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소외된 자의 아픔(5)
“이 노래를 타이틀 곡으로 삼자고요?”
반문하는 김세준의 목소리는 스스로 깜짝 놀랄 정도로 컸다.
조지의 발언에 같이 놀란 장준이 김세준의 목소리에 화들짝 한 번 더 놀랄 정도로.
“아... 죄송합니다.”
인상을 찌푸리는 폴 에드워드와 선글라스 아래로 당황한 기색을 끼친 조지를 보며 김세준이 재빨리 사과했다.
“그렇게 놀랄 일이었나요?”
조지의 물음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준이 만든 노래. 타이틀 곡으로 삼아도 손색없는 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타이틀로 삼는 건 또 다른 의미.
한 시대를 풍미하는 명곡이며 성공이 보장된 조지의 곡과 달리, 장준의 곡은 김세준도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모르는 노래였다.
물론 자신과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세상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미지수다.
자신들은 명곡이라 생각하며 야심 차게 발매했다가 세간에선 온갖 혹평을 듣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게 이 바닥이다.
장준의 노래가 혹평까지 들을 정도는 아니라는 건 확신하지만, 조지의 곡처럼 온갖 찬사와 명예를 휩쓴다는 보장도 없었다.
“맞습니다. 저도 이 노래 타이틀로 삼을 생각은 없었어요.”
장준 또한 옆에서 김세준의 의견에 힘을 실어줬고, 조지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분 다 이 노래가 좋다면서요? 타이틀로 삼아도 손색없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렇긴 하지만, 타이틀로 삼는 건 별개의 이야기죠. 오히려 조지한테 묻고 싶네요. 이 노래를 타이틀로 삼으면 조지의 곡은 수록곡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도 괜찮다는 겁니까?”
설마 자신의 곡을 격하시킬 정도로 장준의 곡에 매료된 건 아니겠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물어본 김세준.
“아뇨. 그건 아니죠.”
“그렇다면 무슨 의미... 아!”
작은 웃음과 함께 고개를 내젓던 조지 에드워드.
그런 그를 보며 무슨 의미인가 싶던 김세준이 이내 그의 뜻을 떠올리고 탄식을 뱉었다.
“더블 타이틀로 가면 되잖아요?”
“...!”
“...!”
조지의 발언에 장준도 이내 탄식을 뱉었고, 김세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곡 모두 타이틀 곡으로 삼기 아까운 노래라면, 두 노래 다 타이틀로 삼으면 되는 거였는데.
간단한 방식을 떠올리지 못한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타이틀 곡을 두 개로 내는 경우가 드문 건 아니다.
많은 가수가 이미 앞서 선보였던 방식. 다만 그런 방식을 적용한 앨범 대다수는 자신처럼 EP 앨범이 아닌 정규 앨범.
고작 네 곡을 발매하면서 타이틀 곡을 2곡으로 삼는다는 걸 불편하게 볼 사람들도 있겠지만...
“가능한 거야?”
“불가능은 아니지. EP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을 타이틀로 삼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소소한 불만 따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터.
노래만 좋으면 그런 불만은 금방 사그라들게 분명하다.
애초에 타이틀 곡이 하나여야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매몰된 자신을 질책하며 김세준이 장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넌 괜찮아?”
“나야... 뭐. 너만 좋다면 상관없지.”
갑작스럽게 타이틀 곡을 피쳐링하게 된 장준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답했다.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미국을 온 건 아니지만, 책임감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
반면 김세준은 조지 에드워드가 내놓은 해답이 매우 흡족했다.
‘조지의 곡도 살리면서, 준이의 곡도 살릴 수 있다면, 금상천화지.’
장준의 곡을 타이틀로 삼아, 조지의 곡이 묻힐까 걱정되었지, 그의 곡을 타이틀로 삼는 걸 반대한 게 아니다.
오히려 수록곡으로 삼는 걸 매우 아깝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조지의 제안은 아쉬운 마음을 말끔히 해소하는 아이디어.
