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109화 (109/148)

#109

Going Home(2)

군인과 그 가족들을 위한 헌정 노래.

김세준이 컨셉을 떠올린 건 ‘포기너 버스킹’ 때, 마드리드에서였다.

정확히는 마드리드에서 자신들의 공연을 지켜보는 한 남자를 봤을 때.

군인인 듯한 군복을 입은 한 남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

자신의 공연을 감상하는 화목한 그 가정을 보자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

그리고 자신이 주로 활동할 미국.

미국은 딱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나라지만, 미국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

천조국이란 별명이 붙으며 세계 굴지의 국방력을 자랑하는 나라다.

그만큼 군인에 대한 예우가 뛰어나며 존경을 받는 나라.

그리고 그런 영광스럽고 영예로운 사람들이 이면 속에 가지고 있는 깊은 슬픔.

게다가 이 노래는 꼭 군인들한테만 받치는 노래가 아니다.

전쟁 또는 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

21세기에만 최소 80만에서 최대 95만 명의 사람들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

군인들뿐만 아니라, 민간군사기업에서 고용한 용병. 특수 요원.

그리고 민간인들까지.

그들의 아픔을 위로할 노래.

그 노래가 지금 자신이 만든 노래였다.

“컨셉이 무겁긴 하지만... 난 좋은 거 같아요.”

김세준의 설명을 들은 정수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쉽지 않은 주제고, 함부로 건드리기 어려운 노래지만 분명 미국 사람들한텐 큰 화제가 될 컨셉이다.

그리고 꼭 군인들뿐만 아니라, 이 노래는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도 큰 공감이 될 게 분명했다.

게다가 굳이 전쟁이 아니더라도, 미국은 숱한 총기사고가 일어나는 나라.

그런 불의의 사고에 유가족들한테도 큰 위로가 될 터.

노래의 흥망은 모르더라도, 화제성 하나만큼은 최고이리라.

노래가 가진 컨셉 하나만으로도 그러할 텐데, 이 노래는 폴 에드워드의 마지막 작품.

‘난리가 나겠지.’

업계에서 존경받으며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인물의 마지막 작품이 이런 무거운 주제를 가진 노래다?

몇몇 비판론자들은 자신들을 비난할지 몰라도, 대다수에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거다.

거장에 마지막에 알맞은 뜻깊은 주제라고.

게다가 미국을 겨냥해서 만든 곡인 느낌이지만, 이 노래가 꼭 미국에서만 흥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인기 많겠는데?”

정수연의 물음에 김세준이 작게 웃었다.

자신을 포함하여 국민의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군인의 삶을 경험해본 사람들.

그런 만큼, 군인과 그 유가족을 위로하는 자신의 노래에 큰 거부감을 가지진 않으리라.

게다가 한국에서 자신의 인기까지 생각한다면. 한국에서의 흥행은 큰 부담이 생기지 않았다.

“일단 주제도 좋지만... 그냥 곡이 너무 좋네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곡을 다시 한번 재생한 정수연이 낮게 고개를 끄덕였다.

곡의 주제도 주제이지만, 노래의 흥망을 책임지는 건 주제가 아니다.

그냥 간단하고 원초적인 문제가 책임을 지는 것.

곡의 퀄리티. 그냥 곡이 좋냐 안 좋냐의 문제다.

그리고 지금 김세준의 노래는 기대를 저버리진 않았다.

비극적이고, 가슴 아픈 노래.

듣는 사람에게 애잔하고 애절한 감정을 잔뜩 심어주는 가야금의 소리는 당연히 일품이고, 거기에 북과 드럼의 두터운 소리가 비극적인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들리는 트럼펫의 구슬픈 음색.

군악대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악기.

그런 악기인 만큼 곡의 주제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악기가 있을까.

“알고 있었나?”

그리고 한동안 침묵에 빠져 있던 에드워드가 침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예?”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에 김세준이 되물었고, 에드워드의 눈빛이 애수에 빠져들었다.

“형이 있었지. 우애가 좋았지.”

“...”

그의 심상치 않은 고백에 김세준과 정수연이 분위기를 감지하곤 입을 다물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아픔.

“베트남에서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웃으며 인사하던 형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해. 그리고 그게 마지막으로 보게 된 형의 미소였지...”

