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99화 (99/148)

#99

포기너 버스킹(4)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가수의 무대를 지켜보는 외국인들.

가수라기에 적당히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기대를 아득히 뛰어넘는 김세준의 실력에 순수한 감탄과 탄성을 내뱉는 중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유행하는 K-POP.

덕분에 자신들도 지나가다 몇 번 들어보긴 했지만, 자신들의 취향은 아니었다.

그냥 젊은이들에게서 유행하는 노래. 딱 그 정도 감상.

그리고 K-POP의 본고장인 한국에서 온 가수의 공연.

가수라기에 적당한 기대는 했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음악과 목소리.

처음엔 이예은의 외모에 관심을 가지던 사람들. 어느새 이예은의 존재를 잊을 정도로 김세준의 무대에 빠져들었다.

자신에게 빠져드는 관객들을 보며 김세준이 작은 미소와 함께 처음 무대에 섰던 그때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렸다.

지금과 비슷한 관객 수.

처음엔 호기심이 가득했던 사람들 얼굴이, 노래가 시작하자 감탄과 경악으로 바뀌고, 무대가 끝나자 자신을 향해 환호성을 내뱉는 모습까지.

그때와 사뭇 비슷한 풍경이었다.

“오브리가두(Obrigado).”

포르투갈어로 감사 인사를 내뱉곤 김세준과 이예은이 무대에서 내려와 일행들에게 다가갔다.

김세준이 다시 자리에 돌아오자 일행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고생했어. 진짜 잘했다.”

“그러니까. 사람들 표정 봐봐.”

기특한 표정으로 말하는 요환과 현도민의 말.

실제로 무대를 지켜본 관객들의 표정이 아까완 사뭇 달랐다.

자신들을 향해 호기심 가득했던 표정이 진한 여운이 남긴 얼굴로 변했고, 고작 한 곡만 부르고 무대를 마칠 거냐고 묻는 듯한 아쉬움 가득한 얼굴도 보였다.

“두 사람 너무 잘했는데? 아 그리고 나 세준이한테 묻고 싶은 거 있어.”

한때 로이와 사귀는 사이였던 제니가 김세준을 향해 묘한 표정으로 물었고,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뭔데요. 누나?”

“방금 부른 곡. 미발매인 거 진짜야?”

“네. 설마 방송에서 거짓말을 했을까요?”

맥주로 목을 축이는 김세준을 향해 제니가 이내 기대감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면, 만약 그 곡 발매할 생각 없으면 나한테 줄 생각은 없니?”

제니의 말에 김세준은 물론, 다른 이들도 제법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단도직입적으로 욕심을 내는 그녀.

그런 그녀의 말에 다른 이들이 아쉬움의 눈빛을 보냈다.

용기를 내는 자, 미인을 얻는다는 말. 지금은 용기를 낸 자가 명곡을 얻게 생겼다.

만약 김세준이 이 곡을 발매할 생각이 없다면, 자신이 내고 싶다고 생각 안 한 사람이 없다.

심지어 음악적 방향성이 밴드 보컬인 현도민조차 욕심이 날 정도로.

‘쓰읍. 먼저 말할걸.’

아쉬움 가득한 눈빛으로, 사람들이 김세준의 답변을 기다렸고, 김세준이 작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많은 곡에서도 기념할만한 곡.

이 곡을 다른 이들에게 준다는 상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죄송해요. 이 곡은 안 되겠어요.”

김세준의 답변에 제니의 눈빛에 아쉬움이 흘렀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히 매력적인 곡.

자신이 김세준이어도 남한테 주기는 아까우리라.

예상했던 답변이었고, 큰 기대감은 없었기에 금세 체념한 그녀.

하지만 이어진 김세준의 말에 흥미로운 눈빛으로 다시 그를 바라봤다.

“이 곡 대신 다른 곡은 어떠세요? 제가 가지고 있는 곡이 제법 있는데, 들어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누나 드릴게요.”

“정말로?”

“네. 제 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곡들 퀄리티가 썩 나쁘지 않거든요. 물론 나중에 누나가 직접 들어보고 판단해야겠지만.”

‘술과 함께’처럼 미발매한 곡이 그에겐 아직도 수두룩.

그런 노래 중 한 곡 정도는 그녀에게 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김세준의 말에 제니가 반색하며 기뻐했다.

김세준의 곡.

