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단독 콘서트(6)
김세준의 ‘풍악’에 찾아온 사람들이 오늘따라 연주를 더욱 풍부하게 느낀 건, 그들의 착각이 아니었다.
가려져 있던 수십 명의 현장 연주.
녹음이 아닌 라이브로 울려 퍼지는 수십 개의 악기가 만들어낸 선율은 관객들의 귀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게다가 오늘 콘서트에 연주자들.
다들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가야금 명인인 김창용의 인맥과 한국 문화 진흥원 대표인 홍성원에게 부탁하여 모은 인재들이다.
앞으로 대한민국 국악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부터, 이미 한 악기의 명인이라 칭송받는 이까지.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호화로운 라인업.
급조한 국악단이지만, 한 명, 한 명 살펴보면 국악단의 어벤저스 급이었다.
‘다행히 모두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다행이었지.’
다들 한 분야의 전문가.
게다가 명인이라고 칭송받는 이들이 자신의 콘서트에 세션으로 참여하는 건 어찌 보면 불쾌하게 여길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김세준 덕분에 국악의 위상이 널리 올라갔고, 국악의 미래를 걱정하던 그들에겐 김세준은 한 줄기 빛이었다.
김세준 덕분에 국악의 매력을 알게 된 국민이 이전보다 수십 배는 늘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
그런 김세준의 첫 단독콘서트에서 악기를 연주한다는 걸 그들은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주변 지인들에게 떠벌대며 자랑하고 다녔다.
“와... 뭐야...”
“대박... 미쳤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연주를 바라보는 관객들.
놀란 눈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시선을 그들에게 떼지 못했다.
제일 앞자리에 있는 가야금과 거문고 연주자들.
그리고 그들의 뒤엔 대금과 단소와 피리 연주자들이 있었고, 맨 뒷자리엔 북과 장구 같은 타악기 연주자들이 있었다.
무대 왼쪽엔 아쟁, 무대 오른쪽엔 해금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자리 잡은 무대.
모든 연주자가 형형색색의 한복을 입고, 한국의 소리를 널리 퍼트리는 그들의 모습.
소리도 소리이지만, 무대 절반 정도를 꽉 채우고 있는 그들은 보기만 해도 압도될 정도로 위압감과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연주자들 배경 삼아 앞에서 홀로 앉아, 가야금을 뜯고 있는 김세준.
“멋있다...”
“남자가 봐도 반하겠네.”
그동안 이런 대규모의 사람들과 합동 연주를 보여주지 않았던 그.
대부분 고고한 학처럼 홀로 앉아 가야금을 뜯는 모습을 보여줬던 김세준이었고, 그런 모습도 우아하고 기품이 넘쳤지만.
지금처럼 다양한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하는 모습은 김세준의 색다른 매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고상하고, 숭엄한 느낌.
그동안 예능에서 보여줬던 가벼운 느낌 따윈 없이, 왜 그가 한때 가야금의 미래라고 불렸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무대 장치에서 나온 바람이 그의 머릿결을 살랑거렸고 그가 작은 미소를 짓자 관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찰나였지만 그 순간. 김세준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고 잘생겨 보일 수가 없었다.
백스테이지에서 떨리는 심정으로 김세준을 응원하던 이예은의 얼굴이 빨개졌고, 오늘 김세준을 찍으러 온 팬들은 인생샷을 건졌다며 좋아했다.
꽃향기 가득 품은 봄바람에
모두가 눈을 감고, 걸음을 멈췄죠.
그대 향기 가득 담긴 봄바람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죠.
그리고 한때 음원 차트 1위를 찍었고, 다가올 봄에도 음원 차트 1위를 찍을 김세준의 히트곡.
‘봄바람’의 가사가 김세준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그의 목소리가 나오자 몇몇 관객들은 좋아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몸을 떨었다.
북과 장구가 드럼처럼 울리며 리듬을 리드미컬하게 이끌어가고, 그 리듬 속 가야금과 거문고가 서로 조화를 이뤄내며 부드러운 선율을 만들어낸다.
대금이 그 특유의 소리를 내며 마치 진짜 바람이 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고.
단소와 피리가 대금을 보조하며 흥겨운 봄의 기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어느새 김세준을 따라서 다 같이 입을 모아 부르는 관객들.
박진숙의 노래를 따라 부르던 때처럼 가지각색의 감정이 담긴 게 아닌, 다들 봄의 설레는 감정을 느끼듯 얼굴에 잔뜩 미소를 머금고 따라 부른다.
