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96화 (96/148)

#96

포기너 버스킹

빌보드 차트.

음악 순위 관련 차트 중에서 가장 대중성과 공신력, 권위성이 있는 음악 차트.

전 세계 대중음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차트라고 말해도 무방한 음악 차트.

그런 곳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올린 김세준.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는 두 눈엔 희열이 가득했다.

그가 이곳에 이름을 올린 건 처음이 아니지만, 그의 노래가 아닌 에드 케인의 노래였고, 그땐 객관적으로 에드 케인의 이름값 때문에 올라간 게 사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때보다 순위는 낮지만, 다른 가수의 피쳐링이 아닌, 자신의 곡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으며 순전히 자신의 힘이었다.

“나이스!”

쾌감을 참지 못하고, 침대에서 방방 뛰며 환호성을 내뱉었다.

마치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그.

가야금의 선율이 전 세계에 울린다는 그의 원대한 소망.

그가 평생을 염원하던 그 꿈에 크게 다가간 순간이었으니까.

게다가 80위란 순위는 그의 기대치보다 훨씬 높은 순위였다.

200위까지 집필하는 순위에서 80위는 절반을 훌쩍 넘는 순위.

물론 1위까진 까마득한 순위이지만 첫술에 이 정도면 배가 부르고도 남는다.

“게다가 아직 더 올라갈지도 모르는 거니까.”

슬그머니 꺼내보는 작은 욕심.

물론, 찰나의 관심으로 오른 순위인 만큼, 반짝하다가 순위에서 고꾸라질 수도 있는 일.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렸으니, 이제 남은 건 대중들의 평가.

자신의 곡이 살아남아 더 높게 올라갈지, 도태되어 이름이 사라질지는 지켜보면 알게 될 터였다.

***

다음 날, 김세준은 아레스 뮤직 사옥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전체적으로 축제 분위기인 아레스 뮤직 사옥.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자신의 콘서트.

소속 가수의 콘서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는 기쁨도 있겠지만, 이번 콘서트로 아레스 뮤직에서 얻어간 이득도 적지 않았다.

순식간에 구독자가 올라간 미튜브 계정과 다른 SNS의 팔로워.

특히 그전엔 한국팬들의 댓글이 다수였다면, 이젠 심심치 않게 보이는 영어로 적힌 댓글들.

‘좋아할 만한 성과지.’

K-P0P의 인기가 날로 늘어나며 아시아를 벗어나 점점 세계로 뻗어가고 있지만, 아레스 뮤직하곤 전혀 관계없던 이야기였다.

세계로 뻗어 나가는 다른 엔터테인먼트를 보며 부러운 눈길만 보내야 했던 이들.

그런 와중에 이번 콘서트로 해외로 뻗어 나갈 기반을 마련했고, 이해진과 하동준은 물론 말단 직원들까지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갔다.

얼굴에 활기 가득한 직원들을 지나쳐 이해진의 사무실로 향했고, 노크한 후 안으로 들어섰다.

“왔어?”

얼굴에 웃음 가득한 이해진과 하동준이 살가운 목소리로 그를 반겼다.

“예. 회사 분위기 좋던데요?”

“콘서트 반응이 워낙 좋았으니까. 요즘 인터넷에서 난리잖아.”

하동준의 말에 김세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국내에서의 콘서트 반응.

콘서트가 끝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여파가 인터넷엔 남아 있었다.

중복된 시청자가 대다수겠지만, 어찌 됐든 총 시청자가 국내에서만 무려 9백만 명.

화제가 안 되는 게 이상한 일이리라.

덕분에 날로 늘어나는 김세준의 위상. 이제 한국 최고의 가수라고 불리어도 무방한 위상을 가진 그였고, 이해진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뱉었다.

“내년엔, 잠실에서 콘서트 해도 되겠어.”

“하고도 남을걸?”

이해진이 말한 잠실. 국내 콘서트장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을 일컫는 것이었고, 하동준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제 한국 최고의 가수가 된 만큼, 한국 최대 규모의 스타디움도 충분히 감당 가능하리라.

그런 둘을 보며 김세준이 능청스럽게, 진심 반, 농담 반 담긴 말을 뱉었다.

“잠실이라뇨? 내년엔 웸블리에서 해야죠.”

“허어....”

“...그래. 너라면 모르겠다. 진짜로...”

웸블리 스타디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연장.

잉글랜드 축구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콘서트장으로서 가진 위상도 만만치 않은 곳.

