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106화 (106/148)

#106

포기너 버스킹(11)

“...!”

김세준의 발언에 가장 놀란 건 당사자인 에이미가 아닌, 둘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다른 이들이었다.

세계적인 스타. 그녀와 김세준이 어떤 대화를 할지 궁금해하던 사람들.

그런 와중에 김세준이 던진 폭탄 발언은 사람들이 헛숨을 들이키게 만들었다.

“지...지금 세준이가 같이 듀엣 하자고 한 거지?”

“그...그런 거 같은데요?”

“그게 가능한 거야?”

놀란 목소리로 수군거리는 일행들.

마음속에 김세준에 대한 부러움이 물씬 생긴다.

한 사람의 가수로서 에이미란 가수가 얼마나 뛰어나고 훌륭한 기량을 가졌는지 잘 알고 있는 이들.

그런 가수와 듀엣을 할 기회는 일생의 둘도 없는 기회였다.

그리고 동시에 생기는 기대감.

세계적인 스타인 에이미와 한국이 자랑하는 가수인 김세준의 듀엣.

얼마나 멋진 하모니를 보여줄지 가늠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에이미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진 미지수였다.

버스킹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그녀는 고작 이런 길거리에서 공연하기엔 너무 거대한 존재.

하물며 자신들처럼 출연료를 받고 하는 공연도 아니지 않나.

그녀의 노래 한마디, 한 소절을 돈으로 매기자면 수백만 원에 이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제발!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알라님!’

그런 김세준의 발언을 똑똑히 들은 또 한 사람.

‘포기너 버스킹’의 메인 PD인 정동혁이 두 손을 마주 잡고 에이미의 입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지금 김세준의 제안.

성사되기만 한다면 ‘포기너 버스킹’은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흥행은 보증되리라.

맞잡은 두 손에서 땀이 흠뻑 흘러나왔고, 이어서 에이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

김세준의 제안을 들은 에이미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김세준.

그래미 어워드 때 그의 무대를 흥미롭게 지켜봤던 그녀다.

가야금이란 악기를 매력적으로 연주하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에드 케인과의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던 그.

많은 이들을 감복하게 만든 무대였고,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때 생긴 작은 호기심.

그와 함께 무대를 꾸민다면 어떤 느낌일까.

비록 찰나의 감정이었고, 그 뒤론 잊고 있었지만, 오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만남과 제안.

잊고 지냈던 그때의 호기심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다.

“재밌겠네요.”

“...!”

에이미의 입에서 나온 단어의 숨죽여 그녀의 답을 기다리던 모든 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좋아요. 살면서 길거리 버스킹은 해본 적 없는데, 좋은 경험이 될 거 같네요.”

“정말입니까?”

답변에도 김세준이 확신하지 못하겠는지 재차 물었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늘 공연이 곡을 쓸 때 좋은 경험이 될 거 같고요.”

데뷔부터 승승장구의 길을 달려오던 그녀.

항상 수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그녀의 경력.

오늘 공연은 그녀 커리어 사상 제일 적은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는 날이었다.

“아, 그런데 제가 세준의 곡은 아직 잘 몰라서.”

에이미가 재차 내뱉었고, 김세준이 손을 내저었다.

“아, 에이미의 노래로 부르면 되죠.”

자신들의 공연이긴 하지만, 꼭 자신의 노래를 부를 필요는 없다.

게다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에 사람이, 자신의 노래보다 그녀의 노래를 부르는 걸 더 원하고 있으리라.

“오, 제 노래. 알고 있는 거 있어요?”

그녀의 겸손한 물음에 김세준이 순간 어이없는 미소를 지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명곡을 내뱉은 그녀.

가수로서 그녀의 노래를 모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네. 개인적으로 에이미의 Good Bye를 가장 좋아해요.”

“오. 고마워요. 세준이 부르는 Good Bye라... 기대되네요.”

단숨에 부를 곡까지 정해지는 답변이었고, 에이미도 만족스러운지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녀와 김세준의 대화를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보던 사람들.

정동혁이 다가와 에이미에게 방송 출연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다른 사람들은 공연을 재개할 준비를 서둘렀다.

에이미를 향해 기대감 넘치는 눈빛을 보내는 관객들에게 그녀의 공연 소식을 알리고, 김세준과 그녀가 곡에 대해 상의하는 사이, 다른 맴버들이 준비한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그런 맴버들의 공연을 지켜보는 에이미가 고개를 까닥거리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김세준과 같이 무대를 꾸몄던 남자를 비롯하여 다들 뛰어난 실력을 선보인다.

예상하긴 했지만, 예상보다 훌륭한 그들의 공연.

그녀가 등장한 이후로, 그들의 공연을 애피타이저라고 생각하던 관객들조차 다시금 무대에 빠져들게 했다.

“다음이 저희 차례에요.”

김세준이 그녀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고, 에이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힐끔 시선을 그가 만지작거리는 가야금으로 보낸다.

매력적인 음색을 지닌 악기.

저 악기로 자신의 곡을 연주하면 어떤 느낌일까.

절로 생기는 기대감.

그리고 그들의 바로 전 무대인 서지수의 노래가 끝났고, 김세준과 에이미가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에이미가 마이크를 들고 입을 열자 환호하는 사람들.

순간 다른 가수들이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예상하긴 했지만, 자신들하고는 전혀 다른 환호성.

유럽에서 그녀의 인기를 실감하는 순간.

순간, 같이 무대를 준비할 김세준조차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무대는 진짜 잘해야 한다...’

이번 공연.

까닥 잘못했다간 에이미와 비교당하며 평생의 흑역사로 남을지도 모를 무대다.

앞으로 유럽과 미국 등 세계에서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 김세준으로선 치명적일 수도 있는 문제.

