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단독 콘서트(5)
김세준의 어머니인 박진숙.
‘아이고...’
무대 위로 올라오자 절로 나오는 곡소리.
마이크 때문에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 소리를 삼켰다.
자신을 보는 2만 명의 사람들.
그들의 시선에 잡아먹힐 거 같은 기분이 들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노래라곤 가족들과 함께 노래방에 가본 게 인생의 전부다.
50년이 넘는 인생에서 남들 앞에서 노래 한 번 불러본 적 없던 삶.
그런 삶을 살다가 갑자기 2만 명, 그리고 온라인으로 지켜보고 있는 수백만 명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니.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자신의 부귀가 아닌 아들의 영화를 위해 올라온 자리이지만, 후회막심이었다.
남편은 그래도 경험이 있고, 그동안 쌓아놓은 실력이 있고 명성이 있다.
그에 반해 자신은 한평생을 가정주부로 살아온 삶.
아들의 부탁을 거절했어야 했는데...
아들은 이런 자신의 심정도 모르는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관객들과 대화를 하며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 피었다.
“그리고, 이분은 제 어머니인 박진숙 여사님입니다!”
김세준이 손바닥으로 그녀를 가리켰고, 박진숙이 김세준의 말에 관객들을 향해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박진숙이에요. 세준이 부탁으로 올라왔는데, 아이고...”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는 탄식.
중년 여성의 귀엽고 산뜻한 모습에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렸고, 김세준도 싱긋 웃었다.
“어머니가 많이 떨리시나 봐요. 무대가 처음이셔서 그런데, 다들 좋게 봐주실 거죠?”
네!!!
김세준의 물음에 크게 외치며 화답하는 관객들.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김세준이 가야금 앞에 앉았고, 박진숙이 갈 길을 잃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김세준을 바라봤다.
불안한 심정이 물씬 풍기는 그녀의 시선을 읽은 김세준이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 중얼거렸다.
‘괜찮아요. 엄마.’
괜찮긴 뭐가 괜찮단 말인가.
순간 치솟아 오를 뻔한 역정.
안 그래도 갱년기라 요즘 들어 화가 많아졌는데.
자신의 속도 모르고 내뱉는 아들의 말에 마이크를 부여잡은 손에 힘을 잔뜩 쥐었다가 재빨리 마이크를 얼굴 쪽으로 들어 올렸다.
아들이 연주를 시작했고, 거대한 스피커에서 이번에 그녀가 부를 노래.
‘섬집 아기’의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김세준도 전주에 맞춰 가야금을 뜯었고, 동시에 박진숙의 속도 울렁거렸다.
하지만 울렁거리는 속과 상관없이 전주와 김세준의 연주는 속절없이 흘러갔고, 어느덧 노래의 첫 마디를 부를 차례.
아무리 싫다고 해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뒤로한 채, 박진숙의 입이 달싹거리며 그녀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고척 스카이돔을 가득 채웠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이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
그녀가 노래를 시작하자 사람들이 입을 틀어막곤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김세준 실력이 유전이었구나...”
한 관객이 박진숙을 보며 넋을 잃곤 중얼거렸고,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인 김창용이야 가야금 명인이라 불리며 수많은 창(唱)을 불렀던 사람이기에 실력자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다.
하지만 어머니인 박진숙은 김세준의 팬들이 알기론 그저 평범한 일반인.
노래하곤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고, 김창용과 달리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그냥 김세준이 콘서트에서 보여주는 작은 여흥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가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목소리에 반하셨다고 했지.’
가야금을 연주하는 김세준이 살짝 웃으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아들이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박진숙의 목소리는 웬만한 가수들 뺨치게 아름다웠다.
그런 깨끗한 목소리로 노래를 담백하게 부르자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
박진숙을 흐뭇한 표정으로 보며 연주에 열중하던 김세준이 이어져서 들리는 소리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사람들이 박진숙의 목소리를 따라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2만 명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져 울려 퍼지는 자장가.
‘와우...’
자장가도 2만 명이 부르니 이렇게 웅장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김세준의 가야금과 해금과 대금의 애절한 소리가 더해지자 웅장하면서도 서글픈 가락이 완성되었다.
‘장관이네.’
김세준도 그녀의 노래에 화음을 넣어주면서 속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김세준의 시선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표정.
가지각색의 얼굴을 지닌 그들은 노래를 부르며 각자의 추억을 회상하는 중이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누군가는 작은 미소를, 누군가는 눈물 젖은 눈빛으로 노래를 부르는 풍경.
국악 버전으로 편곡된 ‘자장가’를 2만 명이 부르는 풍경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
노래가 끝나고, 박진숙의 숨소리만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지는 것도 잠시.
