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포기너 버스킹(12)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막 슬레이트가 쳐지자, 숙소로 돌아온 촬영진이 입을 모아 외쳤다.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막 숙소로 돌아와 잠들기 직전의 촬영까지 찍은 후.
드디어 유럽에서의 모든 촬영이 끝났고, 스텝과 출연진들이 서로를 향해 미소지으며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했다.
3주 동안의 여정.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즐겁고 행복한 촬영현장이었지만, 머나먼 타국에서 촬영하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의 얼굴에 아쉬움과 즐거움이 공존했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간다는 행복. 그리고 언제 또 유럽에서 이런 촬영을 할까 싶은 아쉬움.
“세준 씨. 고생 많았어요.”
“피디님도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진짜 끝났네요.”
아쉬움이 남는 김세준의 말에 정동혁이 싱긋 웃었다.
이번 촬영으로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사람이었으니,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사람들의 뇌리에 꽂힐 수많은 명 무대를 만든 이번 촬영 중에서도 단연코 최고의 공연이라고 꼽을 수 있는 무대.
프랑스에서의 첫 공연이었던 김세준과 에이미의 합동 공연.
당시 에이미를 보러 몰려온 외국 팬들에게 존재감을 여지없이 내뿜은 그였고, 동시에 에이미란 거물과 인연을 맺게 됐다.
비록 한낱 방송 PD지만, 그런 거물과의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잘 알고 있기에 그가 이번 촬영으로 얻은 게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그때 무대로 그가 얻은 또 한 가지.
“아직도 인터넷에서 화제 되고 있죠?”
“아우. 화제는요. 그냥 연예인들이 흔히 언급되는 그런 거죠. 뭐.”
손사래를 치며 가볍게 말하는 그.
겸손일까. 멋쩍어서 그러는 걸까.
실상은 절대 저렇게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와 에이미의 공연.
당시 공연을 보고 있던 몇몇 관객들이 SNS에 그 동영상을 올려버렸다.
그 전에도 동영상을 찍고 SNS에 올리는 경우야 종종 있었지만, 그 여파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상이 에이미가 되어버리자 생긴 어마어마한 파급.
거기에 둘이 보여준 역대 최고의 무대.
순식간에 한국을 비롯하여 아시아에서, 그리고 그들이 있는 유럽과 미국에서 화제가 되어버린 두 사람의 동영상.
‘포기너 버스킹’에서 가장 핵심이 될 영상이 스포일러가 되어버렸지만, 나쁘진 않았다.
덕분에 이번 방송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으니까.
“이제 귀국하시면, 미국 쪽으로 진출하신다고 했죠? 진출하시기 전에 큰 도움이 된 거 같아 기쁘네요.”
정동혁의 말에 김세준도 고개를 가뿐히 끄덕였다.
‘엄청 큰 도움이 됐지.’
‘그래미 어워드’로 북미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지만, 시간이 흘러 슬슬 잊힐 시간.
그런 타이밍에 세간에 화제가 된 이번 합동 무대 영상.
자신을 잊고 살았던 해외 팬들에게 다시 한번 존재감을 내뿜게 됐다.
미튜브를 포함하여 각종 SNS에 올라온 영상의 반응들.
다양한 언어로 쓰인 댓글이 만개가 넘어섰고, 좋아요가 수십만 개.
게다가 이번 영상의 백미는 그동안 그가 무명의 가까웠던 유럽에서도 큰 화제를 받았다는 것.
덕분에 에이미하고의 공연 영상이 올라오고 난 후의 공연에서 관객들의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그동안 자신을 몰라보고 호기심을 대하던 관객들이었지만, 그 뒤로는 가야금을 꺼내면 작은 감탄을 내뱉는 이들이 꽤 많았으니까.
‘좋은 시작이야.’
아직 제대로 된 해외 활동은 하지도 않았지만, 벌써 좋은 조짐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게다가 아직 방송은 나가지도 않은 상태 아닌가.
지금 세간에서 화제가 되는 건 에이미하고의 합동 공연뿐.
하지만 자신이 유럽에서 펼친 다른 공연이 그 무대에 크게 뒤처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단지 에이미란 이름이 없어서 화제가 덜 됐을 뿐이다.
김세준은 자신할 수 있었다.
방송에 자신의 무대가 나가는 순간.
