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110화 (110/148)

#110

Going Home(3)

“기대되네요.”

이예은의 들뜬 목소리.

김세준이 부엌에서 맥주를 꺼내오곤 그녀의 옆에 앉았다.

이예은과 함께 촬영한 ‘포기너 버스킹’의 첫 방영일.

그 방송을 지켜보기 위해 그녀를 집에 초대했고, 방송을 보며 오붓한 집 데이트를 즐길 계획이었다.

“첫 방송은 크게 볼 게 없겠지?”

“뭐, 그래도 오빠 공연했던 장면은 나오겠죠.”

맥주로 목을 축이며 광고 끝나길 기다리는 두 사람.

이예은의 말에 김세준이 그때 기억을 떠올렸다.

촬영 첫날 식사를 하고 가게에서 펼친 공연.

그때 제법 괜찮았었는데.

화면으로는 어떻게 나올지 제법 기대감이 서린다.

체중 관리를 위해 안주 없이 맥주만 홀짝이고 이내 시작되는 방송.

“오빠! 저기 기억나요?”

방송이 시작하자 그들이 보낸 여정을 짧게 요약하며 보여주는 방송의 도입부.

그들의 흔적이 화면에 흘러나오자 이예은이 눈을 반짝였다.

예능을 많이 하진 않았지만, 이번 방송만큼 즐겁고 행복하게 했던 촬영이 있을까.

무엇보다 그녀가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촬영.

1분 1초가 즐거웠던 순간이었고, 방송을 보자 다시금 떠오르는 기억.

김세준도 작은 미소와 함께 그녀의 손을 부여잡았다.

그의 예상대로 첫 방송은 잔잔하고, 가라앉은 힐링 가득한 느낌이었다.

자극적인 맛 없이 시청자들에게 유럽의 멋을 선사하는 첫 방송.

소소한 재미도 있고, 시청자들에게 힐링을 심어주겠지만 김세준에겐 아쉬운 느낌.

한국인들은 보면서 충분히 재미를 느끼겠지만, 외국인들은 도통 재미를 못 느낄 방송이다.

‘뭐 어쩔 수 없지.’

아쉽긴 하지만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는 일.

“오빠! 나오네요!”

미간이 찌푸려진 그와 달리 이예은이 활짝 웃으며 검지로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무대에 홀로 올라선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의 첫 공연.

약간 멋쩍은 듯한 표정의 자신이 이내 노래를 부른다.

“오빠...?”

화면을 바라보는 이예은이 낮게 그를 부른다.

김세준 또한 화면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이 얼떨떨하여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때 저랬어?”

“아니... 네... 아니 근데 이게 어떻게 이러지?”

이예은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다.

관객들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오로지 김세준만 나오는 화면.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는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보여주더니, 다시 롱샷으로 그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오로지 김세준만 나오는 영상.

거기에 몰입에 방해되지 않게 번잡한 자막도 없이, 그저 노래 가사만 화면 왼쪽 아래 구석에 새겨진다.

가게 무대의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노래하는 그의 모습.

‘이런게 가능하구나...’

이예은이 방송을 보며 그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이 틀렸다는 걸 느꼈다.

라이브가 전해주는 감동.

그 감동은 절대 화면으로 담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지난날.

훗날 대한민국 최고의 피디가 되는 천재의 손길이 거쳐 만들어진 무대 영상은 그녀가 한평생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트렸다.

우아하다.

그녀가 당시 김세준의 무대를 보며 느꼈던 감정.

그 감정이 지금 화면으로도 여실히 전해진다.

화면을 바라보는 김세준의 입가가 곡선을 그리며 말아 올라갔다.

‘기대 이상인데?’

자신의 기대 이상으로 화려한 영상미.

고작 노래하나 부르는 영상이지만,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이러면 기대할 만하겠어.’

담백하고 우아한 매력이 있는 영상미.

이 영상을 본 사람들은 슬그머니 이런 생각을 가질만하다.

자신과 에이미의 공연은 어떤 식으로 나올까.

자신과 에이미의 무대를 기다릴 사람들에게 심어질 기대감.

가게에서 벌인 작은 규모의 공연만으로도 빼어난 영상을 만들었는데, 자신과 에이미. 그리고 가야금과 관객들까지 있는 그 영상은 어떻게 나올지 자신도 궁금할 지경이었다.

가야금을 뜯는 천재와 천부적인 방송 감각을 지닌 두 천재의 만남.

1화부터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기대감을 선사했다.

***

“형!”

“세현아! 왜 이렇게 오랜만에 보는 거 같지?”

