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소외된 자의 아픔(2)
폴 에드워드와 조지 에드워드하고 만나고 세세한 일정을 조율하고 온 그날 밤.
잠이 들기 전 김세준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빠!”
핸드폰 액정 속 자신을 환한 미소로 반기는 이예은.
오랜만에 보는 여자친구의 얼굴.
자신은 물론, 이예은도 근래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기에 이렇게 영상 통화 하는 것도 꽤 오랜만이었다.
비록 핸드폰의 작은 화면으로 보는 그녀의 얼굴이지만 그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이미 익숙해질 만도 했지만, 볼 때마다 새롭고 짜릿한 눈이 부실 듯 빛나는 그녀의 외모.
“예은아. 뭐해?”
“다음 스케줄로 이동하고 있어요.”
그녀의 말대로 영상 통화 속 이예은이 있는 곳은 흔들리는 차 안이었다.
화면 속 너머 보이는 자동차의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뭔가 낯선 차량.
약 반나절 정도의 시차. 김세준은 잠들 시간이지만, 그녀는 활발히 움직일 시각이다.
“이번에 노래 너무 좋던데?”
“그렇죠? 제 회심작이에요!”
가슴을 당당히 펴며 뿌듯한 표정을 짓는 그녀.
웃음이 절로 나오는 귀여운 모습이었고, 이예은의 말에 김세준이 크게 공감했다.
안다. 누구보다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번에 그녀가 발매한 노래가 그녀의 회심작이라는 걸.
회귀하기 전, 그녀의 팬이었던 자신이 수십, 수백 번 들어봤던 노래.
그때,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노래였고 발매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벌써 음원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며 순조롭게 시작한 그녀의 새 앨범이었다.
“일본은 어때?”
“신기해요! 한국이랑 비슷하면서 또 사뭇 다른 느낌? 방송도 그렇고, 사람들 반응도 그렇고.”
“무슨 느낌인지 알지.”
“아, 맞다. 오빠는요? 대충 이야기 들었어요. 오빠도 바로 앨범 제작 들어간다면서요?”
“응. 미니 앨범으로 하반기 안에는 발표하려고.”
“그리고 에드워드의 손자? 하고 작업하신다는 것도 진짜예요? 얘가 아직 16살?”
“응. 아직 어린아이긴 한데, 재능은 진짜야. 앨범 기대할 만할걸?”
“아아...”
자신만만한 김세준의 말에 이예은이 어이없어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동안 그가 보여준 행보 중에 어디 쉽게 이해가 가고 납득이 갈만한 게 있었나.
항상 과정은 의아한 경우가 많았지만, 결과로 사람들을 이해시키던 그다.
이번에도 분명 쉽게 믿지 못할 결과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겠지.
“맞다. 그리고 사장님한테 들었어요. 준이 오빠 불렀다면서요?”
“응. 준이한테 부탁했어. 피쳐링 좀 해달라고.”
이예은의 물음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한국에도 알려지지 않은 보물. 장준.
그가 장준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자신을 도울 인맥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이예은과 B.ONE 같은 가수들은 자신의 도움 없이도 세계에 이름을 알리지만 장준은 끝내 세계에 진출하지 못한다는 점.
‘내가 돕는다면 가능할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맨 처음 생각했던 이예은과 세현 그리고 수호는 요즘 자신 못지않게 바쁘게 활동 중이다.
물론 자신이 도움을 요청하면 한걸음에 달려와 줄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활동에 폐를 끼치면서까지 도움을 요청할 순 없었다.
‘그리고 준이 마스크하고 목소리가 은근 서양 사람들한테 잘 먹힐 거 같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선이 굵은 마스크. 흔히 서양인들이 좋아할 만한 생김새인 장준이었고, 동시에 그의 미성.
자신과는 전혀 색다른 매력을 가진 그였고, 자신과 그의 조합은 상반된 매력을 보여주며 괜찮은 하모니를 연출했다.
김세준이 장준을 선택한 마지막 이유.
아레스 뮤직에게 그가 건넨 작은 선물이었다.
