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108화 (108/148)

#108

Going Home

세계적인 거장 폴 에드워드한테서 미팅하고 싶다는 연락이 온 건 정수연과 만남 이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그가 노구의 몸을 이끌고 직접 한국으로 온다는 메일을 전해 들은 후, 김세준은 적잖이 놀랐다.

일흔이 넘은 나이로 한국과 미국을 오고 가는 건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하신 양반이네.”

작업실에 틀어박힌 김세준이 그의 열정을 떠올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자신을 보기 위해 직접 한국까지 오는 그의 열정.

덕분에 자신도 계속 작업실에 틀어박히며 작업에 열중했다.

그가 한국까지 온다는데, 자신이 그냥 가만히 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여기서는 좀 더...”

시퀀서를 이용하여 곡을 만지작거리는 김세준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새겨진다.

‘포기너 버스킹’ 촬영 때부터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이번 음반 컨셉.

애초에 큰 틀이 짜인 상태였기에 곡을 작업하는 데 있어서 막힘없이 술술 풀려나간다.

그렇게 작업은 순조롭게 이어가던 도중, 그의 머릿속에 스며드는 불안감.

“통하겠지?”

그동안 다양한 컨셉의 노래를 불렀던 그조차도 난생처음 시도해보는 컨셉.

부모의 마음을 위로하고, 연인의 마음을 위로하고 고독한 아저씨의 마음을 위로했던 그지만 지금 부르는 노래는 그 누구보다 큰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노래였다.

게다가 이번 음반의 소비자들은 한국에 국한되는 게 아니지 않나.

그동안 같은 문화와 정서를 공유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했던 것과 다르다.

전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 어쩌면 자신의 의도가 그들에겐 불편하게 닿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아니야. 일단 작업하자. 곡을 폴 에드워드한테 들려주면 알게 되겠지.”

순간, 식은 열정을 다시 불태우며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폴 에드워드.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명곡을 수두룩하게 만든 그인 만큼, 곡을 듣고 객관적으로 알려주리라.

자신의 이번 노래가, 미국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해줄지. 혹은 그들에게 불쾌하고 언짢은 감정을 심어줄지.

***

“후우... 떨리네.”

일주일 후, SY 엔터테인먼트 사옥 입구에서 김세준이 큰 한숨을 내뱉었다.

살아있는 전설인 폴 에드워드.

자신의 지금 생과 회귀하기 전, 삶을 합친 인생을 오로지 음악에 받친 사람.

괜히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며, 한때 명인이란 칭호를 얻었던 김세준이기에, 그런 타이틀을 얻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여실히 이해했다.

게다가 같이 작업한 가수를 세계적인 대가수로 키워내는 거장.

이번 만남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알고 있기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잠깐 입구에서 서성거리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김세준이 발걸음을 옮겨 SY 엔터테인먼트 사옥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버선발로 맞이하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접견실로 향했다.

직원이 접견실의 문을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가자 보이는 두 사람.

SY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인 정수연과 푸른 눈을 가진 노인.

분명 그가 알기론 칠십을 넘긴 나이.

하지만 나이에 맞지 않게 정정하고 곧은 그의 체구.

순백의 하얀 머리를 올백으로 넘겼고, 훤히 드러난 진한 인상의 얼굴.

‘와... 무슨 칠십 먹은 노인 얼굴이 저래?’

주름이 깊게 파이긴 했지만 숨길 수 없는 외모.

남성미가 뿜어져 나오는 그의 분위기에 김세준이 눈을 휘둥그레 떴고, 그가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제법 키가 큰 편인 김세준보다 훨씬 커 보이는 그.

단단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단 있는 아우라에 김세준이 흠칫했다.

“반갑네. 폴 에드워드네.”

“어... 반갑습니다. 김세준입니다.”

그의 입에서 이름이 나왔음에도 믿기지 않는다.

사진과 영상으로도 수차례 본 모습이지만, 실제로 보니 그 느낌이 전혀 뜻밖.

‘괜히 많은 여가수랑 염문설이 돈 게 아니었구나.’

“앉아서 이야기하죠.”

정수연이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곤 입을 열었고 김세준이 정수연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이야기하기 앞서서, 사과의 말씀 먼저 드리겠습니다. 제가 직접 미국으로 갔어야 했는데.”

