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단독 콘서트(7)
이예은이 무대 위에서 부르는 건 그녀의 데뷔 곡인, ‘마녀의 꿈’.
그녀의 매력을 확실히 보여주는 노래로 대한민국에서 큰 사랑을 받은 곡.
거기에 김세준이 직접 작곡한 곡으로 오늘 콘서트에 참여한 대부분에 팬들에게 이미 익숙한 노래였다.
다만 그녀의 무대를 라이브로 보는 건 처음인 사람들이 다수.
음원으로, 그리고 방송으로만 들었던 그녀의 노래를 처음 무대로 보는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뭐야... 음원보다 훨씬 좋은데?”
“응... 목소리 미쳤다...”
고척 스카이돔에 가득 울리는 그녀의 노래에 관객들이 감탄을 터트렸고, 백스테이지에서 무대를 지켜보던 에드 케인도 입 주변을 만지작거리며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이 작은 나라에 이런 괴물이 또 살고 있다니.
이 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거야?
자신의 노래를 커버하는 김세준의 동영상을 미튜브에서 처음 봤을 때랑 비슷한 느낌.
가수로서 욕망이 피어오르고, 입가에 새겨진 진한 미소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깊어졌다.
작은 체구와 귀엽게 생긴 외모와 달리 힘 있는 보이스.
고정관념을 깨듯 부드럽고 아름다운 미색이 아닌 제법 허스키한 매력을 가진 목소리.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매력을 더욱 부각하게 시켜주는 곡의 멜로디.
가사의 뜻은 모르지만, 곡의 분위기만 봐도 어떤 곡인지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몽환적이고,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곡.
“누구야? 저 여자는?”
에드 케인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옆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는 김세준에게 물었다.
“우리 회사 가수. 어때? 잘하지?”
팔불출처럼 헤픈 웃음을 지으며 답하는 김세준. 에드 케인이 말없이 동의했다.
“이제 고작 데뷔한 지 1년도 안 지난 친구야.”
그리고 이어진 김세준의 말. 제법 충격이었는지 에드 케인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가 이내 고개를 낮게 끄덕였다.
아직 가수로서 완벽하다고 볼 순 없는 모습.
신인의 풋풋함이 담겨 있는 그녀의 무대. 뭐, 그런 풋풋함이 오히려 더 좋게 보이기도 하지만.
“너희 회사도 제법 능력 있는데? 너뿐만 아니라 저런 여자도 발굴하다니.”
“능력 있지. 근데 예은이는 내가 발굴한 거야.”
이예은이 제법 마음에 드는지 시종일관 모니터에 눈을 떼지 못하던 그가 김세준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네가?”
“응. 내가. 길거리에서 버스킹하는 거, 내가 회사에 오디션 보라고 설득했지.”
자신이 아니더라도 아레스 뮤직에 들어올 이예은이긴 했지만, 이번 삶에는 어찌 됐건 자신이 발굴한 게 아닌가.
지금 생각하면 이번 생에 가장 잘한 일 탑 5안에 들어갈 만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저런 어여쁜 여자친구도 만들었으니까.
입가에 진한 미소를 머금는 그를 보며 에드 케인이 어이없다는 듯 말을 뱉었다.
“캐스팅디렉터를 해도 잘 했겠어.”
“오. 그것도 천직이었을지도?”
생각지 못한 그의 말에 김세준이 작은 감탄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염두에 둬본 적 없는 직업이지만, 했으면 또 잘 했을지도?
전국에 있는 아직 빛을 보지 못한 보석들을 자신은 샅샅이 알고 있으니까.
그런 보석들을 찾으며 자신의 손으로 키우는 것도 제법 보람차고 즐거운 일이긴 하리라.
‘만약 또 환생하면 다음엔 그런 일을 해볼까?’
남들이 들으면 해괴하다고 여길 생각을 하며 김세준이 피식 웃었다.
한 번 과거로 회귀한 몸.
이런 행운이 또 한 번 찾아올지도 모를 일 아닌가.
둘이 잡담을 하는 사이, 어느새 이예은의 노래는 브릿지에 도달했고, 절정에 달하는 노래를 들으며 에드 케인이 감탄을 뱉었다.
이예은의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곡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도 범상치 않았다.
“곡은 누가 만든 거야? 설마 곡도 그녀가 직접 만든 거야?”
만약 곡도 그녀가 만들었다면 두말할 여지 없는 천재.
“응? 아, 곡은 내가 만들었는데? 편곡은 예은이가 하긴 했지만.”
