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Going Home(6)
‘The Late Show’의 코너인 카풀노래방의 모든 촬영이 끝났다.
오늘 어렵게 모신 노병들이 차를 타고 떠나는 걸 배웅하는 김세준을 향해 고든이 감회에 젖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세준. 정말로 깊은 감동이 있는 무대였어요.”
“고마워요.”
촬영 내내 가볍고 쾌활한 목소리였던 그였지만, 촬영이 끝나자 분위기가 사뭇 바뀌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노병들을 향해 자신이 공연을 펼칠 때부터 그를 감싸던 분위기가 달랐지.
“개인적으로 저한테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무대였어요.”
“그런가요?”
떠나는 차를 향해 허리를 크게 숙였고, 김세준이 허리를 일으키면서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그런 무대를 코앞에서 봤는데. 특히 노인분이 눈물 흘리면서 당신의 손을 잡아주는 모습은 저도 코끝이 찡했죠.”
“아아...”
그의 말에 김세준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공연이 끝나고, 노구를 힘들게 일으켜 지팡이에 의지에 한 걸음씩 자신에게 다가오던 노병들.
그리곤 자신의 손을 그 주름진 손으로 덮으며 진심으로 고맙다며 눈물 젖은 목소리로 입을 연 그들.
목소리는 물론, 그들의 손에 담긴 진심이 너무 고스란히 잘 느껴져 김세준 또한 가슴이 뭉클해진 순간이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게 완벽한 촬영이었어요. PD님도 흡족해하신 거 같네요.”
고든이 턱짓으로 스텝 가운데 한 사람을 가리킨다.
The Late Show’의 메인 피디인 남자.
야구 모자를 쓰고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람이었고, 만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잘됐네요. 아, 방송은 언제 방영하죠?”
“다음 주. 금요일이죠. 반응은...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 고든.
미국 전역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리라.
이 쇼의 진행자로 지낸 지가 벌써 3년.
그동안 수십 수백 명의 호스트를 초대했고, 그만큼의 촬영을 진행했지만.
오늘 김세준의 모습만큼 자신에게 깊은 감동을 심어준 사람과 촬영은 없었다.
그건 비단 자신뿐만 아니라 이 쇼를 보는 시청자들도 마찬가지 일터.
세계 최고의 군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무궁한 자긍심을 가지는 미국인들.
그런 만큼 군인들을 특별히 더 존중하고 예우하는 그들의 국민성.
그가 영국인으로서 미국에 살면서 느낀 그들의 특징이었고, 그런 만큼 시청자들은 자신보다 더욱 크게 감명받으리라.
“다음 주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뵈었으면 좋겠네요.”
헤어짐을 암시하는 고든의 말에 김세준이 손을 내밀었다.
가볍게 악수를 나눈 뒤 스텝들과도 인사한 후, 김세준이 촬영장을 빠져나왔다.
“다음에 또 보자라...”
마지막 고든의 말.
앞으로의 활동이 자신의 예상대로만 된다면.
그를 다시 만나는 날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예정이었다.
***
시간이 흘러 김세준이 출연한 카풀노래방이 방영되는 날.
그 날까지도 김세준은 미국을 떠나지 않았다.
카풀노래방 이외에도 미국에서의 활동은 꽤나 많았으니까.
정수연의 사업수완. 확실히 괜히 국내 굴지의 엔터테인먼트를 세운 게 아니었다.
그동안 김세준과는 전혀 무관했던 스케줄을 척척 잡아 온 그녀.
각종 패션쇼에 초청받고, 셀럽이 주최하는 파티에 초대되어 다양한 사람들과 얼굴을 틀었다.
“큰 도움이 됐지.”
아레스 뮤직과 일하면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정들.
예능 출연이나 광고, 혹은 노래 홍보를 위한 라디오 출연 같은 활동만 해왔던 그에게 제법 색달랐던 이번 일정.
처음엔 어색하고 낯선 활동이지만, 여기서 만든 인맥들은 그의 향후 활동에 큰 도움이 될 터.
비단 가수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난 지난 일주일.
배우, 감독, 패션 디자이너 등 친해져서 나쁠 게 없는 사람들.
덕분에 알찬 지난 일주일이었고, 제법 흡족한 미국에서의 활동이었다.
“뭐, 이 방송이 망하면 죄다 부질없는 활동이겠지만.”