밝은 미소와 함께 김세준이 신이 나서 말을 덧붙였다.
“좋아. 그러면 뮤직비디오도 2개를 찍어야겠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하고, ‘소외된 자의 아픔’ 미튜브 조회 수를 생각한다면 장준의 곡도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훗날 미튜브 역대 최고 조회 수를 기록하게 되는 ‘소외된 자의 아픔’.
그 어마어마한 파급력이 장준의 뮤직 비디오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니까.
“뮤직비디오까지?”
“당연하지. 명색에 타이틀 곡인데.”
앓는 소리를 하는 장준을 향해 김세준이 담담하게 말을 뱉었고, 조지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뮤직비디오 말인데, 혹시 감독으로 내 지인을 추천해줘도 되겠나?”
“예.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뮤직비디오 이야기가 나오자 뒤에서 세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폴 에드워드가 끼어들었다.
“리나라는 친구인데, 혹시 들어본 적 있나? 요즘 미국에선 핫한 전도유망한 친구인데.”
“아. 들어본 적 있습니다.”
카풀노래방을 촬영하고 나서 참여했던 다양한 행사들.
미국의 유명한 셀럽들을 만난 그 자리에서 어렴풋하게 들어본 기억이 난다.
‘소외된 자의 아픔’의 뮤직비디오가 큰 인기를 끈 건 매력적인 노래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 영상미의 덕도 있다.
노래에 분위기를 한층 더 깊게 살려주던 환상적인 영상.
폴 에드워드가 추천한 리나라는 인물이 능력이 출중한 건 알지만, 그 영상을 찍은 감독이 이 여인일진 확실하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이 미래를 경험했고, 이 뮤직비디오가 시대를 풍미했긴 했지만.
감독까지 일일이 찾아보진 않았으니까.
“조지의 생각은 어때요?”
그런 와중에서 가장 확실한 건, 조지의 의사다.
폴 에드워드란 거목. 명목상 은퇴하긴 했지만, 이번 음반 제작에 있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존재.
이 노래를 부른 원곡자가 감히 그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뮤직비디오 감독을 섭외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런 폴 에드워드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한 사람.
그의 손자인 조지 에드워드.
손자를 끔찍이 아끼는 폴 에드워드의 성향상 조지 에드워드가 반대하는 사람을 자신의 마음대로 감독 자리에 임명하진 않을 게 분명했다.
“음... 그 문제는 좀 더 고민해봐야겠어요.”
심사숙고한 손자의 답변에 폴 에드워드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김세준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부분에 있어선 전적으로 조지에게 맡길게요.”
“네. 고마워요. 아, 그러면 다른 곡들은?”
“다른 곡들도 컨셉은 다 끝났어요. 완성하는 대로 조지한테 들려줄게요.”
“좋네요. 아, 그리고 보도 자료 있잖아요.”
“예.”
아직은 찌라시 수준으로 뿌린 보도 자료.
공식적으로 자신의 복귀를 알리는 기사는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저하고 제 할아버지 눈치 보지 마시고, 제대로 뿌려주세요.”
“음...”
조지 에드워드가 내뱉은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김세준이 팔짱을 끼고 신음을 뱉었다.
이미 은퇴를 선언한 폴 에드워드.
그리고 그의 손자이자 아직 미성년자이며 눈앞이 안 보이는 조지 에드워드.
폴 에드워드가 앨범 작업에 큰 개입을 한 건 아니지만, 보도 자료를 뿌리는 순간, 그가 걱정한 대중들의 몰매가 있을 수 있다.
은퇴를 번복한 거 아니냐는 질타.
그리고 조지 에드워드.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도, 미친놈들은 아직 무수히 많으며 그가 가진 장애 하나로 비난할 또라이 같은 작자들이 분명 있을 터.
슬쩍 폴 에드워드를 보니, 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자신의 손자하고 이야기를 끝마친 모양.