이예은을 바라보느라, 대강 답하는 김세준. 하지만 에드 케인은 그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작은 한숨을 뱉었다.
“허...”
작곡 실력이야 진작에 뛰어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지금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퀄리티는 웬만한 가수들이라면 다 탐을 날 정도로 매력적이다.
살면서 남의 곡을 욕심낸 적이 별로 없는 그조차도, 지금 노래를 자신이 못 부른 것에 대해 작은 아쉬움이 들 정도로.
‘내가 잠깐 잊고 있었던 거야.’
김세준을 보며 에드 케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남자는, 앞으로 세계를 놀라게 할 진정한 괴물.
잠깐 그의 능력을 잊은 자신이었고, 에드 케인이 모니터를 빨려들어 갈 듯 바라보는 김세준을 향해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내 담당 작곡가 할 생각 없어?”
이예은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김세준이 에드 케인의 농담에 작은 웃음을 지었다.
이번 생은 무리지만.
다음에 또 회귀한다면, 그 직업도 제법 괜찮겠는데?
***
이예은의 노래가 끝나자 김세준은 백스테이지를 벗어났다.
그의 뒤에서 보기만 해도 기분 좋게 만드는 미소를 머금은 수호와 함께.
“와. 형 에드 케인이 저희를 알 줄은 진짜 몰랐는데.”
“B.ONE이면 월클인데 당연한 거 아니야?”
“에이. 월클은 형이죠. 저도 솔로로는 고척 스카이돔에선 절대 못 해요.”
이미 고척 스카이돔에서 콘서트를 개최해 본 경험이 있는 수호.
하지만 그건 B.ONE으로서 개최한 콘서트지 수호의 솔로 콘서트가 아니었다.
“엄살은. 분명 전석 매진시킬 거면서.”
너스레 떨며 자신을 치켜세우는 수호의 말.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나, 김세준의 생각은 달랐다.
수호 정도면 고척 스카이돔을 전석 매진시키고도 남을 가수.
그저 특유의 겸손함을 뽐내는 것뿐이리라.
“다들 잘 부탁드립니다.”
시선을 수호를 지나쳐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며 김세준이 넌지시 말했고, 그들이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수호와의 무대.
그가 공연 처음으로 댄서들과 함께 꾸미는 무대였다.
옛날에 본 동영상에서 영감을 얻은 무대.
이젠 오랜 추억이 된 동영상이지만, 오늘 자신의 공연에서 다시 재연할 참이었다.
“가죠. 형.”
수호가 목을 돌리면서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고, 든든한 수호의 말에 김세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노래도 음원으로만 발매했지, 무대에서 선보이는 건 처음.
‘별무리’의 수록곡인 유성(流星).
트루비 형들이 기가 막히게 뽑아준 곡이 처음으로 무대에서 울려 퍼질 순간이었다.
무대 위로 발걸음을 올리자, 상기된 얼굴인 이예은이 대중들을 향해 감사 인사를 올리고 있었고, 김세준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자신을 발견하자 반짝이던 눈빛이 한층 더 빛나는 이예은.
그녀의 눈빛을 읽은 김세준이 작은 미소를 지었고, 고개를 대중들에게 돌렸다.
계속 보고 있다간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을 거 같은 기분이었다.
“멋진 무대를 보여준 예은이에게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미 손이 시 빨개질 정도로 박수를 했지만, 김세준의 말에 다시 한번 박수하는 관객들.
열렬한 호응에 이예은이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연신 꾸벅이곤 이내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그녀가 내려간 후, 김세준이 잠깐의 뜸을 들이곤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노래는요. 그동안 보여드렸던 무대 하고는 조금 다를 거예요.”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김세준의 말에 함성으로 답하는 관객들.
이미 그가 어떤 노래를 부를지 대강 예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와 함께 무대에 올라온 수호.
수호와 김세준이 듀엣 한 노래는 두 곡.
한 곡은 ‘쇼미’ 결승전에서 부른 노래였고, 나머지 한 곡은 그의 앨범 수록곡이다.
당연히 어떤 노래를 부를지 손보듯 훤했다.
“아, 그리고 소개 안 하셔도 아시죠? 이번 무대를 도와줄 B.ONE의 수호입니다.”
김세준의 소개에 수호가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수호가 등장하고 인사하자 더욱 커지는 함성.
오늘 이 콘서트를 찾은 10대, 20대도 적지 않았다.
수호가 인사하는 틈을 타 김세준이 슬그머니 무대 뒤로 물러났고, 댄서들이 앞으로 나서며 대형을 이뤘다.
