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Going Home(8)
“은퇴 번복이라...”
에드워드가 입가를 매만지며 쓰게 미소지었다.
예상했던 물음이라 크게 놀랍진 않았다.
최근 미국에서 가장 큰 화제성을 가진 인물이 눈앞에 있는 젊은 남성이다.
비록 그의 이번 앨범이 자신과 그의 합작품이었고, 그가 자신에게 큰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지만.
고작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자신에게 시간을 낼 정도로 김세준이 한가한 인물은 아니었다.
분명 다른 의도가 있을 거라 충분히 짐작 가능했고, 어떤 목적인지 단번에 눈치챘다.
자신은 한평생 음악 제작을 업으로 살아온 사람이었고, 이젠 은퇴한 뒷방 노인네.
그런 자신에게 그가 부탁할 건 딱 한 가지밖에 없었으니까.
‘흐음...’
그런 의도를 알고도 그가 김세준의 부름에 응한 이유.
김세준 정도의 인물이라면 자신의 답변도 충분히 예상했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자신을 부른 이유.
호기심이 동했다. 어떻게 자신을 설득할지, 아니면 어떤 다른 방안을 제시할지.
“굳이 답을 해줘야 하나?”
“거장이라 작업을 해보니, 웬만한 프로듀서는 성에 차지 않을 거 같아서요.”
은은한 미소와 함께 내뱉는 김세준의 칭찬이 마음에 드는지 에드워드의 주름진 눈가가 한층 더 깊어진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가로젓는 고개.
“누가 가수 아니랄까 봐 입놀림이 현란하군.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그만하게. 노인학대도 어지간히 해야지. 내 나이가 이제 칠십삼이야. 얼마나 고혈을 짜야 만족하겠나?”
“아직도 정정하시지 않습니까.”
“됐네. 내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내 이름의 먹칠을 한 적이 없어. 이대로 곱게 늙어 죽기만 하면 모든 게 완벽한데, 말년에 추해질 순 없다네.”
“흐음... 거장이 창작 욕구를 불태우는 게 추하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만. 더이상 날 유혹하지 말아 주겠나? 황혼기에 들어서서 인생의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으니까.”
단호한 에드워드의 말에 김세준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장의 마지막 작품이란 타이틀 때문에 톡톡히 재미를 봤던 과거.
그리고 그 타이틀 때문에 진한 아쉬움이 남는 지금.
먼 미래에서 왔어도 사람 인생 한 치 앞길도 모르는 건 여전하구나.
“아, 그리고 오해하지는 말게. 절대로 자네하고의 작업이 싫다거나 별로라는 뜻은 아니니까. 오히려 자네처럼 뛰어난 아티스트와 함께 일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지. 결과물 또한 내 마지막 작품이란 이름에 걸맞았고.”
실제로 그와 함께 작품을 만들어간 그때.
그때를 떠올리니 입가의 진한 미소가 절로 그려진다.
자신과 그의 나이 차이가 무려 반백 년.
그런데도 마치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편안한 그였고, 덕분에 작업하는 내내 즐거움이 가득했다.
오늘도, 그런 김세준의 부름이었기에 나왔지, 다른 아티스트들이었다면 거들어보지도 않을 자신이었다.
‘이상하게 친숙하고 편안한 느낌이란 말이지.’
아쉬운 눈초리에 김세준을 보며 에드워드가 따뜻한 눈빛을 보냈다.
만약에 김세준이 자신과 비슷한 연배였다면 둘도 없는 친구가 됐었으리라.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요.”
“이해해줘서 고맙군.”
말은 아쉽다고 하나 표정엔 그런 기색 따윈 하나도 내비치지 않는 김세준이다.
입가를 어루만지며 무언가 생각에 빠진 그.
에드워드의 예상대로 김세준은 거절당할 거라는 걸 예상하고 이 자리에 왔다.
‘내 예상이 틀려도 좋고. 맞아도 좋고.’
“그나저나 자네 아직 앨범 내려면 제법 시간이 꽤 필요하지 않나? 이번 음반 활동도 막 시작한 참인데? 벌써 프로듀서를 구할 필요는 없을 텐데.”
“아, 아닙니다. 다음 앨범을 빠르게 내려고 합니다. 한, 두 달 뒤?”
“빠르군. 그리고 나쁘지 않아.”