에드워드가 자조 섞인 웃음을 짓곤 김세준을 향해 흡족한 눈빛을 보냈다.

“고맙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형을 떠올렸어. 나 같은 사람한테 큰 위로가 될 노래야.”

“...!”

“분명 미국에는 나와 똑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마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치유할 수 없겠지. 하지만 이 노래는 특별해. 적어도 이런 노래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겐 위로가 될 걸세.”

“감사합니다!”

에드워드의 칭찬에 김세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크게 숙였다.

거장의 마음을 위로한 자신이 뿌듯하고, 동시에 깐깐하다고 소문난 전설의 칭찬에 얼굴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아, 곡은 훌륭하지만, 자네가 말한 대로 아직 가이드 수준이라 조금 손 볼 곳은 있어 보여. 그건 차차 같이 논의하지.”

“예. 물론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에드워드의 손을 맞잡았고, 김세준은 불안했던 감정이 해소되는 걸 느꼈다.

알지 못했지만, 에드워드도 가지고 있던 아픔.

거장도 위로할 노래라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충분히 위로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

에드워드하고의 미팅이 끝나고 이틀 후.

정수연은 에드워드와 김세준의 협업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한국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미국을 물론 유럽까지.

언젠간 세계에 진출하기 위해 미리 세계 굴지의 다양한 언론사와 친분을 다지고 있던 SY 엔터테인먼트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

순식간에 각종 언론에 그들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거장 에드워드, 동양의 천재와 손을 잡다.]

[에드워드가 만들어내는 동양의 소리.]

[살아 있는 전설, 에드워드의 마지막 선택은 가야금?]

화려한 제목으로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

에이미하고의 무대로 안 그래도 화제성이 가득했던 김세준.

그 공연의 불씨가 채 꺼지기도 전에 새로운 불이 타올랐고 요즘 연예계에서 그보다 뜨거운 인물을 찾기 어려웠다.

그런 세간에 집중되는 이목에 만족스러우면서도 김세준은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아직 부족한데...”

에드워드하고 협업하고 곡이 나오려면 아직 시간이 제법 꽤 남았다.

아무리 바쁘게 작업한다 하더라도 최소 두 달은 걸릴 터.

그 두 달이란 시간이 내심 아깝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꺼지기엔 충분한 기간이다.

손에 턱을 괴며 김세준이 생각에 빠졌다.

일단 준비된 장작이 하나는 있다.

그와 에이미의 공연이 프로의 손길을 거쳐 만들어진 영상.

포기너 버스킹.

“언제 방영하지?”

정동혁이 편집실에 틀어박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중하고 있을 ‘포기너 버스킹’.

방영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을 텐데.

아마 두 달 안에는 무조건 방영하고도 남을 거다.

“아마 전 세계가 집중하겠지.”

만면에 지어지는 미소.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어제 정동혁이 넌지시 알려준 소식.

‘포기너 버스킹’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플릭스’하고 계약 중이라는 말이었다.

플릭스.

전 세계 이용자 숫자만 무려 167000000명인 세계 최고의 OTT 기업.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자신과 에이미의 무대인 만큼, ‘포기너 버스킹’이 ‘플릭스’하고 계약을 맺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포기너 버스킹’이 ‘플릭스’에서 방영한다면.

전 세계에 다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리라.

특히 프랑스에서의 첫 공연.

에이미하고 자신이 어떻게 만나, 어떻게 공연을 펼치게 된 건지 궁금해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무조건 그 화를 챙겨보며 꺼져가던 불씨가 다시 타오를 게 분명했다.

“그러면, 포기너 버스킹 방영 전을 생각해야겠네.”

방영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화제가 되겠지만, 방영될 때까진 제법 시간이 걸린다.

“한 달 뒤에 방영한다고 치면... 문제는 이 한 달이란 기간 인데...”

책상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다시 고심에 빠진다.

한 달.

그가 불씨를 꺼트리지 말아야 할 시간.

뭐를 통해 그 불씨를 꺼트리지 않을까 고민하던 김세준이 낮게 중얼거렸다.

“미튜브 밖에 없네...”

어느새 구독자 수가 무려 200만 명을 훌쩍 넘긴 미튜브 계의 대기업인 그.

