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98화 (98/148)

#98

포기너 버스킹(3)

숙소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동시에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멀리서 봤을 때부터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건물.

철제 대문과 하얀색 벽돌로 이루어진 담벼락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작은 정원.

잔디밭과 자갈로 깔끔하게 정돈된 작은 정원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정원 뒤로 펼쳐지는 복층 주택.

담벼락과 마찬가지로 하얀색 벽돌로 지어진 유럽식 주택은 한국에선 보기 힘든 고풍스러운 건물이었다.

“진짜 이쁘다...”

복층으로 이루어진 만큼, 높은 천장을 보며 이예은이 감탄을 뱉었고, 뒤이어 들어온 김세준과 다른 사람들도 보고 탄성을 뱉었다.

“우와! 벽난로도 있는데요?”

장식용인지, 겨울엔 진짜 사용하는진 몰라도 거실 한 가운데엔 벽난로까지 놓인 운치 있는 집.

“숙소는 다들 마음에 드시나요?”

정동혁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이 뻔할 질문을 던졌다.

이번 방송에 심혈을 기울인 그였고, 사흘을 머물 숙소 하나하나도 최대한 신경 쓰며 섭외를 진행했다.

출연진들에게 최대한 편의를 제공해야 하기도 하지만, 방송을 본 시청자들도 보고 감탄이 터져 나올 그런 장소.

“진짜 좋아요. 며칠만 머무르기엔 너무 아깝다...”

자신이 묶을 방까지 둘러보고 온 서지수가 흡족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은 지 약간 오래됐는지 군데군데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지만, 그런 면마저 하나의 감성으로 느껴지는 집.

출연진이 모두 만족해하자 정동혁도 흡족해하며 말을 뱉었다.

“잠깐 쉬신 후, 잠시 후 저녁 식사하러 이동할게요.”

저녁을 먹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점심을 간단한 기내식으로 해결했기에 다들 불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다들 찰나의 휴식을 취하러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여자들의 방은 2층, 남자들의 방은 1층으로, 김세준은 로이와 함께 방을 쓰기로 했다.

휴식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가지고 온 짐을 풀기만 했음에도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짐을 풀고 오랜 비행시간 수화물로 짐칸에 처박힌 가야금의 상태를 확인하자 끝나버린 쉬는 시간.

“식당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방으로 들어온 스텝의 전언에 침대에 누워 꾸벅꾸벅 졸고 있던 로이와 이예은과 메시지를 나누던 김세준이 거실로 향했다.

여자들도 2층에서 내려오자, 버스를 타고 다시 이동하는 일행들.

“오. 여기에요?”

숙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번화가.

항구도시인 리스본인 만큼, 바다를 풍경으로 늘어져 있는 상가 중에서 한 곳에 도착하자, 다들 기대된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이른 저녁 시간임에도 제법 많아 보이는 사람들.

식당 바깥 길거리에 놓인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먹고 있는 음식의 모습에 군침이 돌았다.

그리고 이내 들어간 식당.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직원들과 이른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이 동시에 시선을 그들에게 보냈다.

카메라와 함께 들어오는 동양인 무리.

그것만으로도 시선을 끌만 한데, 그 무리 중 몇몇 이들의 눈길을 끄는 외모.

특히 이예은의 경우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남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런 사람들의 노골적인 시선에도 이들의 눈길이 향한 곳은 딱 하나.

가게 홀 맨 앞에 있는 작은 스테이지.

지금은 아무도 꾸미고 있진 않지만, 드럼과 기타, 피아노 등 몇몇 악기가 마련된 작은 무대.

그 무대를 본 김세준과 일행들이 작은 감탄을 터트렸다.

“오. 저것 봐봐!”

“뭐야? 무대네?”

한국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풍경에 감탄을 터트리는 이들.

김세준도 그 무대를 보곤 감탄과 동시에 옛 추억을 떠올렸다.

그가 회귀하고 지금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처음으로 계획한 일.

이해진의 이목을 사로잡기 위해 참여한 오픈 마이크.

‘와...아련하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얼굴에 작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자신이 처음으로 가요를 사람들 앞에서 불렀던 기념할만한 순간.

김세준이란 가수가 세상에 나타날 수 있었던 첫걸음.

벌써 2년이 훌쩍 지난 추억이었고, 가슴이 두근거렸던 그때의 심정이 떠오르게 만드는 무대의 모습이었다.

“아, 이거 딱 봐도 사이즈 나오네.”

한국 밴드의 자존심인 현도민이 정동혁을 바라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괜히 방송국에서 이 식당을 섭외한 게 아니었다. 지금은 텅 비어 있는 무대지만, 조만간 우리 중에서 누군가는 저 무대 위에 올라가 노래 한 곡은 뽑아줘야 하리라.

“그러네. 아, 일단 밥부터 시키자.”

요환도 무대를 보고 앞일을 예상하여 작은 웃음을 지었지만 이내 잠깐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식욕이란 원초적 욕구가 더 급했다.