김세준의 답변에 에드워드가 짧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제법 서두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나, 그의 마음이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만약 김세준이 발매한 다음 음반도 연달아 히트한다면?
그의 미국 데뷔는 완벽한 성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미 많은 미국인의 뇌리에 깊게 인상이 박힌 그지만.
미국은 수많은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가 매년 쏟아져 나오는 나라다.
김세준처럼 큰 감동을 준 가수가, 어느새 스리슬쩍 사라지는 경우도 부지기수.
단편적인 예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크게 울려 퍼졌던 ‘서울스타일’.
세계를 강타한 그 노래를 부른 가수도, 결국 그 명곡만 남기고 후속곡들은 실패하며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나.
그런 대중의 냉정함을 알기에 김세준이 재빨리 다음 음반을 발매하려는 시도는 썩 괜찮게 들렸다.
적어도 두 달 뒤라면, 아직 그가 미국인들에게 심어 놓은 감동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이기는 할 테니까.
“그래. 그렇다면 이제 자네가 나한테 할 말은 뭔가?”
오른쪽 다리를 꼬며 에드워드가 넌지시 물었다.
거절당할 걸 알고 왔으니, 분명 다른 제안이 있을 터.
김세준이 힐끔 에드워드를 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지. 아, 지금은 임플란트라고 해야 하나?’
잇몸이라고 치부하기엔, 자신이 생각한 사람의 능력이 그렇게 하찮지가 않다.
혹여나 싶은 마음에 제안했지만, 에드워드가 거절한다고 해도 크게 실망하지 않은 이유.
김세준이 천천히 입을 열며 그 이유를 애드워드에게 뱉었다.
***
“형님. 이야기는 잘 되셨습니까?”
김세준이 차로 돌아오자, 이주성이 버선발로 달려와 그를 반기며 물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 나중에 다시 연락 준다니까 그때까지 기다려봐야지.”
“아... 그래도 형님 표정을 보아하니, 이야기가 제법 잘 된 거 같은데요?”
뒷좌석의 앉은 김세준의 표정을 힐끔 보며 이주성이 넌지시 말하자, 김세준이 피식 웃었다.
어느새 주성이하고 함께 지낸 지도 꽤 됐구나.
표정만 봐도 자기 생각을 읽을 경지까지 오른 매니저.
“응. 아마 잘 될 거 같아.”
실제로 그의 예상대로 에드워드의 반응은 괜찮았다. 다만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라 그런지 제법 놀라워하긴 했지만.
“음?”
생각에 빠져 있던 그를 깨운 건 경쾌한 소리의 벨 소리.
핸드폰을 확인한 김세준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엄마’.
두 글자를 보자마자 생기는 죄책감.
생각해보니 미국에 온 첫날 연락하곤, 그 뒤로 연락을 한 기억이 없었다.
“여보세요?”
“세준이니? 전화 가능하니?”
“네. 엄마. 죄송해요.”
“됐다. 아주 니 아빠 닮아서 세상 무심한 놈.”
복잡한 감정이 담긴 박진숙의 한 마디에, 핸드폰 너머 김창용의 억울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죄송해요. 연락 드린다는 게 정신이 없어서...”
“알지. 알아. 우리 아들 바쁜 거 누구보다 잘 알아. 그래도 세준아.”
“네.”
수화기 너머 박진숙의 목소리의 슬픈 기색이 가득 담겨 김세준의 가슴을 쿡쿡 찌른다.
“많은 거 안 바래. 그냥 하루에 한 번 메시지라도 남겨 놓으면 안 될까? 먼 타국까지 가서 아들 어떻게 되는 건 아닌가, 아주 하루하루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간다. 니 아빠는 걱정되면 뉴스를 보라고, 거기에 너 나온다고 뭔 말 갖지도 않은 소리나 하고 앉아있고.”
“네. 앞으로는 진짜 자주 연락 드릴게요.”
김세준이 죄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
하루에 한 번. 그 메시지 보내는 게 얼마나 어렵다고.
앞일만 보고 달려와 부모님을 챙기지 못한 자신의 안일함에 김세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우리 아들이 못 해주는 게 아니라, 부모 마음이 그래. 자식 걱정은 죽어서 끝난다는 말도 있잖니.”
“네. 엄마. 앞으로 더 자주 연락드리고, 한국으로 들어가면 바로 찾아뵐게요.”