그가 이번 미국에서 활동 중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활동.
바로 지난주에 참여했던 카풀노래방.
미국에서 워낙 인기 많은 방송이기에 심혈을 기울여 임했던 촬영.
이 방송이 미국 전역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그의 이번 활동은 실패라고 봐도 무방했다.
“음... 상위권으로 올라갔으면 좋겠는데...”
음반을 내고 일주일 정도가 지난 지금. ‘Going Home’의 순위는 89위.
Hot 100 차트에 진입도 못 한 지난주에 비하면 많이 오른 순위이지만, 그래도 많이 아쉬운 등수.
오늘 방영할 카풀노래방은 그의 노래 순위가 반등할 거대한 기회였다.
감동적인 그때의 공연과 당시 구경하던 관객들의 반응을 떠올리니 욕심이 점점 치밀어오른다.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차트를 바라보는 김세준이지만 차마 맨 위를 바라보진 못했다.
“타이밍도 참...”
절로 고개가 저어지는 1위부터 3위까지의 노래.
모두 주옥같은 명곡들뿐이다.
에이미의 ‘Good Bye’처럼 시간이 흐른 먼 미래에 까지도 사랑받는 희대의 명곡들.
그런 명곡이 무려 3개나 나온 시기에 자신이 음반을 낸 것도 참 기구한 운명이었다.
“3위까지는 확실히 무리야.”
이미 저 노래들이 굳건히 순위를 지킨 지도 제법 오래됐고, 자신의 기억이 맞는다면 다들 올해 연말에 있을 시상식에서도 한 자리씩 차지하는 작품들이다.
자신의 작품이 저들의 작품에 비해서 크게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비슷한 수준의 작품이라면 더 익숙한 작품을 찾고 듣는 것이 사람들의 생리.
그 예로, 한국에선 먼 미래에도 종종 귓가에 멜로디가 맴도는 명곡들이 이미 자리 잡은 상황이 있었지만, 자신이 치고 올라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한국은 자신의 이름은 대중들에게 너무 익숙하고 친숙한 시장이었으니까.
반면, 한국과 달리 여기는 자신의 이름값이 통하지 않는 시장.
“보면 알겠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오늘 밤이 지나면 알게 될 터.
생각을 마친 김세준이 시선을 텔레비전으로 돌린다.
‘The Late Show’의 모든 코너가 끝나고, 마지막 코너.
그가 나온 카풀 노래방이 막 방영을 시작했다.
***
“테일러! 시작한다!”
“참나. 사장님이 보면 뒷목를 잡으시겠군.”
에드 케인의 거대한 자택.
김세준이 이번에 출연하는 ‘The Late Show’를 같이 보기 위해 그의 집에 놀러 온 테일러가 한껏 신난 목소리로 외치는 케인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자신의 회사인 아메리카 레코드의 제안을 거절한 김세준.
자신이야 상관없지만, 회사 임원직들 사이에선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회사의 입장은 생각지도 않고 그저 친구의 활약에 순진하게 좋아하는 에드 케인이었다.
“케인. 회사에서는 제발 눈치 좀 챙겨. 거기서 대놓고 나한테 오늘 만나서 김세준이 나오는 카풀 노래방을 보자고 이야기하면 어떡해?”
“뭐 어때. 친구가 나오는 방송을 함께 보자는 건데.”
김세준이 나오는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답하는 에드 케인이었고, 테일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유분방한 답변. 그이기에 가능한 답이다. 회사와 그의 관계.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게 그는 철저한 갑.
그가 회사에 벌어다 주는 수익은 웬만한 가수들을 합친 것보다 많았으니까.
냉장고에 꺼낸 맥주를 부딪친 후, 이내 두 사람이 방송에 몰입했다.
“흐음...”
그리고 잠시 후, 기대감 넘치던 에드 케인의 얼굴이 무미건조하게 변했다.
‘세준. 이게 전부면 실망이 큰데?’
친구를 떠올리며 에드 케인이 속으로 낮게 중얼거렸다.
분명 소소한 재미는 있지만, 기대 이하의 방송.
자신이 아는 그라면 분명 세상을 놀라게 할 무언가가 있을 줄 알았는데.
“기대가 너무 컸나?”
에드 케인의 말에 고든과 김세준의 대화에 웃음을 터트린 테일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방송이 별로야?”
“응. 기대 이하야.”