요환의 말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고, 서툰 포르투갈어와 몸짓을 이용하여 음식을 시켰다.

그들이 주문한 음식은, 해물 밥이란 호칭으로 유명한 ‘아로즈 드 마리스코’와 해산물 요리로 명성이 높은 포르투갈에서도 가장 유명한 대구요리인 ‘바칼라우’ 문어 요리인 ‘폴보 아 라가레이루’ 등 한국에선 쉽게 접할 수 있는 특색 있는 요리들.

식탁을 가득 채우는 화려한 음식에 모두 눈을 떼지 못했고, 카메라도 재빨리 음식을 렌즈에 담았다.

“오. 맛있는데요?”

해물 밥을 한 숟갈 떠먹은 김세준이 의외에 맛에 엄지를 치켜들었다.

마치 얼큰한 국물에 밥 말아 먹는 듯한 기분. 한국인들 입맛에 알맞은 별미였다.

김세준의 말에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다른 이들도 용기 내어 숟가락을 들었고, 이내 의외에 별미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방송용 리엑션을 내뱉었다.

분명 별미이긴 하지만 과장되게 표현하는 그들.

그렇게 시작된 7명의 식사. 제법 많은 이들이 함께하고, 단순한 저녁이 아닌 촬영하는 자리인 만큼, 제법 소란스러운 저녁 식사였다.

그리고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모인 자리.

당연히 그들의 주된 대화 내용은 음악이었고, 가장 큰 화제는 얼마 전 있었던 김세준의 콘서트였다.

자신들도 관심 있게 지켜본 그의 공연. 특히 같은 업종 관계자들인 자신들에겐 제법 충격적인 콘서트였다.

첫 단독콘서트로 고척 스카이돔을 매진시키고, 무려 시청자를 수백만을 확보한 그의 관중동원력.

그리고 그동안 국내 가수들은 단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던 미튜브 생중계.

색다른 시도로 업계에서도 유례없는 성공적인 콘서트를 치른 그 덕분에 요즘 회사에서도 다음 콘서트는 미튜브로 생중계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중이었다.

그런 선배들의 관심과 질문에 김세준이 웃으며 답했고, 김세준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대화.

이야기꽃이 피어올랐다가 저물어갈 때쯤, 로이가 무대로 턱짓을 하며 능글맞게 웃었다.

“슬슬, 무대로 나가야 할 거 같은데요?”

정동혁과 가게 사장으로 보이는 머리가 반쯤 벗어진 중년 사내가 이야기하는 걸 발견한 그의 말에 다들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미소지었다.

“누가 나갈래? 우리가 다 나가야 하나?”

요환의 궁금증을 해결해준 건, 사장과 이야기를 끝마치고 온 정동혁이었다.

“자, 식사는 다들 잘 하셨나요?”

“네. 진짜 잘 먹었어요.”

실제로 훌륭한 음식 맛에 싹싹 비워내 가며 먹은 이들.

그들의 답변에 정동혁이 작게 웃으며 다가온 이야기를 꺼냈다.

“방금, 사장님이랑 잠깐 이야기했는데, 저희가 한국에서 온 가수라는 걸 이야기하니까, 노래 한 곡이라도 불러주실 수 있냐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그냥 대표로 한 분만 나가셔서 무대 한 번만 꾸며주셨으면 하는데...”

이미 사장이랑 진작에 합의한 내용이겠지만, 방송용으로 에둘러 말하는 그.

그런 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돌리며 서로의 의사를 확인했다.

이번 무대에 크게 욕심을 내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방송 분량은 늘어나겠지만, 여기 있는 이들 중 방송 분량을 욕심낼 정도로 대중들의 관심이 필요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흠...”

서로 눈치를 보는 일행을 보며 김세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선배님들 괜찮으시면 제가 해도 될까요?”

“오. 말로만 듣던 세준이 라이브?”

“뭐, 그래도 여기선 막내인데, 먼저 재롱 한 번 부려드려야죠.”

김세준의 말에 옆에서 응원의 눈빛을 보내던 이예은이 깜짝 놀라 헛기침을 하며 쭈뼛쭈뼛 손을 들었다.

“그럼... 저도 같이 할게요.”

“막내들 재롱잔치 보는 것도 좋지.”

둘의 대답이 썩 마음에 드는지 현도민이 흡족한 미소를 띠었고,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세준과 이예은.

이미 자신들에겐 익숙한 조합이나, 항상 볼 때마다 새롭고 신선한 두 사람의 하모니.

정동혁도 두 사람이라면 제법 괜찮은 그림이 나올 거 같다 여겼는지 얼굴에 미소를 잔뜩 머금었다.

“그럼, 잠시만요. 두 분이 잠깐 상의하고 계세요. 제가 가서 사장이랑 이야기하고 금방 다시 와서 알려드릴게요.”

정동혁이 다시 발걸음을 옮겼고, 로이가 김세준을 향해 의아한 듯 물었다.

“가야금 안 가지고 오지 않았어? 괜찮아?”