관객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그녀에게 보냈다.
그런 관객들의 반응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찌할 줄 몰라 하는 그녀였고, 김세준이 슬며시 웃으며 박진숙에게 다가가 아버지에게 했던 것처럼 포근히 안았다.
“고마워요. 엄마.”
“남사스럽게.”
박진숙이 말과 달리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아들의 품에 안기며 미소를 지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관객들의 호응은 뜨거웠고, 자신이 아들에게 큰 도움이 된 거 같아 뿌듯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난생처음 해본 경험.
자신의 노래를 수많은 사람이 따라부르고, 자신의 노래가 그들을 감회 시키는 순간.
아들이 왜 가수를 하고 싶은지, 가수들이 왜 그렇게 무대에 열광하는지 잠깐이나마 느껴본 값진 경험이었다.
고작 한 곡.
4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을 부른 자신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진정 되지가 않았다.
하물며 몇 시간이나 공연해야 하는 가수들은 얼마나 큰 괘감을 느낄까.
“우리 엄마. 노래 잘 하죠?”
박진숙과 포옹을 끝낸 후, 김세준이 관객석을 향해 물었고 그들이 큰 목소리로 답했다.
그런 반응에 박진숙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였고, 이내 인사를 한 뒤 무대 뒤편으로 황급히 내려갔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른다는 게 큰 감동을 주긴 했지만, 부끄러운 건 또 다른 이야기.
막상 노래가 끝나자 부끄러움도 동시에 찾아왔고, 재빨리 무대에서 사라진 그녀였다.
“여러분. 다들 풍악, 잘 즐기고 계신 가요?”
그러자 다시 한번 들려오는 똑같은 대답.
관객 한 명 한 명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본 김세준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2만 명을 전부 다 확인할 순 없지만 대부분 사람의 얼굴에 깊게 새겨져 있는 만족감.
오늘의 주인공으로서 흡족한 반응이지만 김세준은 속으로 짧은 웃음을 지었다.
지금까지의 무대는 오프닝.
아직 제대로 된 풍악은 울리지도 않았다.
“다들 즐거워 해주시니 정말 좋네요. 다음 무대는요. 잠깐 저는 쉬고, 제 콘서트를 축하해주러 온 특별 게스트의 무대입니다.”
김세준의 말과 함께 아레스 뮤직 소속 가수인 장준과 권진수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이번 콘서트의 부가적인 목표.
아레스 뮤직 소속 가수들의 홍보.
그 목표를 위해 올라오는 가수들이었고, 가수들이 인사하는 틈을 타 김세준이 재빨리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잘했다! 세준아!”
“감사합니다.”
그가 백스테이지에 오자 어김없이 하동준이 그를 반겼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다음 무대부터지?”
“네.”
“다음 무대 준비는 끝났어. 너만 준비하면 돼.”
하동준의 물음에 김세준이 웃음 지으며 답했고, 이해진도 그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들겼다.
“지금까지는 엄청 좋아, 미튜브 시청자 수도 계속 늘고 있고.”
“얼마나 늘었는데요?”
“30만 명. 지금 시청자 숫자가 총 230만 명이다.”
콘서트가 시작한 지 이제 고작 30분이 지났다.
“좋네요.”
작은 미소와 함께 대답한 김세준이 고개를 절로 끄덕였다.
매운 순조로운 출발.
아무래도 김창용과 박진숙의 무대는 그가 제일 큰 걱정을 했던 공연이었다.
프로인 가수들과 다르게 이런 공연은 처음 해보는 김창용과 아예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게 처음인 박진숙이기에.
그리고 그의 우려가 무색하게 둘의 공연은 사람들에게 열화와 같은 반응을 얻었고, 마음속의 큰 짐 하나를 덜어냈다.
“준이하고, 진수도 잘하네.”
미튜브에 나오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하동준이 만족스럽게 말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채팅.
빠르게 지나가 제대로 읽기도 어려웠지만 재빠르게 캐치한 반응들은 긍정적이었다.
김세준의 노래하곤 다른 분위기의 노래이지만 오히려 그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갔는지, 빠르게 지나가는 채팅 대부분 둘을 향한 칭찬과 관심이었다.
이대로만 잘 진행된다면 아레스 뮤직의 목표도 성공적으로 달성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어느새 다음 곡을 위한 준비를 모두 마친 김세준.
두 사람의 노래가 끝나길 기다리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다음 노래는 그의 솔로 곡.
하지만 노래를 홀로 부를 뿐, 무대를 채울 사람은 그 혼자가 아니다.
‘그 모습도 장관이겠지.’
다음 무대를 떠올리자, 절로 끄덕여지는 고개.