사람들은 다시 한번 자신에게 열광하게 될 거라고.
***
삼 주 동안의 촬영을 마치고 한국에 입국하고, 김세준이 향한 곳은 아레스 뮤직 사옥이었다.
그들에게도 깜짝 놀랄만한 일인 에이미하고의 공연.
너무 급작스럽게 이뤄난 일이라 딱히 설명할 수도 없었기에 한국에 돌아오는 즉시 만나기로 했다.
자신의 해외 활동을 책임질 SY 엔터테인먼트는 서지수가 있으니 자신이 직접 알릴 필요는 없었다.
“세준아!”
“사장님!”
위풍당당하게 이해진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이해진과 하동준이 놀란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뭐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하동준이 호들갑을 떨며 물었고, 김세준이 둘에게 장황하게 그때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허어... 잘했네. 이것 봐.”
하동준이 그에게 보여주는 핸드폰.
그 액정엔 음원 차트인 ‘뮤직인’이 켜져 있었고, 맨 위에 자리 잡은 한 곡.
1위. Amy ? Good Bye.
“이거, 한국에서만 이러는 게 아니라, 지금 세계에서 다시 역주행 중이라고 하더라. 미국이랑 영국은 이미 1위 차지했고. 다른 유럽국가들이랑 아시아에서도 순위가 다시 가파르게 상승 중이야.”
“허허...”
음원 차트까진 확인하지 못한 그였기에 실소를 흘렸다.
에이미의 Good Bye. 나온 지 벌써 6년이나 지난 곡이다.
물론 아직 그 인기가 식은 곡은 아니지만, 음원 차트에서 이름을 못 본 지는 제법 오래된 곡.
이번 그와 공연으로 다시 한번 사람들의 귓가에 그 진가를 알리는 중이었다.
“과장 조금 보태서 서울 스타일 급으로 확 치고 올라가고 있다.”
“조금 많이 보태신 거 같은데요?”
아무리 인기 많아도 한때 미튜브 조회수 1위를 찍었던 노래랑 비교하는 건 실례지.
“아! 뭐 어쨌든! 대박이라고. 대박. 아마 조만간 수연이 누나가 너 찾을 거야.”
하동준의 말에 김세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예상했던 일.
그리고 그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듯 그의 핸드폰이 부르르 울렸다.
[내일 시간 돼요? 만나서 이야기해야 할 거 같은데.]
정수연에게 온 문자.
그 문자를 확인한 김세준이 양해를 구하고 바로 답장을 보냈다.
“안 그래도 내일 찾아뵈러 갈 거 같네요.”
“그래. 고생했다. 얼른 들어가서 쉬어. 비행시간이 길어서 피곤할 텐데.”
너무 갑작스럽게 벌려진 일이라, 오랜 촬영과 비행으로 피곤할 그를 배려조차 하지 못했기에 이해진이 만남을 정리했다.
같이 밥이라도 한 끼 하고 싶지만, 지금 그에게 필요한 건 밥보다 편안한 집이리라.
그리고 그런 이해진의 배려에 김세준이 가볍게 묵례한 후 밖으로 나갔고, 그런 김세준의 뒷모습을 이해진과 하동준이 아쉬운 눈초리로 바라봤다.
“오늘 술이나 한잔할까?”
“그래. 오랜만에 소주 한잔하자.”
그의 빛나는 재능을 발굴한 자신들이지만, 이젠 넘쳐나는 그 빛을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다는 현실이 제법 서글펐다.
***
다음 날, SY엔터테인먼트를 찾아간 김세준이었고 정수연은 로비까지 나와 그를 반겼다.
“이거, 정말 대박인 거 알죠? 어쩌면 좋아. 진짜!”
그동안 점잖고 기품 있는 모습만 보여줬던 그녀지만, 이번 일만큼은 점잔 떨지 않고 나이에 걸맞게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그녀도 스스로 움찔하더니 김세준과 함께 사무실로 향했다.
“지수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급조한 공연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무대였는데.”
슬며시 미소지으며 서지수가 그를 흡족하게 바라봤다.
‘역시...’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여실히 증명하는 그.
덕분에 그의 해외 활동이 시작도 하기 전부터 매우 순조로웠다.
“지금 미국이나 유럽에서 섭외 문의가 엄청 들어오고 있어요.”
“오.”