월드 스타가 아니라면 공연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공연할 꿈을 풍기는 김세준을 보며 이해진과 하동준이 혀를 내둘렀다.

분명 농담이고, 다른 누군가가 말하면 허황된 말이라 여기겠지만.

김세준이라면 혹시 모른다는 작은 의문이 풍긴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는 기존 자신들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탈피하고, 실패 따윈 경험해보지 않은 승리자의 삶.

그런 길을 걸어온 그였으니 그의 말을 그저 허풍이라고 치부할 수가 없었다.

“아, 맞다. 그리고 예은이 올해 앨범 제작하는 거 알지?”

“네. 여름쯤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응. 예은이 올해 활동은 해외도 염두에 두려고.”

“오. 좋은 생각이신 데요?”

자신을 제외하고, 이번 콘서트에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건 이예은.

외모와 노래.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그녀였고, 그녀의 매력을 아직 몰랐던 국내 팬들은 물론, 방송을 보던 해외 팬들에게도 큰 인상을 남긴 그녀.

조금 이른 감도 없진 않지만, 충분히 시도할만한 가치는 있었다.

둘의 말에 김세준이 공연 첫날을 떠올리더니 이내 말을 뱉었다.

“맞다. 에드 케인도 예은이한테 흥미 있어 보이더라고요. 한 번 접촉해서 이야기해보는 것도 괜찮으실걸요?”

“오. 그 말 진짜야?”

하동준이 반색하며 되물었고,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공연을 상당히 관심 있게 지켜보던 그.

에드 케인이 그녀와 함께 작업할 거라고 100% 확신은 못 하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전.

이예은과 아레스 뮤직에겐 손해 볼 것 없는 이야기.

에드 케인의 반응을 생각했을 때, 한 번쯤 시도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예은이하고 에드 케인이라...’

두 사람을 떠올리며 김세준이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회귀하기 전의 삶에도 볼 수 없었던 조합.

‘기대되네...’

성사되기만 한다면 절로 기대되는 두 사람의 하모니. 이예은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에드 케인 특유의 목소리가 합쳐진다면 어떤 작품이 탄생할까.

절로 생기는 기대감에 미소를 짓고 있는 그에게 하동준이 서류 봉투 2장을 내밀었다.

“에드 케인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이것 봐봐.”

“이게 뭡니까?”

말없이 어깨를 으쓱하는 둘.

즐거웠던 분위기가 지나갔고, 둘의 얼굴에 진지함이 서려 있다.

둘의 모습에 김세준도 설레었던 마음을 접어두고, 봉투를 꺼내어 그 내용물을 확인했다.

“흐음...”

봉투 안에 담긴 종이들.

그 종이들을 보며 김세준이 입가를 만지작거렸다.

에드 케인의 소속사인 아메리카 레코드에서 보낸 서류들.

“다른 외국계 매니지먼트에서도 많이 왔는데, 조건은 거기가 제일 좋아서, 다른 곳은 다 쳐냈다.”

하동준의 말에 김세준이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얼핏 보긴 했지만, 확실히 괜찮아 보이는 조건.

“그럼 이건 뭡니까?”

잠깐 종이 더미를 들고 살핀 김세준이 다른 봉투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내 내부를 확인했고, 이번에도 입가를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서류에 담긴 내용을 확인했다.

“그건, SY에서 보낸 계약서. 아메리카 레코드보단 조건이 떨어지긴 하는데, SY라면 세준이 네가 고려하고 있던 곳이니까. 한번 보라고.”

‘흐음...’

입가를 쓸어만지며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확실히 아메리카 레코드에 비하면 조금은 아쉬운 계약. 활발한 활동을 보장해준 아메리카 레코드는 입을 벌려서 떠 먹여주는 느낌이라면, SY 엔터테인먼트는 스스로 음식을 조리해야 하는 느낌.

“아메리카 레코드에 비하면 아쉽긴 한데, 그게 SY에서도 최선은 다한 걸 거야.”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메리카 레코드가 워낙 거대한 공룡이다 보니 비교적 아쉬운 계약 내용이지, SY가 제안한 계약이 부실하다는 건 아니다.

계속되는 고민.

자신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일이었고, 그의 원대한 꿈을 도와줄 파트너를 고르는 일이었기에 심사숙고하는 그였다.

아메리카 레코드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에드 케인이 있는 회사로 외국에서 다양한 활동을 도와줄 업계 최고의 회사.

또한, 에드 케인뿐 아니라 세계 굴지의 아티스트들이 있는 만큼, 그들과 협업할 수도 있을 터.