“아닐세. 뒷방 늙은이 취급은 사절이라. 오랜만에 한국에 오고 싶기도 했고. 얼마 전 유럽을 갔다 온 친구를 굳이 미국으로 또 부를 필요가 없다 싶었지.”

면목 없다는 내뱉는 김세준의 말을 에드워드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렸다.

예술가는 센시티브하다는 편견을 깨부수는 그의 호탕하고 대범한 모습.

호감이 절로 가는 사내였지만, 동시에 김세준은 이런 사내가 음악에 대해서는 어떨까 궁금해졌다.

저런 모습으로 불같이 화내는 걸 상상하니 제법 아찔하고 염통이 쫄깃한 기분.

그동안 프로듀서와 마찰 없이 순조롭게 지내던 그지만, 에드워드와 함께하던 예술가들의 평은 그를 긴장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목소리가 쉴 때까지 녹음하다가, 목소리가 돌아오면 다시 녹음을 시켰다.]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백 개의 곡을 준비했지만, 그는 백 개의 곡을 모두 쓰레기 취급했다.]

[세션 녹음을 한 달 내내 한 적 있는가? 그 정도면 양반이다. 그는 세션 녹음만 일 년을 시킬 수도 있는 사람이다.]

세간에 들리는 평가.

과장되고 허황한 소문이 섞였겠지만, 음악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여실히 알려주는 이야기.

실제로 그와 녹음에 학을 뗀 몇몇 예술가들은 두 번 다시 그와 녹음하지 않겠다는 말도 종종 들려오곤 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한 예술가들도 결국 다시 찾게 만드는 실력자.’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아티스트가 결국 고개를 숙이고 다시 협업을 요청하게 만드는 전설.

눈앞에 있는 사내는 그런 거장이었다.

“아, 그리고 내 마지막 작품을 이런 훌륭한 아티스트랑 함께 하게 되어서 영광이야.”

“예?”

“...!”

이건 또 무슨 소리?

긴장감 가득했던 김세준이 놀라 되물었고, 둘의 대화를 흥미진진하게 듣던 정수연도 눈을 크게 떴다.

마지막 작품이라니?

“자네하고의 협업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결심했네. 요즘 손녀가 자꾸 놀아달라고 보채서 말이야.”

“정...정말이십니까?”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은퇴를 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지금 그의 말대로라면, 이번 곡은 역사에 남을 곡이 아닌가.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의 마지막 작품.

심적 부담이 커져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언제부터 은퇴를 생각하신 겁니까?”

“은퇴를 생각한 지는 꽤 됐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던 것뿐.”

가히 최고의 칭찬.

살아있는 전설이 마지막 작품을 맡길 정도의 예술가라는 뜻.

이보다 더 큰 칭찬이 또 있을까.

깊은 감동이 서린 김세준이었고, 정수연이 슬며시 미소지었다.

마치 정년퇴직을 하는 회사원처럼 담담하게 내뱉는 그지만, 저 발언의 여파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업계가 발칵 뒤집힐 선언. 그리고 동시에 김세준의 주가가 사정없이 올라갈 발언이다.

비록 한국 대중들에겐 엄청 유명한 사람은 아니지만, 미국에선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는 인물.

살아있는 전설의 마지막 작품.

이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얻을 마켓팅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내 지금 분명히 말해두지만 내 마지막 작품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할 거세. 자네도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네.”

지금까지 부드럽고 유하게 김세준을 대하던 그지만, 방금 한 마디에 실린 감정은 어느 때보다 진중하고 엄중했다.

“예.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세준 또한 무거워진 마음을 가진 채 답했다.

‘이번 앨범 실패하면... 회생 불가겠네.’

무려 에드워드의 마지막 작품.

그런 음반을 말아먹는다면 미국 시장에선 자신은 절대 두 번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거란 확신이 들었다.

에드워드가 수많은 가수를 성공 가도로 올린 건 사실이지만, 그가 모든 가수를 성공시킨 건 아니었다.

“최선이라. 딱히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일단 그건 둘째 치고. 혹시 생각해둔 컨셉은 있나?”

폴 에드워드가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처음 그의 그래미 어워드 무대를 보고 알아본 김세준이란 가수.

제법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특출난 아티스트.

비록 언어가 달라 그 노래에 담긴 감정을 확실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같이 작업하는 데 있어서 기대감을 가지게 만드는 가수였다.