꺄아아악!!!
노래를 따라 부르던 관객들이 김세준이 준비한 무대 장치를 보며 기쁨 가득한 비명을 질렀다.
무대 위 가득 떨어지는 꽃잎들.
진짜 벚꽃잎은 아니지만, 눈처럼 흩날리는 분홍색 꽃잎.
그리고 그런 꽃잎을 내려 맞으면서 그사이에 앉아 가야금을 뜯는 김세준의 모습.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그 장면에 관객들은 감탄을 내뱉었고, 김세준이 속으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비록 지금 자신은 보지 못하지만, 상상만 해도 제법 아름다울 듯한 장면.
그리고 관객들의 반응은 그의 상상이 현실이라는 걸 확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
‘봄바람’의 무대가 끝난 김세준은 이어서 이예은과 듀엣하며 ‘봄비’를 불렀다.
‘봄바람’처럼 신나고 설레는 무대는 아니었지만, 이예은과의 듀엣도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시그니처 악기인 키보드를 들고 무대 위로 올라온 이예은.
키보드와 가야금. 그리고 그 둘을 꾸며주는 수많은 국악기.
그 음색의 조화만으로도 귀를 호강하게 했으며, 거기에 더해 이예은과 김세준의 진짜 헤어진 연인인 듯 완벽한 표정과 노래에 실린 감정.
듣기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는 두 사람의 노래였고, 이미 많은 무대에서 합을 맞춘 만큼 완벽한 호흡을 자랑했다.
그리고 이예은과의 무대가 끝나고 뒤이어서 펼친 건 세현과의 무대.
올해의 OST 상을 받은 명곡이자 사극 팬들은 물론, 드라마를 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던 노래인, ‘하여가’와 ‘단심가’.
한복을 입고 무대 위로 올라온 세현은 등장하자마자 관객들에게 큰 환호성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국민 아이돌의 위치로 올라선 B.ONE. 특히 B.ONE에서도 인기가 많은 세현이었고, 그런 그가 한복을 입은 모습을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건 처음.
뽀얗고 하얀 피부와 연보랏빛 한복의 조화는 수많은 여성의 얼굴을 발개지게 만들었고, 한 폭의 수채화처럼 잘 어울렸다.
그리고 둘이 보여준 무대.
이진아와 함께 꾸몄던 노래처럼 이번에도 편곡하여 두 곡을 한 곡에 담았다.
마치 원수를 바라보듯 마주 선 둘.
세현의 ‘하여가’에 답하는 김세준의‘ 단심가’.
마치 진짜 드라마 배우처럼 열연을 펼치며 노래하는 두 사람이었고, 그 뒤를 국악단의 웅장하고 무거운 연주가 받쳤다.
마치 뮤지컬 같은 무대.
보는 내내 숨 쉴 틈도 주지 않는 공연. 무대를 꽉 채우는 두 사람의 노래에 관객들은 입도 벙긋하지 않고 노래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세현과의 무대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그 뒤를 이어서 나온 한 사람.
오늘 김세준을 도와주기 위해 먼 미국에서부터 온 남자.
오늘, 여기 모인 다른 가수들의 인기를 다 합쳐도 이 남자의 인기를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그 클래스가 다른 가수.
에드 케인의 등장.
설마 에드 케인이 고작 콘서트 게스트를 위해 미국에서부터 올 줄은 몰랐던 관객들은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고척 스카이돔이 무너질 듯 거대한 함성을 질렀다.
비밀 유지를 위해 은밀하게 한국에 입국한 그.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그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고 덕분에 방송으로 보던 많은 외국인도 그의 등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에드 케인과 김세준이 부르는 노래.
앨범을 내고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무대였다.
그의 첫 정규앨범 수록곡인 ‘A Nothing Star’.
A star that doesn't shine. (난 빛나지 않는 별.)
If you're not with me, (네가 내 곁에 없다면)
It doesn't mean anything. (아무 의미가 없죠.)
무대에 부드럽게 울리는 에드 케인의 목소리.
팬들의 고마움을 표현한 이번 노래.
세계에 많은 팬을 거느린 그가 부르는 것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김세준과 에드 케인. 그리고 국악기와 오토튠의 조화.
각기 다른 매력들이 한자리에 모여 완벽한 멜로디를 이뤘고.
김세준도 이번 무대만큼은 가야금을 뜯지 않고 노래에 열중했다.
거대한 이동식 리프트를 타면서.