어느덧 자신의 게스트로 와준 두 사람의 공연이 끝났고, 김세준이 백스테이지에서 나와 무대로 향했다.
무대로 올라가는 도중, 슬쩍 본 무대 뒤쪽.
거대한 천막에 가려져 사람들에게 보이진 않지만, 오늘 자신의 무대를 온종일 도와줄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그쪽을 바라보자 절로 미어지는 미소.
사람들도 김세준을 봤는지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손을 흔들었고, 김세준은 곧 있을 미래를 떠올렸다.
저들이 모습을 드러나고, 탄성을 내뱉을 관객들의 얼굴이.
그들을 지나쳐 무대 앞으로 나서자, 장준과 권진수의 붉게 상기된 얼굴이 보였다.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했고, 열띤 성화를 보내준 관객들의 반응이 고마운지 감동한 얼굴들.
특히 장준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이다.
‘얼씨구.’
그런 장준을 보며 피식 웃은 김세준이 둘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장준 씨. 권진수 씨. 오늘 이렇게 게스트로 와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아, 이런 무대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관객분들 반응이 너무 좋아서 내려가기가 싫을 정돈데요?”
권진수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고, 이어지는 간략한 토크들.
김세준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풀며,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권진수와 장준.
둘의 이야기에 적절히 리엑션을 하던 김세준의 시선에 스텝의 사인이 들어왔다.
모든 준비가 끝마쳤다는 사인.
김세준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곤, 부드럽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오늘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해요. 다음 콘서트 때도 꼭 와주셔야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자신들의 몫이 끝났다는 걸 안 권진수와 장준이 관객들을 향해 인사하며 무대에서 내려갔고, 김세준이 관객석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다음 무대는요. 제 솔로곡입니다.”
까아아아악!!
김세준의 말에 관객들이 환호성으로 화답했다.
지금까지 듀엣만 불렀던 그. 듀엣도 좋지만, 솔로곡은 김세준에게 오로지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그러고 보니까, 이제 곧 연금 탈 시기잖아요?”
작은 미소와 함께 내뱉는 그의 말에 다들 감탄을 뱉었다.
그에게 새로운 연금을 꽂아줄 곡.
김세준 첫 앨범의 타이틀 곡인 ‘봄바람’.
재작년 봄에 나와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만들었던 노래.
그 명곡이 이곳에서 울려 퍼진단 생각을 하자 사람들의 얼굴엔 잔뜩 기대감이 서렸다.
“그럼 봄바람. 바로 가보겠습니다!”
김세준이 말과 함께 가야금 앞으로 가 앉았다.
앞서 했던 무대보다 조금 뒤에 자리 잡은 그.
그리고 천천히 흘러나오는 전주.
그 전주에 맞춰 김세준도 가야금을 뜯었고, 고척 스카이돔에 가득 울리는 봄 내음 가득한 국악의 소리.
“아니, 진짜 오늘 소리가 되게 풍부하게 들린다니까?”
“그러게. 고척 스카이돔이 원래 이런 느낌은 아니지 않나?”
그런 김세준의 연주를 보며 몇몇 이들이 감탄과 함께 고개를 갸우뚱했다.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들리는 세션의 소리.
몇 번 고척 스카이돔을 와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겐 의아함을 지어내게 했고.
김세준이 첫 목소리를 떼기 전.
무대 뒤쪽을 가리고 있던 거대한 검은 천이 펼쳐지며, 그 뒤에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관객들에게 드러났다.
“...!”
꺄아아아아악!!!
순간 가득 울려 퍼지는 함성과 사람들의 충격 받은 듯한 얼굴.
‘이거지!’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김세준이 속이 환희로 가득 찼다.
검은 천 뒤에 있던 사람들.
오늘 자신의 콘서트를 위해 부른 국악단이다.
가야금, 거문고, 해금, 대금, 태평소, 꽹과리, 징, 북, 아쟁, 피리, 단소, 소금 등등.
자신의 노래에 쓰인 모든 국악기 전문가들이 그곳에 있었다.
가야금 연주자만 7명에 달하는 거대한 국악단.
자신의 연주에 맞춰 울리는 가야금 8중주.
소리 자체도 압도적이지만, 보이는 풍경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한 몸이 된 것처럼 8명이 동시에 가야금을 뜯는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
거기에 더해 적어도 2명 이상의 연주자들이 있는 다른 악기 연주자들.
그들도 자신의 파트에 맞춰 한 몸이 된 것처럼 각자의 연구를 연주한다.
김세준의 이번 콘서트 제목인 ‘풍악’.
그 제목처럼 한국의 풍악이 고척 스카이돔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