“예. 안 그래도 오늘 곡을 가지고 오긴 했습니다. 아직 가이드 정도이긴 하지만, 듣고 직접 판단해주셨으면 해서요.”

그의 물음에 김세준이 질세라 서둘러 답했다.

안 그래도 그를 통해 이 곡이 과연 통할지 안 통할지 확인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상태.

“오.”

김세준의 답변에 에드워드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음과 동시에 마음속으로 굳은 다짐을 새겼다.

기대되면서도, 그가 수준 이하의 곡을 만들면 호되게 호탕을 칠 생각으로.

“지금 바로 들어보지.”

탁자 위에 팔을 올리고, 손으로 턱을 괸 채 에드워드가 눈을 감았다.

자신의 답변을 듣지도 않고, 곡을 들을 준비를 하는 그.

김세준이 떨리는 심정으로 손가락으로 핸드폰에 넣어온 음원을 틀었다.

정수연 또한 옆에서 기대감을 잔뜩 가지곤 눈을 감았다.

이번엔 어떤 감미로운 노래가 나올까.

‘어라?’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전혀 감미롭지 않은 노래.

흘러나오는 곡의 도입부.

평소 김세준 곡의 시작을 알리던 가야금이 아닌, 북과 드럼의 소리였다.

타악기가 만들어내는 리듬.

대중가요라면 경쾌할 만도 한 것만, 되려 무겁고 위엄이 잔뜩 서려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가야금의 소리.

그 소리가 들리자 에드워드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의 악기가 그동안 들려준 다양한 감정.

슬프면서도, 기뻤고, 우울하면서도 행복했다. 사람의 희로애락을 연주했던 악기.

하지만 지금 가야금이 들려주는 음색은 그런 희로애락보다 좀 더 농축된 감정.

비장한 감정을 꾹꾹 억눌러 누르고 있는 소리에 이어서 트럼펫의 음색이 울려 퍼진다.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악기의 등장.

하지만 트럼펫의 높은 음역이 곡의 비장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고, 거문고와 가야금. 트럼펫의 소리가 섞였고, 이어서 가볍게 흥얼거리는 김세준의 허스키한 목소리.

“...!”

가사는 아직 만들지 못했는지 흥얼거리는 노래지만, 듣는 순간 소름이 쫙 돋는다.

비극의 노래. 애통한 감정이 절로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에 서지수가 자신의 팔을 쓸어내렸다.

‘미쳤네. 곡...’

소름이 돋을 정도로 슬픈 노래.

아마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듣는 순간 절로 눈물을 쏟을 정도로 비극적이고, 애잔한 곡.

심지어 가사는 제대로 부르지도 않은 상황.

그런데도 여실히 느껴지는 곡의 비극적인 감정.

그런 곡의 감정을 느끼며 에드워드가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속으로 감탄을 터트렸다.

지금 김세준이 들려주는 곡.

가히 천재적인 감성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생각지도 못했어.’

쉽게 눈치채기 힘든 컨셉이지만 어떤 컨셉인지 알게 된다면 지금 곡의 분위기가 어떤 곡보다 더 잘 어울리는 노래.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주제지만, 많은 미국인에게 감동을 선사할 노래다.

‘나한테도 말이지...’

씁쓸한 말투로 속으로 중얼거렸고, 이내 노래가 끝나자 그가 눈을 슬그머니 떴다.

“이 곡... 제목은 정했나?”

에드워드의 물음에 김세준이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둔 제목은 있지만, 썩 마음에 들진 않았기에.

“아직 없습니다.”

“그럼 이 곡 제목은 내가 정해도 되겠나?”

“...!”

에드워드의 말에 김세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그의 말. 이 곡이 마음에 든다는 표현과 다름없지 않나.

“예. 생각해두신 제목이라 있습니까?”

“Going Home...”

“...”

약간은 촉촉해진 목소리로 답하는 그.

그런 그를 보며 김세준은 에드워드가 곡의 주제를 깨달았다는 걸 눈치챘으며 동시에 그에게도 아픔이 있다는 걸 알았다.

Goimg Home.

곡의 컨셉과 잘 어울리는 제목.

그의 곡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

그 누구보다 집으로 무사히 가길 원했지만, 그럴 수 없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남겨진 자들의 슬픔과 아픔을 위로하고 헌정하는 노래.

전사한 군인과 그 유가족들을 위한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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