“왜? 난 재밌는데? 생각보다 김세준이 센스가 있네. 고든이랑 캐미도 괜찮고. 제법 반응 좋을 거 같은데.”
“흐음. 그한테 기대하는 게 저런 모습이 아니잖아.”
고든과 함께 광대처럼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기대한 게 아니다.
김세준의 장점이자 특징.
남들을 쉽게 줄 수 없는 진득한 감동을 주는 노래와 무대.
그런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다.
비록 카풀 노래방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힘든 가볍고 경쾌한 예능이라 할지라도.
그런 모습을 보이기만 한다면, 미국 시장에서도 김세준은 충분히 성공할 재목이었으니까.
“일단 지켜보자고. 방송 보니까 목적지에 하이라이트가 있는 거 같은데.”
테일러의 말에도 불구하고 에드 케인의 얼굴엔 불만족이 쌓여 있었다.
보통 카풀 노래방의 목적지는 자신의 팬을 만나 같이 노래 부르고 끝나는 게 보편적이다.
애초에 카풀 노래방이란 제목처럼 이 쇼는 차에서 같이 노래 부르고 호스트와 대화를 나누는 게 메인 플롯이었으니까.
“음?”
시종일관 불만족스럽게 방송을 보던 에드 케인의 표정에 변화가 생긴 건 김세준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였다.
BGM이 바뀌고, 김세준과 고든의 분위기도 바뀐다.
방송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거워지고, 엄숙해진다.
“저기가 어디지?”
“글쎄. 워싱턴의 저런 곳이 있었나?”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바뀐 분위기에, 에드 케인이 테일러에게 물었지만, 테일러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도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장소.
이내 병사들의 동상이 나오고, 바닥에 적힌 글귀들이 나오자 김세준이 향한 곳이 어딘지 알게 된 에드 케인이 슬며시 미소지었다.
‘역시!’
자신이 김세준에게 원했던 것.
바로 저런 감성이다.
그의 이번 신곡을 저런 장소에서 부른다? 제법 깊은 감명을 줄 게 분명하지 않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 에드 케인이 두 눈을 텔레비전에서 떼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그의 두 눈이 충격으로 물든다.
“...!”
김세준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향해 김세준이 큰절을 바치고, 자막으로 나오는 그들의 정체.
아직 무대는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어떤 감동을 선사할진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방금까지 즐거운 눈빛으로 방송을 바라보던 테일러도 눈빛이 심각해지고 깍지를 낀 팔로 입가를 가린다.
은퇴한 노병들을 향해 김세준이 선사하는 공연.
한 미국인으로서 절로 자긍심이 생기는 무대다.
“이거...”
무어라 말을 하려던 테일러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진한 감동이 치밀어오르는 무대.
미국 사람이라면 절로 진한 감동이 치밀어오르는 무대.
“미쳤어...”
간신히 내뱉은 한 마디.
이런 무대를 구상한 김세준을 향한 말과 동시에 방송이 끝나고 어떤 파급이 일어날지 상상하자 나온 한 마디였다.
군인들을 위로해주던 그의 노래가, 이 방송을 통해 전 미국인들에게 자긍심과 감동을 선사했다.
아마 오늘 방송의 여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터.
테일러는 스스로가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아니 오히려 조국에 조금은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
그런 자신조차 김세준의 무대를 보고 마음 한구석에 가슴 저린 여운이 자리 잡았다.
자신조차 이럴 진데, 유독 애국심이 강한 사람들, 특히 군인들과 군인과 관계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아마 이 방송을 보면서 눈물을 질질 흘리고 있지 않을까.
실제로 자신도 살짝 코끝이 찡해졌으니까.
테일러가 코끝을 억지로 문지르며 에드 케인을 힐끔 바라봤다.
방송이 막 시작했을 때와는 전혀 상반되는 표정.
실망하고 아쉬운 가득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만족스럽고 감동받은 기색이 가득했다.
“89위라... 테일러 우리 내기할까?”
“무슨 내기?”
“다음 주. 빌보드 차트에서 세준이의 노래 순위. 난 숫자 하나는 사라질 거 같은데.”
고작 한 주 만에 89위에서 8위 혹은 9위라...
평소라면 가당치도 않은 말 하지 말라며 정색할 그였지만.
이번엔 다르다.
방금 김세준의 무대.
저 가당치도 않은 일이 가능한, 미국 예능 역사상 전무후무한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