그가 직접 부른 노래부터, 남들에게 만들어준 노래까지.

모든 곡이 대중들의 귀를 사로잡은 명곡들이다.

가수로서 능력도 출중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김세준의 노래 재능보다 작곡의 재능을 더 높게 쳐주기도 할 정도.

그의 제안을 거절할 멍청이는 없었고, 제니가 덥석 그의 두 손을 붙잡았다.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

그런 제니의 돌발 행동에 이예은의 두 눈에 쌍심지가 켜졌으나 자신들을 둘러싼 수많은 카메라를 보곤, 속으로 한숨만 내뱉었다.

“네. 그러면 촬영 끝나고 한국 가서 곡 보내드릴게요.”

“응. 진짜 고마워.”

김세준이 자신의 손을 덮은 그녀의 두 손을 풀며 말했고, 둘을 지켜보던 다른 가수들이 슬며시 그에게 말을 걸었다.

“크흠. 세준아. 나도 올해 앨범 하나 낼 거 같은데...”

“나도, 싱글 하나 슬슬 내야 하긴 하거든...”

가지각색의 핑계를 대며 멋쩍은 웃음을 짓는 다른 일행들.

지금 눈앞에 일어난 광경을 그냥 넘기기엔 그의 곡이 가진 매력이 너무 컸다.

싱어송라이터가 지녀야 할 자존심도 버리고, 곡을 원하는 그들.

그런 일행들을 보며 김세준이 속으로 잠깐 생각에 잠겼다.

‘나쁘지 않지.’

남 주기 아까운 자식 같은 곡들이지만 이들이라면 세상에 빛을 보게 할 명가수들.

언제까지 묵혀두고 아껴둘 수 없기에, 김세준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리스본에 도착한 첫날부터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치고, 다음 날.

“날씨 좋다.”

“우와...”

진정한 길거리 버스킹을 하기 위해 숙소를 나온 일행들이, 내리쬐는 햇빛을 보며 진한 감탄을 뱉었다.

오후 2시의 리스본은 화창한 날씨를 그들에게 선보였다.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안 해도 절로 기분 좋은 그런 날씨. 구름 한 점 없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한국에서도 설레는 날씨인데, 외국인 포르투갈에서 이런 날씨를 맞이하니 미소가 자연스럽게 지어졌다.

‘다행이네.’

김세준도 날씨를 만끽하면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보통 날씨가 좋은 리스본이긴 하지만, 비가 자주 오는 곳.

비가 오거나 날이 흐리면, 오늘 자신이 부를 ‘봄바람’의 감정을 관객들이 느끼기엔 힘들 터.

하지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그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오늘이 ‘봄바람’의 감성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기 딱 좋은 날이라고.

잠시 화창한 날씨를 만끽한 이들이 이내 버스를 타고 오늘 공연 장소로 향했다.

리스본 도심 외곽에 있는 산타카타리나 전망대. 리스본 전경과 테주강을 볼 수 있는 장소로,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도 항상 많은 장소.

리스본에서도 유명한 버스킹 거리로, 낮에는 버스킹하는 사람들로 활기를 띠는 곳이었다.

그리고 도착하자, 예상한 대로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산타카타리나 전망대.

“와... 떨린다.”

“그러니까. 버스킹하는 게 얼마 만이야?”

“난 한 5년은 된 거 같은데?”

버스에서 내려 버스킹 장소로 향하며 설레는 마음을 내뱉는 이들.

김세준과 이예은을 제외하곤 다들 데뷔한 지 최소 5년은 지난 가수들이다.

어떻게든 노래가 하고 싶어, 길거리에서 부르던 앳된 추억.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는 이들이었고, 이예은도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길거리를 전전하던 자신을 떠오르며 미소지었다.

자신과 김세준을 맺어준 인연이자, 가수가 될 수 있게 만들어준 게 거리공연 아닌가.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단어였고, 장소를 물색하던 그들이, 마땅한 곳을 발견하곤 각자 공연 준비를 시작했다.

촬영하는 듯한 모습에 관광객과 현지인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그들 주변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그들이 버스킹한다는 걸 눈치챈 사람들이 그들 근처에 자리 잡곤 공연을 기다렸다.

처음엔 카메라와 방송 장비에 시선을 뺏기던 그들이지만 이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김세준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정확히는 김세준이 꺼낸 이색적인 악기.

가야금.