해외 활동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잠깐 동행을 멈추긴 했지만, 아레스 뮤직은 그에게 마음의 고향.
항상 고마움과 감사함을 가진 곳이었고, 이번 기회에 그들에게 받은 은혜 한 가지를 갚을 셈이었다.
“아쉽다...”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오는 이예은의 중얼거림에 김세준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도 자신의 욕심만 생각했다면 당장 이예은을 불렀을 터.
하지만 막 아시아에서 이름을 떨치려는 그녀의 앞길을 방해할 순 없었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이예은이 눈을 새침하게 뜨며 화면 속 김세준을 노려본다.
제 딴엔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했지만, 김세준의 시선엔 한없이 귀엽고 깜찍하게 보일 뿐.
“혹시... 뭐 여자들이 들이대거나 그런 건 없죠?”
“없어. 없어. 주성이한테 물어봐봐. 내가 어디 가서 딴짓하고 다니면 주성이한테 맞아 죽을걸?”
자신의 머리만 한 이주성의 주먹을 떠올리며 김세준이 고개를 크게 내젓자 이예은이 만족스러운 듯 귀엽게 웃었다.
“잘했어요. 아, 오빠. 보고 싶어요.”
“나도.”
낯간지러운 말이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
그녀의 얼굴을 실제로 본지 한 달을 훌쩍 넘겼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문제는 얼굴을 못 보는 기간이 기약 없이 더 늘어날 거라는 점.
아직 권태기도 오지 않은, 서로를 향해 풋풋하고 말랑말랑한 마음을 유지하는 두 사람에게 꽤 마음이 시린 시간이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오빠하고 나하고 그냥 평범한 사람이면 어땠을까.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지도 않고, 남들 눈치 보면서 데이트하는 게 아닌, 그냥 일상적인 데이트. 같이 바다도 가고. 술집에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노는 커플이었으면 어땠을까....”
“...”
아련한 목소리로 내뱉는 그녀의 말을 김세준은 답하지 않고 묵묵히 들었다.
예은이의 말처럼 그랬으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그건 모르지만, 하나는 알 수 있다.
자신이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예은은 절대 만날 수 없었을 거라는 걸.
“아, 오빠! 저 이제 도착해서 촬영 준비하러 가 볼게요! 오빠 잘 자요!”
“응. 촬영 잘하고 예은아.”
“네!”
이예은이 급하게 영상 통화를 종료했고, 이내 김세준도 핸드폰을 침대 옆 서랍 위에 올려놨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이예은의 제법 아련한 얼굴이 뇌리에 남는다.
“쉽지 않네.”
부모님이라 여자친구의 전화를 받으며 새삼 느낀다.
유명인사로 사는 게 영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자신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만큼,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조금은 외로워질 수도 있다는 걸 요즘 들어 여실히 깨닫는다.
***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확인한 김세준은 조지 에드워드로부터 메일이 온 걸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게...그 명곡의 원본 파일이란 말이지?”
16살의 천재가 만들어낸 명곡 파일.
[어제 세준이 가고 세준 스타일에 맞게 할아버지와 함께 곡을 다듬었어요. 듣고 솔직한 심정 알려주세요.]
그리고 메일에 첨부된 에드워드의 말에 살짝 기대감이 상승한다.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다듬었다는 건, 가야금의 소리를 집어넣었다는 뜻이겠지.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애초에 원곡의 감성도 애절하고 슬픈 감정선을 유지하는 노래.
그런 노래에 가야금의 음색은 찰떡궁합.
당장 확인하지 않고, 잠기운을 몰아내기 위해 욕실로 가 샤워를 하고 나온 김세준이 핸드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소외된 자의 아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긴 했지만, 신체적인 장애를 가진 조지 에드워드.
그런 그가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느꼈던 아픔을 그린 노래.
‘16살이 주제로 삼을 노래는 아니지.’
아직 성인도 되지 못한 아이가 자신의 경험을 살린 이 노래는 많은 이들에게 큰 공감을 받는다.