“그러게요. 아. 방송 잘 봤습니다.”

포기너 버스킹의 첫 방송이 끝나고 사흘 후.

김세준은 녹음하기 위해 SY 엔터테인먼트로 향했고, 겸사겸사 오랜만에 자신의 친한 동생이자 B.ONE의 맴버인 세현을 만났다.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SY 엔터테인먼트 사옥 안에 있는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

오랜만에 만나 세현의 얼굴엔 반가운 기색이 가득했다.

“방송 봤어?”

“예. 봤죠. 형이랑 지수 누나 나오는 방송인데.”

“어우. 고마워. 근데 좀 부끄럽다.”

“아니요. 진짜 재밌었어요. 특히... 그 마지막 무대 영상...”

평소 감정 표현이 드문 세현이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살면서 누군가를 부러워해 본 적이 적지만.

1화 마지막 김세준의 무대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생긴 부러움.

자신도 저렇게 노래하고 싶다는 부러운 감정이 절로 들 정도로 아름답고 우아한 영상이었다.

“다 화면 빨이야. 화면 빨.”

김세준이 손을 내저으며 엄살을 피자 세현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방송이 끝나고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한 김세준.

이젠 그가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는 것도 어색하지가 않을 지경.

가수 중에서 이제 대한민국에 끼치는 파급력이 가장 크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 사람인 만큼 조금은 거만해질 수도 있을 텐데.

흔히 말하는 초심. 다들 쉽게 내뱉는 말이지만 지키긴 어려운 단어.

김세준만큼 초심을 잘 지키는 가수가 또 있을까.

처음 김세준을 보곤 노래에 반했지만, 알게 될수록 그 인성에 반한 세현이었다.

“아, 맞다. 이번 방송 플릭스에서도 반응 좋다면서요?”

“어. 생각보다 반응이 좋더라고.”

세현의 물음에 김세준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한국에선 동 시간대 방송 중 최고의 시청률을 선보이며 순조롭게 출발한 방송.

그리고 첫 방송이 끝나고 플릭스에 올라왔다.

예능을 포함하여 영화와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를 섭외하는 ‘플릭스’.

하지만 영화와 드라마와 비교하면 그다지 외국인들에겐 큰 인기를 끌지 못했던 한국 예능.

영화와 드라마와 달리 정서와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한국인들에게만 사랑받던 ‘플렉스’의 예능이었다.

그렇기에 ‘플릭스’에서 ‘포기너 버스킹’이 방영된다는 사실에 기뻐했으면서도, 가지고 있던 작은 불안감.

그리고 ‘포기너 버스킹’은 그런 김세준의 불안감을 깨끗이 날려버렸다.

고작 1화이지만, 외국인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미국을 포함하여 16개국에서 한 주간 가장 많이 본 한국 예능 1위를 차지했고, 호평 일색이다.

가끔 이해 안 가는 장면도 있지만, 대체로 한국인들이 느낀 소소한 재미를 그들도 느꼈다는 것.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백미는 1화 마지막에 나온 김세준의 무대.

남녀노소, 동양과 서양을 가리지 않고 다들 그의 매력에 홀딱 빠져들게 만든 장면이었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지.’

외국에서의 화제성.

그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고, 덕분에 이제 아무 걱정 없이 음반 제작에만 몰두하면 될 그였다.

“세현이 너는 요즘 뭐해?”

“아, 저희도 음반 준비하고, 아시아 투어 준비하고 있어요.”

아직 세계적으로 큰 인기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아시아에선 독보적인 아이돌 그룹.

‘아마 내가 성공하면 곧바로 B.ONE도 시작하겠지.’

B.ONE을 고작 아시아에서만 남겨 두기엔 아까운 제목.

정수연 대표도 분명 느끼고 있을 테고, 이번 자신의 활동이 성공적으로만 마무리된다면 B.ONE도 자신이 다져온 길을 따라 걸어올 게 분명했다.

“세현아. 내가 길 잘 닦아 놓을게.”

김세준이 세현을 보며 흐뭇한 목소리로 말했고, 뜻을 이해하지 못한 세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냐. 나, 녹음 시간 다 됐네. 다음에 또 보자. 세현아.”

“네. 형. 들어가세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는 세현을 뒤로하고 김세준이 발걸음을 옮겼다.

녹음을 위해 다시 한국을 찾아온 거장의 마지막 작품.

그 작품을 이젠 완성할 시간이었다.

***

“잘 지냈나? 컨디션은 어때?”

“에드워드. 잘 지내셨죠?”