그리고 수호의 인사가 끝나고, 수호도 댄서들과 함께 열을 맞춘다.
동시에 김세준과 국악단 연주자들이 눈빛을 교환했고, 총 11대의 가야금과 거문고가 그 소리를 뿜어냈다.
“...!”
익숙한 멜로디.
서양의 클래식한 음악이지만, 동양에서도 널리 사랑받는 멜로디.
캐논 변주곡의 선율이 가야금과 거문고를 통해 고척 스카이돔에 울렸고, 관객들이 감탄을 뱉었다.
제법 나이가 있는 사람들에겐 익숙한 소리이지만, 영상으로 봤던 그때보다 더욱 깊이 있고 풍부하게 들린다.
그리고 동시에 그 선율에 맞춰 흐르는 오토튠 소리와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국악기들도 질세라 자신의 소리를 내뿜었다.
수호와 댄서들도 오토튠 소리가 나오자, 리듬에 맞춰 군무를 이루기 시작했다.
리듬에 맞춰 유려한 춤 선을 선보이며 무대를 장악하는 수호와 댄서들.
그리고 그 뒤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국악단.
평소라면 전혀 매칭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어색할지도 모른다는 편견과 우려. 그런 걱정을 깨듯 두 집단의 모습은 아름다웠고 조화로웠다.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들을 보며
눈을 감고 기도하던 어린 날의 추억.
이젠 기억나지도 않는 그때의 소원.
동시에 가야금을 뜯으며 김세준이 입을 열었다.
댄서들과 수호에게 가려져 그 모습이 잘 보이진 않지만, 그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탄성을 뱉고는 이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콘서트에서 빠질 수 없는 관객들의 떼창.
그런 관객들의 떼창에 김세준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이었고, 후렴구가 시작되자 수호가 특유의 플로우가 담긴 랩을 내뱉었다.
랩과 댄스를 동시에 하면서도 호흡 한 번 흐트러지지 않는 그.
명실상부 탑 클래스 아이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그였고, 몇몇 여성들이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남자가 봐도 반할 거 같은 모습.
어느덧 사람들이 김세준이 아닌 수호에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주객전도가 된 상황이었지만, 김세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는 그가 의도한 대로 된 상황.
이제 남은 건 자신의 몸을 믿는 것뿐이었다.
‘부탁한다. 내 몸아.’
자신의 몸이 얼마나 뻣뻣한지 요 며칠 사이 뼈저리게 느꼈다.
오죽하면 저 착한 수호가 화를 참지 못하고 순간 역정을 내뿜었을까.
그렇지만 며칠 동안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연습에 매진한 그.
지금, 그 연습에 성과를 보여줄 차례였다.
수호가 맡은 파트가 끝났고, 노래 중간에 삽입된 전주.
그 전주가 흐르는 사이 김세준이 재빠르게 준비를 마쳤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입고 있던 넉넉한 한복을 벗곤 댄서들 뒤로 모습을 감췄다.
미리 약속한 대로 방송용 카메라도 자신이 아닌 대중들을 찍는 중이었다.
‘와... 떨리네...’
사람들에게 처음 보여주는 자신의 색다른 모습.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축제.
자신을 보러 온 저 팬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해주고 싶었다.
꿀꺽 침을 삼켰고, 전주가 끝남과 동시에 김세준이 댄서들을 해치며 앞으로 나섰다.
꺄아아아아악!!!
김세준이 등장하자 절로 커지는 함성.
“뭐야?”
“김세준이야?”
“헐! 대박!”
그동안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김세준의 댄스.
그 댄스를 본 팬들이 놀라워하면서도, 그의 춤에 잔뜩 웃음을 머금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뻣뻣한 춤 선.
수호와 댄서들과 비교하면 부족한 실력이지만, 자신들을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한 김세준의 마음이 여실히 느껴지는 순간.
항상 고운 한복을 입고 정적인 자세로 노래를 부르던 그가, 아이돌 같은 옷을 입으며 무대 한가운데서 활발한 춤을 추고 있다.
“아, 춤 틀렸다. 김세준!”
긴장했는지 왼팔을 치켜든 댄서들과 달리 오른팔을 치켜든 김세준을 가리키며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서툴게 춤을 추는 모습조차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이는 자신들의 가수.
즐거움이 가득 남는 무대였고, 노래가 끝나자 민망한지 얼굴이 빨개진 김세준을 보며 관객들이 다시 한번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즐거움이 가득 남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준 그의 콘서트 ‘풍악’.
어느새 첫날 공연의 마무리가 슬그머니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