“규모가 가지각색이긴 한데, 나름 매이저한 방송도 있고. 세준 씨가 정 하고 싶으면 추진해보겠지만 저는 일단 반대에요.”
다리를 꼬며 여유롭게 말하는 그녀였고, 김세준이 흥미롭다는 듯 입가를 만지작거렸다.
“이유를 여쭤봐도 됩니까?”
“저희가 사이드디쉬 하려고 해외에 진출하려는 건 아니잖아요?”
그녀의 말에 김세준이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자신 또한 그녀하고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화제가 되는 이유.
자존심 상하는 말이지만 엄연히 에이미란 대 가수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대 가수의 이름값을 빌리는 상황을 연장할 때가 아닌, 자신만의 이름을 알려야 할 때.
한두 번 불러주던 방송들도 그 약발이 끝나면, 냉혹하게 자신을 잊고 다시는 불러주지 않을 게 자명했다.
“앨범을 내야죠.”
“빙고.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빨리 앨범을 내는 게 최선이죠.”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사이, 뜸 들이지 않고 앨범을 내어 해외 팬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알리는 게 급선무였다.
“그래서 그런데, 예상보다 빨리 음반 제작에 들어가야 할 거 같아요.”
“전 좋습니다.”
“좋네요. 안 그래도 이쪽으로도 연락이 많이 오거든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만족스럽게 웃는 그녀. 이번 그의 무대가 영향을 끼친 건 일반 대중들에게 뿐만이 아니었다.
“이쪽이라 하시면...?”
“프로듀서들. 미국에서 활동하는 세계 최고의 프로듀서가 관심을 크게 보여요.”
김세준의 얼굴에 깊은 호기심이 동했다.
그가 그동안 같이 일했던 프로듀서라곤 해도 그 숫자가 고작 셋.
다들 훌륭하고 뛰어난 실력자들이긴 했지만, 세계 최고라고 말할 순 없는 수준.
흔히 영화계로 비교했을 때, 아티스트가 배우라면 프로듀서는 감독.
어떤 프로듀서를 만나냐에 따라 곡의 완성도가 천지 차별이기에 세계 최고라는 그녀의 말에 절로 기대감이 생겼다.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호기심을 참지 못한 김세준이 물었고, 정수연이 또박또박 한 글자 이름을 내뱉었다.
“폴 에드워드.”
“...!”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김세준이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말한 세계 최고란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인물.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프로듀서상을 3번이나 차지했고, 그와 같이 공연했던 에이미를 비롯하여 각종 대 가수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간 프로듀서.
그의 손을 거친 명곡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미 어워드에 수상한 곡들만 열 곡이 넘을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정말입니까?”
“네. 엄청 원하는 눈치였어요. 특히... 가야금에 관심이 많은 거 같던데.”
정수연의 말에 치밀어오르는 쾌감.
세계에서 최고라 인정받는 프로듀서조차 빠지게 만든 가야금의 매력.
그가 그토록 원하던 미래가 점점 그려지고 있었다.
“하실 거죠?”
정수연의 물음.
그녀의 물음에 잠깐 쾌감에 젖은 그가 이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
폴 에드워드는 SY엔터테인먼트에서 온 메일을 보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됐네. 됐어.”
칠순이 넘은 나이지만, 이제 쉰 정도 되어 보이는 동안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함께 협업하자는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인 SY 엔터테인먼트에서 온 메일이었고, 동시에 그는 자신이 본 무대를 떠올렸다.
매력적인 무대.
곡의 주인을 잡아먹으려는 듯 으르렁거리며 덤비는 김세준의 연주와 노래.
그리고 동시에 큰 호감이 가는 그의 악기인 가야금.
다양한 음색을 내뿜으며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가야금의 매력은 전설도 홀려버렸다.
그래미 어워드 때부터 관심 가던 인물이, 이번 일로 그의 마음에 확실히 불을 붙였다.
기쁜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에드워드.
칠십 평생을 음악에 전념하며 살았고, 원 없이 곡을 만들었다.
이제 슬슬 창작의 고뇌에서 벗어날 시간.
그렇기에 인생의 대미를 장식할 예술가를 그동안 갈구했다.
거장(巨匠)이 선택한 마지막 아티스트는.
김세준과 가야금. 이제 막 세계에 빛을 발할 원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