SY 엔터테인먼트 녹음실에 들어가자 여전히 멋진 외모를 자랑하는 에드워드가 그를 반긴다.

싱긋 웃으며 악수를 나누자, 그와 함께 있던 두 사람이 김세준에게 연달아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에드워드 레코드에 소속 오디오 엔지니어, 에릭입니다.”

“처음 뵙네요. 저도 에드워드 레코드에 소속 오디오 엔지니어인 제임스에요.”

“아, 잘 부탁드립니다. 김세준입니다.”

에드워드의 부하 직원 인 두 사람.

에드워드의 지휘에 따라 음향 조절 및 녹음을 맡은 기술자들이었다.

“일단 자네의 가이드를 기반으로 우리가 곡을 다시 정리했는데, 한 번 들어보겠나?”

“오. 기대해도 됩니까?”

“자신 있게 말하죠. 기대하셔도 됩니다.”

김세준의 반문에 제임스가 안경을 치켜세우곤 싱긋 웃었다.

자신만만한 모습에 자연스럽게 생긴 기대감.

부푼 가슴을 가진 채 의자에 앉자 녹음실 가득 울리는 ‘Going Home’.

‘오...’

고작 전주를 들었음에도 터져 나오는 감탄.

북과 드럼만 울렸던 가이드. 거기에서 박자를 쪼개어 좀 더 긴장감을 고조시킨 편곡.

그리고 이내 시작되는 곡.

가야금과 거문고. 그리고 트럼펫의 삼중주로 울리며 전체적으로 비극적인 감정이 가득하던 곡의 분위기.

하지만 가이드인 만큼 조금은 부족했던 곡의 분위기가 한층 더 깊어졌다.

‘오....’

기존에 있던 가이드의 멜로디에 새로운 멜로디를 추가하고 세션을 추가한 그.

거장이란 이름이 거짓은 아닌지 김세준은 생각지도 못한 색다른 선율이 곡에 추가됐다.

거기에 더해 메인 세션으로 합류한 새로운 악기.

낮은 음역에서는 깊고 따뜻한 음색을 내뿜더니, 높은 음색에선 제법 날카로운 소리를 내뱉는 악기의 등장.

미간이 찌푸려진 그를 본 에릭이 싱긋 웃으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클라리넷입니다.’

“아...”

짧게 내뱉는 감탄.

가야금과 거문고처럼 비슷한 관계인 클라리넷과 트럼펫,

김세준의 원곡에선 홀로 떠도는 느낌이 들던 트럼펫에 부족함을 채워주는 클라리넷의 사용.

완벽한 조화를 자랑하며 곡의 감정을 완벽히 어루만지는 편곡.

“어떤가?”

“진짜... 좋은데요?”

김세준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진심으로 감탄을 뱉었다.

“내 마지막 작품일세. 허투루 대할 순 없지.”

근엄한 그의 말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쉬움을 느낀다.

이미 세간에 발표까지 한 마당이라 돌이킬 순 없겠지만.

‘은퇴하시기엔 아까우신 분인데...’

그가 편곡한 노래를 듣자마자 계속 같이 일하고 싶다는 욕망이 피어오른다.

“음. 그리고 트럼펫이랑 클라리넷 연주자들은 사흘 후에 한국에 올 걸세.”

에드워드의 말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인다. 최고의 곡을 만들기 위해, 외국 유명 연주자들을 섭외하여 한국에 부른 그였다.

“그럼, 오늘은 제 녹음만 하면 되는 겁니까?”

“그렇지. 잘 부탁하네.”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김세준이 싱긋 웃으며 가야금을 챙겨 녹음 부스 안으로 향했다.

***

에드워드하고의 녹음은 순조롭지 않았다.

까탈스럽다는 세간의 평가.

부풀려진 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소문의 규모가 축소된 느낌.

그동안 누구와 작업해도 쉽게 끝났던 녹음.

하지만 이번 녹음은 가야금 녹음만 일주일이 걸렸고, 거문고 녹음은 꼬박 사흘이 걸렸다.

징글징글했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보컬 녹음.

보통 하루 안에 끝내던 보컬 녹음도, 이번에 걸린 시간은 무려 팔 일.

만족을 모르는 듯이 끊임없이 재녹음을 요구하는 에드워드.

끊임없는 요구에 순간 욱했던 김세준이지만, 실제로 늘어나는 곡의 퀄리티에 입을 꾹 다물고 다시 녹음 부스로 들어간 게 수차례.

그런 고생을 걸쳐 만든 두 사람의 역작.

‘Goimg Home’이 6월 25일.

한국 전쟁이 일어난 그 날에, 전 세계에 발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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