한국인들도 실물을 접하기 힘든, 가야금의 모습에 그들의 눈에 깊은 호기심이 생겼다.

몇몇은 그 악기를 보곤 김세준을 눈치챘는지 짧은 탄성을 뱉었다.

자신에게 집중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읽은 김세준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까진 호기심에 불과한 저들이지만, 곧 있으면 사뭇 달라질 그들의 반응을 떠올리면서.

이내 모든 준비가 마친 그들이었고, ‘포기너 버스킹’의 대표인 요환이 마이크를 집어 들곤 어느새 군집을 이룬 관객들을 향해 말을 꺼냈다.

자신들은 한국의 가수라는 말과 길거리에서 버스킹하는 방송을 찍는 중이라는 간략한 인사.

그의 인사에 박수로 화답하는 관객들이었고, 잠시 후, 요환이 그의 대표곡인 ‘바람이 불어요.’를 부르며 버스킹의 시작을 알렸다.

‘음색 진짜...’

현도민의 통기타와 이예은의 키보드가 뒷받침해주는 그의 노래.

둘의 연주도 훌륭하지만, 역시 가장 귀를 사로잡는 건 요환의 미성이었다.

도저히 마흔 넘은 남자의 목소리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미롭고 부드러운 목소리.

이미 숱하게 들어본 히트곡이지만, 라이브로 듣는 건 처음.

김세준이 소름이 돋은 자신의 팔을 쓰다듬었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에도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도 듣기 힘든 감미롭고 세련된 목소리.

가창력이라면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모인 이곳에서도 첫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

감미로운 음색. 독특한 리듬. 표정과 목소리로 전하는 노래의 감정.

고작 길거리 버스킹.

하지만 길거리 버스킹에서 절대 볼 수 없는 수준 높은 노래.

요환의 무대가 끝나자 박수가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와! 형...”

로이가 차마 말을 뱉지 못하겠는지, 감동적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비단 관객들뿐만 아니라 무대를 지켜본 가수들과 스텝들에게도 인상 깊었던 무대.

다른 가수들도 요환을 향해 끝없이 칭찬을 내뱉었고, 김세준도 그를 칭찬하면서 동시에 손을 꼼지락거리며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요환의 다음 무대.

자신의 차례였고, 한껏 기대치가 올라간 관객들을 향해 적어도 앞선 무대보다 못난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으니까.

방송국 피디인 정동혁의 사인이 떨어지자, 김세준이 마이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올라(Ola).”

그리고 그가 입을 열자, 관객들의 표정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까부터 자신들을 궁금하게 만든 저 악기의 정체.

그가 입을 열었다는 건, 드디어 저 악기의 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저는 한국에서 온 김세준이라고 합니다. 이 악기는 우리나라 전통 악기인 가야금이고요.”

“...!”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인 관객들.

그중 젊은 관객들이 김세준의 말에 술렁거렸다.

그의 얼굴을 본 적도 없고, 무대도 본 적 없지만 몇 번 들어본 듯한 이름.

유럽에서도 조금씩 번져나가고 있던 그의 이름이었고, 술렁거리는 몇몇 사람들을 보며 김세준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이번에 부를 노래는 봄바람이란 노래입니다. 포르투갈의 봄에 잘 어울리는 노래라고 생각하니까, 잘 들어주셨으면 좋겠네요.”

말을 끝내고 김세준이 깊은 한숨을 내뱉곤, 자신의 무대를 도와줄 이예은과 현도민과 눈빛을 마주쳤다.

준비됐다는 그들의 눈빛에 김세준의 손가락이 가야금 현을 뜯었다.

난생처음 유럽에서 연주하는 가야금 가락.

그들에겐 처음 들어보는 독특한 가야금의 음색.

관객들이 연주에 방해되지 않게 작은 감탄을 터트렸다.

마치 서양악기인 하프처럼 울리는 소리.

부드럽고, 우아하다.

가야금 소리만으로도 감탄에 빠진 그들.

가야금과 기타와 키보드의 하모니가 이루어진 전주가 끝나자, 산타카타리나 전망대에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그의 노래인 ‘봄바람’.

제목과 이보다 어울릴 수 없는 완벽한 순간.

따사로운 봄의 바람을 느끼며, 김세준이 박자에 맞춰 입을 열었다.

‘봄바람’. 훗날 유럽에서도 벚꽃 연금이 되는 노래가 유럽에서 울린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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