반면 SY엔터테인먼트는 한국과 아시아에선 이름을 널리 떨치는 회사이지만 세계에서 그 영향력이 미미한 회사.

다만 정수연이 자신에게 보여준 끊임없는 관심과 위기에서 구해준 은혜가 있다.

나아가 함께 성장해나가며 미래를 그릴 동업자 같은 곳.

이해진과 하동준은 김세준을 재촉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렸고, 이내 결심한 김세준이 종이 더미를 갈무리하여 다시 봉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한 봉투를 이해진과 하동준에게 내밀며, 입을 열었다.

“여기로 할게요.”

김세준의 선택.

그 선택에 이해진과 하동준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한 달 후, 한가득 짐을 쌓고 기쁜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는 김세준.

오늘 드디어, 그가 ‘포기너 버스킹’ 촬영을 위해 해외로 떠나는 날.

그동안 몇 번 찍었던 예능이지만, 해외로 떠나는 방송은 처음.

마치 여행이라도 떠나는 것처럼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렸다.

“날씨도 좋지.”

3월의 초봄. 따뜻하고 싱그러운 날씨가 기운이 물씬 풍기는 3월이었기에 더욱 마음이 들떴다.

“형님 덕분에 분수에도 없던 유럽을 2번이나 가게 되네요.”

운전대를 맡은 이주성이 뒷자리에 앉은 김세준에게 시선을 힐끔 보내며 진심이 가득 담긴 말을 뱉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엔 꿈도 꿀 수 없었던 사치스러운 여행을 갔다 온 것만으로도 분에 넘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촬영이긴 하지만 남들은 한 번도 가기 힘든 유럽을 두 번이나 가게 되다니.

운전대를 잡은 그의 손에도 설렘이 가득 느껴졌고, 김세준이 작은 웃음을 지었다.

이주성이 좋아하니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가 지금 미소짓고 있는 이유.

그의 핸드폰 액정에 보이는 하나의 차트 때문이었다.

국내 음악 앱인 ‘뮤직인’의 음원 차트.

21위. 김세준 ? 봄바람.

봄기운이 다가오자, 작년에 냈던 노래가 다시금 그 머리를 차트에 내밀기 시작했다.

아직 순위가 그렇게 높진 않지만, 봄기운이 완연해지면 더욱 높이 올라갈 터.

이제 고작 발매한 지 1년밖에 안 지난 곡이고, 앞으로 몇십 년간은 든든하게 그의 배를 불려줄 연금이었다.

“이 맛보려고 이 노래 낸 거지.”

밥을 먹지 않았음에도 절로 든든해지는 속.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으며 김세준이 ‘뮤직인’ 앱을 닫고, 새로운 차트를 열었다.

빌보드 뮤직 차트에 한 달 전 80위에 이름을 올렸던 그.

그 순위가 많이 떨어져 이젠 158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흐음. 나쁘지 않네.”

한 달 동안 순위가 롤러코스터를 타듯 등락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의 곡.

최고 67위까지 올랐고, 그 이상으론 치솟지 못했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한 달 동안 살아남은 게 어딘가.

김세준이 시선을 맨 꼭대기에 두며 작은 다짐을 내뱉었다.

“다음엔...”

회귀하기 전엔, 감히 넘볼 수 없는 산이었지만.

지금은 이미 그 산 초입에 첫 발자국을 남긴 상태였다.

***

이주성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도착한 인천국제공항.

이주성의 안내에 따라 공항 내부로 들어가 약속한 장소로 향하자, 자신에게 달라붙는 카메라 한 대.

그 카메라를 보자 이번 여행이 촬영이라는 게 다시 한번 실감 났다.

“오! 세준아!”

그리고 이미 도착한 사람들.

이미 한 번 얼굴을 익혔던 출연진들을 향해 김세준이 바삐 발걸음을 옮겼고, 인사를 나눴다.

다들 얼굴에 숨길 수 없는 설렘이 담겨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아, 선배님. 잘 지내셨어요?”

중 한 사람. 서지수가 그에게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럼요. 완전 잘 지냈지. 특히 세준이 네 덕분에.”

“다행이네요.”

아리송한 그녀의 말이지만, 김세준은 금새 그 의미를 깨닫고 작은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는 한 식구네요.”

“그러게? 잘 부탁해.”

김세준의 말에 서지수가 만족스럽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세준이 심사숙고한 뒤 선택한 회사.

아메리카 레코드가 아닌 SY 엔터테인먼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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