“예. 제가 보컬하고 예은이가 피아노 치면 얼추 그림 괜찮을 거 같아요.”

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고, 김세준이 이예은을 향해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가 이번에 부를 노래. 이예은도 들어본 곡이지만, 정확한 악보를 꿰뚫고 있진 못하리라.

핸드폰에 저장해 둔 악보를 보여주자 이예은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오빠? 이 노래로 하게요?”

“응. 꼭 이 노래로 하고 싶어.”

김세준의 답에 이예은이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막 입사했을 때, 이해진이 들려준 노래, 그리고 이해진이 어디서 이 노래를 들었는지 알려줬었다.

김세준이 건네준 악보.

그가 술집에서 저런 작은 무대에서 불러 이해진의 마음을 사로잡은 노래.

음악천재라는 이해진을 사로잡은 명곡이지만, 아직도 세간에 발표되지 않은 곡.

‘술과 함께’가 방송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

“올라(Ola).”

잠시 후, 무대에 오른 김세준이 식당 손님들을 향해 포르투갈어로 인사했다.

어색한 발음을 가진 동양인. 그리고 그런 동양인을 찍는 방송용 카메라.

단숨에 이목을 사로잡는 조합이었고, 그들이 식당에 들어올 때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던 손님들이 그의 인사에 미소로 답했다.

“저는 한국에서 온 가수 김세준입니다. 멋진 저녁을 대접받고, 사장님이 노래를 부탁하셔서 무대에 올라왔네요.”

포르투갈어는 간단한 회화만 공부해왔기에 영어로 내뱉는 그.

손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고, 김세준이 차분히 가게 내부를 둘러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비슷한 무대에 오르자 다시 떠오르는 옛 추억.

“제가 이번에 부를 노래는, 만든 지는 제법 오래됐는데 한국에서도 아직 발매하지 않은 미발매 곡입니다. 이 노래를 듣는 외국인분들은 아마 여러분들이 처음일 겁니다.”

김세준의 말에 손님들이 작은 환호성과 박수로 답했고, 정동혁이 두 손을 불끈 지었다.

그의 히트곡을 부를 줄 알았고, 관객들의 반응이 별로면 과감히 통편집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깡그리 지워버리게 만드는 김세준의 발언.

믿고 듣는 가수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의 미발매 곡.

방송에 나오기만 한다면 제법 큰 화제가 되리라.

그리고 김세준의 발언에 무대를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다른 일행들도 작은 감탄을 내뱉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예능도 많이 해보지 않은 막내가, 제법 분위기를 띄울 줄 알지 않나.

말을 끝내고 깊은 한숨을 내뱉은 김세준이 고개를 돌려 피아노에 앉은 이예은과 시선을 맞췄고, 서로 눈빛이 통한 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예은이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며, ‘술과 함께’ 전주를 연주했다.

‘술과 함께’의 전주. 빠르고 강렬한 선율이 흘렀다. 피아노의 부드러운 음색이 긴박감 있게 고조되는 ‘술과 함께’의 도입부.

제법 인상 깊은 연주의 무대를 지켜보는 이들의 표정.

제법 놀랐는지, 토끼 눈이 된 사람. 선율이 마음에 드는지 눈을 감고 고개를 까닥까닥하는 사람. 가지각색의 표정을 보여주던 이들이 이어서 김세준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울리자 한 가지 표정으로 바뀌었다.

놀람과 충격.

앳돼 보이는 동양인의 얼굴에서 나온 거라고 믿기 힘든 허스키한 보이스.

“술기운은 깊어져만 가는데...”

예상을 깨고 거친 매력이 있는 그의 목소리에 삐딱한 자세로 안고 있던 몇몇 손님들도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사람을 휘어잡는 독특한 음색. 한 귀로 듣고 흘리기엔 너무 아까운 노래라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이미 그의 목소리를 알고 있던 한국인들.

하지만 그들의 눈동자에도 충격이 가득했다.

특히, 그와 이번에 여행을 같이하는 가수들.

“지금... 저 곡을 아직도 발매하지 않았다고?”

“미친 거 아니야?”

“왜 안 한 거야?”

첫 소절을 듣자마자 절로 감탄이 나오게 만드는 노래다.

그런 노래를 아직도 발매하지 않았다는 그의 말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그동안 그가 발매한 곡을 떠올렸다.

“거를 타선이 없네...”

“그러게...”

노래를 감상하면서도 허무한 말을 내뱉는 일행들.

그가 그동안 발표한 곡들의 퀄리티도 지금 부르는 ‘술과 함께’ 못지않은 뛰어난 곡들이었으니까.

그리고 무대를 지켜보는 정동혁.

그가 가게 안 풍경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진한 미소를 지었다.

‘됐다!’

가게 안 사람들이 짓는 표정과 반응.

그가 이번 방송을 기획했을 때부터 담고 싶었던 장면이었다.

항상 외국 가수에게 열광하던 자신들.

지금은 한국의 가수가 외국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