손자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는지 폴 에드워드의 얼굴엔 불만이 가득했다.
자신의 명예를 훼손당하고, 가족들을 괴롭힐 손자를 향한 악의적인 반응.
애초에 그가 걱정했던 문제들을 조지 에드워드는 대대적으로 보도하라고 말하는 셈이었다.
“이 앨범이 세준에게도 정말 중요한 앨범이겠지만, 저한테도 정말 중요한 앨범이거든요. 첫 작품인데 시도할 수 있는 건 모두 시도해 봐야죠.”
아직 대중들의 무서움을 모르는 치기 어린 소년의 패기.
창백한 두 손을 꼭 쥐며 굳은 다짐을 보이는 조지 에드워드의 모습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또한 마음이 걸리긴 하지만, 본인이 괜찮다는데 자신이 반대할 순 없었다.
“네. 대표님한테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세준의 말에 조지 에드워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날의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
7월 22일.
’소외된 자의 아픔‘ 앨범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어가자 정수연은 조지 에드워드가 말한 대로 숨김없이 과감히 보도 자료를 발표했다.
거장의 손자인 조지 에드워드. 그가 이번 앨범 메인 프로듀서를 맡았다는 것과 그가 아직 미성년자이고 눈이 안 보이는 선천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김세준의 후속 앨범이라는 것만으로도 큰 화제가 됐을 법한 보도 자료는, 그 에드워드 가족의 이야기로 더 큰불을 붙였다.
대부분 호의적이고 긍정적인 반응들.
제2의 스티비 원더를 응원한다는 귀여운 댓글을 비롯하여 조지를 응원하는 말이 다수였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말도 종종 보였다.
폴 에드워드를 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조지 에드워드를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
“쓰읍...”
핸드폰으로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본 김세준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다수가 자신에게 꽃을 던진다고 해서, 한 사람이 던진 돌멩이가 안 아픈 게 아니다.
“괜찮겠지.”
순간 에드워드 가족의 멘탈을 걱정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폴이야 활발히 활동할 때 이보다 심한 말들도 많이 들어본 사람.
그때 이미 멘탈이 튼튼하다는 걸 증명했고, 조지는 폴이 적당히 필터링해서 사람들의 반응을 알려줄 터.
애초에 그 둘도 각오하고 벌인 일이니, 자신의 생각보단 괜찮을 터였다.
“그리고...”
김세준이 핸드폰을 내려놓고, 탁자 위에 올린 종이 더미를 들어 올린다.
자신의 이번 앨범 뮤직비디오 콘티.
폴 에드워드가 추천한 리나.
그녀하고 미팅을 마친 조지가 리나가 마음에 들었는지, 김세준에게도 의사를 물어봤다.
애초에 조지에게 뮤직비디오 감독 임명 권한을 맡긴 김세준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
그렇게 리나가 더블 타이틀인 ’소외된 자의 아픔‘과 ’소외된 자의 슬픔‘의 뮤직비디오를 맡게 됐다.
그리고 지금 김세준의 손에 들린 건’ 소외된 자의 아픔‘ 뮤직비디오 콘티.
어설픈 그림으로 그려진 콘티를 훑으며 김세준이 자신의 기억을 떠올린다.
이 그림과 기억 속 뮤직비디오가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콘티를 훑는 김세준이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만약 이 콘티가 자신의 기억 속 뮤직비디오하고 다르다면, 미안하지만 감독을 새로 구해야 했다.
“흐음...”
종이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신중한 시선으로 보는 그.
그렇게 콘티 하나를 보는 데 한 시간을 소비한 김세준이 이내 종이 더미를 탁자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김세준의 입가엔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리나의 콘티. 기억 속 뮤직비디오의 완벽한 밑그림이었다.
***
시간이 흘러 8월 25일.
모든 준비가 끝난 김세준은.
자신과 대한민국의 자랑이 될 ’소외된 자의 아픔‘ 앨범을 발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