특히 에이미하고의 공연이 세상에서 화제가 된 이후로 구독자 무려 50만 명이 늘었다.

“근래 들어서 조금 관리가 소홀하긴 했지...”

한동안 브이로그 같은 자신의 일상 같은 것만 올리던 미튜브 계정.

그런 영상만 올려도 자신의 팬들은 좋아하고 기뻐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노래 영상을 올려야겠지.”

사람들이 자신의 매력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할 시간.

게다가 최근 들어 자신의 행보.

에이미하고의 멋진 공연을 선보였고, 에드워드란 거장의 마지막 작업을 책임진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 일지 궁금해할 터.

그런 와중에 자신의 미튜브 계정에 새로운 영상이 노래 영상이다?

자신을 궁금해할 사람들은 충분히 관심을 가지고도 남으리라.

생각을 마친 김세준이 힐끔 자신의 컴퓨터를 바라봤다.

자신의 보물 창고.

클라우드에 저장된 자신의 수많은 곡.

그 곡들 가운데엔 이미 자신의 목소리까지 녹음 된 명곡들이 수두룩하다.

타이밍과 컨셉이 맞지 않아 아직 발매하지 못한 노래들.

그리고 지금이 자신이 생각한 최선의 타이밍.

미튜브를 통해 사람들에게 곡을 들려줄 차례였다.

***

4월 1일.

한동안 브이로그만 올라오던 김세준의 미튜브에 색다른 영상 3개가 올라왔다.

각각의 제목이 여름, 가을, 겨울로 적힌 영상.

옛날부터 생각했던 사계절의 노래들.

그의 첫 미니앨범의 주제인 봄.

첫 앨범은 봄에 초점을 맞추긴 했지만 언젠간 봄을 이어서 사계절에 맞춘 노래를 내고자 했던 그다.

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 따로 송대준을 찾아가 녹음까지 맞춰놨던 명곡들.

그게 자꾸만 밀리고, 타이밍이 안 맞아 음반으로 제작하지 못했던 세월.

계속 가지고 있어도 음반을 낼 타이밍을 못 잡을 거 같기에 과감히 미튜브를 통해 올렸다.

음원 사이트에 등록도 하지 않은 상태로, 오로지 자신의 미튜브 영상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노래들.

200만이란 숫자의 힘.

단숨에 쭉쭉 올라가는 조회 수와 댓글과 좋아요의 숫자.

장마철의 감성을 잔뜩 살린 ‘여름’과, 낙엽이 지는 씁쓸한 가을 감성이 담긴 ‘가을’. 그리고 첫눈이 내려 들뜨면서도, 어딘가 차가운 감성이 담긴 ‘겨울’.

가지각색의 매력을 가진 노래들이었고, 편집자가 자신의 혼을 받쳐 만든 색감 넘치는 영상들.

마치 수묵화로 그린 듯한 그림이 곡에 맞춰 흘러나온다.

한국의 멋이 담긴 영상과 한국의 멋이 담긴 노래.

처음엔 당연히 김세준의 팬들로부터 시작된 반응.

그 반응이 어느새 김세준에게 작은 관심을 가지던 사람들에게도 퍼져나갔다.

애초에 에이미와 에드워드로 타오르던 불씨가 조금은 남아 있던 상태.

그런 상태에서 김세준이 선보이는 동양의 미는 외국 사람들의 귓가를 다시 한번 사로잡기 충분했다.

“좋네. 좋아.”

미튜브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그.

자신의 미튜브에 올라간 세 영상의 조회 수 숫자가 1000만에 육박한다.

그가 최근에 얼마나 많은 화제를 몰고 있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순간.

비록 에이미하고의 공연, 에드워드하고의 합작 기사처럼 엄청난 화제성은 아니지만 그래도 작은 불쏘시개 정도는 되리라.

그리고 실제로 각종 커뮤니티와 SNS에서 그의 이름이 다시 타올랐다.

한국은 물론 미국의 대표적인 커뮤니티인 ‘에딧’에서도 종종 보이는 그의 이름.

적어도 ‘포기너 버스킹’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는 되었다.

그렇게 지나간 시간.

그리고 4월 25일.

김세준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기다리던 ‘포기너 버스킹’의 첫 방영이 시작되는 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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