꺄아아아악!
에드 케인과 김세준이 각자 리프트를 타고 관객석으로 다가가 가자 터져 나오는 함성.
비록 무대 장치의 한계로 무대 곳곳에 다가가진 못했지만, 그가 다가가자 사람들의 얼굴에 흥분이 피어올랐다.
그를 향해 손을 뻗는 사람들.
수십 개의 손이 꽃처럼 피며 그를 향해 뻗어온다.
그 손을 하나하나 부딪치며 김세준이 그들을 향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
‘내가 뭐라고.’
대한민국엔 수백 명의 가수가 있으며 자신이 뭐라고 이들은 나에게 이렇게 열광할까.
자신보다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도, 얼굴이 잘난 가수도 더 많은 매력을 가진 가수가 수두룩하다.
그런 다른 가수들이 아닌 김세준을 좋아해 주는 팬들.
이렇게 콘서트까지 찾아와 열광해주는 팬들을 가까이에서 보자 가슴이 벅차오르고 고마운 감정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 팬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자신의 마음.
그 마음이 담긴 이번 노래였고, 그런 노래를 부르며 자신에게 빠져드는 팬들을 가까이에서 보니 울컥 치솟아 오르는 감정.
그 감정을 간신히 갈무리하며 김세준이 무대를 끝마쳤고, 노래가 끝나자 터져 나오는 함성.
자신과 에드 케인에게 보여주는 함성에 김세준이 고개를 숙이곤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와줘서 진짜 고마워.”
“당연히 와야지. 넌 두 번이나 와줬잖아?”
백스테이지에 도착하자 김세준이 에드 케인을 살짝 끌어안으며 고마움을 표했고, 에드 케인이 작은 미소로 답했다.
그리고 에드 케인이 백스테이지에 등장하자 얼어붙은 다른 가수들.
그들이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월드클래스 가수가 눈앞에 있는 게 믿기지 않는 심경.
그나마 가장 유명한 세현과 수호도 그를 보며 떨떠름하고 놀란 눈치였다.
“오! 너희들 B.ONE이지?”
그리고 그런 세현과 수호를 향해 먼저 아는 체를 한 에드 케인.
그리고 그의 말에 수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에드 케인이 자신들을 알고 있을 줄이야.
감정 표현이 적은 세현도 그의 말엔 적잖이 놀랐는지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희 아세요?”
“얼굴을 몇 번 본 적 있어. 미튜브에서 제법 유명한 것 같던데?”
수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고, 에드 케인의 답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북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미튜브와 SNS로 꾸준히 마케팅한 효과가 점점 드러나는 걸까?
‘B.ONE도 슬슬 북미 쪽으로 진출할 타이밍이긴 하지.’
김세준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대화를 잠깐 들은 김세준이 이내 고개를 거대한 모니터로 옮겼다.
지금 무대에 오른 건 단 한 명.
그의 여자친구이자 여성 싱어송라이터인 이예은.
그녀의 단독무대였다.
제법 긴장되는 듯 약간 움츠러든 어깨.
깊은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모니터에 포착됐고, 김세준은 재빨리 자신의 핸드폰으로 미튜브를 켜 생중계하는 방송에 들어갔다.
에드 케인과의 무대 직후 이예은의 무대를 마련한 이유.
에드 케인이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외국인이 들어왔을 터.
‘좋은 타이밍이지.’
이런 타이밍에 무대에 오른 이예은.
외모만으로도 외국에서 많은 팬을 이끌었던 그녀.
에드 케인의 무대가 끝나고 방송을 나가려고 하던 외국인들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으리라.
그 증거로 에드 케인의 등장으로 400만 명까지 치솟았던 생중계 시청자 수.
에드 케인이 무대에서 내려왔음에도 그 숫자의 변동이 없었다.
“오... 저 여자는 누구야?”
세현과 수호와 대화를 마친 에드 케인도 무대에 오른 이예은을 보며 감탄을 뱉었다.
아름다웠다.
외국에선 흔히 볼 수 없는 미녀.
단아하고 우아한 매력을 풍기는 그녀의 모습에 에드 케인이 눈을 빛냈다.
그리고, 이어서 노래 MR이 흘러나오고, 그녀가 입을 열자 에드 케인이 깜짝 놀라며 경악을 내비쳤다.
'하. 이 나라는 어떻게 된 거야?'
김세준의 존재만으로도 놀랐는데.
이런 작은 나라의 이런 매력을 가진 가수가 또 한 명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