조지 에드워드처럼 신체적인 혹은 정신적인 장애가 있거나, 그 가족들.
금전적인 문제로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던 이들.
그뿐만이 아니라, 인종, 성별, 나이, 지역, 종교 등등.
서로를 소외시키고, 차별하는 문제들이 요즘 시대엔 즐비했다.
다들 말하지 못할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살아갔고,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줬던 노래가 이 노래였다.
막 노래를 재생하려던 참에 이주성이 방문을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형님. 저 지금 공항 다녀오겠습니다!”
“아. 오늘이구나. 응 조심히 잘 갔다 와.”
“예.”
목적만 간단하게 내뱉고 이주성이 다시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김세준이 한국에서 초대한 손님이 오는 날.
그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는 그였다.
“그럼 다시 들어볼까?”
김세준이 이내 메일로 온 ‘소외된 자의 아픔’을 틀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명곡의 멜로디.
김세준의 입가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지고, 어깨를 움츠러들었다.
듣는 순간 몸이 저절로 반응했고, 올라간 광대에 소름이 돋기 시작한다.
피아노의 잔잔하고 유려한 선율이 인트로부터 울려 퍼지며 귓가를 사로잡았던 원곡.
지금 버전은 그 인트로부터 가야금의 소리가 추가됐다.
피아노와 가야금의 선율이 조화를 이루며 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잔잔하고 안정적인 멜로디가 마음을 간지럽힌다.
그리고 인트로가 끝나고, 간단한 코드로 연주되는 노래.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연주되는 가야금과 피아노의 선율 위에 조지 에드워드의 가이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명가수의 노래. 비록 가사를 제대로 읊지 않고 흥얼거리는 수준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진성이 아닌 가성으로 부르며 높은 고음을 내뱉는 그의 목소리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슬며시 생기는 걱정.
무려 3옥타브 파라는 남자 가수의 한계까지 몰아치는 음역.
‘어떻게든 되겠지.’
걱정은 뒤로 접어두고, 다시 감상에 빠진다.
가야금과 피아노의 선율로 첫 번째 벌스가 끝나고, 곡의 하이라이트 브릿지.
방금까진 없던 드럼의 비트가 추가되면서 곡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소외된 자들이 느꼈던 억울함과 슬픔과 아픔을 노래하는 순간.
비록 지금 가이드 버전인 이 곡엔 안 담겨있지만, 원곡엔 수십 명의 코러스가 화음을 맞추며 곡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곡의 하이라이트.
“좋네...”
잠시 후, 곡이 끝나고 김세준이 절로 중얼거린 한 마디.
비록 아직 완성된 버전은 아니나 이 곡이 79억이란 미튜브 뮤직비디오 조회 수를 달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감성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자신이 가야금 연주자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가야금이 추가되니 아픔을 노래하는 이 곡의 감성이 더욱 부각 되는 느낌이다.
“여기에 가사까지 추가되면...”
가사도 이미 직접 쓴 게 있을 터.
조지 에드워드가 쓴 솔직하고 담백한 가사 또한 이 노래의 백미다.
노래를 이내 한 번 더 재생하는 김세준.
눈을 감고 노래를 또 한 번 깊게 음미하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수십 번을 넘게 들은 멜로디지만 질리지 않는 노래.
그 멜로디를 입으로 가볍게 흥얼거리며 김세준이 조지 에드워드에게 답장을 보냈다.
[좋네요. 바로 작업할까요?]
[네! 저번에 말한 대로 내일모레 뵙겠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는지 칼같이 빠르게 오는 조지 에드워드의 답장.
어린아이의 들뜬 감정이 담긴 그 답장을 보며 김세준이 슬며시 미소지었고, 이내 문뜩 떠올렸다.
‘서울 스타일’이 미튜브 역대 조회 수 1위를 찍으며 한창 유행했을 때의 풍경.
전국이 열광하며 그의 신드롬에 빠졌고, 그가 한국에 자랑이 되었던 순간.
이제, 자신이 한국의 자랑이 될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