“그래. 아들. 바쁜데 미안해.”
“아니에요. 엄마.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은 김세준이 의자에 기대며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부모님께 드는 죄스러운 마음과 함께 운전석에 있는 이주성에게도 드는 미안한 마음.
부모님을 사고로 잃은 그. 그리고 그 앞에서 부모님과의 전화라...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지만, 괜히 미안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
힐끔 이주성을 바라봤고, 그가 김세준의 기색을 읽곤 피식 웃었다.
“괜찮습니다. 형님. 제 눈치 안 보셔도 돼요.”
“아, 그래?”
생각을 읽힌 김세준이 민망한 웃음과 함께 뒤통수를 긁적였다.
짜식. 이제 진짜 내 생각을 그냥 다 알고 있네.
다시 몸을 눕혀 김세준이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봤다.
‘부모의 마음이라...’
자신은 아직 알지 못하는 마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을 생각하며 김세준은 확신에 찼다.
에드워드가 자신의 제안을 분명히 수락할 거라는 걸.
***
시간이 흘러 수요일이 됐고, 김세준은 핸드폰을 들곤 침을 꿀꺽 삼켰다.
입술이 바짝 마르고, 핸드폰을 쥔 손바닥엔 땀이 흥건하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뱉고, 그의 옆에 이주성과 한국에서 급히 날아온 정수연도 굳은 표정이었다.
“몇 위했을까요? 한 10위?”
“에이. 그래도 10위보단 높이 올라가겠죠. 한 8위?”
“주성아. 지금 spoty 음원 차트는 몇 등이야?”
김세준의 물음에 이주성이 핸드폰을 급하게 만지작거렸다.
“지금도 1위입니다!”
“후우...”
실시간 차트 5위에 머물렀던 그의 노래.
이틀 전부터 당당히 실시간 차트 1위를 차지했다.
기쁘고,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던 순간이었고, 이주성과 부둥켜 얼싸안으며 기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김세준의 눈은 다음 목표를 향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고, 공신력 있는 음반 차트.
단순히 한 음원 앱에서의 1등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영향을 지닌 자신의 목표.
빌보드 차트 HOT 100.
저번 주까지는 자신의 기대 이하였던 빌보드 차트 순위지만 오늘은 기대해볼 만했다.
카풀노래방 출연 전후로 달라진 자신의 곡 위상.
미튜브에 올라온 자신의 카풀노래방 출연 클립 영상은 벌써 조회 수가 5천 만에 가깝고,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극찬을 받는 중이다.
이제 방영한 지 일주일도 채 안 지난 영상.
이대로만 간다면 카풀노래방 미튜브 최대 조회 수를 가뿐히 갱신할 게 확신하다.
“형님! 업데이트됐습니다!”
이주성의 격한 목소리.
김세준과 정수연이 재빨리 핸드폰을 집어 들었고, 빌보드 차트에 들어갔다.
“...”
“...”
“...”
세 사람이 핸드폰을 확인하는 순간, 김세준의 호텔 방엔 침묵만이 맴돌았다.
“됐...됐다!”
“형님!!!”
“꺄아아악!!!”
그리고 잠시 후 가지각색의 비명을 지르며 핸드폰을 내던지고 세 사람이 서로를 부둥켜 끌어안았다.
방방 뛰며 난리를 치는 세 사람.
김세준이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잘...잘못 본 게 아니겠지?”
혹여 자신이 잘못 본 건가 싶어, 다시 확인하는 그의 눈동자에 선명히 들어오는 글자.
1. Kim Se Jun ? Going Home.
빌보드 HOT100 차트 맨 위에 적힌 이름.
들어가자 보이는 선명한 자신의 이름.
온몸에 진한 감동이 밀려들어 온다.
“고생하셨습니다. 형님!”
“축하해요!”
이주성과 정수연의 축복.
그 축복에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김세준의 눈에 자신의 방구석에 있던 가야금이 들어왔다.
한국 전통 악기인 가야금.
하지만 한국에서만 사랑받기엔 너무 아까웠던 악기.
세계에 이 악기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었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이 이 악기에 매료되길 원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꿈에 완벽히 도달한 순간은 아니지만.
오늘 한 가지는 확실하게 증명됐다.
가야금이,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정서를 가진 사람이 듣기에도 아름답고 부드러운 매력적인 악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