작은 부담감이 생기긴 했지만 이내 그가 고개를 젓곤 미소를 지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번 무대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기만 한다면 자신의 평가는 한 번 더 껑충 올라가리라.

“어쩌다 보니 이렇게 여기서 공연을 하게 됐네요. 먼저 이런 좋은 기회를 준, 포기너 버스킹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만면에 여유로운 미소를 가득 지으며 그녀가 관객들과 소통하는 사이, 김세준은 그녀를 보며 새로운 생각에 빠졌다.

21세기 최고의 디바.

지금의 자신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타이틀.

‘그래도 저 정도는 돼야겠지.’

자신의 원대한 포부.

전 세계에 가야금이 울리는 그런 미래를 꿈꾸는 그에게, 그녀는 하나의 지향점이었다.

실제로 그녀가 불렀고, 이번에 자신이 함께 부를 ‘Good Bye’.

전 세계 각 나라 음원 차트 1위를 달성한 건 물론, 각종 광고 음악에서도 자주 들리는 노래.

각 나라의 유명 가수들은 물론, 일반인들을 비롯해 수많은 커버 영상을 올린 곡.

시간이 흘러 몇십 년이 지나도 전 세계에서 화자 되는 곡.

김세준이 꿈꾸는 미래였다.

“이번에 저희가 부를 곡은 Good Bye에요. 다들 아시겠지만 그래도 이번엔 제법 신선하게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작은 미소와 함께 그녀가 말을 끝냈고, 김세준을 향해 눈빛을 보낸다.

그녀의 눈빛을 읽은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이고, 가야금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천천히 가야금을 뜯기 시작하는 그.

피아노로 울리던 ‘Good Bye’의 전주가 가야금으로 탈바꿈했다.

깊은 울림을 주는 두터운 소리가, 가야금으로 재현되고 에이미가 그 소리에 작은 미소를 짓는다.

‘Good Bye’를 작곡하는 데만 6개월이 걸린 그녀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곡.

하지만 지금 작은 아쉬움이 느껴진다.

만약, 자신이 곡을 만들기 전, 이 악기의 존재를 알았다면 피아노 대신 이 악기를 넣었을지도?

원곡에 비해서 손색없는 음색.

두터우면서도 가냘픈 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잠시 그런 김세준의 연주를 음미한 그녀가 이내 입을 열었다.

You say goodbye to me. (그대가 저에게 작별인사를 고하네요.)

The look on my face in your eyes. (그대의 눈동자에 새겨진 내 표정.)

I don't know how it feels. (어떤 기분인지 모르겠어요.)

“...!”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호소력 짙은 그녀의 음색. 싱긋 웃던 얼굴이 단숨에 애수에 빠진다.

표정과 음색 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감정.

그녀의 노래를 기대하던 모든 사람이 넋이 나간 듯 입을 벌렸다.

김세준 또한 가야금을 연주하는 팔에 돋은 소름을 느끼며 지금 자신이 얼마나 큰 사치를 누리는지 새삼 깨달았다.

지금 자신은 세계 최고 여가수의 노래를 바로 옆에서 듣고 있다는 걸.

이어지는 그녀의 노래.

혼자 부르지만, 마치 여러 명이 부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어마어마한 성량.

그리고 그 성량에 담긴 독특한 그녀의 음색.

내면 깊은 곳까지 감동을 심어주는 그녀의 노래에 다들 스스로 모르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녀가 왜 21세기 최고의 디바라는 평을 받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

순식간에 사람들을 사로잡는 그녀의 노래였고, 김세준이 지지 않겠다는 듯 이어서 입을 열었다.

Time will heal everything. (시간이 모든 걸 치유해주겠죠.)

Do you need a lot of time? (당신은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요?)

I really hope so. I hope you regret it.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당신이 후회하길 바라요.)

“...!”

김세준의 노래에 에이미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눈을 감고 감정에 매몰되어 부르는 그.

독특한 그의 목소리에 느껴지는 깊은 감정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비단 그녀만 느낀 게 아닌 듯, 다른 이들도 얼굴에 놀람이 가득했다.

김세준이 노래를 잘 부른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지만...

평소보다 훨씬 풍부하게 느껴지는 그의 감정.

에이미에게 빠져 그에게 큰 관심이 없었던 관객들조차 단숨에 그의 목소리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기대 이상인 김세준의 노래에 에이미가 작은 미소를 짓고는 이내 그와의 화음을 맞추기 시작했다.

허스키한 김세준의 목소리와 호소력 짙은 에이미의 목소리가 만드는 하모니.

그들이 들었던 어떤 ‘Good Bye’보다 가장 깊은 감명을 주는 무대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곡의 브릿지. 호소력 짙은 에이미의 음색의 장점을 잔뜩 살린 노래의 백미.

그 부분을 김세준과 에이미가 함께 불렀고, 관객들이 둘의 노래에 흠뻑 젖어 들었다.

에이미에게 전혀 뒤처지지 않는 김세준의 실력.

대부분의 관객은 에이미가 그와 듀엣한다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관객들에게는 평생 둘도 오지 않을 기회.

이런 자리에서 저런 무명 가수가 끼어들어 함께 부르는 것보다, 에이미의 원곡을 듣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컸다.

그리고 관객들의 그런 욕망을 산산이 부숴버리는 김세준의 노래와 연주.

몇몇 이들은 감히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 둘의 듀엣이, 에이미의 원곡보다 조금, 어쩌면 조금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바라지 않던 곡의 끝이 다가왔고.

두 사람의 숨소리만 마이크에 울리며 노래의 끝을 알렸지만.

관객들은 박수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곡이 남겨주는 여운에 빠져 그저 멍하니 두사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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