 정도의 숫자가 그의 미튜브 채널을 구독한다는 걸.

동시에 장준이 받을 낙수효과를 떠올리자 입가가 씰룩거린다.

단순 수록곡 피쳐링에서, 타이틀 곡 피쳐링으로 바뀌며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했다.

게다가 그가 피쳐링한 뮤직비디오의 매인 배우가 장준이었다.

최소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노래와 얼굴을 알리는 큰 기회.

“준이한텐 일생일대의 기횐데...”

항상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실력도 충분하고, 비주얼도 괜찮은데 이상하게 빛을 보지 못하던 가수.

그렇게 음지에서 어영부영 보낸 시간만 3년.

자신들의 역량이 부족해 그가 시간을 허비한 게 아닐까 미안하고 죄책감이 가득했었다.

그러다 보니 유독 더 애착이 가고, 더 마음이 쓰이던 가수.

“잘 나왔겠지.”

이제 비상할 일만 남길 바라며 이해진이 최근 업로드된 영상을 확인했다.

김세준. ‘소외된 자의 아픔(The pain of the alienated)’ Korean Official MV

김세준(feat. 장준). ‘소외된 자의 슬픔(The sorrow of the alienated)’ Korean Official MV

장준의 얼굴이 얼핏 보이는 섬네일과 낯선 외국인의 모습이 보이는 섬네일.

그리고 그 밑에 기록된 조회 수는 벌써 500만 명을 훌쩍 넘기고 있다.

500만이란 숫자도 경악할 만한 숫자인데, 앞서 더 큰 숫자를 보니 감각이 무뎌져 심장이 철렁하진 않았다.

다만 얼굴에 진한 미소가 그어지며 마음이 흐뭇해질 뿐.

가벼운 손가락으로 이해진이 ‘소외된 자의 아픔’ 뮤직비디오를 클릭했다.

김세준이 대작이라 칭한 영상물.

이번엔 또 어떤 작품을 만들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과 함께 이해진이 뮤직비디오에 빨려 들어갔다.

병약한 남자. 안색이 창백하고 파리하다. 가늘고 뼈밖에 안 남은 그의 사지.

그런 남자의 생기 없는 눈빛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시작되는 영상과 흘러나오는 노래.

가야금 소리와 피아노 소리가 합쳐진 잔잔한 선율이 천천히 연주되며 인트로를 알렸다.

모두가 가진 원죄가

당신에게만 유독 무겁다고 느껴졌겠죠.

당신은 틀리지 않았다는 사람들의 말이

위선이자 허울 좋은 변명처럼 들리셨겠죠.

노랫말과 함께 병약한 남자를 포근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한 소녀가 등장했고, 이해진의 눈동자가 갈 길을 잃을 듯 흔들거린다.

“...!”

이미 들어본 노래고, 감탄이 절로 나온 곡이지만 영상과 함께 보니 느껴지는 감동의 깊이가 달랐다.

살면서 남들에게 차별받은 적이 없는 그조차, 느껴지는 여운이 심장을 찌르르 울린다.

소녀가 남자를 향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고, 남자가 그런 소녀를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세상을 원망하고, 신을 저주했나요.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하루가 지옥이었나요.

더 아파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아팠었나요.

그동안 김세준이 불렀던 노래들보다 여실히 높은 음역.

하지만 진성과 가성을 오가며 완벽하게 노래를 소화하는 그.

허스키한 본래의 목소리와 가성인 미성까지 합쳐지자 특유의 호소력이 더욱 깊어져 마음을 애처롭게 만든다.

그리고 첫 번째 벌스가 끝나고 노래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되자 드럼 비트가 추가되며 곡의 감정선을 고조시킨다.

남자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소녀와 놀란 눈빛의 남성.

김세준의 목소리에 여러 명의 코러스가 합쳐지며 울림이 생긴다.

그대 혼자서 아파하지 말아요.

씁쓸하고 외롭다고 느끼지 않게

소외된 당신을 안아줄게요

“...!”

흔하지 않은 김세준의 고음. 거기에 코러스까지 합쳐지고 가야금이 훅 치고 들어오며 환상적인 멜로디를 만든다.

몸이 부르르 떨리며 절로 탄식이 새어 나오는 아름다운 조화.

내내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흡입력 있는 노래.

그런 노래에 아름답고 깊은 의미가 담긴 영상이 추가되자 받는 감동이 배 이상이었다.

“후우우...”

4분가량의 뮤직비디오가 끝나고, 이해진이 긴 숨을 뱉었다.

“세준이가 자랑할 만했네.”

영상을 다 봤음에도 여운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다.

자신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지, 댓글 또한 호평으로 가득하다.

조회 수가 500만 명인데, 댓글이 백만 개다.

무려 영상을 본 사람 중 5분의 1이 댓글을 달았단 소리.

그 어떤 영상에서도 볼 수 없었던 비율이었고, 그런 댓글이 모조리 감탄과 칭찬뿐이었다.

“어느 정도까지 갈까.”

아직 오백만인 조회 수이지만, 여기서 멈출 거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앞일을 모르는 그지만, 이번 뮤직비디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어쩌면 역사에 남을지도 모르겠다는 애매한 생각뿐이지만.

이어서 장준이 등장하는 뮤직비디오를 클릭하려던 이해진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궁금하긴 하지만, 아직 아니다.

일단, 지금도 진하게 남아 있는 이 여운을 가라앉혀야 했다.

***

[뮤직비디오 잘 봤다. 고생했고, 잘했어.]

이해진에게 온 짧은 메시지에 김세준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간략한 축하 말이지만 메시지를 길게 보내지 않는 이해진의 스타일을 아는 그이기에 이 정도면 충분했다.

“예상대로네.”

그리고 가파르게 상승하는 뮤직비디오 조회 수를 보며 가지고 있던 일말의 불안감이 해소되는 걸 느꼈다.

혹시 미래가 달라지지는 않을까. 가야금의 소리가 추가되면서 달라진 노래가 대중들의 입맛에 맞지 않을까 했던 불안감.

그런 불안감이 말끔히 해소되는 세상의 반응.

미튜브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물론 세계 각지의 음원 차트는 그의 이번 음반이 범상치 않다는 걸 증명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때. 미국 할리우드.

이미 행복에 겨운 김세준에게 겹경사가 될 사건이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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